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1월13(금) 마22:1-14 > “혼인잔치 초대-부름 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하창완 2017. 1. 13. 08:52

<1월13(금) 마22:1-14 큐티목소리나눔>

 “혼인잔치 초대-부름 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http://www.podbbang.com/ch/8784?e=22177274

 

1. 나쁜 소식(누구 표현대로 ‘오감으로 읽기’^^)

* 팔레스틴의 결혼식 풍습은 거의 일주일을 꼬박 같이 지내며 축하잔치를 여는 것임.

* 따라서 초대장은 결혼식 날짜보다 훨씬 이전에 보내고, 참석자들 역시 충분히 일정을 비워서 참여하는 게 기본.

* 특히 왕족이나 도시의 세도가들의 결혼식이라면 한 도시 전체를 초대하는 경우도 많았음.

* 비유의 출발시점은 이미 초대받은 사람을 모시러 종들을 보낸 상황. 이들은 당근 초대에 응해서 와야 하는 상황(왕이 초대를 했는데... 거절은 죽음이죠^^)

* 왕의 종들은 평민들에 비해 높은 신분이었는데, 감히 이들을 모욕하고 또 죽이다니? 이무리 과장법이 섞인 비유지만,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절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저.. 저.. 저러면 안 되는데..>” 역시 이야기 몰입도 200%라는~~^^

* 왕이 군대를 보내 도시를 불살라버린 것 역시 과장된 얘기지만, 사람들은 당근 수용했을 법한 결론.

 

2. 이스라엘을 향한 직격탄

* “하나님나라는 마치~~” 예수님은 앞선 비유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 얘기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나라 왕의 잔치가 베풀어졌건만,

*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나라에 이미 초대장을 받았더랬고(아브라함 때로부터 구약의 전 기간 동안), 모시러 간 종들(선지자들)을 대접은커녕 학대하고 죽였으니...

* 이들이 진멸 당할 거라는 확실한 폭탄선언을 하신 거죠.

* 비유의 메시지는 다른 곳에서 이렇게 전해집니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내가 암탉이 새끼를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치 않았다.”(마23:27)

“고라신아, 벳새다야! 네게 화가 있다.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까지 떨어질 것이다.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11:20-24)

 

*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은 것은, 이른바 스스로 이미 택함 받고 하나님나라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임을 기억해봅니다.

* 오늘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 약속하고 하늘로 오르신지 벌써 2,000년 이상이 된 시점에(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이 예수님 오실 때까지의 기간보다 더 긴 시간...ㅠㅠ), 우리 그리스도인들 내부에서 이미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나 많은 사람들처럼 특권의식에 젖어, 지금 이곳에 변장하고 오신 예수님이 초대하는 매일매일의 하나님나라 초대에 일상이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심지어 모시러 온 종들을 모욕하는 일은 없는지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봅니다.

 

3. 새로운 기쁜 소식

* 왕은 준비된 잔치를 위해 거리에 나가 모든 사람을 초청합니다.

* 예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 창기, 세리, 저는 사람, 눈먼 사람, 귀신들린 사람 이방인 등등 모든 사람들과 어울리셨고, 그들을 하나님나라로 초대하였습니다.

* 잔치는 시작되었고,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는데... 그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발견한 주인, 그의 손발을 묶어 끌어내고 바깥 어두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도록 함!!

 

* <주의> 순간 상식적으로 떠오르는 합리적 질문들. 도대체 길거리에서 초대받았는데, 예복을 준비할 시간도 없었을 건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구했지? 복장 하나 갖추지 못했다고 쫓아내는 건 좀 심한 거 아닌감? 허나 비유는 다소 엉성하고 모순된 부분이 포함되기 마련, 왜냐면 강조하고픈 게 분명하기 때문에 때로는 과장하고, 때로는 생략하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는...ㅠㅠ 암튼, 비유에서 곁길로 새지 않고, 강조하고자하는 바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게 중요함.

 

* 예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요8:11) : 모두를 하나님나라로 초대하셨으나, 초대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안 된다는 강력한 말씀.

*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자라가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 사랑과 정의, 공평과 진실, 자비와 거룩함... 이런 옷을 입지 않고서는 잔치를 마음껏 누릴 수 없다는 말씀!! 아니, 쫓겨나게 된다는 ...

 

* 우리는 주님이 모든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예수님께로만 나아오면 모든 사람이 복을 받고 이른바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일들만 일어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동전의 한 면만 얘기한 거죠. 동전의 다른 면은 오늘 비유가 들려주는 부분, 바로 “예복을 입고서”라는 부분입니다.

* 예수 믿노라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주일 꼬박꼬박 예배시간 늦지 않고 앉아 있고, 십일조 안 떼먹고 잘 납부하면, 내 삶의 방식과 핵심 가치는 지금까지처럼 내 맘대로, 내가 주인이 되고, 욕심에 이끌려 살아가더라도 천국잔치를 맘껏 누릴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말씀인 거죠.

* 일단 예수님의 초대에 응해서 하나님나라 백성의 잔치에 참여하려면, 당연히 예복으로 갈아입고, 하나님나라의 가치와 삶의 방식으로 바뀌어져 가는 삶을 살아야 그 잔치를 맘껏 누릴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

* 특히 오늘날처럼 교양으로서의 복음, 기복적 복음, 자본주의의 욕심에 영혼마저 팔아버린 복음을 맹신하고 있는 이른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시절을 살아가면서,

“부름 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v14)는 말씀이 주는 경고를 분명하게 새겨봅니다.

* “솔직한 내 삶의 자리는 어디인가?”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