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01월30일(월) 시32:1-11>“주님께 죄를 고백하지 않는 사람의 고통, 고백한 사람이 누리는 평화”
하창완
2017. 1. 30. 09:28
<01월30일(월) 시32:1-11 큐티목소리나눔>
“주님께 죄를 고백하지 않는 사람의 고통, 고백한 사람이 누리는 평화”
1. 주님께 죄를 짓고 입을 다물고 고백하지 않았을 때 겪는 내적 고통(v3,4)
* 하나님 앞에 분명 잘못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백하지 않고 살아갈 때, 그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 부부가 싸우고 나서 화해하지 않고 출근했을 때,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 허물(하나님에 대한 반역), 죄(도덕적 범죄를 포함한 일반적인 위법상황), 악(하나님에 대한 공경심이 사라짐) 등등... 하나님과 만나 살아가면서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주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지 않는 것 없고, 그 상태에서 자백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의 영혼은 점점 어두워지고 고통에 짓눌리게 된다는...
*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뼈가 녹아내렸다.” :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깊이 경험하고 있는 공통된 영적 경험을 시인을 통해 듣게 됩니다.
* “주님이 밤낮 짓누르시는 무게로 내 영혼이 말라비틀어졌음” : 양심의 가책, 영혼의 고통, 하나님을 느끼는 내 영혼의 목소리를 계속 거부할 때, 결국 내 영혼은 가뭄에 말라비틀어지고 죽어간다는 사실...
*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고통과 죽어가는 신음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나를 찾으시는 또다른 신호라는 사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부르심이라는 거죠.
* 계속해서 내가 죄 없는 척 살아갈지라도, 또 심지어 남들을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고통과 신음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돌이킬 기회를 주신다는 게 실은 은혜인 거죠^^
* 마침내, 내 고통에 못 이겨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를 용서하여주소서.”라고 고백하기까지, 때론 내 자존심을 내세우며, 때론 고백했을 때 벌어질 일이 두려워서, 피하고 숨느라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신음의 시간을 보냈고, 또 괴로워했는지....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감정이 너무 잘 오버랩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2. 주께 죄를 고백한 사람이 누리는 기쁨과 평화(v1,2, 5-7)
* 마침내 우리가 주님 앞에 죄를 자백하게 되면, 주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를 즉시 용서하여 주신다는 놀라운 사실!!
* 실은 당신의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주시며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로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죄를 고백하는 것을 얼마나 바라시고 기다리시고 기뻐하시는지... 동구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리시다가 맨발로 뛰어와 작은 아들을 얼싸안으시는 아버지의 마음(눅15장)인 거죠..
* 그리고, 이런 아버지의 자애로우심을 만나게 되는 우리는 그만 마음의 모든 짐이 다 풀어지고 엄청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주님께 고백과 용서를 경험해본 사람은 누구나 다 이 놀라운 변화를 잘 알죠^^)
* cf. 고해성사를 통해서 신부님께 죄를 자백하고 신부님의 입을 통해서 “네 죄가 용서받았느니라.”는 음성을 듣는 가톨릭신자들에 비해, 내밀한 죄를 오직 개인적 기도를 통해 고백하고, 성경 말씀과 믿음에 근거해서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성령이 주시는 내적 평화를 누리게 되는 우리 개신교 신자들의 경우는, 쉽게 주님의 용서하심을 확신하지 못하고 자주 죄책감이라는 또 다른 찜찜한 여운을 갖고 사는 경우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심지어 살면서 뭔가 잘못되는 일만 생겨도 아.. 그때 내가 그 잘못을 해서 하나님이 벌 주시는가보다... 뭐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는...ㅠㅠ 가톨릭 신자들처럼 들려주는 음성이 분명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아서 생기는 안타까운 일들이라는...ㅠㅠ
그래서 우리들의 경우는 오늘 본문 v3-5, 요일1:7-10과 같은 구절들을 분명하게 암송하고서 죄를 자백하고 나서는 이 말씀을 떠올리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서 죄의 용서를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내 귀로 듣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소리를 듣고, 마음에 믿음으로 “아멘!”하고 받아들여서 뭔가 찜찜한 기분으로부터 벗어나서 진정한 용서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됩시다요~~!!
3. 진정한 ‘경건함’이란~(v6-11)
* 죄를 짓지 않는 사람(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죄의 상황과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도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래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라는 사실!!
* 그 때 기도란, 죄 없는 척, 유창한 말로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내면적 상황,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솔직하게 고백하고, 죄의 핵심을 주께 자백하는 거죠. 다윗이 밧새바와 동침한 다음 죄를 지적받고서 깊이깊이 죄를 들여다보고 주께 울며 용서를 구한 것처럼..(시51편)
* 이렇게 주님 앞에서 내 죄를 고백할 줄 아는 정직한 사람에게 주께서는 그 길을 가르쳐주시고, 기꺼이 조언자가 되시며, 나 역시 주 앞에서 즐거이 뛰 놀 수 있다는~~^^
* cf. 죄를 자백하지 못하는 사람을 노새, 말처럼 동물이라고 비유하고 있네요(v9).. 이런 사람은 채찍과 재갈로 다스린다는... 말이 안 통하니까요... 요즘 몇 달 동안 자기는 절대로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 때문에 온 국민이 고통당하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노새나 말과 같은 동물로 불러줘야 한다고~~ㅠㅠ 우린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죠^^
* 참 재미있는 것은요, 주님과 기도하는 자리, 내 죄마저도 같이 얘기할 수 있는 그런 부담없는(^^) 자리라는 사실~~!! 이 자리에 자주 앉아서 주님을 더 많이 알아가고 성숙해가는 사람들이 됩시다요~~
http://podbbang.com/ch/8784?e=22193304
“주님께 죄를 고백하지 않는 사람의 고통, 고백한 사람이 누리는 평화”
1. 주님께 죄를 짓고 입을 다물고 고백하지 않았을 때 겪는 내적 고통(v3,4)
* 하나님 앞에 분명 잘못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백하지 않고 살아갈 때, 그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 부부가 싸우고 나서 화해하지 않고 출근했을 때,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 허물(하나님에 대한 반역), 죄(도덕적 범죄를 포함한 일반적인 위법상황), 악(하나님에 대한 공경심이 사라짐) 등등... 하나님과 만나 살아가면서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주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지 않는 것 없고, 그 상태에서 자백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의 영혼은 점점 어두워지고 고통에 짓눌리게 된다는...
