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2년9월20일(화) 마6:16-24 큐티목소리나눔> “풍요한 시대에 하는 금식 훈련 & 돈이냐, 하나님이냐 선택하라.”

하창완 2022. 9. 20. 07:26

<2022년9월20일(화) 마6:16-24 큐티목소리나눔>
“풍요한 시대에 하는 금식 훈련 & 돈이냐, 하나님이냐 선택하라.”

1. 금식의 달인, 바리새인들이 금식 때문에 책망을 받다.
* 율법이 이야기하는 속죄일 금식(레16:29-31, 년1회), 이스라엘 전통 속에서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을 슬퍼하는 금식(년1회) 외에도 주2회 의무적 금식을 철저히 지켜온 바리새인들.
*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경건함을 인정받고 싶어서 금식하는 티를 꼭 내고(얼굴에 슬픈 기색을 하고, 의복을 남루하게 하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도 “내가 이정도로 주님을 깊이 생각합니다.”라고 내세우는 증거로 삼았습니다(눅18;12, 바리새인의 기도)
* 예수님은 이에 대해 사람들의 인정을 이미 받았으니 만족하지 않니? 하나님은 그것을 안 받아도 되겠지? 라고 비꼬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더욱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라고 말씀하십니다.
* 한편, (시대는 조금 다르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들이 한편으로 금식하면서, 한편으로는 싸우고, 폭식하고, 일꾼들에게는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하고 착취하는 일들을 책망합니다.(사58:3-5)

2. 진정한 금식이란
* 금식을 하는 중에 우리에게는 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무엇에 이끌려 살아왔는지 알아차리게 되고, ②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새롭게 나를 충만하게 채워주시도록 나를 내어드리고, ③ 앞으로 주님이 나를 이끌어 가시도록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결심과 결단을 하는 변화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집니다.(리차드 포스터, “영적훈련과 성장” 중에서)
* 하나님과 깊은 교제(예수님의 40일 금식) :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광야에서 홀로 계시면서, 삼위하나님의 깊은 교제와 대화가 너무 깊어지는 통에 육체의 필요를 채우는 식사를 잊으실 정도였던 게 금식의 실제적 이유가 아니었을까 상상해봅니다.
*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고 청함(에4:16, 에스더와 유대인들의 금식) : 이스라엘백성들이 멸절되는 위기의 상황 가운데 에스더가 왕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모든 민족이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함
* 불쌍히 여기셔서 심판을 거두어 주소서(욜2:15,16; 욘3:5) : 요엘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러 오시는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고 애곡하며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한편 요나서에서는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 이상의 예들을 정리해보면,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바로잡고, 죄를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깊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육신의 욕구와 필요를 잠시 내려놓는 것을 금식이 지닌 의미가 되겠죠.

3. 예수님이 금식에 대해 답하시다(막2:18-22)
* 습관적인 바리새인들의 금식에 비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음.
* 왜?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왈, “혼인잔치에 신랑과 함께 있는 사람은 금식할 이유가 있을까?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 오면 자연스럽게 하게 될 거야.”
* 이미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여 그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금식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말씀. 하지만 아직 미완성인 하나님의 나라를 살면서 고통과 인내해야 하고, 슬픔이 찾아올 때 금식하는 날도 있을 거라는 말씀.  

4.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금식을 생각하다.
* 먹을 것이 넘치고, 우리가 즐길 것들로 가득 찬 오늘날 문화 속에서 금식이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나의 내면으로 향해 고요한 가운데 내 중심에 실제로 내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 동기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온 마음과 뜻을 모아 하나님께로 집중하고, 그 말씀을 듣고, 거기에 이끌려 내 삶을 재조정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금식의 가장 첫 번째 이유가 되겠죠?
* 또한, 예수님의 말씀처럼 모든 피조물도 고통하고 신음하는 시대를 살면서, 악에서 구해주실 것과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일들이 생길 때 간절한 마음으로 금식하며 기도하게 되는 시간도 우리 상황 가운데는 분명 찾아옵니다.
* 한편, 그저 종교적인 습관으로만 금식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고아와 과부를 돕고, 압제 받는 사람의 결박을 풀어 주고,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사58:6,7)이라고 도전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더욱 깊이 다가오는 금식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특히 아직도 그 가슴에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세월호 유가족을 생각하는 4월, 부요한 시대 속에 여전히 외로이 아픔과 고통을 삼키며 살아가는 이웃들이 내 옆에 살고 있음을 떠올려보면서...)

