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11월22일(목) 고후7:2-16 큐티목소리나눔>
“갈등, 야단맞음, 돌이킴, 성숙”
*** 7장 들어서 갑자기 편지의 어조가 바뀝니다. 그동안은 고린도교인들의 배척을 염두에 두고서 자신의 사도됨과 사역의 의미를 하나님 앞에서 비장미 넘치게 기록하고 있었잖아요?
근데, 여기서부터 갑자기 어조가 엄청 부드러워지고 편해집니다.
* 아마 바울은 계속 이동하면서 이 고린도후서를 틈틈이 기록했을 것 같은데요... 1~6장까지 기록을 한 상황에서 고린도로 보냈던 디도가 바울에게로 돌아온 겁니다. 그가 갈 때 엄히 꾸짖는 편지를 들고 갔었더랬죠. 근데 거기에 대해 고린도 성도들이 예기치 않았던 반응,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소식을 듣게 된 겁니다.
* 그래서 급 태도가 바뀌어서 편하고 부드럽게,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하는 어조가 된 거죠^^
1. 에베소에서 마케도니아로 움직이는 바울(v2-5)
* 바울은 에베소에서 무척 힘든 일을 겪고 거의 쫓기다시피 해서 마케도니아로 건너갔습니다(행19장).
* 이때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v5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쫓겨 왔으니 숨 돌릴 틈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전혀 쉴 틈이 없었고, 이곳에서도 에베소 못지않은 환란이 기다리고 있었고, 밖으로는 싸움이요, 안으로는 두려움과 실망감의 가득한 상황...ㅠㅠ
*** 바울의 이런 절박하고 간 쪼리는, 한숨과 눈물 나는 상황과 이에 대한 그의 두려움, 실의에 빠진 마음을 접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많은 위로가 되네요...
* 아... 바울도,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갈 것 같은 바울도 이렇게 지치고 낙심하고 좌절감에 싸일 때가 있구나... 또 그걸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가 말예요.
* 그렇죠.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했던 것은 이런 엄청난 상황과 좌절감들 속에서 꾸준히 주님을 찾고 그분께 내 이런 절망스런 마음을 내려놓고 새롭게 하는 시간을 계속계속 가져왔다는 걸 말하는 거죠.
*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긍정적 감정만 갖고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때론 실망하고 절망하고 한숨 나오고 눈물 나오는 상황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그 모든 상황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때론 위로받고 격려받고 해서 일어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거죠.
2. 그를 찾아온 디도, & 바울이 디도 편에 보내었던 편지가 가져온 결과와 바울의 기쁨(v6-7, 13-16)
* 이런 상황에서 급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디도가 찾아온 거죠.
* 디도는 놀랍게도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의 그 혹독하게 아단 치는 편지에 상처받지 않고 도리어 마음아파하고 회개하고 돌이켰다는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게다가 바울을 내첬던 것을 마음아파하고 지금은 그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할렐루아!!
* 바울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울지... 지금 죽을 만큼 힘든 상황과 마음을 단번에 깨뜨려버리고 힘이 불끈 솟아나는 걸 느끼는 거죠.
* 그래서 1~6장까지 쓴 편지에 대해 급 반전멘트를 날립니다. “너희는 마음을 넓게 가져서 앞서 내가 쓴 말들을 받았으면 좋겠어. 내가 야단치려고 한 건 아니었어. 내 마음이 얼마나 비장한지를 전했던 거지..”(v2,3)라고 말예요.~~ㅎㅎ
* 이어서 디도가 가져온 소식에 대한 기쁨을 맘껏 표현하였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고,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 “형제가 서로 연합하여 동거함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라는 노래가 떠오르네요. 주님의 한 몸 공동체가 되어간다는 건, 갈등이 전혀 없는 게 아니라, 바울과 고린도교회와의 관계처럼 갈등하고, 책망 앞에 서기도 하고, 그래서 돌이켜 새롭게 회복하기도 하는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함께 성숙해가는 거죠^^
* 우리가 한 몸으로 살아가는 부부관계도 마찬가지구요.
