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3월02일(금) 눅8:40-48 큐티목소리나눔>
“믿음 - 예수께 가면 해결된다는 무모한, 그러나 그 이상의 뭔가가 있는...”
1. 무모한 요청과 행동, 그 가운데 자리한 “믿음”
* 회당장 야이로는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 가운데, 예수님께 나아와 딸을 살려달라고 요청합니다.
* 그는 회당장으로서의 체면이나 그 바닥에 흐르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등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는 마당에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는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을 고치셨다는 사실 앞에 그를 찾아가 간청하기로 합니다.
* 한편, 12년 동안이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더라도 나을 것이라 믿고 무리 속에 섞여 예수님의 옷 술에 손을 댑니다.
I 율법은 여인이 생리 때처럼 피를 흘릴 때를 부정한 상태라 이야기하고, 외부인과의 접촉을 금합니다(레15:19~). 하지만, 12년 동안이나 하혈을 하면서, 부정한 여인이라는 사회적 격리상태를 경험해왔고, 치료비로 상당한 재산을 다 허비한 마당에, 이제는 이판사판? 용기를 내어 예수님을 찾기로 합니다. 그것도 몰래 가서 옷깃이라도 만져봐야겠다...
* 예수님은 이런 무모한 요청을 “믿음”으로 평가하십니다. 그리고 그 요청에 응해주시고, 또 여인의 경우에는 옷을 만지는 즉시 병에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대해, 그걸 채워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도구들을 잘 알고, 또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용할 양식과 순간순간 필요에 대해 주님께 요청하는 일이 점점 사라지게 되고, 기도의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거의 그렇게 살고 있죠..
* 그러다 야이로나 여인처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 내가 가진 수단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를 만나고서야 예수님을 찾게 되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이렇게 급하고 큰 불이 나서야 119 신고하듯 주님을 찾으면, 좀 미안하잖아요?
* 내 인생에 뭔가가 필요할 때, 물론 어디 가면 해결되는지 잘 알지만, 그리로 가면서 주님을 찾는 게 중요하겠죠. 그렇게 주님! 도와주세요 하면서 필요를 해결해주는 곳으로 찾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때를 따라 제 때에 돕는 은혜를 누리게 되고 믿음이 일상에 자리하게 되는 거죠.
* 그 가운데 “예수님께 가면 이 문제는 해결 될 거야!”라는 단순한 신뢰가 쌓이고, 때로는 상식적으로 무모해 보이는 것까지도 예수님께 다가가서 요청하는 것, 내 인생의 가장 마지막 보루는 예수님이라는 일종의 “의리”같은 것, 이런 게 내 마음에 자리하게 되는 거죠. 이런 인생살이가 바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사는 거라는~~^^
2. 무모한 요청, 그 이상을 들어주시는 예수님, 그 친절하심^^
* 예수님이 야이로의 요청에 응해서 그 집으로 가시는 건 잘 이해가 됨.
* 근데, 여인이 몰래 만지고 나은 상황에서 멈춰 서서 “누가 그랬냐?”고 물으시는 건 왜 그러셨을까욤?
*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그녀의 행동이 “믿음”이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주시고, 그녀가 12년간이나 위축된 마음으로 살아온 세월을 씻어주시고, 공개적으로 평화를 빌어주심으로써 마치 성전에서 대제사장이 씻음과 정결을 선포해주시듯, 그렇게 그녀의 삶을 사회적으로도 회복시켜주신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 그녀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모든 이들이 이 일로 인해 그녀를 새롭게 보게 되고, 그녀로서는 또 이걸 기회로 예수님에 대한 본격적인 믿음의 삶을 살게 되는~~ 룰루랄라~~ 그런 행복이 펼쳐지는 거죠^^
****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이 말씀이 예수님께 나아가 이것저것 기도로 간구하고 요청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때마다 일마다 동일하게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 우리는 내어맡기고 의탁하고 나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하나 둘 쌓이면서, 좀 더 편안하게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가는 것이지요...
