<2020년8월05일(수) 잠31:1-31 큐티목소리나눔>
“군주의 사회적 책임 & 유능한 아내”

1. 군주의 사회적 책임
* 르무엘왕이 누군지, 그의 어머니가 누군지는 잘 모름. 왕의 어머니가 전한다는 형식이 약간 새로울 뿐이라는~~^^
* 개인적인 향락(왕의 여인들, 술과 놀이 등등)에 빠지지 말라. 왜냐면 그러다보면 왕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책임(공정한 재판)을 그르칠 위험이 높기 때문.
* 군주는 무릇 억눌린 사람에게 공정한 판결을 해야 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술(위로)를 전해야 하고, 고통 속에 있으나 말 할 수조차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변호해야하는 법! 특히나 억눌린 사람과 궁핍한 사람들의 판결을 바로 해야 하는 거라,
* 여인의 치마폭에 싸여 술과 잔치에 빠져있을 틈이 없단 말씀!!
*** 와우!! 진짜로 리더십에 있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일들을 딱 박아두었네요. 고대의 군주사회를 생각해본다면, 이런 얘길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제대로 잠언서 마무리를 하는 것 같습니다요~~^^
* 최근에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임대차 3법이 시행되었습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세입자인데, 이들 상대적 약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사회로 환원하는 정신이 담긴 중요한 출발을 한 건데요. 오늘 말씀에 딱 맞는, 집권자들이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토지공개념’에 입각해서 부동산 보유세를 인상한다든지, 공공임대주택을 늘린다든지 등등 해야 할 일을 하는 정부와 집권당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 한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대할 때는요, 교회와 신학이 사회적 정의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되는 것, 누구의 책 제목처럼 <광장에 선 기독교>가 되는 게 진짜로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기독교가 오직 개인의 영혼이 구원을 받아 죽어서 천당 가는 데 갇혀있으면, 오늘 본문에 왕이 치마폭에 쌓여 잔치와 향략을 즐기는 그런 차원이 되겠죠.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생각도 사라지고,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출발점, “나라가 임하게 하시며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부터 스스로 포기하고 던져버리는 거니까요.
* 그래서 기독교는 언제나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야하는데요, 작금의 기독교는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편향된 목소리만을 내는, 좀 이상한 집단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ㅠㅠ
* 암튼, “윗물은 더러워도 아랫물은 맑아야 한다”는 어느 신앙 선배님의 말씀처럼, 대다수의 교회와 리더들이 달려가는 이상하고 넓은 길이 아니라, 성경이 이야기하는 정의와 공평, 펑화가 넘치는 좁은 길로 굳이 애써서 나아가는 제 삶이, 또 우리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2. 유능한 아내
* 음... v10-31은 고대사회라는 사회, 역사적 맥락을 전제하고 읽으면 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좀 거시기 하네요...
* 가만 보니까 농사짓고, 목축하고, 집안일에, 아이 양육에... 전부다 부인이 하고, 남편은 마을 원로들과 함께 마을회관에나 드나들고, 남들 존경은 혼자 받고... 이런 불공평한 게 어디 있냐구요!!
* 그래서 아무리 고대사회 배경이라 해도 다 쓸 데 없고, 딱 두 구절, 마지막 결론 v30,31은 중요할 것 같습니다요~~^^
*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사람’이라고 읽으면 더 좋겠죠~ ㅎㅎ)은 칭찬을 받는다.” 음... 인생살이에서 추구해야할 핵심, 아름다움의 중심에는 ‘주님을 경외함’이 있다는 거~~ “아멘!!” 입니다요^^
* “아내(여자)가 손수 거둔 결실은 아내(여자)에게 돌려라. 아내(여자)가 이룬 공로가 성문 어귀 광장에서(사회적으로) 인정받게 하여라.” 아멘!! 음... 이건 고대사회에서 엄청 혁명적 발언 같아 보이는데요~~ㅎㅎ
* 사실, 이 이야기는 굉장히 중요한 주제라는~~ 세상의 절반이 여자인데, 그동안 남성중심 사회에서 무시당해왔던 여성 노동(그게 사회 석에서건, 가사노동이건 뭐든)과 권리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거~~ “아멘!!”입니다요~~
*** 마지막으로, 평화롭고 따뜻한 가정생활을 위한 팁!! “남편과 자식들이 모두 일어나서 ‘덕을 끼치는 여자들은 많이 있으나, 당신이 모든 여자 가운데 으뜸이요.’라고 한다.”(v28,29) 아멘, 아멘, 아멘!!! 이제 좀 있으면 60대를 살게 될 저로서는 생존을 위한 말씀 같아 보입니다요~~~ ㅋㅋㅋ
* 음... 이렇게 잠언이 끝날 줄 뉘 알았으리요~~ㅎㅎ 암튼, 장장 석달에 걸친 잠언서 묵상이 끝났구요, 내일부터는 하박국서를 묵상합니다. 성경에 몇 안 되는 저희 집안 사람이라.. 특히 기대가 되네요~~ㅎ
http://www.podbbang.com/ch/8784?e=23644612

<2020년8월04일(화) 잠30:18-33 큐티목소리나눔>
“세상에서 제일 기이한 것, 뒤흔드는 것, 지혜로운 것”

