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방ivf가 30주년이 되었다.



길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이제 청년의 테를 벗고 완숙미 넘치는 장년의 초입에 들어섰다. 한국사회도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부산지방회도 사회와 시류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도 있었고 계속 자라가고 있는 중이다.


몇 년전 한국기독학생회의 50주년 행사를 분당 할렐루야 교회서 거창하고 장엄하게 치루었다. 반세기 동안 걸어 왔던 ivf의 족적을 뒤 돌아보고 우리의 사역과 의미를 반성을 하고 앞으로 우리를 이끄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한마음으로 그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매진할 것을 다짐하는 귀한 자리였다. 한국ivf와는 약 절반정도의 기간으로 부산ivf가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가지고자 한다. 부산ivf가 30년간 걸어온 우리의 걸음을 잠시 뒤돌아보고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우리는 과연 잘 살고 있는지? 바른 방향과 의미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30년은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볼때 이제는 완전히 성숙한 한 인간으로서 자기의 미래를 개척하고 자기와 함께하는 식구들을 책임져야 하는, 그러나 아직도 인생의 경험은 미흡한 배워야 할 것도 아직 많이 있고 경험해야 할 것도 많은, 완성된 그러나 아직은 아닌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 자랐다고 해야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뭔가가 불완전한 나이의 세대.
우리는 어쩌면 그 중간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늦은 나이도 아니고 빠른 나이도 아니기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기이다. 우리는 한참때이다.






부산지방30주년을 맞아서 우리가 해야 하는 작업들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를 통해 어떤 교훈을 배울 것 인가?

그 교훈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해 주고 우리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30년 뒤의 우리 운동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 것인가?

우리의 사역은 삶인가 일인가? 우리 운동의 의미는 살아있는가?




1)과거를 돌아 봄
 

80년대 한국사회는 군부독재의 군화발아래 학원도 사회도 모두 소리내지 못할 신음속에 있었다. 한국교회는 70년대의 폭발적인 양적성장과 함게 풍요의 신학으로 몰핀을 맞고 개인적이고 내세적인 신앙과 성공을 추구하고 있었다. 세상 속에 있으면서 구별되기 보다는 세상에 동화되거나 세상과는 괴리된 신앙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엑스풀로대회와 같은 대형 종교행사는 한국내 기독교의 힘과 세력을 여실히 보여 주었고, 그에 따른 세계관은 폐쇄적이고 점점 세속화 되어 가는 세상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였다. 학생운동은 노동운동과 함께 정의를 부르짖었지만 군사독재는 정의를 모른 체 했고, 기득권의 세력은 결국 자신의 자리를 성공적으로 잘 지켜내고 대신 섹스와 스포츠와 스크린으로 대중에게 봉사했다. 한국교회는 이 기득권의 세력을 위해 기도해 주고 종교적으로 풍성한 혜택을 누린 덕분에 많이 성장했지만 세상의 물음에 대한 정직하고 적절한 해답을 내 놓지 못했다.


부산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교회내의 경직되고 고착화된 신앙의 패턴만으로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그리스도 복음의 총체성을 설명하지 못했다. 평신도를 깨운다는 제자훈련이 몰아칠 때 부산ivf는 작지만 의미있는 걸음을 떼고 성경을 보다 깊이 있게 배울 수 있고, 세계관운동으로 젊은 지식인들의 갈증을 해소하며 그나라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 하며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하였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통하여 많은 위로와 소망을 얻었고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새롭게 설정한 많은 젊은이들이 이 운동에 헌신하였다.
 