*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뼈가 녹아내렸다.” :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깊이 경험하고 있는 공통된 영적 경험을 시인을 통해 듣게 됩니다.
* “주님이 밤낮 짓누르시는 무게로 내 영혼이 말라비틀어졌음” : 양심의 가책, 영혼의 고통, 하나님을 느끼는 내 영혼의 목소리를 계속 거부할 때, 결국 내 영혼은 가뭄에 말라비틀어지고 죽어간다는 사실...
*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고통과 죽어가는 신음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나를 찾으시는 또다른 신호라는 사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부르심이라는 거죠.
* 계속해서 내가 죄 없는 척 살아갈지라도, 또 심지어 남들을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고통과 신음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돌이킬 기회를 주신다는 게 실은 은혜인 거죠^^
* 마침내, 내 고통에 못 이겨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를 용서하여주소서.”라고 고백하기까지, 때론 내 자존심을 내세우며, 때론 고백했을 때 벌어질 일이 두려워서, 피하고 숨느라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신음의 시간을 보냈고, 또 괴로워했는지....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감정이 너무 잘 오버랩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2. 주께 죄를 고백한 사람이 누리는 기쁨과 평화(v1,2, 5-7)
* 마침내 우리가 주님 앞에 죄를 자백하게 되면, 주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를 즉시 용서하여 주신다는 놀라운 사실!!
* 실은 당신의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주시며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로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죄를 고백하는 것을 얼마나 바라시고 기다리시고 기뻐하시는지... 동구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리시다가 맨발로 뛰어와 작은 아들을 얼싸안으시는 아버지의 마음(눅15장)인 거죠..
* 그리고, 이런 아버지의 자애로우심을 만나게 되는 우리는 그만 마음의 모든 짐이 다 풀어지고 엄청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주님께 고백과 용서를 경험해본 사람은 누구나 다 이 놀라운 변화를 잘 알죠^^)
* cf. 고해성사를 통해서 신부님께 죄를 자백하고 신부님의 입을 통해서 “네 죄가 용서받았느니라.”는 음성을 듣는 가톨릭신자들에 비해, 내밀한 죄를 오직 개인적 기도를 통해 고백하고, 성경 말씀과 믿음에 근거해서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성령이 주시는 내적 평화를 누리게 되는 우리 개신교 신자들의 경우는, 쉽게 주님의 용서하심을 확신하지 못하고 자주 죄책감이라는 또 다른 찜찜한 여운을 갖고 사는 경우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심지어 살면서 뭔가 잘못되는 일만 생겨도 아.. 그때 내가 그 잘못을 해서 하나님이 벌 주시는가보다... 뭐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는...ㅠㅠ 가톨릭 신자들처럼 들려주는 음성이 분명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아서 생기는 안타까운 일들이라는...ㅠㅠ
그래서 우리들의 경우는 오늘 본문 v3-5, 요일1:7-10과 같은 구절들을 분명하게 암송하고서 죄를 자백하고 나서는 이 말씀을 떠올리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서 죄의 용서를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내 귀로 듣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소리를 듣고, 마음에 믿음으로 “아멘!”하고 받아들여서 뭔가 찜찜한 기분으로부터 벗어나서 진정한 용서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됩시다요~~!!
3. 진정한 ‘경건함’이란~(v6-11)
* 죄를 짓지 않는 사람(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죄의 상황과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도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래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라는 사실!!
* 그 때 기도란, 죄 없는 척, 유창한 말로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내면적 상황,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솔직하게 고백하고, 죄의 핵심을 주께 자백하는 거죠. 다윗이 밧새바와 동침한 다음 죄를 지적받고서 깊이깊이 죄를 들여다보고 주께 울며 용서를 구한 것처럼..(시51편)
* 이렇게 주님 앞에서 내 죄를 고백할 줄 아는 정직한 사람에게 주께서는 그 길을 가르쳐주시고, 기꺼이 조언자가 되시며, 나 역시 주 앞에서 즐거이 뛰 놀 수 있다는~~^^
* cf. 죄를 자백하지 못하는 사람을 노새, 말처럼 동물이라고 비유하고 있네요(v9).. 이런 사람은 채찍과 재갈로 다스린다는... 말이 안 통하니까요... 요즘 몇 달 동안 자기는 절대로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 때문에 온 국민이 고통당하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노새나 말과 같은 동물로 불러줘야 한다고~~ㅠㅠ 우린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죠^^
* 참 재미있는 것은요, 주님과 기도하는 자리, 내 죄마저도 같이 얘기할 수 있는 그런 부담없는(^^) 자리라는 사실~~!! 이 자리에 자주 앉아서 주님을 더 많이 알아가고 성숙해가는 사람들이 됩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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