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12월06일(목) 고후11:5-15 큐티목소리나눔>
“교회안의 분쟁, 누군 분명히 사탄인 상황 앞에서”
1. 바울의 딜레마
*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사역할 때 일절 pay를 받지 않았습니다.
* 고전9장에서는 이점에 대해 상당히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이고 성경(구약 전통)에 비춰 봐도 받는 게 맞다. 하지만 난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내 삯으로 여기고자 한다.” 뭐 이런 논지였습니다.
* 편지의 행간을 읽고 상상해보면, 고린도 같은 큰 도시에서는 그리스 출신의 자유민들 중에 pay를 지급하면서 가정교사로 고용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들 중 한 사람 취급 받는 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pay를 지급하고 가르침을 받았을 경우에 복음에 대해 빚진 자로서의 마인드가 생기지 않을까봐, 혹은 바울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자신들이 고용한 교사 정도로만 여길까봐, 그래서 바울의 가르침을 자기 맘대로 왜곡시키고 그럴까봐 그랬을 수도 있겠죠...
* 한편,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하면서 먼저 개척된 마케도니아지역에서 보내오는 후원금음은 받았다는 사실!!
* 그런 바울의 태도에 대해 고린도교회에서는 도리어 오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감정적으로도 매우 서운했구요. “왜 우리 돈을 받지 않느냐? 우리 돈에 똥이 묻었냐? 우리를 덜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냐? 왜 우리는 찬밥 취급하느냐?”
* 게다가 이번엔 돈을 달라고 하는데, 그게 또 자기 pay가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데 쓰겠다네요... 그 참...
* 문화적 차이에다 개인적 성향까지 더해지면서 오해가 쌓인 결과 인 거죠...
*** 교회로 모이다보면, 이렇게 개인적 경험과 살아온 문화적 차이로 인해 생기는 오해들이 참 많은데요... 이럴수록 서로가 충분히 마음을 열고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다름을 용납하는 게 진짜진짜 중요한 영적 성숙이요, 훈련과정인 것 같습니다요...
* 교회들을 들여다보면, 이런 문화적 차이와 개인의 다름을 용납하지 못해서 서로 이게 진리다 아니다 다투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 서로의 의도와 생각을 경청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다양성 속에 일치를 이뤄 가시도록 나를 바꾸실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열린 태도, 성령에 순종하는 태도가 진찌진짜 중요합니다요!!!
2. 거짓 교사(사도)의 등장
* 근데 이런 감정적인 서운함을 이용해서 이번 기회에 바울 대신 자기가 교회의 리더십을 확실히 잡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 그들은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사도들로부터 추천권을 받아서 온 사람들인 것 같은데요. 그래서 스스로 자칭 사도라 하기도 했을 것 같고...
* 가르침의 내용도 바울보다는 더 율법준수에 열심을 내는 경향이 있었을 것 같고, 그걸 또 논리 정연하게 웅변적으로 가르쳤단 말씀(바울은 고린도의 엄청난 선진적 문화와 있어빌리티를 갖춘 사람들 앞에서 약간 주눅 든 모습이었는데.. 고전2:3). 무엇보다도 당당하게 pay를 요구했던 거죠. 이게 또 고린도 문화에 아주 잘 맞았고...
* 고린도 성도들은 이들이 가르침에 솔깃했고, 바울을 내치기까지 해버렸다는...
3. 바울의 강력한 반론
* 바울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고린도 전서를 써 보내고, 또 직접 가기도 했고, 또 매우 엄하고 혹독한 내용의 편지도 보내고... 진짜 엎치락 뒤치락 하며 악전고투를 해오고 있는 중입니다요...ㅠㅠ
* 마침내 바울을 이제 디도로부터 고린도교회의 우호적 태도에 대해 듣고 나서, 기회를 붙잡아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아마 바울의 서신서들 중에 이 본문처럼 바울의 당시 느낌이 잘 느껴지는 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느낌, 숨소리를 느끼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 우선 약간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나는 저 거물급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느낌부터, “내가 왜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알고 계십니다.” 뭐 이러는 대목까지 바울의 표정, 감정, 그 마음이 너무 잘 느껴지네요...