9
0년

는 X세대의 출현과 함께 좀 더 진보된 세대와 물질적 풍요와 컴퓨터의 대중적 보급으로 정보통신의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 기존의 체계와는 또 다른 모양의 현상의 나타났다. 대한민국이 OECD에 가입하고 터트린 샴페인으로 건배도 하기전 IMF가 왔고 나라경제는 파탄직전까지 떨어지고, 덩달아 대학사회뿐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 위기가 찾아 왔다. 그동안 80년대 대학생활을 보내고 졸업한 학사들이 우리 운동에 경제적으로도 많은 기여를 하게 되고 전체 멤버의 숫자도 많이 늘고 ivf라는 단체의 네임밸류도 얻었다.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간사로 헌신하며 지방회가 비대해 짐에 따라 동서지방회로 나뉘고 개별 지방회로 독립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결국은 다시 한 지방회로 합치게 되었지만 두 지방회의 양과 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2000년
새 밀레니엄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사회는 실용적인 노선이 자리를 잡는다. 일단은 IMF를 졸업해야 했고 고용시장의 많은 변화는 대학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많은 젋은이들이 졸업이후를 걱정해야 하고 당장 감당하기 힘든 등록금 걱정과 그에 따른 학자금 대출은 진리와 이상을 쫓기 보다는 내일의 먹거리와 빚잔치에 더 매달리게 되었다. 학교내 모임의 장소를 내기가 더 어려워 지며 당장 모임에 시간내기가 부담스러워 지며 결국 공동체성의 약화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고, 이미 졸업한 학사들이 많이 있음에도 비정규직과 취직의 어려움은 많은 이들을 의기소침에 이르게 했다. 당연히 학사배출 수에 비례하여 간사들의 페이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아직도 간사들의 풀링율은 60~70%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의 급박한 변화는 경제적인 것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극한 대립으로 정치적으로도 아직 성숙되지 못하고 이번 세월호의 침몰과 국정원의 간첩조작, 대선개입으로 인한 부정선거에서 보듯이, 감정적 아픔에는 다 같이 동조하면서도 세상의 불의와 폭정에는
  침묵의 카르텔로 일관하는 서민들은 어쩌면 방향을 잃은 세대이다. 그것은 요 몇 년간 처방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돈에 쫓긴 일상들이 생각의 심줄을 끊어 버리고 비판의 근육을 녹아내리게 한 덕분이리라.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가?


 


2) 왜 30주년에 목을 매는가?


30주년 자체는 의미 없다. 그것은 그냥 시간이고 나이먹음 일 뿐이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를 그저 읊조리는 것 뿐이다. 지금의 상태를 고이 받아 들이고 그대로 40년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과거 우리가 어떤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찾았고 그것에 우리의 인생을 왜 헌신했는지 기본을 찾아야 한다. 출애굽세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가 가나안을 밟기 전 모세가 새로이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쳤던 것 처럼 기본이 바로서야 한다. 그것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우리 운동은 성경공부의 스킬을 위해 모이지 않는다. 재미를 위해 모이지 않는다. 지식과 토론과 말의 유희를 위해 모이지 않는다. 이것들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인다. 전도와 제자도와 선교를 위해 모인다. 캠퍼스와 세상속의 하나님나라를 전하기 위해 모인다.

 


30년 이전의 세대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이전도 이 땅속에는 수 많은 하나님나라의 운동이 있었다. 지금도 우리와 같은 목적을 위해 모이는 단체도 많이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 다를 뿐! 그러나 우리의 본질을 제대로 전수하고 있는지 우리 아버지 세대가 가진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정신을 캠퍼스와 사회속에서 한 알의 밀알처럼 누룩처럼 잘 길러내고 확장시키고 있는 지 확인해야 한다. 한세대가 지나면 예전도 바뀌고 모양도 바뀌고 생각의 틀도 변형이 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세대가운데 변하지 않는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사명과 요청이 잘 전수되고 있는지 꼭 돌아 볼 일이다.



3) 30주년을 어떻게 보낼것인가?


거창한 행사를 기획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나갈 뿐이다.

억지로 의미를 지어내지 않는다. 그것은 말장난 일 뿐이다.

스리 슬쩍 생일잔치만 하고 지나선 안된다. 지나온 세월에 대해 너무 무례하다.

거창한 광고로 우리를 기만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 생일이고 너의 일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일이다. 
어느날 문득 정신차리고 보니 나이 30살의 청장년이 되었다. 이제 곧 40이다.

없는 결과를 가지고 애타하거나 억지로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없는데 어쩌랴!






대신,

감사할 것이다. 오늘의 내가 있게 하심을! 보이지 않게 수고한 손길에 손을 잡아 줄것이다.

찬양할 것이다. 그 분이 아니었으면 난 아직도 진흙 밭에 있을 수 도 있다. 