1. 세상에서 제일 기이한 것
* 독수리가 날아간 자취, 뱀이 바위 위를 기어간 자취, 남녀가 함께 한 자취라...
**** 흠... 그래서? 아하! 그래서 간통죄가 형법에서 사라졌구낭...ㅋㅋㅋ
* 암튼 세상에는 해 놓고도 “난 안했소!”라고 입 닦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단 말씀!!
*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1980년 5.18 광주학살의 주범과 그 책임소재도 그렇고(사실 이미 세상이 다 알고 있으나 본인이 모르쇠 하니 그런 거지만...), 세월호 때 7시간 동안 대통령이 뭐했는지도 그렇고, 멀쩡하게 주차해놓은 우리 차 범퍼를 찌그러뜨린 사람이 누군지도 그렇고, 마스크를 끼고도 코로나에 감염 된 억울한 상황에서 누가 전파했는지도 그렇고... 암튼 세상에는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만 있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 그래서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거고, 예수님이 같이 눈물 흘리시며 마음에 통분하시고, 그래도 내가 있다고, 함께하면 조금이나마 더 잘 견딜 수있다고 말씀해주시는 거라....

2. 세상을 뒤흔들만한 일들
* 종이 임금 되는 것(쿠데타 같은 거겠죠?), 어리석은 자가 배불리 먹는 것(이건 왜? 아하! 어리석은데도 잘 먹고 잘 사는 거가 배알이 꼴린다? 뭐 이런 말씀인감요? 그참...), 꺼림을 받는 여자가 어쩌고저쩌고...(이건 생략.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거라.),
* 뭐, 기존의 질서를 뒤집는 것이 상당히 맘 불편한 모양입니다요... 때에 따라선 그게 혁명이 될 수도 있고(파리혁명, 6월항쟁, 촛불혁명...), 때에 따라선 그게 반역이요 쿠데타가 되는 것이긴 하죠(5.16군사쿠데타, 12.12 군부 내 쿠데타...). 보는 시각에 따라선 이걸 반대로 보고픈 사람도 있고...
* 암튼,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거라는~~ 때로는 참여도 하고, 때로는 그렇거니 하며 내 일을 하고...
* 그 중에서도 우리는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때론 세상을 뒤흔들만한 일들도 하고 때론 엄청난 격동 속에서도 마치 장 지오노의 이야기 <나무를 심은 사람>처럼 묵묵히 내 일을 하는 거라는~~

3. 아주 작으면서도 가장 지혜로운 것들이 있으니~~
* 힘없는 개미가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것, 바위틈에서 집을 짓는 오소리, 임금도 없는데 떼 지어 지나가는 메뚜기(음... 이건 완전 중동지방 특유의 냄새가 나는 이야기네요^^), 손에 잡혀 죽음을 당할 것 같은데도 집안 곳곳에 출몰하는 도마뱀(우리 문화에서는 바퀴벌레? 초파리?)
*** 문득 생각나는 찬양, “아주 작은 어린 양 한 마리를 애 태우며 찾으시는 하나님, 보잘 것 없는 과부의 헌금을 넉넉히 받으시는 하나님, 강물 따라 버려진 한 아이를 지도자로 세우시는 하나님, 일꾼들이 쓰다 남은 버린 돌로 머릿돌을 삼으시는 하나님, 가장 낮은 이들을 하늘 높이 올려서 하늘아래 모든 권세 부끄럽게 하시네. 이토록 놀라운 그의 나라 온 땅에, 이토록 아름다운 그의 나라 온 땅에~~” 그러게요. 하나님나라는 이렇게 보잘 것 없고 작게 출발하지만, 가장 아름답고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라는~~^^
* 자본주의 사회 전체가 달려가는 가치관 “거지 높은 산이 되라” 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꿈꾸며 사는 나의 하루하루가 주님 앞에 지혜롭고 놀랍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수많은 세상의 격동 속에서도 오늘 나는 <하나님나라의 나무를 심는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또한 그 사건 속을 뛰어들어 격랑을 헤쳐 나갈 때도 <하나님나라의 뜻과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뛰어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http://www.podbbang.com/ch/8784?e=23640812

<2020년8월3일(월) 시8:1-9 큐티목소리나눔>
“내가 뭐라꼬, 하나님이 이렇게 생각해주시는 건가욤...”

1. 야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광활하게 펼쳐지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이 경이로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떠올리고 찬양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2.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고 / 저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시고 /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시고 /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나이다.
*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우주의 신비와 광활함에 비해 우주의 한 먼지같이 작은 나를 발견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 또한 이런 상황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신의 존재를 떠올리게 됩니다. 롬1장에서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을 주셨다.”고 한 그 센서가 작동하는 거죠.^^
* 근데, 가만 보니 이 시인은 광활한 우주만물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통치하고 관리하는 권한을 우리 인간에게 위임하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창세기1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그 다스림을 위임하셨다는 사실. 만물과 인간과의 관계 등에 대해 깊은 통찰이 녹아있는 고백입니다. 이건 상당히 묵상의 깊이가 깊다는 걸 말하는 거라~~ㅎㅎ 그만큼 평소에 성경적 세계관 훈련이 잘 되어있었다는 말씀~~
* 게다가 굉장히 신학적 깊이가 있는 주제를 전혀 딱딱하지 않게, 아주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는 멋진 고백!! 이런 표현능력이 넘넘 부럽부럽~~^^

