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08(수) 마26:6-13 큐티목소리나눔>
“사랑, 그리고 허비함”
1. 예수님이 예고하신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
* 예수님이 이 얘기를 처음 꺼내신 게 변화산 가는 길인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였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엄청 큰소리로 야단치다시피 하다가 “사탕아. 내 뒤로 물러나라~”는 말씀까지 들었더랬죠.^^(마16:)
* 뭐 그 때야 처음 들었으니까 좀 봐줄만 했는데... 그 뒤로 예수님은 변화산의 엄청난 사건 뒤에도(마17:9), 갈릴리에서도(마17:22),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시면서도(마10:17-), 심판의 선언과 마지막 때에 대한 긴 가르침이 끝난 시점(마26:2)에서도 계속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 이쯤 되면 3년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이라면, 뭔가 정리가 되고, 그림을 그려볼 만할 텐데.. 아직도 이들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입니다요...ㅠㅠ
2. 한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마음에 울림이 있었으니...
* 예수님 일행이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 잡은 숙소는 성 바깥은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이었고, 그곳에는 문둥병을 앓다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시몬의 집(마26:6, 막14:3)인지, 혹은 죽었다가 예수님이 살려주신 나사로의 집(요12:1)인지 헷갈리는 어떤 집에 머무셨습니다.
* 그곳에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그녀의 이름은 엄청 많은 마리아 중에 한 명이었는데 누군지는 확실하지 않고, 암튼 ‘마리아’인 것 같구요..)
* 그동안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또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상황이라...
* 그녀는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직감적으로 받아들였고, 마음에 엄청난 격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별인 거죠... 아... 어떻게 하나? ‘왜?’라는 어려운 질문 이전에, 그녀는 그냥 그분이 떠나신다는 게 가슴에 크게 다가와서 이걸 어떻게? 어떻게? 하는 마음으로 온 종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겁니다.
*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께 자신이 가진 가장 값비싼 향유(한 번 깨뜨리면 다 써야 하는 엠플 병(옥합)에 든, 일년 치 노동자 연봉에 맞먹는 고급인데...)를 예수님 머리에 부었습니다.
*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면, 이건 필시 급박하게 체포당하고 심문당하고... 암튼 정신없이 흘러갈 어떤 사건들 틈에서,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별을 위한 시간이 따로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긴박한 마음에, 이 여인은 지금 예수님을 보내드려야하는 거구나... 가장 거룩하게, 가장 아름답게, 가장 고귀하게 하나님의 아들답게.. 보내드리려면 어떻게 하지?...
* 그녀는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항상 그에 걸맞은 기름부음이 따라다닌다는 전통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가진 가장 귀한 향유를 부어드리게 된 거죠...
* 저는 이 장면을 보라보면 언제나 몇 년 전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면서, 우리 막내딸과 조카가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할머니를 땅에 묻으면서, 손녀들은 할머니가 차가운 흙속에서 얼마나 추울까...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불을 한 장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하관을 하고 흙을 뿌리기 전에 아이들은 할머니 관 위에 이불을 덮어드렸죠...
사실, 장례절차만으로 본다면, 조금은 어이없는 장면일 수도 있는데... 아무도 그걸 말리지도 않았고, 도리어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와서 같이 오열했더랬습니다....ㅠㅠ
* 이 여인의 마음... 사랑하는 이를 보내드려야만 한다는 막다른 상황에서 뭐라도 해서 그에 대한 내 사랑과 마음을 표현하고픈 그 내어드림, 허비함이 오히려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는 거죠...
3. 제자들의 합리적인(?), 그러나 무심한 반응. 그리고 예수님, 사랑.
* 아직도 예수님의 죽으심이 잘 이해되지도 않았고, 가슴으로는 더더구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나머지 제자들...
*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 합리적으로(?) 분개했는데... “왜 허비하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라도 주지...”
* 예수님 왈, “놔둬라. 가난한 사람 돕는 거는 언제나 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 이 여인의 마음을 좀 그대로 받아주면 안되겠니? 그녀는 나의 죽음을 예비한 거야”
* 예수님은 이 여인의 마음을 아셨던 거죠. 사랑은 사랑으로 통한다고...
* <창끝>이라는 영화, 아시죠? 1956년 짐 엘리엇, 네이트 등 다섯 명의 젊은 청년 선교사들이 에콰도르 밀림의 원시부족 아우카족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학교육을 다 마친(그 당시에는 상당한 엘리트였던) 다섯 청년이 원시부족을 전도하다 살해당한 거죠. 그날 에콰도르 신문 헤드라인엔 이런 글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생을 낭비했는지 이해 할 수 없다.”
* 합리적, 계량적 생각으로만 보면, 사랑은 그냥 낭비요, 허비요, 가장 비효율적인 것에 불과하겠죠...ㅠㅠ
* 하지만, 우리는 그 다음 차원이 있음을 압니다. 사랑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하며, 계량화 할 수가 있을까요? 걍 다 허비하고 다 내어주고도 더 주고픈 게 사랑인데... 하나님 아버지도, 또 예수님도 당신 자신을 내어 허비하며 나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신 건데...
