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08일(월) 시18:1-6 큐티목소리나눔>“나의 힘이신 여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8월 08일(월) 시18:1-6 큐티목소리나눔>
“나의 힘이신 여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1. 시편의 배경
* 오늘 시는 삼하22:1-이하에서 다윗이 드리는 기도와 거의 대부분 같은 내용임. 이 때 다윗은 이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정복전쟁과 밧세바 사건, 압살롬과 세바의 반란 등을 이미 다 겪은 노년의 상황임.
* 따라서 표제에서 ‘다윗이 드리는 감사기도’라는 게 적절한 배경 설명인 듯. 다윗이 이미 왕으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드린 기도일 수 있다.
2. “나의 힘이신 여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v1)
* 다윗의 하나님에게 고백하는, 그의 인생 전체가 녹아있는,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간결한 고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 다윗만큼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기 위해 부단히 주님을 찾았던 사람도 드물 것 같고, 다윗만큼 매사에 주님을 사랑하노라 고백하고, 그 사랑에 근거해서 살려한 사람도 드물 것 같습니다.
3. “주님은 나의 반석, 요새,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 구원자!”(v2)
* 죽음의 사슬이 나를 휘감을 때, 내가 고통가운데 주님께 부르짖었더니, 주님의 귀에 그 부르짖음이 닿았다.(v4-6)
*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는 인생 전체를 통해 이리저리 부대끼다 모든 게 무너진 것을 깨달은 그날, 울다 지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며 말합니다.
“타라, 타라로 가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거야!”
그녀에게 ‘타라’는 아버지의 집, 가장 마지막에 희망의 우물에서 구원의 물을 길어 올릴 자리, 고향입니다.
* 다윗에게 주님은 바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방이 우겨 쌈을 당할 때, 마지막으로 피할 수 있는 요새, 바위, 방패,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을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우리들은 기대하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방이 우겨 쌈을 당할 때,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 혹은,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내게 이러실 수는 없는 거 아냐?”
라고 얘기하기가 쉽습니다. 믿는 이든, 믿지 않는 이든, 인생의 역경만 만나면 그 책임을 꼭 하나님께 돌린단 말이죠.
* “나의 힘이신 여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고백과 마음의 신뢰가 있는 사람은 다르지 않을까요?
(삼상30장) 다윗은 광야에서 사울에게 쫓기는 삶을 청산하고자 블레셋의 아기스에게로 망명가서, 시글락이라는 소읍을 얻었죠. 그러다 아기스의 전쟁에 참여하고 사흘 만에 돌아와 보니, 남방부족이 쳐들어와서 모든 가솔들을 다 사로잡아 가버린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때 부하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윗과 하나님을 원망하고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다윗은 자기가 믿는 주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더라!”(삼상30:6)
다윗은 상황 앞에서 넉 놓고 펑펑 운 다음,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 하나님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리고는 추격하라는 사인을 받고 추격 끝에 모든 것을 되찾아오게 됩니다.
* 바로 “죽음의 사슬이 나를 휘감을 때, 내가 고통가운데 주님께 부르짖었더니, 주님의 귀에 그 부르짖음이 닿았다.”(v4-6)는 고백과 맞닿아 있는 거죠.
*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나와 함께 늘 하시는 분, 내게 결코 배신을 때리는 분이 아니라는 것, 이 기본적인 신뢰를 배우는 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인생의 걸음마가 아닌가 다시 한 번 깊게 새겨봅니다.
* 이럴 때, 다윗처럼 인생의 굽이굽이를 돌아보면, 한 굽이 한 모퉁이마다 때로는 반석, 때로는 요새, 피할 바위, 때로는 추격자 앞에서 숨을 수 있는 제단 뿔(구원의 뿔)... 과 같은 고백이 푹 젖어 있는 인생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져 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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