3. 이 시는 신약에서 제일 많이 인용된 시 중의 하나입니다(엡1:22, 히2:5-9, 고전15:27 등등)
* 주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갖고 계심을 이야기하면서 인용했죠,
* 비록 지금은 온전하게 통치권을 다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주의 재림 때 온전한 통치권이 회복될 것을 말하면서 이 시편을 인용하는 겁니다.
*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맡기신 만물에 대한 통치가 우리 죄로 인해 왜곡되고, 비뚤어진 것을 예수님께서 바로잡으시고 처음 질서를 회복하셨으니, 당연히 이 시의 고백이 예수님께 일차로 적용되는 게 맞죠.
*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과 은혜로 인해 우리가 이 시인의 고백처럼 원래의 인간 지위를 회복하고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이 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

*** ‘나’라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보다 쬐끔 못하게 만드시고, 생각해주시나이까?
오늘, 비록 현실이 나를 속이고 수많은 위협들 속을 걸어가면서,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시간을 살아갈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시고 당신의 존귀와 영화로 왕관을 씌워주셨음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다시 붙잡고, “주님이 다를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이쯤이야~~”라고 툭툭 털고 일어서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Ps. 아버님 입원하신 병실이라, 녹음은 건너뛰어야 겠습니다요...ㅠㅠ

<2020년7월30일(목) 잠30:7-17 큐티목소리나눔>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소서. 글쎄요...”

1. 가난하게도 말고 부하게도 마소서(v8)
* 배불러서 주님을 부인하면서 ‘주가 누구냐’고 말하지 않게 하시고, 가난해서 도둑질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 아마 잠언 중에 제일 많이 암송하는 구절 중의 하나일 겁니다.^^
* 주님을 경외하며 살고자하는, 참 아름답고 순전한 마음이잖아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중에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꼭 그런 기도 같거든요.
* 하지만 조금만 더 묵상해보면, 이게 주님이 주신 기도와는 문맥상 좀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은요, 사실 가난함이나 부함과 같은 외적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중심이 새로워진 사람들이잖아요? 이냐시오가 말한 것처럼 가난함도 주님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면 취하고 아니면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 부요함도 주님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면 취하고 아니면 버릴 줄 아는 게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란 말씀!!! (뭐, 실제로 이렇게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제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살고 있거든요^^)
* 그러니, 부자가 되면 주를 부인하기 쉽고, 가난하면 주를 욕되게 하기 쉽다는 이 가정이 좀 거시기하단 말예요. 부자로 살면서도 얼마든지 주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삶을 살 수 있고, 가난하면서도 주님 주시는 평화와 기쁨 속에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위해 애쓰고 사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은데... 굳이 이렇게 기도해야할까요? (뭐, “가난하게는 절대 마시고 꼭 부자로 살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대세인 데 비해 이런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참 대견한 일이긴 합니다만...)
* 물론, 상황이 사람을 힘들게 하고, 마음의 중심을 굽게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긴 합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내 옆에 누가 같이 있느냐, 어떤 환경에 많이 노출되느냐에 따라 마음이 같이 물들기 쉽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암튼 우리 기도는 좀 더 마음의 중심을 염두에 두고 드리는 기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승화된, 차원이 다른 기도를 드려야죠.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의 의와 같은 수준이면 안 된다” 하셨던 주님의 말씀처럼 말예요.
* 이런 걸 생각하면서 다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생각해보면요, 이미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주님의 뜻이 땅에서, 내 삶에서 이뤄지길 기도한 이후에 드리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잖아요? 이건 이미 내 삶이 주님을 닮아가는 삶이길,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삶의 리듬을 배우며 사는(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길 바라는 마음의 중심을 세우고서 드리는 기도거든요. 그래서 주님이 실제로 내 삶을 주도하시는 중에 내 필요들을 채워달라고 전적으로 내 삶을 내어 맡기며 기도드리는 겁니다. 그게 외적으로 부요한 상황이든, 가난한 상황이든 상관없이 말예요.^^
* 매일매일의 내 삶이 이렇게 주님 안에서 중심이 새로워진 삶, 차원이 달라진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더러운 것을 씻지도 않고 깨끗한 체하는 무리가 있다(v12)
* & 눈이 심히 높아서 눈꺼풀을 치켜 올리고 남을 깔보는 무리가 있다(v13).
* 이빨이 긴 칼과 같고 턱이 큰 칼과 같아서 가난한 사람을 하나도 땅에 남기지 않고 삼키며 궁핍한 사람을 삼켜 씨를 말리는 무리도 있다(v14).
* 전혀 배부른 줄 모르는 것,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있다(v15).
*** 딱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네요. 요즘 사법부 사람들, 언론인들 중에요... 검언유착의 주인공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판결하는 판사들... 진짜 나쁜 노무시키들!!
* 근데, 교회 안에도, 교회 다딘다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나쁜노무시키들이 제법 많이 있다는 더욱 슬픈 사실...ㅠㅠ
* 제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제대로 된 하나님나라 백성, 하나님의 주권 앞에 나를 겸손히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이 바뀐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고 사는 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 이를 위해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소서”를 기도하는 차원을 넘어, “가난함도 부함도, 그 어떤 것도 주님을 닮는데 도움이 되면 취하고 아니면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길” 기도하며 그렇게 사는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http://www.podbbang.com/ch/8784?e=23629006

<2020년7월29일(수) 잠30:1-6 큐티목소리나눔>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사람이 대체 누구관대?”