* 내 안에, 나를 위해 당신을 기꺼이 허비한 그 사랑으로 인해 깨어난 사랑이 있음을 압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내 안에 새롭게 가득 찬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족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하나님나라를 향한 사랑이 아낌없이 허비하고 내어드리는 가운데 이렇게 깨어나길 기도합니다.
http://podbbang.com/ch/8784?e=22201127
“사랑, 그리고 허비함”
1. 예수님이 예고하신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
* 예수님이 이 얘기를 처음 꺼내신 게 변화산 가는 길인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였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엄청 큰소리로 야단치다시피 하다가 “사탕아. 내 뒤로 물러나라~”는 말씀까지 들었더랬죠.^^(마16:)
* 뭐 그 때야 처음 들었으니까 좀 봐줄만 했는데... 그 뒤로 예수님은 변화산의 엄청난 사건 뒤에도(마17:9), 갈릴리에서도(마17:22),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시면서도(마10:17-), 심판의 선언과 마지막 때에 대한 긴 가르침이 끝난 시점(마26:2)에서도 계속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 이쯤 되면 3년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이라면, 뭔가 정리가 되고, 그림을 그려볼 만할 텐데.. 아직도 이들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입니다요...ㅠㅠ
2. 한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마음에 울림이 있었으니...
* 예수님 일행이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 잡은 숙소는 성 바깥은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이었고, 그곳에는 문둥병을 앓다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시몬의 집(마26:6, 막14:3)인지, 혹은 죽었다가 예수님이 살려주신 나사로의 집(요12:1)인지 헷갈리는 어떤 집에 머무셨습니다.
* 그곳에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그녀의 이름은 엄청 많은 마리아 중에 한 명이었는데 누군지는 확실하지 않고, 암튼 ‘마리아’인 것 같구요..)
* 그동안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또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상황이라...
* 그녀는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직감적으로 받아들였고, 마음에 엄청난 격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별인 거죠... 아... 어떻게 하나? ‘왜?’라는 어려운 질문 이전에, 그녀는 그냥 그분이 떠나신다는 게 가슴에 크게 다가와서 이걸 어떻게? 어떻게? 하는 마음으로 온 종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겁니다.
*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께 자신이 가진 가장 값비싼 향유(한 번 깨뜨리면 다 써야 하는 엠플 병(옥합)에 든, 일년 치 노동자 연봉에 맞먹는 고급인데...)를 예수님 머리에 부었습니다.
*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면, 이건 필시 급박하게 체포당하고 심문당하고... 암튼 정신없이 흘러갈 어떤 사건들 틈에서,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별을 위한 시간이 따로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긴박한 마음에, 이 여인은 지금 예수님을 보내드려야하는 거구나... 가장 거룩하게, 가장 아름답게, 가장 고귀하게 하나님의 아들답게.. 보내드리려면 어떻게 하지?...
* 그녀는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항상 그에 걸맞은 기름부음이 따라다닌다는 전통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가진 가장 귀한 향유를 부어드리게 된 거죠...
* 저는 이 장면을 보라보면 언제나 몇 년 전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면서, 우리 막내딸과 조카가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할머니를 땅에 묻으면서, 손녀들은 할머니가 차가운 흙속에서 얼마나 추울까...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불을 한 장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하관을 하고 흙을 뿌리기 전에 아이들은 할머니 관 위에 이불을 덮어드렸죠...
사실, 장례절차만으로 본다면, 조금은 어이없는 장면일 수도 있는데... 아무도 그걸 말리지도 않았고, 도리어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와서 같이 오열했더랬습니다....ㅠㅠ
* 이 여인의 마음... 사랑하는 이를 보내드려야만 한다는 막다른 상황에서 뭐라도 해서 그에 대한 내 사랑과 마음을 표현하고픈 그 내어드림, 허비함이 오히려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는 거죠...
3. 제자들의 합리적인(?), 그러나 무심한 반응. 그리고 예수님, 사랑.
* 아직도 예수님의 죽으심이 잘 이해되지도 않았고, 가슴으로는 더더구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나머지 제자들...
*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 합리적으로(?) 분개했는데... “왜 허비하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라도 주지...”
* 예수님 왈, “놔둬라. 가난한 사람 돕는 거는 언제나 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 이 여인의 마음을 좀 그대로 받아주면 안되겠니? 그녀는 나의 죽음을 예비한 거야”
* 예수님은 이 여인의 마음을 아셨던 거죠. 사랑은 사랑으로 통한다고...
* <창끝>이라는 영화, 아시죠? 1956년 짐 엘리엇, 네이트 등 다섯 명의 젊은 청년 선교사들이 에콰도르 밀림의 원시부족 아우카족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학교육을 다 마친(그 당시에는 상당한 엘리트였던) 다섯 청년이 원시부족을 전도하다 살해당한 거죠. 그날 에콰도르 신문 헤드라인엔 이런 글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생을 낭비했는지 이해 할 수 없다.”
* 합리적, 계량적 생각으로만 보면, 사랑은 그냥 낭비요, 허비요, 가장 비효율적인 것에 불과하겠죠...ㅠㅠ
* 하지만, 우리는 그 다음 차원이 있음을 압니다. 사랑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하며, 계량화 할 수가 있을까요? 걍 다 허비하고 다 내어주고도 더 주고픈 게 사랑인데... 하나님 아버지도, 또 예수님도 당신 자신을 내어 허비하며 나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신 건데...
* 내 안에, 나를 위해 당신을 기꺼이 허비한 그 사랑으로 인해 깨어난 사랑이 있음을 압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내 안에 새롭게 가득 찬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족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하나님나라를 향한 사랑이 아낌없이 허비하고 내어드리는 가운데 이렇게 깨어나길 기도합니다.
http://podbbang.com/ch/8784?e=22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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