생각하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지를?

들을 것이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지? 너는 어떻게 살것인지? 

다시 한번 더 다짐할 것이다. 또 다시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자빠지더라도 한순간이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 나라의 꿈을 이어 가고 또 알려 줄것을!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요 존재이유이며 나의 의무이고 소중한 자랑거리이기에!
열심히 살아 갈 것이다. 우리는 어제처럼 내일도 열심히 살아 갈 것이다. 학생으로 학사로 간사로 삶으로서 꿈을 꾸고 맥을 이어 갈 것이다. 나의 언어에 그 분의 언어와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신앙은 삶으로 드러나기에! 하나님나라 운동은 주께서 다시 오시기 까지 끝나지 않을 운동이다. 우리 얼굴에 땀과 흙을 묻히며 살자. 어제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내일도 그렇게 살자고 다짐하고 격려하자. 그러기 위해 한 번 더 얼굴보고 격려해 주자. 우리 운동의 의미를 잊지 말자고! 만주 벌판을 달리던 독립투사처럼, 피아골 무지렁이 같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 날을 꿈꾸고 지리산을 누비던 빨치산처럼! 우리 운동의 의미가 우리를 일으켜 세워 줄 것이다.
 



4) 어떤 모임을 만들것인가?


1. 행사의 전체 내용과 형식

2. 누가 모일 것인가? 어떻게 모일 것인가?

3. 누가 이야기 할 것인가?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

4. 필요한 경비는 얼마인가? 어떻게 모을 것인가?

5. 꼭 있어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있으면 좋을 내용은 무엇인가?

6.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결과는 무엇인가?

7. 모임 뒤에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하루의 행사로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하루의 행사로 다시 생각하게는 할 수 있다.
학사이던 학생이던 그 누구이던 간에 깨치고 나아 가 끝내 이루어야 할 목표를 재정비할 수 있는 하루이면 좋겠다.


 




글쓴이: 김창수학사(고신87). 
이문세를 닮은 외모에 털털한 성격으로 고성복어를 운영하고 있다.
오래전 2001년 전국리더대회에 믿음의 사람들이라는 내용으로 자갈치에서 학사로 살아가는 모습이 영상에 담기기도 했다.
두 딸과 아내와 더불어 소그룹 공동체를 잘 꾸려가고 있고,
부산IVF학사회 회장을 역임하고 부산IVF이사로도 섬기고 있다. 




 

  • 하나님나라 2014.07.18 10:24

    이사님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부산ivf와 하나님나라를 향한 열정이 느껴지네요. 저도 함께 고민하며 힘쓰겠습니다

  • 주성석 2014.09.29 12:46

    창수형님 오랜만입니다 완숙한 장년의 신앙과 여전한 청년때의 외모를 보여주시네여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난 4월 2일 양산부산대병원 치주과에 계신 최점일교수님을 찾아 만나뵈었습니다.


올해 부산지방 30주년을 맞아 오랜동안 IVF운동을 지지해주시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시고,

분위기 있고 맛난 곳으로 안내해주시고,

삶을 나누어주신 최점일이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이사님 너무 멋지시죠????

닮아가고 싶은 분입니다.




이런저런 여러가지 질문에

솔질담백

진지하고 따뜻한

실제적이고 적실성있는

답들을 해주셨습니다.





양산부산대병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분위기 좋은 소요라는 까페겸 레스토랑에서







맛나고 예쁜? 돈까스로...

갑자기 배고파지시죠?

오늘 점심은 돈까스로??ㅎㅎ



즐겁게 칼질을 하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형제들만 있어서 좀 아쉽지만... 자매들도 함께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내용은 러프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약간의 수정작업을 거쳤지만 현장감을 살리기위해 가급적 가공을 하지 않았습니다.)



간락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30년째 부산 치주과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고,

수영로교회에 출석하고

25년 가량 IVF이사로(동서부산 시절 동부산이사장으로 김상윤이사장님 직전 이사장으로 섬기셨습니다)섬기고 있다.





어떻게 IVF이사로 조인하게 되셨나요??