* 바울은 나아가 이른바 ‘거물급 사도’들에 대해 폭로전에 돌입합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한 사탄의 일꾼입니다.”
* 최후의 카드까지 내놓은 겁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구요. 사탄은 고소 고발을 통해서 진리를 막고 왜곡시키는 짓을 너무 잘하니까요.
***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다투는 현장에는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이 사탄이 뛰어들죠.
* 단순히 다름을 용납하면 되는 걸 진리-비진리의 싸움으로 몰아가고, 목숨 걸고 하게 만드는 겁니다.
* 고린도교회에 뛰어든 이 거짓교사들, 그들에 대해 바울은 바로 이 심각성을 느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들은 가짜다. 속지 마라!”
* 근데요... 지금 우리는 바울이니까 그가 옳은 줄 분명히 알지만, 우리 교회가 이런 분쟁의 한 가운데 있게 되면 어느 게 옳은 건지 분간하지 쉽지 않죠. 게다가 사탄이 뛰어들어 이제는 ‘진리-비진리’의 싸움이 되어버리는 지경이 되면 더더욱 분별하기 힘들어 집니다.
* 이럴 때는 결국 바울처럼 칼을 꺼내 누가 참소자인지, 가짜 리더, 사탄의 앞잡이 역할을 했는지 가려내는 치열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게 얼마나 슬프고 답답한 일인지, 또 피 말리는 일인지... 겪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탈진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 제발 첫 단추를 잘 끼울 수 있도록, 서로의 다름을 잘 용납하는 훈련, 제대로 합시다요. 또 어디쯤에서 사탄이 끼어들려하는지 잘 분별하고, 어디서 내가 사탄이 끼어드는 걸 용납해버렸는지 잘 분별하고 바로잡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요. 특히 교회의 리더가 될수록 더더욱 이런 자기 성찰과 용납, 나를 성령께 내어드림을 잘 해야 하는데... 주여...
“교회안의 분쟁, 누군 분명히 사탄인 상황 앞에서”
1. 바울의 딜레마
*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사역할 때 일절 pay를 받지 않았습니다.
* 고전9장에서는 이점에 대해 상당히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이고 성경(구약 전통)에 비춰 봐도 받는 게 맞다. 하지만 난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내 삯으로 여기고자 한다.” 뭐 이런 논지였습니다.
* 편지의 행간을 읽고 상상해보면, 고린도 같은 큰 도시에서는 그리스 출신의 자유민들 중에 pay를 지급하면서 가정교사로 고용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들 중 한 사람 취급 받는 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pay를 지급하고 가르침을 받았을 경우에 복음에 대해 빚진 자로서의 마인드가 생기지 않을까봐, 혹은 바울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자신들이 고용한 교사 정도로만 여길까봐, 그래서 바울의 가르침을 자기 맘대로 왜곡시키고 그럴까봐 그랬을 수도 있겠죠...
* 한편,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하면서 먼저 개척된 마케도니아지역에서 보내오는 후원금음은 받았다는 사실!!
* 그런 바울의 태도에 대해 고린도교회에서는 도리어 오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감정적으로도 매우 서운했구요. “왜 우리 돈을 받지 않느냐? 우리 돈에 똥이 묻었냐? 우리를 덜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냐? 왜 우리는 찬밥 취급하느냐?”
* 게다가 이번엔 돈을 달라고 하는데, 그게 또 자기 pay가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데 쓰겠다네요... 그 참...
* 문화적 차이에다 개인적 성향까지 더해지면서 오해가 쌓인 결과 인 거죠...
*** 교회로 모이다보면, 이렇게 개인적 경험과 살아온 문화적 차이로 인해 생기는 오해들이 참 많은데요... 이럴수록 서로가 충분히 마음을 열고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다름을 용납하는 게 진짜진짜 중요한 영적 성숙이요, 훈련과정인 것 같습니다요...