1. 아굴의 잠언
* 잠언 30장은 “이것은 아굴의 잠언이다”라고 시작합니다(v1). 근데 이 1절의 원문을 번역하는데 다들 어려움을 겪는 모양입니다. ‘잠언’으로 번역하는 것도 ‘마싸 사람’이라고 지명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그러고, ‘그가 이디엘에게, 이디엘이 우갈에게 말하였다’는 부분도 ‘하나님 저는 피곤합니다. 제가 다시 어떻게 힘을 되찾을 수 있습니까?’라고 전혀 엉뚱하게 번역할 수 있기도 하답니다. 그참...
* 그래서 이 ‘아굴’이라는 사람이 좀 신비에 쌓인 사람이고,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마싸 사람ㅎㅎ), 그리고 이 30장, 31장에서 다루는 격언이 좀 애매모호한, 이리송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거라 이 분위기에 맞게 걍 아무나 신비롭게 등장시킨 거라는 얘기도 있고 그렇습니다. 긍께 한마디로 ‘v1은 신경 쓸 거 없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요~~ㅋㅋ

2. 하늘에 올라갔다 온 사람이 대체 누가 있관대?
* “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우둔한 짐승에 불과합니다. 하늘에 올라갔다온 사람이 누구며, 바람을 자기 손에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 v3-6은 꼭 욥기38장 분위기 같습니다요. 왜, 욥과 친구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잖아요?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이제 대장부답게 내 말에 대답해봐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했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봐라.~~~” 라고 시작하신 하나님의 질문, 내가 빛이 어디서 오는지 아느냐? 바다 속 깊은 곳에 있는 물의 근원까지 들어가 봤느냐? 등등
* 왜 뜽금없이 이런 욥기나 전도서 분위기? 사실 지금까지 잠언은 쭉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아는 사람처럼 격언을 쫘악 펼쳤잖아요? 근데 이제 마무리하려니까 살짝 겁이 났던 모양입니다. 대체 내가 누가라꼬 남의 인생에 감놔라 팥놔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든 거죠.ㅎㅎ 또 같은 주제에 대해 이말 했다가 저 말 하기도 하고 그랬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한 변명? 뭐 그런 분위기~~

3.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순결하니..
* 그래서 잠언의 결론부는 아주 겸손 모드로 가고 있습니다.
* 난 무지렁뱅이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지혜의 근원이심을 고백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모두 순결하고, 그를 의지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인생살이의 핵심 주제, 단 하나의 잠언이라구요~~
* 하나님 말씀에 뭘 더하려 하지 말고, 순전하게 받아들이고 따라 사는 거, 이게 진짜로 중요한 인생살이의 격언이요 잠언이라고~~
*** 걍 아멘! 입니다요~~^^

* 근데요, 우리는 꼭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손을 벗어나고픈 이상한 충동이 일어난단 말에요... 하나님 말씀에 어깃장 부리고 싶고...
* 시139편에서 다윗이 그랬던 게 생각납니다. 하나님 눈을 피해 바다 끝까지 도망가고싶었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생각과 행동을 덮어버리고 싶었던 다윗, 하지만 그가 결국 고백하는 내용은 다 소용없더라는 거죠. “주님, 주님은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훤히 알고 계십니다. 말할 바를 말하기도 전에 다 아십니다. 또 주님은 내가 어딜 가든지 거기에 계십니다. 저 바다 끝까지 새벽 새의 날개 짓에 얹혀 도망가더라도 거기에 주님이 계시고, 어둠이 나를 덮어도 거기에도 계십니다...” 뭐 이런 고백이죠.
* 다윗의 결론은, “주님, 항복합니다. 저를 잘 살펴보시고 제게 무슨 악한 게 보이거든 좀 절리해주시고, 저를 당신의 영원한 길로 이끌어주소서”(시139:23,24) 입니다.
* 인생의 격언을 줄줄 외우고, 명사들의 명언이나 처세술, 자기 개발서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우리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갈 수가 있을까요? 그냥 매일 성경말씀 묵상하고, 암송하고, 또 쭉 읽어나가고.. 기도하고, 실천하고... 그러는 게 제일 중요한 인생살이의 기둥인 거죠. 사실 최고 중의 최고 자기 개발서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아니던가요? ㅎㅎ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성령께서 우리 중심을 바꿔주시면, 뿌리를 바꿔주시면 삶은 자연스럽게 달라지게 되는 거니까요~~
http://www.podbbang.com/ch/8784?e=23627942

<2020년7월28일(화) 잠29:1-27 큐티목소리나눔>
“인생 주변, 신변잡기... 뭐 궁시렁 궁시렁...”

1. 고집
* “책망을 자주 받으면서도 고집만 부리는 사람은 갑자기 무너져서 회복하지 못한다.”(v1)
* 그러게요... 돌아보면 목회자로 살아온 세월 속에서 참 많은 청년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진짜 시간을 많이 들여서 자주 만났고 때로 야단도 많이 쳤으나 (뭐, 그렇다고 그때 제가 모든 걸 다 알아서 야단친 건 또 아니었을 테고, 또 그 야단이란 게 꼰대 짓과 참 경계가 미묘한 부분이 있는 거라, 제 얘기가 전적으로 다 옳았을 수도 없었을 거긴 하지만... 암튼), 자기 고집을 꺾지 않다가 결국 실패를 맛보곤 했던 사람도 제법 많이 있었거든요... 근데 딱 오늘 1절 말씀에서 그 애길 하는 것 같아서... 그 한 명, 한 명이 떠올라 맘이 먹먹해지는 게,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으려나.. 그래도 자기 인생, 잘 살고 있겠지... 뭐 이런 생각들로 묵상하다 멈춰 서서 추억여행 시간을 좀 보냈네요...ㅠㅠ
*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야단보다는 더 따뜻한 말과 격려가 필요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지나간 사람들로 맘이...ㅠㅠ
*** 그럼, 난 어른들이 야단치실 때, 순종적인 사람이었고, 또 지금도 그런가? 그런 질문이... 자뻑하자면, 그런 것 같은데... 음... 꼭 그렇지는 또 않았네요.. 나름 기준이 있어서 저건 아냐. 그러면서 혼자 하다가 사고치고.. 그랬던 때도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나를 돌아보면 이제는 좀 여유가 생겨서 야단치기 보다는 지지해주고, 기다려주고.. 그러는 걸 익혀가는 중이구요~~^^