 

학교다닐때 기독학생회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학교에 IVF가 있었던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치과대학기독학생회를 했다. 부산에 내려오면서 캠퍼스에 IVF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독학생회 지도교수를 하면서  CMF와 IVF를 알게 되었다. 
그때 출석하던 교회에 어떤 교역자분이 세계관에 관심이 있냐고 물으시고, 자그마한 책을 하나 주셨는데
그책이 바로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였다. 

그 책을 읽고 이런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는데. 생각이 전광석화같이 번쩍해졌다. 눈이 번쩍 띄어졌다. 오랜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세계관적인 사고가 없었다. 그러나 그 책을 통해 세계관적인 사고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삶의 전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이 나타나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수련회가 있었고 그 책의 저자인 송인규목사님이 오셨다. 정확한 년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80년 중반즈음으로 기억하고 아마도 고신대 주최로 하는 CMF수련회에 주강사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목사님을 찾아 뵙고 방으로 모시고 교제를 했다.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고, 최근의 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목사님으로부터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생각을 나누었다.
나중에 그 책이 ivp에서 나온것을 알았고 ivf가 정말 소중한 단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학교다닐때 ivf를 하지 않았지만 정말 
이런 삶의 전영역에서 변화된 삶을 이야기하고 훈련하고 운동하는 IVF운동의 중요성을 알게되었다. 나에게도 먼저 소중하게 다가왔고 학생들에게 정말로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늦깍이로 ivf를 알게되었고, 뭐 도울일이 없었나? 생각하던 중에..
문춘근목사가 나를 찾아와 이사로 초대했다. 그래서 흔쾌히 이사로 조인하게 되었다. 
25년 전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30주년이고 부산IVF가 태동된 몇 년 후에 이사로 들어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86년이나 87년이었지 않았나??









당시 이사회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그 때 이사회는 실행이사회가 없었다. 1년에 2-3회 정도 모였다. 행정적으로 절차를 밟 IVF운동의 울타리를 쳐주는 작업이었다. 기본적인 회의만 있었고, 지금처럼 디테일하거나 논의하고 하는 일은 없었다. 초반 이사회는 이사들끼리 얼굴을 보는 정도였다. 지금처럼 심층적인 논의는 없었다. 
그러면서 실행이사가 도입이 되었다. 10여년…전 즈음부터 도입이 되었다(부산IVF출신 학사님들이 이사님으로 들어오면서 활발해졌습니다.) 이사회가 실행이사회로 발족할 때 김상순 이사님이 주도적으로 하셨다. 당시 세계로 병원에서 많이 모였다. 책나눔도 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가면서 하기도했고. 보고와 이슈를 토의 하고 인준하는 작업들을 했다. 



부산IVF와 함께 하면서 가지는 기억에 남는 사건과 사람은?


특별히 기억되는 것은 없었다. 평범하게 일상으로 지내온 일이다. 
김상순 이사장님이 초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시고 틀을 잡는 일을 해주신 것이 크게 마음에 많이 남는다.
mmf선교회가 태동할 때 같이 했다. 기억에 많이 남는다. 

김상순이사님은
의료와 신앙과 잘 통합하는 전인적인 삶을 많이 사셨다. 그런면에서 선교원. 의료선교훈련원을 태동시켰고….. 오래되었다. 
태동시에 내가 부원장. 그분이 원장을 하셨다. 부산에서 이렇게 mmf를 통해 파송된 분들이 많다. 
ivf이사회를 많이 정착시켰다. 
의료와 삶고 신앙을 통합하신 분으로 배울점이 많으신 분으로 기억한다. 






