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IVF의 기도



지난 부산 IVF 개척 30주년 기념행사때

30주년에 드리는 기도라는 제목으로

함께 기도했던 내용입니다.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고

우리의 소망이 되고

우리의 운동이 되고

우리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기억하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부산IVF개척 30주년에 드리는 기도. 





























부산IVF가 올해(2014년) 서른살이 되었습니다.

10월4일(토) 오후 2시에 30주년 기념행사를 가집니다.

꼭 기억하시고 시간을 예약해두세요^^


30주년을 기념해서 부산IVF30년의 이야기를 조금씩 담아 볼까 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오래전 대학가에 실렸던 부산지방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지금은 서울 중앙회 학원사역부에서 대학가를 담당하고 있는 엄창근(고신대)간사님이 옛날 대학가를 보던 중에 부산 소식이 있어 보내주었고, 일일이 워드를 쳐서 보내주셨습니다.


아래 대학가 사진과 함께 전문을 올립니다. 











부산 IVF, 오늘이 있기까지 

엄현주 (부산대 87 국문과 졸, 현 부산대 문헌정보 4) 

지금은 캐나다에 계십니다.

아마도 90년이나 91년 대학가에 실렸던 내용인 것 같습니다.

정확한 날자를 알아보겠습니다.


 부산지역에서 IVF운동이 시작된지 7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그동안의 IVF운동을 되돌아 보면, 사람들이 움직이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먼저 이 운동을 준비하시고, 여기에 여러 사람을 보내어 훈련을 시켜 사용하시기도 했고, 어려울 때마다 도울 사람을 보내어 이 운동을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된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하나님께서 부산에서 어떻게 일하여 오셨나 살펴보기로 하자. (그러나 이 글이 글쓰는 이의 제한적인 시각에 의해 주관적으로 다루어질 부분도 있음을 염두해 두길 부탁한다.)


1. IVF운동의 시작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IVF운동을 출현시키는 모태가 되었던 것은 고신대학의 SUF (Scripture Union Fellowship)모임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Q.T 나눔과 Study를 하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고 방학에는 수련회를 열곤 했다. 이 수련회에 강사로 초빙되었던 IVF의 간사님(권영석, 박영덕)들이 이들 중 몇몇에게 학생복음화의 꿈을 심었고, 84년 1월의 겨울수련회에서 7명의 4학년 졸업반 학생들이 이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혹자는 이를 일컬어 Koson Seven이라 부름) 동아대에서는 고신대 SUF와 비슷한 형태의 모임이 있었던 바, 이들 중 3사람은 동아대를 돕기 시작했다. 한편 이야기를 조금만 과거로 되돌려 놓으면, 83년 가을 같은 과에 다니는 3명과 또 1명이 공부나 같이 하려고 독서모임을 시작했다가 교회를 통해 알게 된 하민기(당시 고신 신학4)를 만나 One to One을 거쳐 Something New로 이어지는 성경공부모임이 되고 하민기 전도사가 84년 1월 SUF수련회에서 학생복음화에 헌신하기로 한 것을 계기로 3월의 ‘안드레의 밤’을 통해 연결된 사람들과 함께 IVF로 써클등록을 하게 됨으로, IVF운동의 주춧돌이 되었다. 고신대 SUF 모임의 4분이 이렇게 시작된 부산대 IVF 모임을 돕기 시작했다.



2. 84년 여름, IVF 전국수련회(경기도 광주, 충현기도원)에 두 대학의 멤버들과 몇몇 교회의 대학부 50여명이 참석함으로, IVF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IVF라는 이름을 달고는 있었지만, 당시로는 IVF가 무얼하는 단체인지 왜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학생은 드물었다. 수련회를 통하여 운동의 필요성과 학생운동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IVF에서의 역사는 방학 중에 더 많이 이루어지는 법인가 보다. 85년 1월 대구지역과 연합하여 제 1회 영남지역수련회(가산)가 있었고, 이어서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문춘근(당시 부산대 3) 하창완(당시 부산대 3) 조현철(당시 동아대 3) 형제와 하민기 전도사가 서울에서 있었던 Bible & Life Conference)에 참석하여 훈련받고 옴으로 초기 부산지역 학생 리더쉽의 발판을 마련했다. 85년 하민기 전도사가 전임간사로 지원 사역하게 되었고, IVF는 모양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85년 여름 장마 속에서 강행되었던 제 2회 영남지역 수련회는 많은 참석자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수련회가 되었다. 마지막 날 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캠퍼스를 향한 꿈을 나누는 시간은 촛불을 켜둔 채 그칠 줄 몰랐고, 다음날 새벽 바다 위로 솟아오른 찬란한 무지개는 얼마나 경이로왔던지! 이 수련회를 계기로 산업대의 이경해, 정은희(당시 3학년) 두 자매가 산업대에 IVF를 만들겠다고 헌신했고 이 일은 이루어졌다. 그해 가을부터 산업대의 모임이 생겨났다.