2. 분노조절장애?
* “미련한 사람은 화를 있는 대로 다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화가 나도 참는다.”(v11)
* 음... 이 부분에서 전 참 지혜로운 사람 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요...ㅠㅠ
*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화를 조절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가, 또 버럭 하고 나면 또 그 절제력이 무너진 것 땜에 맘이 또 상하고...
*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기를 잘하는 사람은 죄를 많이 짓는다.”(v22)는 말씀 앞에 한 번 더 화살 맞고...ㅠㅠ
* 암튼, 인생 숙제가 많네요...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를 꼭 안아주시고 지지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우리 하나님, 또 우리 아내느님이 계셔서 그래도 인생 살만하고, 행복하답니당~~ㅎㅎ

3. 골고루 햇빛을 부어주시는 햇볕정책의 대가, 우리 하나님
* “가난한 사람과 착취하는 사람이 다 함께 살고 있으나, 주님은 이들 두 사람에게 똑같이 햇빛을 주신다.”(v13)
*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하나님이 당장 이 나쁜 노무시키를 혼내주셔야 마땅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둘 다에게 햇빛을 비춰주신단 말씀이잖아요? 우째서 그러실까요?
* 눅15장의 탕자의 비유가 생각나네요. 큰아들 입장에서 보면 둘째는 완전 개망나니일 거고, 둘째 입장에서 보면 형님은 완전 무서운 대상일 건데, 아버지가 보시기엔 둘 다 내 자식,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인 거죠. 하나님 보실 땐, 가난한 이도, 그를 착취하는 이도 다 당신 자식이라, 어찌 이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둘 다 햇빛을 비춰주시는 건 마땅한 일이실 거고...
* 하지만, 아버지는 큰아들을 야단치십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더냐? 근데 어찌 그리 화를 내누?” 내 것이 다 네 것인데, 넌 어찌 옆 사람이 그리 가난한데도 착취할 생각을 하누? 제발 그리 살지 마. 나눠줄 생각은 않고...쯧쯧...
* 이런 이야기가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정의가 살아나고 불의가 심판받고.. 인생이 그렇게 펼쳐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까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정의는 바로잡아 질 테니까.. 인생이 좀 생각만큼 잘 풀어지지 않아도, 견딜 수 있긴 합니다만...
* 암튼. 비가 억수같이 오는 아침에... 완전 주저리주저리... 오늘 큐티 나눔이 분위기가 좀 그렇게 흘러가네요~~ 뭐 이런 날도 있어야겠죠? ㅎㅎ
http://www.podbbang.com/ch/8784?e=23626559

<2020년7월27(월) 시7:1-17 큐티목소리나눔>
“억울한 비난과 공격 앞에서 다윗을 따라 기도하기”

1. 상황
* 시에 대한 설명에서 지은이가 다윗이라고 소개 됨 :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고 있고, 사울 주변에서 다윗에 대한 모함과 고소를 하는 구시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윗이 듣고서 하나님께 기도함
* 사실,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고소를 당하면, 힘들기는 해도 나름 내 마음 속에서도 정의와 벌에 대해 받아들일 각오라도 하겠건만...
*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비난받고, 모함에 현실적 위협까지 받게 되는 상황이라면, 게다가 그 공격이 상당기간 계속 나를 따라 다니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미치고 팔짝 뛰는 상황인 거죠,...)

2.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참고 인내해야한다?
* 이럴 때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주를 생각함으로 참으면 복이 있나니..”(벧전2:19)라는 말씀은(누군가로부터 듣던지, 아님 스스로 찾든지 간에) 오히려 내 마음을 더욱 괴롭게 하는 비수가 되기 쉽죠. 마음은 부글부글하는데, 외적으로 그냥 참는 건 아니잖아요?
* 사실 베드로사도가 그 말을 했을 때고 마냥 꾹 눌러서 참다가 화병이 나더라도 그냥 참아라는 말씀을 한 건 아니었을 겁니다. 그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진짜로 이유 없이 로마가 자행하는 대 박해 가운데 내동댕이쳐진 상황이었잖아요? 박해를 피해 굴로 도망가고, 잡힌 사람은 나무 기둥사이에 묶인 채 톱으로 켜서 죽임 당하고, 맹수의 밥이 되고.. 그랬던 상황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주셨다는 것, 그러면서 “주를 생각함으로” 이 엄중한 상황을 견디자고 이야기하는 거라... 다윗도 똑 같은 상황이구요... 이럴 때 참을 수 있는 건, 바로 이들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주를 생각함으로), 주께서 주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와 힘을 통해서 였던 거죠. 그 기도 중 한 편이 바로 오늘 본문이라는~~
* 믿음의 선배 다윗이 이럴 때 드린 기도. 그 기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그의 마음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기도 내용을 따라가 봅시당.