오랜동안 교회에서 세계관학교를 진행하시고, 세계관뉴스레터로 발행하고 계신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세계관을 알게 된것은 교수가 된 이후였다.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전통적인 신앙교육의 틀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세계관을 통해서 일깨워주게 되었다. 그러면서 세계관 책들을 읽었다. 86년부터… 책을 읽고 정리를 하는 가운데...
이것이 젊었을때 신앙. 학문. 직업. 일상의 삶에 통합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담고 있는 교회에서 정목사님의 방에 노크를 했다. 대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겠다. 
평신도에게는 관심도 없는 분야였다. 2002년에 목사님께 요청을 했고 2003년 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당회에서 브리핑하는 시간을 가지고, 코스를 소개를 했다. 그리고 대학부에 하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2003년부터 올해로 11년째…. 10명씩 모아서 3-4개월 주욱 진행을 해왔다. 하면할 수록 기쁘고 학생들도 도전이 많이 되고..
더 왕성하게 요즈음 하고 있디. 더 풍성해졌다. 초반에 배운 아이들이 부부가 되고 사회인이 되어서.. 세계관 공부가 소중했다는 것을 피드백을 받고 있다. 
바램은 전공이나 각 영역별로 세계관 그룹이 생겼으면 한다.
타교회와 네트웍이 되어서 각 부분별로 공부하는 공동체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혼자서 주로했다. 아카데미화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있지만…
세계관 운동을 했던 곳을 살펴보았다. 월드뷰… 아카데미역사를 들여다보고 자문도 구하고.. 성공한 것이 없다.
그리고는 알게되었다. 세계관은 강좌나 아카데미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카데믹한 요소들은 있지만 이것은 삶으로 고민하고 녹여낸 삶으로 우려나온 이야기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관은 하나의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관은 강좌가 아니다. 삶이다.

14주를 한다…. 한주 한주 삶에 고심을 해서…강의를 하고 삶의 나눔이다. 강의안은 없다. 교제는 있으나 나의 삶의 고백이 내용이다. 토의가 많다. 토의할 때 멘트만 넣어준다.
내가 볼때 성공적인 모델이다. 지금도 교회에서 기수를 모집하면… 22기를 모집중… 14명모집.. 모집시작하고 10초이내에 사람이 찬다. 아이들에게 주는 임팩트가 커졌다. 

매주 14주간… 주일날…  청년 예배후에 11시 가량까지 진행을 한다. 




나는 ivf에서 세계관을 배웠다. 독학을 했다. 빚을 많이 지고 있다. ㅋㅋ 그래서 ivf를 좋아하고 빚갚는 마음으로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IVF에서도 세계관운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적극 돕고 싶다.


대학생들과 세계관운동을 주욱해오셨는데 이 책만큼은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책이 있다면...

83년에 나온 그리스도인의 비전과, 제럴드 싯처의 하나님의 뜻을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개정판이 나왔지만 초판본이 더 좋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책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새로운 눈이 열렸다.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지금 학교에서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은 아니지만, 치과대학에서 아날로그 그룹을 만들었다. 
예술, 철학, ,윤리, 인문학 등을 하는 그룹을 만들었다. 
세계관을 해보니깐, 학창시절에 이것을 하는 것이 절실함을 알았다. 
교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필요하다.
그래서 아날로그 그룹을 만들었다. 여기서(소요레스토랑) 주로 모인다. 계절에 한번 책 토론을 하고 음악을 감상을 하고… 콘서트도하고… 산책도 한다.
4아날로그밴드.   2-3년째 가고 있다.
다음주에 여기에서 모이고 있다. 정말 그것이 필요하다. 
의료인이지만….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독서, 음악감상, 산책등산 숲걷기, 콘서트.   1회가 졸업을 했다. 숲걷기도하고 우리 자체에서 콘서트를 하고….불고기도 구워먹고… 
정말 유익한 모임이다.






교수님은 핸드폰을 쓰시지 않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핸드폰을 잡아보지 않았다. 
직업적으로 핸드폰이 필요하지 않다. 목사라면… 비지니스맨이라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취향을 떠나서 필수가 되었지만… 나는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직업적으로도 어디에도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다. 급하게 환자를 보아야 하는 온콜도 없다. 
집과 병원을 오가고, 전화와 이메일로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기술문명을 반대하는 편향된 생각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기계로부터 멀어지니 아날로그적인 생각도 많이 생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벌수도 있다.