3. 그러나 이후의 1년 반이 부산지역 IVF에게 가장 어려움이 많았던 때였다. 같이 헌신하기로 하셨던 다른 분들은 1년만에 캠퍼스를 거의 떠나고, 하민기 간사님 혼자 이 일을 하시다가 1년만에 사임하시고 협동간사님들이 돕게 되셨는데 동아대는 지도력의 잦은 교체와 혼란으로 86년 거의 공중분해(?)되어 버렸고, 부산대의 경우 학생리더쉽도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캠퍼스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으로 형제들이 번갈아 휴학을 하며 이일에 전념할 정도로 고군분투하여 스스로의 리더쉽을 키워나가며 자발성을 공고히 해 나갔다. 86년 1월과 7월의 영남지역(장유) 수련회를 치러 내면서 IVF의 정신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그리고 수시로 정보원 체포작적에 나섰다. 부산에서는 문화적으로 상당히 소외된 곳이라 다른 지역 간사님들을 모셔와서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자료를 구하는 일도 부산에서는 힘들어서 서울을 가야만 얻을 수 있었다. 87년 1월 제 1회 소그룹리더훈련에 부산에서 7명(박성헌 김정현 이춘태 / 부산대, 이정란 박현순 / 동아대, 정은희 / 경성대, 유애란 / 복음간전)이 참석했다가 서울에 남아 IV-House에서 합숙을 하며 온통 기독교서점만을 돌아다니며 책을 사가지고 낑낑대며 부산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를 거치면서, 경성대(전산업대)지부가 세워졌을 뿐 아니라, 부산대학은 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4. 87년 강남호 간사님이 부산·울산지역을 한꺼번에 맡으셔서 부산과 울산을 오가시면서 부산지역을 돕게되자, 부산 IVF는 안정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 해 여름 전국(춘천) 수련회에 88년 부산대 문춘근, 고신대 출신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이순흠 두 분이 전임간사로 지원하여 각각 부산대와 경성, 동아대를 맡아 사역을 시작하시게 되었고 부산지역 IVF 사무실도 갖게 되었다. 88년 여름 대구·부산·울산이 연합하여 마지막으로 영남지역 수련회(양산 다람쥐 캠프장)가 개최되었다. 이때 인원이 부산지역이 250여명으로 더 이상 연합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전체 참석인원: 550명) 89년부터는 부산·울산지역만 경남지역 수련회를 갖고 있는데, 동아대 지부가 다시 세워지고 개척되었고 인원도 급증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부별로 수련회에 대한 요구들도 많이 달라서 이번 90년 겨울에는 상황이 비슷한 지부끼리 따로 수련회를 가졌다. 훈련프로그램은 계속 연합을 유지하고 있다. 


5. 현재 부산에는 5개의 학교에 8개의 지부가 있으며 4대학에서 개척이 되고 있다. 

부산대(예수세상 / 복음세상), 동아대, 경성대, 부산여대, 고신 / 복음간전에 IVF가 있는데 부산대에는 의대가 지역으로 분리되어 있고, 고신대도 영도와 송도(의대)로 캠퍼스가 분리되어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부산대에서 부산 교육대를, 동아대가 동의대를, 경성대가 수산대의 개척을 맡아 어느 정도 진척된 상태에 있다. 

최근 외국어대에서 학생자발적으로 시작된 모임에서 IVF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를 돕기위해 전담간사 두분(문춘근 / 부산, 이순흠 / 경성), 협동간사 한분(김성식 / 동아)과 전담간사보조(이구창 / 고신, 하은자 / 부산여대, 전선미 / 수산대개척, 나임숙 / 사무실)이 수고하고 계신다. 부산대 IVF-er들은 400여명에 이르고 있다. 

 부산 IVF의 성격을 특정짓는 한마디가 ‘단순과격’이었다. 부산 초창기 IVF-er들은 하나님의 꿈을 단순하게 나의 것으로 받아 들였으며 그것을 위해 과격하게 살아왔다. 이제 선배를 대신해 캠퍼스에 남겨진 IVF-er들은 지금까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서 더 큰 꿈을 꾸며 더 과격하게 행동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되리라 기대한다.