* 교회들을 들여다보면, 이런 문화적 차이와 개인의 다름을 용납하지 못해서 서로 이게 진리다 아니다 다투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 서로의 의도와 생각을 경청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다양성 속에 일치를 이뤄 가시도록 나를 바꾸실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열린 태도, 성령에 순종하는 태도가 진찌진짜 중요합니다요!!!
2. 거짓 교사(사도)의 등장
* 근데 이런 감정적인 서운함을 이용해서 이번 기회에 바울 대신 자기가 교회의 리더십을 확실히 잡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 그들은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사도들로부터 추천권을 받아서 온 사람들인 것 같은데요. 그래서 스스로 자칭 사도라 하기도 했을 것 같고...
* 가르침의 내용도 바울보다는 더 율법준수에 열심을 내는 경향이 있었을 것 같고, 그걸 또 논리 정연하게 웅변적으로 가르쳤단 말씀(바울은 고린도의 엄청난 선진적 문화와 있어빌리티를 갖춘 사람들 앞에서 약간 주눅 든 모습이었는데.. 고전2:3). 무엇보다도 당당하게 pay를 요구했던 거죠. 이게 또 고린도 문화에 아주 잘 맞았고...
* 고린도 성도들은 이들이 가르침에 솔깃했고, 바울을 내치기까지 해버렸다는...
3. 바울의 강력한 반론
* 바울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고린도 전서를 써 보내고, 또 직접 가기도 했고, 또 매우 엄하고 혹독한 내용의 편지도 보내고... 진짜 엎치락 뒤치락 하며 악전고투를 해오고 있는 중입니다요...ㅠㅠ
* 마침내 바울을 이제 디도로부터 고린도교회의 우호적 태도에 대해 듣고 나서, 기회를 붙잡아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아마 바울의 서신서들 중에 이 본문처럼 바울의 당시 느낌이 잘 느껴지는 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느낌, 숨소리를 느끼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 우선 약간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나는 저 거물급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느낌부터, “내가 왜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알고 계십니다.” 뭐 이러는 대목까지 바울의 표정, 감정, 그 마음이 너무 잘 느껴지네요...
* 바울은 나아가 이른바 ‘거물급 사도’들에 대해 폭로전에 돌입합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한 사탄의 일꾼입니다.”
* 최후의 카드까지 내놓은 겁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구요. 사탄은 고소 고발을 통해서 진리를 막고 왜곡시키는 짓을 너무 잘하니까요.
***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다투는 현장에는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이 사탄이 뛰어들죠.
* 단순히 다름을 용납하면 되는 걸 진리-비진리의 싸움으로 몰아가고, 목숨 걸고 하게 만드는 겁니다.
* 고린도교회에 뛰어든 이 거짓교사들, 그들에 대해 바울은 바로 이 심각성을 느끼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들은 가짜다. 속지 마라!”
* 근데요... 지금 우리는 바울이니까 그가 옳은 줄 분명히 알지만, 우리 교회가 이런 분쟁의 한 가운데 있게 되면 어느 게 옳은 건지 분간하지 쉽지 않죠. 게다가 사탄이 뛰어들어 이제는 ‘진리-비진리’의 싸움이 되어버리는 지경이 되면 더더욱 분별하기 힘들어 집니다.
* 이럴 때는 결국 바울처럼 칼을 꺼내 누가 참소자인지, 가짜 리더, 사탄의 앞잡이 역할을 했는지 가려내는 치열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게 얼마나 슬프고 답답한 일인지, 또 피 말리는 일인지... 겪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탈진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 제발 첫 단추를 잘 끼울 수 있도록, 서로의 다름을 잘 용납하는 훈련, 제대로 합시다요. 또 어디쯤에서 사탄이 끼어들려하는지 잘 분별하고, 어디서 내가 사탄이 끼어드는 걸 용납해버렸는지 잘 분별하고 바로잡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요. 특히 교회의 리더가 될수록 더더욱 이런 자기 성찰과 용납, 나를 성령께 내어드림을 잘 해야 하는데...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