5.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① 땅의 은행보다는 하늘 은행이 원금보장이 잘 되고 이자가 더 높아!
  * 팔레스틴에서는 흙으로 집을 지었음. 도둑이 벽을 뚫고 들어와 훔쳐 가기가 쉬움. 그래서 주로 방바닥을 파고 재물을 묻어두는 게 일반적인 저축 방법이었음. 그러다 보니 녹이 슬거나 벌레가 먹어서 가치가 떨어질 때가 많았음. 사람이 집에다 보물을 묻어두고 일하러 나가면, 언제나 집이 안전한가 생각하게 될 것임.
  * 그러니, 보물(재물, 인생의 가치)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 ‘하늘’은 땅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도둑도 없고, 녹슬지도 좀이 먹지도 않는다)
*** 음...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 그니까, 보물을, 내 인생의 가치를,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라는 말씀인데...

②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다.” : 하늘 은행에 저축하면, 내 인생 전체가 하늘에 집중될 것이 틀림없다. 결국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삶의 방식(하늘, 하늘나라)에 관심을 집중하고 사는 삶으로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③ 눈은 몸의 등불
* 좋은 눈(하나님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시력, 곧 믿음의 눈) : 온 몸이 밝아짐, 의미 있고 활기찬 인생살이가 될 것임.
* 나쁜 눈(이 땅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도록 그것만 보이게 만드는 눈) : 자신의 탐욕과 시기와 미움, 다툼으로 가득 찬 삶으로 인생을 이끌어 갈 것임. 그 어두움이 얼마나 답답할지...
* 결국 무엇을 보는가, 평소에 내가 뭘 가장 많이 생각하는가(인생의 목적과 의미와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서 그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보게 합니다.

④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함
* 인생은 내 뜻대로 내가 주인이 되어 사는 것 같지만,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삶, 곧 주인을 따르는 삶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 특히나 극소수의 부자가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내 생활비를 매달 통장에 꽂아주는 바로 “그분”인 게 어쩔 수 없는 슬픈 현실인 거죠.

6. 너의 주인이 돈이냐 하나님이냐? / 매달 내 통장에 생활비를 꽂아주는 ‘그분’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 질문에 대해 당근 ‘하나님’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 하지만, 실제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 “돈을 벌고, 쓰는 일”이라, 진짜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 되어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게 현실입니다. ㅠㅠ
* <주의> 그렇다고 ‘돈을 벌지 말라거나, 저축하지 말라. 거지로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 예수님은 이렇게 구체적인 행동규칙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게다가 ‘먹고 사는 것,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 역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한 부분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 예수님의 강조점은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따라 돈을 벌고, 저축하고,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내 삶의 질과 방향을 결정하는 게 매달 생활비를 통장에 꽂아주는 바로 그분의 명령과 요구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와 하나님을 닮고자하는 내 마음인지를 결정하라는 말씀입니다.
*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직 미완성인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인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왜곡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나 자신이 돈을 따르고 있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과, 깊은 패배 의식(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배워서 잘 알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기 때문에 오는 좌절감이 쌓여서 생기는 묘한 냉소주의)을 발견하고,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꿈과 희망을 붙잡고 용기를 내고 믿음의 눈을 밝혀서 재물을 하늘에 쌓고 돈과 자본가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을 매일매일 살 수 있기를 다시 한번 새롭게 다져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날마다 돈이 주인이 되어 있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믿음의 눈을 주셨습니다. 이제 구하옵나니,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날마다 부어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이며, 우리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날마다 알고 누리게 하소서. 또한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고 누리며 하나님이 주인 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엡1: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