캠퍼스에서 단순하게 하나님의 꿈을 받아들이고

과격하게 살아가는 후배들이 계속해서 나와서

하나님나라의 꿈을 이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난 4월 2일 양산부산대병원 치주과에 계신 최점일교수님을 찾아 만나뵈었습니다.


올해 부산지방 30주년을 맞아 오랜동안 IVF운동을 지지해주시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시고,

분위기 있고 맛난 곳으로 안내해주시고,

삶을 나누어주신 최점일이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이사님 너무 멋지시죠????

닮아가고 싶은 분입니다.




이런저런 여러가지 질문에

솔질담백

진지하고 따뜻한

실제적이고 적실성있는

답들을 해주셨습니다.





양산부산대병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분위기 좋은 소요라는 까페겸 레스토랑에서







맛나고 예쁜? 돈까스로...

갑자기 배고파지시죠?

오늘 점심은 돈까스로??ㅎㅎ



즐겁게 칼질을 하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형제들만 있어서 좀 아쉽지만... 자매들도 함께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내용은 러프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약간의 수정작업을 거쳤지만 현장감을 살리기위해 가급적 가공을 하지 않았습니다.)



간락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30년째 부산 치주과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고,

수영로교회에 출석하고

25년 가량 IVF이사로(동서부산 시절 동부산이사장으로 김상윤이사장님 직전 이사장으로 섬기셨습니다)섬기고 있다.





어떻게 IVF이사로 조인하게 되셨나요??



 

학교다닐때 기독학생회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학교에 IVF가 있었던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치과대학기독학생회를 했다. 부산에 내려오면서 캠퍼스에 IVF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독학생회 지도교수를 하면서  CMF와 IVF를 알게 되었다. 
그때 출석하던 교회에 어떤 교역자분이 세계관에 관심이 있냐고 물으시고, 자그마한 책을 하나 주셨는데
그책이 바로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였다. 

그 책을 읽고 이런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는데. 생각이 전광석화같이 번쩍해졌다. 눈이 번쩍 띄어졌다. 오랜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세계관적인 사고가 없었다. 그러나 그 책을 통해 세계관적인 사고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삶의 전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이 나타나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수련회가 있었고 그 책의 저자인 송인규목사님이 오셨다. 정확한 년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80년 중반즈음으로 기억하고 아마도 고신대 주최로 하는 CMF수련회에 주강사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목사님을 찾아 뵙고 방으로 모시고 교제를 했다.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고, 최근의 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목사님으로부터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생각을 나누었다.
나중에 그 책이 ivp에서 나온것을 알았고 ivf가 정말 소중한 단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학교다닐때 ivf를 하지 않았지만 정말 
이런 삶의 전영역에서 변화된 삶을 이야기하고 훈련하고 운동하는 IVF운동의 중요성을 알게되었다. 나에게도 먼저 소중하게 다가왔고 학생들에게 정말로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늦깍이로 ivf를 알게되었고, 뭐 도울일이 없었나? 생각하던 중에..
문춘근목사가 나를 찾아와 이사로 초대했다. 그래서 흔쾌히 이사로 조인하게 되었다. 
25년 전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 30주년이고 부산IVF가 태동된 몇 년 후에 이사로 들어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86년이나 87년이었지 않았나??









당시 이사회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그 때 이사회는 실행이사회가 없었다. 1년에 2-3회 정도 모였다. 행정적으로 절차를 밟 IVF운동의 울타리를 쳐주는 작업이었다. 기본적인 회의만 있었고, 지금처럼 디테일하거나 논의하고 하는 일은 없었다. 초반 이사회는 이사들끼리 얼굴을 보는 정도였다. 지금처럼 심층적인 논의는 없었다. 
그러면서 실행이사가 도입이 되었다. 10여년…전 즈음부터 도입이 되었다(부산IVF출신 학사님들이 이사님으로 들어오면서 활발해졌습니다.) 이사회가 실행이사회로 발족할 때 김상순 이사님이 주도적으로 하셨다. 당시 세계로 병원에서 많이 모였다. 책나눔도 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가면서 하기도했고. 보고와 이슈를 토의 하고 인준하는 작업들을 했다. 



부산IVF와 함께 하면서 가지는 기억에 남는 사건과 사람은?


특별히 기억되는 것은 없었다. 평범하게 일상으로 지내온 일이다. 
김상순 이사장님이 초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시고 틀을 잡는 일을 해주신 것이 크게 마음에 많이 남는다.
mmf선교회가 태동할 때 같이 했다. 기억에 많이 남는다. 

