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1951년작)를 보았다. 헨리크 센키에비치의 동명소설 <쿼바디스>(1896)를 마빈 르로이 감독이 꽤 잘 만든(well-made) 영화랍니다. 러닝타임 2시간 28분. 좀 길죠? 그런데 전혀 옛날 영화같지 않은 흡입력이 있습니다. 물론 최근의 아주 자극적이고 빠른 속도에 익숙한 관람자라면 쫌...; ㅋ 그래도 웬만한 분들은 보고나서 별 다섯에 3개 이상은 줄 거라 확신합니다.

서기 64년, 네로의 통치기(AD 54~68) 말년에 해당하는 때에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마커스 비키니우스(로버트 테일러 분)는 개선 장군으로 큰 승리를 거두고 로마로 들어와 플라티우스의 집에 하루 머물게 됩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리지아(데보라 커 분, 이쁩니다! ㅋ)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야기들은 이들 사이에 싹트는 사랑과 비키니우스가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의 모습은 행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는 잔잔한 감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네로의 신경증적이고 괴팍한 예술 사랑과 대인기피와 귀차니즘으로 표현될 만한 그 성격을 통해서 드러나는 황제의 쾌락과 폭력입니다. 그것은 타서스 출신인 바울(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 그리고 말년의 흰머리에 중후하고 힘찬 베드로를 통해서 드러나는 기독교의 진실과 화평이 대별됩니다. 비키니우스가 사랑하게 된 리지아는 플라티우스 장군의 양녀가 된 이후 크리스천이 된 노예입니다. 비키니우스는 로마의 법과 다르게 행동하는 플라티우스 집안의 모습에 다소의 충격을 받고는 네로의 힘을 빌어 리지아를 얻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힘으로 얻으려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는 그녀를 마음으로 다가서면서 스스로는 더욱 혼란에, 복음의 파문에 영향을 받습니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은 로마를 떠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같이 동행하던 소년 라자리우스의 입을 통해 말해지던 그말은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그 감동은 영화의 백미였다. "네가 내 양들을 버리면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려고 로마로 간다." 이 말에 응답을 받은 베드로는 네로가 로마 대화재의 원인으로 기독교인을 희생양 삼아 사자의 밥으로 원형 경기장에서 죽이려 할 때 나타나서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를 선포한다. 이는 죽음을 맞닥뜨리는 크리스천들에게 용기를 주며 죽음조차도 뛰어넘는 평화와 희락을 준다.

여러분들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어려움과 고난은 무조건 피하기만하는 쉬운 길로 가고만 있지는 않나요?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와 고민들, 고통에 대해 주님께 물어보았나요? "쿼바디스 도미네?" 주님의 응답에 귀기울여 지금, 여기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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