3. 다윗의 기도
* 내 상황은 이 모양입니다...(v1,2) : 나를 쫓아오는 사람들이 나를 찢어 죽이려고 덤벼듭니다. 난 주님께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 만일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v3-5) : 내가 친구의 우정을 악으로 갚았거나... 그러면 주님이 내게 정의의 심판을 내려주십시오. 하지만 주님 보시기에도 아무 잘못이 없지 않습니까?
(와~~ 다윗이 꽤나 하나님 앞에서 당당합니다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을 텐데... ㅎㅎ 뭐 절대 기준 앞에서야 누구나 깨갱하겠지만, 마음의 중심, 혹은 이 상황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겠죠?)
* 정의로 저들을 심판하소서(v6-9) : 주님이 재판정에서 저들의 악을 심판하시고 정의를 세우소서....
(여기까지 자신의 상황에 꽂혀서 항변하고, 하소연하던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 살아계셔서 지금 다윗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갑자기 확연하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순간 그의 마음은 “아! 그렇지!”라는 알아차림과 더불어 고요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 하나님, 당신은 진짜,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죄에 대해 확실히 보응해주시는 분이시지요. 비록 지금 이 억울함이 당장 풀어지지는 않아도, 상황이 180도 바뀌지는 않아도, 주님 앞에서 악이 설 자리는 없지요.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v10-16)
*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면서, 점차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더 나아가, 앞으로도 외적으로는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일지라도 주님을 찬양하겠노라고 선포합니다.(v17)

4. 애매히 고난당하는 순간들이 부지기수인 우리의 현실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 기안서류 들고 상사의 사인을 받기 위해 그 앞에서 들어야 하는 무수한 말들, 그 속에 날아오는 독화살들... 도로 위에서 자기가 뒤에서 들이받아 놓고서 오히려 화내고 덤벼드는 이상한 사람을 만났을 때, 워낙에 욕먹을 짓을 많이 한 건 맞지만 그리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고개 숙여야 하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들...
* 이런 모든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나라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님 앞에 나아가 솔직하게 털어놓고 하소연하고 도움과 심판을 요청하는 기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또 실제로 기도하다보면 이렇게 마음이 정돈되고 평화의 힘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다윗과 더불어 같이 누리면서 오늘도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봅니다. 아자~~!!
* <한 가지 팁> 이럴 때 그저 단순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예수기도를 꾸준히 반복해서 드리는 것도 진짜로 좋습니다. 이 단순한 기도를 통해 주님이 진짜로 나를 불쌍히 여기고 평화와 은혜를 부어주시는 걸 한 번 누려보시길~~^^
http://www.podbbang.com/ch/8784?e=23623896

<2020년7월21일(화) 잠27:1-27 큐티목소리나눔>
“코로나 시대의 사랑, 우정”

1.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친구랑 부대껴야 지혜가 예리해진다(v17)
* 친구의 책망은 아파도 진심에서 나온 것이지만, 원수의 입맞춤은 거짓에서 나온다(v6).
* 향유와 향료가 마음을 즐겁게 하듯, 친구의 다정한 충고가 그와 같다(v9).
* 너의 친구나 너의 아버지의 친구를 저버리지 말아라. 네가 어렵다고 친척의 집을 찾아다니지 말아라. 가까운 이웃(친구?)이 먼 친척보다 낫다(v10).
*** 그러게요. 오늘따라 이 말씀들이 크게 다가오네요...
*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다보니, 특히나 요즘은 교회에 대한 감독이 강화되는 통에 더더욱 친구와 사람이 그리운 때를 살고 있어서 말예요...ㅠㅠ
*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회적 지위와 환경이 바뀌고, 내 삶의 바운더리가 각자 달라지면서 젊을 때까지 그렇게 가깝던 친구마저도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정말 많잖아요? 그러다보니 내가 삶에서 큰 실수를 하거나, 혹은 큰 슬픔이나 상실을 만났을 때,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누군가 진정성 있게 내게 위로나 조언, 따끔한 책망 같은 걸 해줄 사람 없이, 나 홀로, 혹은 배우자랑 둘이서 결정하고 견디고 버티고... 그래야할 때가 많은 게 현실인 것 같아요...ㅠㅠ
* 그런 점에서, 교회에서 만난 친구는 진짜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아요. 맑은물교회를 예를 들면 적어도 10~16년, 혹은 그 이상, 대학시절부터 만나 신앙훈련도 같이 받고, 하나님나라의 꿈도 같이 꾸고, 직장과 결혼으로 흩어지고 모이고 하던 때도 통과하고, 이렇게 매주, 아니 그 이상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되어 있잖아요? 물론 그 뒤에 만난 사람들도 함께 이 친밀함 가운데 끼어들게 되고... 그것도 같은 신앙의 칼라와 하나님나라의 꿈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말예요...
* 뭐, 나이가 점차 들어가면, 아래위로 5년 정도 차이는 그냥 친구가 되는 것 같고. 그러다보면 진짜 마음 맞는 친구로 평생 같이 이웃하며 살고픈 사람들이 맘 맞춰 같이 모여 살고...
* 코로나 아니라 그 어떤 위기 상황이 닥쳐도 이런 우정과 사랑을, 이들이 함께 키워온 사람들이 서로 교제하고 격려하고 서로의 지혜를 깊고 넓게 해주는 만남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더더욱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 이런 귀한 우정, 친구들과 함께 한 교회가 되어간다는 게 진짜로 행복할 따름이죠~~^^