학생들과 함께 핸드폰문화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인간관계가 토크를 많이 하면 깊어질 줄 알았는데 더 깊어지지 않는다. 토크는 많으나 부질없는 토크다. 
친구하고 만나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줄어든다. 오해가 많이 쌓인다. 
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속도전이 되면서 묵상하고 정리할 시간을 많이 빼앗겨버린다. 
옛날에 편지는 일주일 정도….의 텀이 있으면서 생각의 여유가 있었으나.. 요즘은 즉각 답을 원한다.
인스턴트화되고… 감정은 못따라가고…
인간은 아날로그적이어야 한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쪽으로 가기로… 
최근에는 중요한 서류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암호를 핸드폰으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핸드폰이 없어서 그것을 발급받는데 한 참 어려움을 겪었다.
어쨌든 핸드폰은 지금 최고의 필수품이 된 것 같다. 

요즘은 볼펜을 안쓰고.. 연필을 쓴다. 연필이 미적이다. 파스텔 선의 미학. 

핸드폰은 3명정도 안쓸꺼다…. 전라도.. 경상도.. 서울에???(농담) 그 세명이 만나서 이야기를 한 번 나누고 싶다. 










올해로 부산IVF가 30주년이 됩니다. 부산ivf에 기대 소망.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ivf에는 항상 감사한 마음이 있다.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지역교회보다 더 정이 가는 것이 ivf다.
캠퍼스의 선교단체로서 구성원을 전도하고 선교만은 다가 아니다. 
ivf가 가진 차별성은 신앙과 캠퍼스의 삶과 사회의 삶의 연결고리에 life application 훈련이 필요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한다.
신앙과 삶의 일치를 말하고, 전하고, 훈련하고, 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성경연구와 기초성경연구도 해야하겠지만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는 life application bible study를 해야할 것이다. 
사경회의 차별성도 두드러져야 하지 않을까? 이젠 왠만한 말씀 사경회는 교회에서도 다 하고 있다. 오히려 실제 삶을 다루는 사경회와 세미나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ivf는 성경중심의 단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삶을 강조하는 유산을 다시 잡아야 할 것이다. 

학사회나 기타등등의 모임도 사회에서 부딪혀서 얻어지는 적용사례들이 많이 나누어지는 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IVF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도 간사들의 기도제목만 나눌것이 아니라 학사들이 사회에 나가서 부딪혔던 이야기들이 많이 실리면 좋겠다. 소리… 대학가에 실리고 있지만… .지역의 것도 필요할 것이다. 

뉴스레터에 삶을 담으면 좋겠다. 











이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한 사람들과 단체사진도 한 컷 찍었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우연히 건넨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삶을 꾸고 열정을 불태우고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운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을 통해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과 그 부르심에 반응하여 인생을 드리고 계신 이사님을 보며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세계관은 강좌가 아니다. 삶이다.

라는 이야기와

사람은 아날로그적이어야 한다.

Life application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쓴 '기독교의 미래'라는 책에서 

'유기적 신학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교수님을 뵈면서 유기적 그리스도인이란 이런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유기적 신학자가 변혁을 일으킬 하나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세계관을 지지하고, 기성 체제의 주도권으로부터 해방시키며, 그 공동체의 세계관을 기성 체제 안에 투사하는 역할을 맡는다. ... 유기적 신학자는 행동가이며, 대중에게 무엇인가 널리 퍼뜨리는 사람이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체계를 뒷받침하고 세우며, 공동체 바깥에서는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변증하는 것이 바로 유기적 신학자의 과업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맛난 점심과 차를 대접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랜동안 소리없이 묵묵히 이사님으로 섬겨주시고 책임을 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최점일 이사님께 응원의 메시지를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 정연 2014.04.04 07:57

    와~~이사회에서 가끔 뵙긴해도 잘몰랐는데 너무 멋진 삶을 사시는 분이네요...늘 편안한 인상만큼 삶도 다른이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시네요. ^^

  • 김종호 2014.04.04 10:03

    인터뷰 글 잘 읽었습니다. 핸드폰 안 쓰시는 분 수원에 한 분 계십니다.
    바로 바로, 송.인.규 목사님!
    재미 있네요. 최점일 이사님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꿔주신 분이 핸드폰을 안 쓰신다는 우연이 겹칩니다!
    최점일 이사님의 섬김과 삶에 깊이 감사하게 되네요.

  • 돌파리 2014.04.05 18:12

    자매들이 가려면 사진에 있는 형제들이 아이들을 보면 됩니다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