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7일(토) 창23:1-6 큐티목소리나눔>
“사라의 죽음과 아브라함의 슬픔”
1. 사라는 127세를 살다 세상을 떠났고, 아브라함은 슬퍼서 애통함 가운데 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 인생을 같이 살아온 세월이 벌써 100년은 지났을 배우자가 더 이상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마음을 나눌 수 없는 길로 떠나버렸을 때, 아브라함이 만나는 슬픔과 애통한 마음을 가만히 같이 느껴봅니다.
* 예수님도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셨던 것을 생각해봅니다.(요11:33-35)
* 우리 역시 살아오면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이별의 아픔을 직,간접적으로 겪어왔기에, 이 슬픔의 크기와 깊이가 얼마나 크고 깊을지 충분히 느껴지고, 그래서 이웃이 이런 아픔을 겪을 때 가만히 있기 보다는 같이 슬퍼하고, 애통해하며 그 슬픔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지요.
2.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슬퍼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기도 하는데...
* 한편,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을 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마치 이 땅의 고통이 끝나고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시작으로 생각하고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 울고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야단치고 울지 말라고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 이것은 천국(하나님나라)를 잘못 알고 있어서 생긴 비극입니다. 예수님은 “천국(하나님나라)이 (이 곳으로)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막1:15, 마4:17).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역시 몸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입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하늘에서 이곳으로 다시 오셔서 이 땅을 포함한 전 우주만물을 새로운 질서로 회복시키심으로써 하나님나라를 완성하시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벧후3:10~, 엡1:10 등).
* 따라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죽음이라는 이별은 죄로 말미암아 왜곡된 자연 질서요, 모든 피조물도 다 같이 겪고 있는 고통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롬8:22). 그리고 예수님이 마지막에 정복하고 깨뜨리실 것도 바로 이 ‘죽음’입니다(고전15:26).
* 그러므로 우리는 갑자기 만나는 이 죽음 앞에서, 만남의 단절 앞에서 찾아오는 슬픔과 애통함을 얼마든지 표현하고 아파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해봅니다.
3.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 내 슬픔을 충분히 슬퍼하고, 그 과정에서 위로해주시고 눈물 닦아주시는 주님을 만나 힘을 내어 본 사람은 옆에서 아파하고 울고 있는 사람과 더불어 같이 울 수 있고, 또 그 과정에서 같이 용기를 내어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가 있는 것이지요.
* 예수님도 나인이라는 성 앞에서 마닥뜨린 장례행렬에서 과부가 외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그 마음에 같이 아파하시고 슬퍼하시다가, 결국 그 아들을 살려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눅7:11-17).
* 슬픔은 충분히 슬퍼함으로써 풀어진다는 것을.....
“사라의 죽음과 아브라함의 슬픔”
1. 사라는 127세를 살다 세상을 떠났고, 아브라함은 슬퍼서 애통함 가운데 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 인생을 같이 살아온 세월이 벌써 100년은 지났을 배우자가 더 이상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마음을 나눌 수 없는 길로 떠나버렸을 때, 아브라함이 만나는 슬픔과 애통한 마음을 가만히 같이 느껴봅니다.
* 예수님도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셨던 것을 생각해봅니다.(요11:33-35)
* 우리 역시 살아오면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이별의 아픔을 직,간접적으로 겪어왔기에, 이 슬픔의 크기와 깊이가 얼마나 크고 깊을지 충분히 느껴지고, 그래서 이웃이 이런 아픔을 겪을 때 가만히 있기 보다는 같이 슬퍼하고, 애통해하며 그 슬픔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지요.
2.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슬퍼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기도 하는데...
* 한편,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을 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마치 이 땅의 고통이 끝나고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시작으로 생각하고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 울고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야단치고 울지 말라고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 이것은 천국(하나님나라)를 잘못 알고 있어서 생긴 비극입니다. 예수님은 “천국(하나님나라)이 (이 곳으로)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막1:15, 마4:17).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역시 몸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입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하늘에서 이곳으로 다시 오셔서 이 땅을 포함한 전 우주만물을 새로운 질서로 회복시키심으로써 하나님나라를 완성하시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벧후3:10~, 엡1:10 등).
* 따라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죽음이라는 이별은 죄로 말미암아 왜곡된 자연 질서요, 모든 피조물도 다 같이 겪고 있는 고통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롬8:22). 그리고 예수님이 마지막에 정복하고 깨뜨리실 것도 바로 이 ‘죽음’입니다(고전15:26).
* 그러므로 우리는 갑자기 만나는 이 죽음 앞에서, 만남의 단절 앞에서 찾아오는 슬픔과 애통함을 얼마든지 표현하고 아파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해봅니다.
3.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 내 슬픔을 충분히 슬퍼하고, 그 과정에서 위로해주시고 눈물 닦아주시는 주님을 만나 힘을 내어 본 사람은 옆에서 아파하고 울고 있는 사람과 더불어 같이 울 수 있고, 또 그 과정에서 같이 용기를 내어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가 있는 것이지요.
* 예수님도 나인이라는 성 앞에서 마닥뜨린 장례행렬에서 과부가 외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그 마음에 같이 아파하시고 슬퍼하시다가, 결국 그 아들을 살려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눅7:11-17).
* 슬픔은 충분히 슬퍼함으로써 풀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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