김상순이사님은
의료와 신앙과 잘 통합하는 전인적인 삶을 많이 사셨다. 그런면에서 선교원. 의료선교훈련원을 태동시켰고….. 오래되었다. 
태동시에 내가 부원장. 그분이 원장을 하셨다. 부산에서 이렇게 mmf를 통해 파송된 분들이 많다. 
ivf이사회를 많이 정착시켰다. 
의료와 삶고 신앙을 통합하신 분으로 배울점이 많으신 분으로 기억한다. 






오랜동안 교회에서 세계관학교를 진행하시고, 세계관뉴스레터로 발행하고 계신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세계관을 알게 된것은 교수가 된 이후였다.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전통적인 신앙교육의 틀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세계관을 통해서 일깨워주게 되었다. 그러면서 세계관 책들을 읽었다. 86년부터… 책을 읽고 정리를 하는 가운데...
이것이 젊었을때 신앙. 학문. 직업. 일상의 삶에 통합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담고 있는 교회에서 정목사님의 방에 노크를 했다. 대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겠다. 
평신도에게는 관심도 없는 분야였다. 2002년에 목사님께 요청을 했고 2003년 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당회에서 브리핑하는 시간을 가지고, 코스를 소개를 했다. 그리고 대학부에 하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2003년부터 올해로 11년째…. 10명씩 모아서 3-4개월 주욱 진행을 해왔다. 하면할 수록 기쁘고 학생들도 도전이 많이 되고..
더 왕성하게 요즈음 하고 있디. 더 풍성해졌다. 초반에 배운 아이들이 부부가 되고 사회인이 되어서.. 세계관 공부가 소중했다는 것을 피드백을 받고 있다. 
바램은 전공이나 각 영역별로 세계관 그룹이 생겼으면 한다.
타교회와 네트웍이 되어서 각 부분별로 공부하는 공동체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혼자서 주로했다. 아카데미화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있지만…
세계관 운동을 했던 곳을 살펴보았다. 월드뷰… 아카데미역사를 들여다보고 자문도 구하고.. 성공한 것이 없다.
그리고는 알게되었다. 세계관은 강좌나 아카데미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카데믹한 요소들은 있지만 이것은 삶으로 고민하고 녹여낸 삶으로 우려나온 이야기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관은 하나의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관은 강좌가 아니다. 삶이다.

14주를 한다…. 한주 한주 삶에 고심을 해서…강의를 하고 삶의 나눔이다. 강의안은 없다. 교제는 있으나 나의 삶의 고백이 내용이다. 토의가 많다. 토의할 때 멘트만 넣어준다.
내가 볼때 성공적인 모델이다. 지금도 교회에서 기수를 모집하면… 22기를 모집중… 14명모집.. 모집시작하고 10초이내에 사람이 찬다. 아이들에게 주는 임팩트가 커졌다. 

매주 14주간… 주일날…  청년 예배후에 11시 가량까지 진행을 한다. 




나는 ivf에서 세계관을 배웠다. 독학을 했다. 빚을 많이 지고 있다. ㅋㅋ 그래서 ivf를 좋아하고 빚갚는 마음으로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IVF에서도 세계관운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적극 돕고 싶다.


대학생들과 세계관운동을 주욱해오셨는데 이 책만큼은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책이 있다면...

83년에 나온 그리스도인의 비전과, 제럴드 싯처의 하나님의 뜻을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개정판이 나왔지만 초판본이 더 좋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책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새로운 눈이 열렸다.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지금 학교에서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은 아니지만, 치과대학에서 아날로그 그룹을 만들었다. 
예술, 철학, ,윤리, 인문학 등을 하는 그룹을 만들었다. 
세계관을 해보니깐, 학창시절에 이것을 하는 것이 절실함을 알았다. 
교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필요하다.
그래서 아날로그 그룹을 만들었다. 여기서(소요레스토랑) 주로 모인다. 계절에 한번 책 토론을 하고 음악을 감상을 하고… 콘서트도하고… 산책도 한다.
4아날로그밴드.   2-3년째 가고 있다.
다음주에 여기에서 모이고 있다. 정말 그것이 필요하다. 
의료인이지만….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독서, 음악감상, 산책등산 숲걷기, 콘서트.   1회가 졸업을 했다. 숲걷기도하고 우리 자체에서 콘서트를 하고….불고기도 구워먹고… 
정말 유익한 모임이다.






교수님은 핸드폰을 쓰시지 않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핸드폰을 잡아보지 않았다. 
직업적으로 핸드폰이 필요하지 않다. 목사라면… 비지니스맨이라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취향을 떠나서 필수가 되었지만… 나는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직업적으로도 어디에도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다. 급하게 환자를 보아야 하는 온콜도 없다. 
집과 병원을 오가고, 전화와 이메일로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기술문명을 반대하는 편향된 생각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기계로부터 멀어지니 아날로그적인 생각도 많이 생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벌수도 있다.