* 근데, 주님의 몸으로 잘 성숙해가는 갈등과 극복이 되려면 그 나아가는 방향이 부척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요.
* 바울도 같은 마음을 느낀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네요.ㅎㅎ
3. 야단맞음과 아픔(슬픔), 돌이킴과 회복에 대한 묵상(v8-16)
* 바울은 자신이 디도편에 보낸 편지가 성도들을 마음 아프게 했더라도 후회하지 않노라고 이젠 당당하게 말합니다. (자신감 급 상승모드 인거죠.~ㅋㅋㅋ)
* 나아가 야단맞을 때, 찾아오는 이 아픔을 어떤 태도로 맞이하는가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엄청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걸 깊이있게 얘기합니다.
* 우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는 길 : 당근 그 결과 회개하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길로 돌이키는 거겠죠? (eg. 세 번 부인하고서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다음 대성통곡, 돌이킨 베드로)
* 다음은 영 아닌 길인데요, 세상적 방식과 태도로 아픔을 대하는 경우 : 가롯 유다처럼 후회하다 부정적 감정을 못 이겨 스스로 자살하고 말든지, 아님 공동체를 이탈하고 뛰쳐나간다든지, 반대로 매우 공격적이 된다든지... 뭐 이런 경우들인 거죠.
* 다행히, 또 감사하게도 고린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했고 돌이켰고 새로운 회복과 성숙의 길로 가고 있네요^^
*** 하나님이 우리를 야단치지 않으면 우린 사생아라고 했잖아요?(히12:5~) 참된 아버지는 자식을 훈육하시는 법. 하나님께서는 때론 성경말씀을 통해서, 때론 다른 성도들 혹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사용하셔서도 우리에게 야단치시고 훈육하시는데요,
* 이럴 때 야단맞을 당시에는 슬프고 아프고 힘들어도 하나님을 순적하게 믿고 따르면서 그 가운데 고민하고 자신을 바꿔가면 나중에의 의와 사랑과 평화라는 멋진 하나님나라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혀있는 아름다운 삶이 될 거라는 것을 믿고 오늘도 주님과 동행해봅시다요~~
“갈등, 야단맞음, 돌이킴, 성숙”
*** 7장 들어서 갑자기 편지의 어조가 바뀝니다. 그동안은 고린도교인들의 배척을 염두에 두고서 자신의 사도됨과 사역의 의미를 하나님 앞에서 비장미 넘치게 기록하고 있었잖아요?
근데, 여기서부터 갑자기 어조가 엄청 부드러워지고 편해집니다.
* 아마 바울은 계속 이동하면서 이 고린도후서를 틈틈이 기록했을 것 같은데요... 1~6장까지 기록을 한 상황에서 고린도로 보냈던 디도가 바울에게로 돌아온 겁니다. 그가 갈 때 엄히 꾸짖는 편지를 들고 갔었더랬죠. 근데 거기에 대해 고린도 성도들이 예기치 않았던 반응,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소식을 듣게 된 겁니다.
* 그래서 급 태도가 바뀌어서 편하고 부드럽게,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하는 어조가 된 거죠^^
1. 에베소에서 마케도니아로 움직이는 바울(v2-5)
* 바울은 에베소에서 무척 힘든 일을 겪고 거의 쫓기다시피 해서 마케도니아로 건너갔습니다(행19장).
* 이때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v5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쫓겨 왔으니 숨 돌릴 틈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전혀 쉴 틈이 없었고, 이곳에서도 에베소 못지않은 환란이 기다리고 있었고, 밖으로는 싸움이요, 안으로는 두려움과 실망감의 가득한 상황...ㅠㅠ
*** 바울의 이런 절박하고 간 쪼리는, 한숨과 눈물 나는 상황과 이에 대한 그의 두려움, 실의에 빠진 마음을 접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많은 위로가 되네요...
* 아... 바울도,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갈 것 같은 바울도 이렇게 지치고 낙심하고 좌절감에 싸일 때가 있구나... 또 그걸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가 말예요.