* 그러면서 주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나라도 배우고, 하나님의 꿈도 같이 나누고, 어느덧 그 꿈에 같이 동참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 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아멘!!!
http://podbbang.com/ch/8784?e=22545911
“믿음 - 예수께 가면 해결된다는 무모한, 그러나 그 이상의 뭔가가 있는...”
1. 무모한 요청과 행동, 그 가운데 자리한 “믿음”
* 회당장 야이로는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 가운데, 예수님께 나아와 딸을 살려달라고 요청합니다.
* 그는 회당장으로서의 체면이나 그 바닥에 흐르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등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는 마당에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는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을 고치셨다는 사실 앞에 그를 찾아가 간청하기로 합니다.
* 한편, 12년 동안이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더라도 나을 것이라 믿고 무리 속에 섞여 예수님의 옷 술에 손을 댑니다.
I 율법은 여인이 생리 때처럼 피를 흘릴 때를 부정한 상태라 이야기하고, 외부인과의 접촉을 금합니다(레15:19~). 하지만, 12년 동안이나 하혈을 하면서, 부정한 여인이라는 사회적 격리상태를 경험해왔고, 치료비로 상당한 재산을 다 허비한 마당에, 이제는 이판사판? 용기를 내어 예수님을 찾기로 합니다. 그것도 몰래 가서 옷깃이라도 만져봐야겠다...
* 예수님은 이런 무모한 요청을 “믿음”으로 평가하십니다. 그리고 그 요청에 응해주시고, 또 여인의 경우에는 옷을 만지는 즉시 병에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대해, 그걸 채워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도구들을 잘 알고, 또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용할 양식과 순간순간 필요에 대해 주님께 요청하는 일이 점점 사라지게 되고, 기도의 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거의 그렇게 살고 있죠..
* 그러다 야이로나 여인처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 내가 가진 수단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를 만나고서야 예수님을 찾게 되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이렇게 급하고 큰 불이 나서야 119 신고하듯 주님을 찾으면, 좀 미안하잖아요?
* 내 인생에 뭔가가 필요할 때, 물론 어디 가면 해결되는지 잘 알지만, 그리로 가면서 주님을 찾는 게 중요하겠죠. 그렇게 주님! 도와주세요 하면서 필요를 해결해주는 곳으로 찾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때를 따라 제 때에 돕는 은혜를 누리게 되고 믿음이 일상에 자리하게 되는 거죠.
* 그 가운데 “예수님께 가면 이 문제는 해결 될 거야!”라는 단순한 신뢰가 쌓이고, 때로는 상식적으로 무모해 보이는 것까지도 예수님께 다가가서 요청하는 것, 내 인생의 가장 마지막 보루는 예수님이라는 일종의 “의리”같은 것, 이런 게 내 마음에 자리하게 되는 거죠. 이런 인생살이가 바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사는 거라는~~^^
2. 무모한 요청, 그 이상을 들어주시는 예수님, 그 친절하심^^
* 예수님이 야이로의 요청에 응해서 그 집으로 가시는 건 잘 이해가 됨.
* 근데, 여인이 몰래 만지고 나은 상황에서 멈춰 서서 “누가 그랬냐?”고 물으시는 건 왜 그러셨을까욤?
*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그녀의 행동이 “믿음”이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주시고, 그녀가 12년간이나 위축된 마음으로 살아온 세월을 씻어주시고, 공개적으로 평화를 빌어주심으로써 마치 성전에서 대제사장이 씻음과 정결을 선포해주시듯, 그렇게 그녀의 삶을 사회적으로도 회복시켜주신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 그녀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모든 이들이 이 일로 인해 그녀를 새롭게 보게 되고, 그녀로서는 또 이걸 기회로 예수님에 대한 본격적인 믿음의 삶을 살게 되는~~ 룰루랄라~~ 그런 행복이 펼쳐지는 거죠^^
****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이 말씀이 예수님께 나아가 이것저것 기도로 간구하고 요청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때마다 일마다 동일하게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 우리는 내어맡기고 의탁하고 나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하나 둘 쌓이면서, 좀 더 편안하게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가는 것이지요...
* 그러면서 주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나라도 배우고, 하나님의 꿈도 같이 나누고, 어느덧 그 꿈에 같이 동참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 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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