학생들과 함께 핸드폰문화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인간관계가 토크를 많이 하면 깊어질 줄 알았는데 더 깊어지지 않는다. 토크는 많으나 부질없는 토크다. 
친구하고 만나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줄어든다. 오해가 많이 쌓인다. 
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속도전이 되면서 묵상하고 정리할 시간을 많이 빼앗겨버린다. 
옛날에 편지는 일주일 정도….의 텀이 있으면서 생각의 여유가 있었으나.. 요즘은 즉각 답을 원한다.
인스턴트화되고… 감정은 못따라가고…
인간은 아날로그적이어야 한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쪽으로 가기로… 
최근에는 중요한 서류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암호를 핸드폰으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핸드폰이 없어서 그것을 발급받는데 한 참 어려움을 겪었다.
어쨌든 핸드폰은 지금 최고의 필수품이 된 것 같다. 

요즘은 볼펜을 안쓰고.. 연필을 쓴다. 연필이 미적이다. 파스텔 선의 미학. 

핸드폰은 3명정도 안쓸꺼다…. 전라도.. 경상도.. 서울에???(농담) 그 세명이 만나서 이야기를 한 번 나누고 싶다. 










올해로 부산IVF가 30주년이 됩니다. 부산ivf에 기대 소망.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ivf에는 항상 감사한 마음이 있다.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지역교회보다 더 정이 가는 것이 ivf다.
캠퍼스의 선교단체로서 구성원을 전도하고 선교만은 다가 아니다. 
ivf가 가진 차별성은 신앙과 캠퍼스의 삶과 사회의 삶의 연결고리에 life application 훈련이 필요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한다.
신앙과 삶의 일치를 말하고, 전하고, 훈련하고, 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성경연구와 기초성경연구도 해야하겠지만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는 life application bible study를 해야할 것이다. 
사경회의 차별성도 두드러져야 하지 않을까? 이젠 왠만한 말씀 사경회는 교회에서도 다 하고 있다. 오히려 실제 삶을 다루는 사경회와 세미나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ivf는 성경중심의 단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삶을 강조하는 유산을 다시 잡아야 할 것이다. 

학사회나 기타등등의 모임도 사회에서 부딪혀서 얻어지는 적용사례들이 많이 나누어지는 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IVF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도 간사들의 기도제목만 나눌것이 아니라 학사들이 사회에 나가서 부딪혔던 이야기들이 많이 실리면 좋겠다. 소리… 대학가에 실리고 있지만… .지역의 것도 필요할 것이다. 

뉴스레터에 삶을 담으면 좋겠다. 











이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한 사람들과 단체사진도 한 컷 찍었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우연히 건넨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삶을 꾸고 열정을 불태우고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운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을 통해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과 그 부르심에 반응하여 인생을 드리고 계신 이사님을 보며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세계관은 강좌가 아니다. 삶이다.

라는 이야기와

사람은 아날로그적이어야 한다.

Life application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쓴 '기독교의 미래'라는 책에서 

'유기적 신학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교수님을 뵈면서 유기적 그리스도인이란 이런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유기적 신학자가 변혁을 일으킬 하나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세계관을 지지하고, 기성 체제의 주도권으로부터 해방시키며, 그 공동체의 세계관을 기성 체제 안에 투사하는 역할을 맡는다. ... 유기적 신학자는 행동가이며, 대중에게 무엇인가 널리 퍼뜨리는 사람이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체계를 뒷받침하고 세우며, 공동체 바깥에서는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변증하는 것이 바로 유기적 신학자의 과업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맛난 점심과 차를 대접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랜동안 소리없이 묵묵히 이사님으로 섬겨주시고 책임을 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최점일 이사님께 응원의 메시지를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 정연 2014.04.04 07:57

    와~~이사회에서 가끔 뵙긴해도 잘몰랐는데 너무 멋진 삶을 사시는 분이네요...늘 편안한 인상만큼 삶도 다른이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시네요. ^^

  • 김종호 2014.04.04 10:03

    인터뷰 글 잘 읽었습니다. 핸드폰 안 쓰시는 분 수원에 한 분 계십니다.
    바로 바로, 송.인.규 목사님!
    재미 있네요. 최점일 이사님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꿔주신 분이 핸드폰을 안 쓰신다는 우연이 겹칩니다!
    최점일 이사님의 섬김과 삶에 깊이 감사하게 되네요.

  • 돌파리 2014.04.05 18:12

    자매들이 가려면 사진에 있는 형제들이 아이들을 보면 됩니다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