* 그렇죠.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했던 것은 이런 엄청난 상황과 좌절감들 속에서 꾸준히 주님을 찾고 그분께 내 이런 절망스런 마음을 내려놓고 새롭게 하는 시간을 계속계속 가져왔다는 걸 말하는 거죠.
*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긍정적 감정만 갖고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때론 실망하고 절망하고 한숨 나오고 눈물 나오는 상황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그 모든 상황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때론 위로받고 격려받고 해서 일어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거죠.
2. 그를 찾아온 디도, & 바울이 디도 편에 보내었던 편지가 가져온 결과와 바울의 기쁨(v6-7, 13-16)
* 이런 상황에서 급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디도가 찾아온 거죠.
* 디도는 놀랍게도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의 그 혹독하게 아단 치는 편지에 상처받지 않고 도리어 마음아파하고 회개하고 돌이켰다는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게다가 바울을 내첬던 것을 마음아파하고 지금은 그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할렐루아!!
* 바울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울지... 지금 죽을 만큼 힘든 상황과 마음을 단번에 깨뜨려버리고 힘이 불끈 솟아나는 걸 느끼는 거죠.
* 그래서 1~6장까지 쓴 편지에 대해 급 반전멘트를 날립니다. “너희는 마음을 넓게 가져서 앞서 내가 쓴 말들을 받았으면 좋겠어. 내가 야단치려고 한 건 아니었어. 내 마음이 얼마나 비장한지를 전했던 거지..”(v2,3)라고 말예요.~~ㅎㅎ
* 이어서 디도가 가져온 소식에 대한 기쁨을 맘껏 표현하였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고,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 “형제가 서로 연합하여 동거함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라는 노래가 떠오르네요. 주님의 한 몸 공동체가 되어간다는 건, 갈등이 전혀 없는 게 아니라, 바울과 고린도교회와의 관계처럼 갈등하고, 책망 앞에 서기도 하고, 그래서 돌이켜 새롭게 회복하기도 하는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함께 성숙해가는 거죠^^
* 우리가 한 몸으로 살아가는 부부관계도 마찬가지구요.
* 근데, 주님의 몸으로 잘 성숙해가는 갈등과 극복이 되려면 그 나아가는 방향이 부척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요.
* 바울도 같은 마음을 느낀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네요.ㅎㅎ
3. 야단맞음과 아픔(슬픔), 돌이킴과 회복에 대한 묵상(v8-16)
* 바울은 자신이 디도편에 보낸 편지가 성도들을 마음 아프게 했더라도 후회하지 않노라고 이젠 당당하게 말합니다. (자신감 급 상승모드 인거죠.~ㅋㅋㅋ)
* 나아가 야단맞을 때, 찾아오는 이 아픔을 어떤 태도로 맞이하는가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엄청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걸 깊이있게 얘기합니다.
* 우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는 길 : 당근 그 결과 회개하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길로 돌이키는 거겠죠? (eg. 세 번 부인하고서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다음 대성통곡, 돌이킨 베드로)
* 다음은 영 아닌 길인데요, 세상적 방식과 태도로 아픔을 대하는 경우 : 가롯 유다처럼 후회하다 부정적 감정을 못 이겨 스스로 자살하고 말든지, 아님 공동체를 이탈하고 뛰쳐나간다든지, 반대로 매우 공격적이 된다든지... 뭐 이런 경우들인 거죠.
* 다행히, 또 감사하게도 고린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했고 돌이켰고 새로운 회복과 성숙의 길로 가고 있네요^^
*** 하나님이 우리를 야단치지 않으면 우린 사생아라고 했잖아요?(히12:5~) 참된 아버지는 자식을 훈육하시는 법. 하나님께서는 때론 성경말씀을 통해서, 때론 다른 성도들 혹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사용하셔서도 우리에게 야단치시고 훈육하시는데요,
* 이럴 때 야단맞을 당시에는 슬프고 아프고 힘들어도 하나님을 순적하게 믿고 따르면서 그 가운데 고민하고 자신을 바꿔가면 나중에의 의와 사랑과 평화라는 멋진 하나님나라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혀있는 아름다운 삶이 될 거라는 것을 믿고 오늘도 주님과 동행해봅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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