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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0년10월23일(금) 골2:20-3:4 큐티목소리나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2020년10월23일(금) 골2:20-3:4 큐티목소리나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교회안의 신종 율법주의에 대하여-

1. 땅의 것을 생각하는(율법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한 그리스도인(2:20-23)
* 율법 : “붙잡지도 마라, 맛보지도 마라, 건드리지도 마라...” 등등의 규칙들로 이루어진 도덕률(v21).
* 율법은 타락한 세상이 더욱 타락해서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막아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합니다. 율법은 사람의 양심에 호소하여, 무엇이 죄인지 깨닫게 만들고, 이로써 최소한의 선함이라도 유지하게 하는 거죠
* 근데요, 율법을 진심으로 따르다보면요, 자신이 창조주의 의로움에 전혀 이를 수 없다는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이 없소? 라고 절규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갈망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v22, 롬7:14-25; 3:19-20).
* 그런데도요, 우리는 이 율법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사람들이 유대교의 높은 도덕률(토라, 미쉬나, 탈무드)에 감탄하고 경도되는 이유는 타락한 세상살이와 스스로의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하고 지쳤을 때, 이 율법이 제시하는 절제된 삶에서 희망을 보기 때문입니다(v23).
* 하지만, 진심으로 율법을 따르려고 한 걸음이라도 옮겨본 사람은 곧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절망하고 절규하게 되는 절벽을 만나게 되고... 참 아이러니죠..ㅠㅠ

*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이 진짜 중요한 겁니다.
*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율법이 할 수 없는 그 일을 당신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거죠(롬3:21-26).
*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같이 죽었고, 그분이 부활하실 때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골3:1,3).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려고 애쓰다 절망을 반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새롭게 닦아주신 길을 따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v20).

* 자.. 그런데도 새롭게 태어난 골로새를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율법을 따라야만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붙잡지도 마라, 맛보지도 마라, 건드리지도 마라...” 등등의 규칙들을 따르려고 기를 쓰며, 또 신종 율법과 규칙들을 새롭게 만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v20).

*** 바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하고 아픕니다. 어제 나눔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 안에 존재하는 “붙잡지도 마라, 맛보지도 마라, 건드리지도 마라...” 등등의 수많은 규칙들, 새로운 율법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인’을 떠올려보면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우리는 ~~ 것들을 하지 않아!”, “우리는 ~~ 것들은 반드시 해!”라는 두 문장에 해당되는 말들을 찾아서 기록해보면, 내가 얼마나 그리스도인의 삶을 율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금방 드러납니다. 한 번 해보실까요? ^^
* 근데 막상 적어보려니 몇 가지 외에는 잘 안 떠오르죠? 원래 그렇습니다. 금기사항은요,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잠잠하게 있다가 뭔가 선택의 기로에 선다든가, 판단해야할 때, 위급할 때 등등 상황이 딱 주어지면 불쑥 튀어나와 제 역할을 하는 거거든요..ㅎㅎ
* 예를 들어서 몇 년 전에 어느 주일 저희 교회에 나이 드신, 다른 교회에서 여전도사로 섬기시던 분이 예배드리러 오셨는데요, 예배 중에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고(꼭 강대상 앞으로 안 번씩 나와서 순찰을 하고 가는 나이대가 있어요^^ㅋㅋ), 응애~ 울기도 하고... 이런 걸 보시고는... 점심 먹는 자리에서, 저를 부르시더니 “목사님이 나이가 젊어서 뭘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예배 때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하고..” 일장 훈시를 하시더군요.. 이런 거죠. 그분의 맘속에 신율법주의 마인드가 제대로 작동한 겁니다. 이런 식으로 어떤 구체적 상황을 만나 툭 튀어나오는 내면의 기준들 중에 구원과 상관없는, 그저 문화적으로 익숙한 것들에 대한 기준이 절대적인 것처럼 작동하면, 이게 바로 신율법주의의 노예가 된 모습이라는~~
* 뭐 최근에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에서조차도 온라인예배는 예배드린 게 아니라는 주장을 하며 꼭 다 모여야한다고 난리를 쳤던 분들도 마찬가지 경우겠죠...ㅠㅠ

2.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났으니, 위의 것을 생각하라(3:1-4).
*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v1). : 세상을 통치하시는 자리에서. 당신의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의 원칙(위의 것)을 따라,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 하지만, 아직 악의 세력이 남아있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감추어져 있음. v3).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모든 것이 훤히 밝혀질 것입니다(v4).
* 그렇다고 없거나 사라진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새롭게 살아난 우리들은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눈으로 보는 것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고후5:7).
*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를 다스리시는 그 뜻을 알아가는 삶을 살아가면서, 매일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그 뜻과 정신을 따르고자 이렇게도, 저렇게도 다양하게 살아보는 것,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해보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요, “너희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라.”(창1:28)는 말씀을 실천하는 길이라는~~

*** cf.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 안에 신종 율법들이 이렇게 많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요? 가만 생각해보면, 율법(도덕적 규칙들)을 잘 지키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이 취소될 것 같은 ‘두려운 마음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하나님이 구원은 취소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중에 반드시 벌주실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구요.. 왜, 십일조 떼먹으면 반드시 그만큼, 아니 그 몇 배로 손해 보게 하신다는 뭐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교회를 떠돌고 있잖아요? ㅎㅎ
* 이럴 때 새겨야 할 말씀을 바울이 들려줍니다. 교회안의 신율법주의적 주문들은 꾸며낸 경건, 가짜 경건을 만들어낸다는 것(v23), 우리는 더 이상 이런 것들에 현혹되어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은 우리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싸개 속에 꼭 싸여 있어서 보호받고 있다는 것(v3)이라고~~
* 이런 말씀을 딱 붙잡고서 다시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8:31,32) &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요일4:18). 라는 말씀을 더욱 누려보는 거죠^^
*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워하신 그 사랑을 신뢰하고, 그 말에 거하는 것을 통해 율법 준수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삶,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 그 자유로움을 정말 마음껏 누리는 저와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 교회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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