*** 또, 이 말씀 앞에 저의 개인적 친구를 돌아보게 됩니다. 대학시절부터 IVF를 통해 만났고, 어쩌다보니 비슷한 영역에서 같이 일하고 있고, 부부가 다 서로 잘 알고.. 문지하 친구들이 옆에 있다는 게 진짜로 행복한 일이네요~~^^
* 친구들이 있어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제 신앙도, 교회 사역도, 지혜도 함께 자라왔던 것 같고, 숨도 쉬고 살았던 것 같네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요~~^^

2. “사람은 절대로 안 바뀌어.” 글쎄요? 하나님 앞에서도 그럴까요?
*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듯 칭찬은 사람됨을 달아볼 수 있다(v21).
*** 허걱, 요즘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가 대세인데...
* 뭐, 칭찬해보면 그가 우쭐거리고 막 나가든지, 좀 더 겸손해지며 더 열심히 하든지.. 그런단 얘기겠죠?
* 그래서 분별이 된 어리석은 사람은, “곡식과 함께 절구에 넣어서 공이로 찧어도 그 어리석음이 벗겨지지 않는다.”(v22) : 완전 ㅎㄷㄷ 입니다요... 사람, 진짜로 잘 안 바뀐다는 말씀이잖아요? 근데, 우린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이는 건요, 사람이 할 수 없는 걸 하나님이 하시니까요~^^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 형상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를 닮아가려고 애쓰다보면, 우리의 출발선이 어리석음이든, 촐랑대는 모습이건, 부화뇌동하는 거든, 낄낄빠빠가 안 되든, 암튼, 그 어떤 출발선에 서 있었던지 상관없이 그 자리로부터 성숙해가는 거죠. 그리스도 예수의 온전한 분량에 이르기까지요.
* 사람을 고쳐 쓰느니 차라리 뭘 하지... 라는 말도 하나님 앞에서는 안 통하니까요. 우리의 심령 중심, 뿌리부터 바꿔주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믿고, 오늘도 주를 닮고자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꾸준히 해 봅시다요~~^^
http://www.podbbang.com/ch/8784?e=23610135

<2020년 7월20(월) 시6:1-10 큐티목소리나눔>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1. 시인의 상황
* 육체적 질병으로, 혹은 외적으로 엄청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중
* 깊은 좌절감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영혼도 감정도 완전 탈진 상태.
* 이런 상황에서 “주여~쭈여~”밖에 할 말이 없는 상황...

2. 주님께 드리는 기도
* 주여 나를 책망하고, 징계하지 마소서(주님, 제발 이제 그만 혼내소서...) : 사람이 겪는 모든 어려운 상황이나 질병이 전부 다 하나님의 징계는 아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고나면 꼭 이런 생각이 들어요...ㅠㅠ 뭐, 그러면 또 어떻습니까? 그냥 느끼는 대로 주께 털어놓고 하소연하는 거죠.. 이미 내 마음 다 아시는 주님이신데..
* 나는 기력도 쇠하고, 뼈마디도 떨리고, 마음도 힘들어 죽겠습니다. : 내가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죠. 설마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내 힘든 마음에도 불구하고 예의바르게 꾸미고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겠죠? 그냥 털어놓으면 다 받아주시는 주님이신데...
* 내가 죽고 나면 하나님한테도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 이 상황에서조차 주님께 이런 투정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럽지 말입니다~ ㅎㅎ
* 내가 밤새 울다보니 내 침대가 눈물바다에 떠다닙니다. 내 눈은 퉁퉁 부어서 아무것도 볼 수조차 없습니다.. :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도대체 내 처지가 불쌍해보이지도 않습니까?
*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 “너 과장도 좀 심하지 않나?” 그러시며 오히려 야단치거나, 못 본 체 하시거나 그럴 분이 아니잖아요? 살며시 다가오셔서 손 꼭 잡아주시고, 어깨를 꼭 안아주시고 토닥토닥, 쓰담쓰담 하시며 “그래.. 내 네 마음 잘 안다. 내 마음도 네가 아플 때 같이 아프단다. 같이 힘내서 일어서보자. 힘들어도 둘이 같이 가면 쪼매 낫지 않겠나. 어여 일어서보렴..”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시잖아요?

3. 기도 중에 마음에 찾아오는 평화와 자신감으로 일어서다.
* 우리가 기도할 말조차 없이 지치고 힘들어 그저 “주여~”만 부르짖을지라도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간구해주십니다.”(롬8:26)
* 마침내 기도 중에 시인은 힘을 얻고 자신을 억누르는 상황을 향해 외칩니다.
“악한 놈들아, 썩 물러가거라. 주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너희들의 하나님 앞에 꽁무니를 빼고 달아날 수밖에 없다!”
* 비록 상황이 곧바로 나아지거나 180도 바뀌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속에서는 이미 상황을 바꾸어주신 주님을 만나고, 그분을 신뢰함으로써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일어설 수 있게 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런 경험이 하나하나 쌓여서 바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께 나아와 기도할 수 있게 만들고, 인생을 살만한 힘이 되는 거죠.
* 진짜 힘들고 어렵고, 그럴 때, 때론 맘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해서 뭐라 기도하기조차 힘들 때, 이럴 때, 이 시6편을 암송하며 기도드리면 좋을 것같습니다. 기도하기 힘들 때 시편 암송만큼 좋은 기도가 없거든요^^
* 그러다 보면 주님이 진정성 있게 다가오셔서 내 마음 위로해주시고, 같이 손잡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걸 경험하게 될 거니까요~~^^
http://www.podbbang.com/ch/8784?e=23608821

<2020년7월17일(목) 잠26:1-28 큐티목소리나눔>
“미련한 놈, 게으른 놈, 미친 놈, 놈, 놈, 놈...”

