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9일(화) 벧전4:1-6 큐티목소리나눔>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받아, 이 시대의 정욕들을 따라 살지 말라.”
1. 초대교회 교인들이 살았던 로마사회의 문화생활
* 다양한 종교적 제의와 축제 : 고대 종교적 제의는 축제로 이어지고 술취함, 방탕, 음란, 향락, 정욕 등등의 방출구가 되었던 것 같음.
eg. 브라질의 삼바축제 : 사순절의 금욕기간 바로 앞에 약 일주일간 펼쳐지는 것을 생각해보라. 금욕에 앞서 모든 정욕과 방탕을 발산하는 자리가 카니발이다. 매년 이 기간에 생기는 사생아가 얼마나 많은지...
* 로마는 제국이 모든 영역에 도로와 수로, 극장, 도서관, 학교를 건설했고, 의료, 교육, 문화 등을 통해, 오늘날로 친다면 세계화, 도시화의 분위기로 만들어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부유한 사람들(귀족, 상인, 지역 유지 등등)이 벌이는 파티와 일상에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문화들은 서민들의 삶 속에서도 동경, 유사한 모방을 통해 같은 흐름으로 이어졌을 거라는 것을 상상해봅니다.
* 특히 베드로사도는 이런 문화적 흐름 밑에 인간의 “정욕들”이 가득함을 고발합니다. : 이런 문화적 흐름은 내 만족감을 채워줄 만큼 보암직하고, 먹고 싶을 만큼 탐스럽고, 내 지혜를 더욱 빛나게 해 줄 것처럼 지혜롭게 보였을 것이라고(창3:6,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보며 느낀 느낌) 생각해봅니다.
* 물론 모든 문화가 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문화의 이면에는 인간의 근본적인 정욕들(선악과를 바라보는 듯한)이 숨겨져 있는 게 사실이지요.
2. 그리스도께서 육체적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고난 받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살아야 한다.
* (v1,2)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통해 우리를 죄로부터 인연을 끊은 사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 (v3) 따라서 남은 우리의 인생은 이시대의 사람들처럼 자신의 정욕들(자기 중심적 욕구들)을 따라 방탕, 정욕, 술취함, 환락, 연회, 우상숭배 등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야합니다. 물론 모든 부분에서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양식 속에 녹아있는 죄성을 분별하고 그것을 따라하지 말라는 것이죠.
* 이렇게 살게 되면, 당연히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는 왜 그리 유별나?”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무시하고 핍박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
* (v4,5) 베드로사도는 이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왜냐면, 이들은 지금 여기서 우리들의 심판자처럼 행세할지 몰라도,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오금도 못펴고 자신의 잘못을 실토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니까요^^
* (v6) 게다가 “지금 여기서 그들에 의해서 심판받고 죽임을 당하는 성도라 할지라도, 이미 영혼은 구원을 받아 주님 품에 안겨있을 것이니 뭐가 두려울 게 있겠습니까?”라고 베드로사도는 죽음 너머까지 바라보는 시각을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v6 '죽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됨‘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3:19에 있는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함‘과 연결해서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전파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구절 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문맥상으로, 또 베드로사도가 얘기하고 있는 강조점에도 잘 맞지 않는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지난 토요일-16일- 묵상 참고)
3.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주류 문화를 생각해봅니다.
* 로마시대의 귀족들만큼이나 이 시대에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는 소수의 자본가들. 그들이 계속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각종 소비문화, 여가생활, 예술과 취미활동, 의,식,주의 모든 것들 속에 유행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
* 거기에 각 개인의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럽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욕구들이 더해지면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현실 속에서 이 시대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들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 물론 우리가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금욕적으로만 살아야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우리 일상에 녹아있는 죄성을 분별할 수 있는 예리함이 있어야겠죠.
* 핵심은 바로 “분별력”과 “용기 있는 행동”
① “자기중심성” 곧, 자기가 최고가 되고 싶고,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살고, 하고 싶은 욕구대로 다 누리고 살고 싶은 마음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분별하는 것.
② 다음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거부만이 능사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삶이 펼쳐져야하는지 지향점이 분명해야만, 거기에 맞지 않는 것들을 거부하고 거절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사실 이게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글미이 없으면, 이 시대를 평가하고 분별할 잣대가 없는 거니까요. (이 지향점에 대해서 베드로는 이어지는 v7-11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내일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은 반쪽 묵상이라는...ㅠㅠ)
③ 분별했으면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이웃의 따가운 시선과 압력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 그때 필요한 게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우리가 이미 받아 누리는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는 거죠. 이게 견디는 힘이 되는 거라는 ~~^^
* 아무튼, 깨어있지 않으면, 시류에 같이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인생, 깨어서 물살을 거슬러 헤엄칠 수 있는 용기와 영적 체력을 튼튼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붙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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