*** 이번 장에는 ‘~놈, ~놈 ~놈’ 퍼레이드 같네요..ㅋㅋ

1. 미련한 놈(v1-12)
* 이런 놈에겐 영예가 어울리지 않고, 말에게 채찍이 필요하듯 그에게도 매가 필요하고, 이런 놈의 말은 대꾸를 하면 안 되고, 또 같은 말로 응수를 해줘야 찍소리도 못할 거고(그 참, 말을 말라. 해라. 어디를 따라야할지..쩝), 이런 놈이 입에 담은 잠언(지혜로운 말)은 힘도 없는 쓸데없는 말이고...
* 근데, “지혜롭다 하는 사람보다는 미련한 사람에게 오히려 더 희망이 있다.”(v12) 이건 또 뭔 말씀인고? 완전 반전인데요... ㅋㅋ 모두가 다 미련하다? 지혜로운 척 해봤자다 뭐 이런 뜻일까요?
*** 그 참.. 어쩌라구요? 우선 미련한 놈이 누군지, 어떻게 분별하느냐가 중요한데 말예요...쩝.. 마치 아무 말 대잔치 같은 느낌 같은 느낌...ㅠㅠ
* 암튼, ‘미련한 놈’이 대체 누굴까요? 궁금해집니다.

2. 게으른 놈(v13-16)
* 그는 핑계대기를, “길에 사자기 있다.” 한다. 음... “이불 밖은 위험해!!” 뭐 이런 수준이네요. 돌쩌귀가 문에 딱 붙어있듯이 침대에 붙어서 안 떨어진다고...ㅋㅋ 근데 이건 진짜 마음에 잘 다가옵니다요..
* “게으른 사람은 밥그릇에 손을 대고서도 입에 떠 넣기조차 귀찮아한다.” 완전 삶을 포기한 사람이네요...
* 근데 또 이건 뭔 말씀인고? “게으른 사람은 재치 있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음... 자뻑이 넘 심하다? 자기에 대한 허황된 만족도가 놓은 사람이다? 뭐 그런 뜻인 듯...
**** 그러게요.. 이 때 ‘게으름’이란, 자기를 진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 같아 보입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직면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귀찮아하고, 자기에 대해 허무맹랑한 과대포장을 하고, 또 스스로 그걸 믿고.. 그러다보면 일이 안되면 남 탓, 환경 탓 하고...
* 하나님 안에서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 하나님이 지으시고, “너는 특별하단다. 내가 널 만들었고, 또 온전히 받아들였거든. 그리스도 안에서 넌 새로운 피조물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인정하고 그런 사람이죠.
* 때론 용감하게 도전도 하고, 때론 너무 분에 넘치는 일을 이루려고 마구 덤비기 보다는 오히려 주 안에서 평화를 누리기도 하고... 이런 역동성이 삶에 있는데 말예요...
*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기를 버리고, 포기하고, 여기 묘사된 ‘게으른 사람’처럼 살아가는 거죠...ㅠㅠ

3. 미친 놈, 싸움을 즐기는 놈, 헐뜯기 잘하는 놈, 남을 미워하는 놈, 함정을 파는 놈, 놈, 놈, 놈...(v17-28)
*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이 나온다.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마15:18,19)
* 이외에도 바울이 서신서에 자주 등장하는 죄의 목록도 이와 비슷하죠.
* 결국, 이 ‘놈, 놈, 놈 이야기’는 하나님을 알 생각도 하지 않고,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 성경이 말하는 ‘죄인’들의 특징이라는~~
*** 사실, 도덕, 교양, 진보적 의식 등으로 이런 죄악의 목록을 일정정도 벗어버릴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죄를 멀리하는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시키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 요즘 부동산투기 억제 정책과 투기자들 사이의 숨바꼭질처럼(여길 누르면 저기가 솟아오르고, 저길 잡으면 또 다른 곳이 오르고...), 내 속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말씀을 따를 순종의 자세가 없으면 하나 막으면, 다른 게 튀어 오르고.. 그걸 반복하는 거죠...ㅠㅠ
* 그래서 이 ‘놈, 놈, 놈’에 대한 묘사는 결국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놓은 거라, 우리 인간에 대한 슬픈 자화상인 셈입니다...ㅠㅠ
* 탈출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한 죽음의 경험과 부활을 경험하는 것,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를 닮아가는 성숙의 길을 걸어가는 것밖에는 없는 거죠.

*** 지혜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경외하는 거라면, 그 반대가 미련한 거니까, 앞서 말한 ‘미련한 놈’이 누군지도 답이 나왔네요^^ ‘말에게 채찍, 나귀에게 재갈이 필요하듯 미련한 놈에겐 매가 필요하다.’ 흠... 결국 사람이 아니므니다.. 이런 말씀이 되나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인간의 상태는 매가 필요한, 인간이길 포기한 상태란 말씀. 하긴, 게으른 놈도 마찬가지네요. 스스로를 포기한 사람이 게으름의 특징이니까요...
*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포기하면 인간이 아니므니다...ㅠㅠ
*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가는 가운데 참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누리는 내 삶이 되길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http://www.podbbang.com/ch/8784?e=23606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