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5월24일(화) 벧전1:1-12 큐티목소리 나눔>
“나그네, 그러나 당당한 그 위풍”
1. 저자 베드로와 기록 배경, 목적
* 본문에서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소개함. 당근!!
* 그는 사도행전, 갈라디아서 등의 기록에 따르면, 초대교회 안에서 설교가로서, 대변자로서, 교회의 행정적 책임가 등으로 등장함. /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연 사람(고넬료집 사건을 통해).
* 초대교회의 기록이나 전승에 따르면, 그는 소아시아지역을 거쳐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굳게 했으며, AD64년 로마의 네로황제가 박해를 시작했을 때, 바울과 비슷한 시기에 처형당했던 것 같습니다.
*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로마는 벌써 네로황제의 박해가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고, 위기가 감지됨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국의 변방까지는 이 분위기가 확산되지는 않은 상태라,
* 소아시아 지역(터키 반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미리 박해에 대한 준비를 시키고, 하나님의 참된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보입니다.
2. 수신자 : 터키 반도에 흩어져 사는 나그네 된 그리스도인과 공동체 &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된 나와 공동체
*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v1)들이 수신자로 언급되어 있음.
* 이 지역은 모두다 터키반도의 지방 이름(우리로 치면 경상도, 강원도와 같은)입니다.
* 이 지역은 베드로와 바울이 서로 엇갈려가면서 전도하고 세운 교회들이 흩어져 있는 곳이지요.
* 구성원들을 보면 남편과 아내, 종, 젊은이, 장로들, 부유한 여성... 다양한 언급이 서신서에 나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제국의 문화와 경제를 주도하고 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변방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더 크죠.
* 본 서신에서 이들을 “흩어진 나그네”라로 부르고 있음이 독특합니다. 구약적 배경에서 바벨론 포로기 이후 지중해 전역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부를 때 사용했던 말인데, 베드로는 이제 지역적으로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그네”로 부르고 있음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 이 땅에서의 삶은 나그네와 같이 머물지 않고, 여기에 붙잡히지 않고,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지 않고, 조금은 관조적 자세로 살아가는 여유로움과 더불어 깨어있음이 필요한 ‘나그네’... 오늘 나의 삶의 주소를 묵상해봅니다.
* v1. 이 흩어진 나그네 된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미리 아셔서”(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통해 +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셔서 ⇛ 순종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신 사람들이라는 사실!!
* 비록, 현실의 삶의 현장에서는 상사에게 욕먹고, 있는 넘들한테 주눅 들고, 스펙에 기죽고, 돈 없어서 스스로 비참한 마음이 든다고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이 알아주는 존재, 예수님이 피로 거룩하게 하시고 그를 따르도록 부른 존재라는 사실!! 이 아침에 자존감 한 번 크게 세우고, 어깨 활짝 펴고 나가봅시다요~~^^
3. 예언자들은 이 구원을 자세히 살피고 연구하였습니다.
*** 한편, 요즘 한국 교회 상황은 베드로 시절의 상황과는 다르게 기독교인들이 크게 잘못 살아온 결과로 욕먹고 있는 때라(열혼 조사에 따르먄 기독교인에 대한 신뢰도가 17%밖에 안 되더라구요...), 사실 더 비참한 상황인데요..ㅠㅠ 어쩌면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가 된 것처럼, 오늘 우리가 당하는 사회의 지탄과 손가락질이 바로 하나님이 한 국교회, 곧 우리들을 향한 징계의 한 방법이란 슬프고 아픈 생각이 듭나다.
* 이럴 때 더 깊이 묵상하고 붙잡아야 할 게 바로 ‘예언자들이 구원을 자세하 살피고 연구했던’자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를 살게 끔 우리에게 전해주신 십자가의 선물, 곧 복음이 대체 우리 현실 속에서 어떤 삶으로 사는 것인지를 깊이 묵상하고 묵묵히 실천하는 삶이 있어야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록 징계는 어떤 것이든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정의의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하니까” 말예요..(히12:11)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함에 잘 참여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회복하는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하면서 오늘 여기 임한 하나님 나라를 묵묵히 살아가는 거죠..
* 그렇게 살면, 실은 소위 한국교회 주류라는 사람들로부터 바난 받는 일이 비일비재 할 것 같아요. 심지어 이단이란 소릴 듣게 될 거구요. 하지만 그것밖에는 답이 없는 것 같아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참된 하나님 나라를 던져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그들이 나와 우릴 향해 손가락질하더라, 나만이라도, 또 우리 교회만이라도 제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겁니다.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나그네의 길을 걸어가는 거죠.
4. 그런 우리들에게 은혜와 평화가 가득하기를!!
* 지금 내가 여기를 당당하게 살 수 있게 해주신 배경에 깔려 있는 모든 것. “하나님 아버지 + 예수 그리스도 + 성령님” 이 삼위 하나님이 아주 세밀하게, 또 아주 구체적으로 부어주신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 길, 묵묵히 걸어가는 이 길 가운데 당당한 자존감은 불가능하다는 것!! * 그러니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쭉~~ 이 은혜 가운데 거하는 게 답이라는 것!!^^
* 은혜 가운데 거할 때 찾아오는 분명히 근거가 있는 배짱과 자신감, 그리고 마음 중심으로부터 찾아오는 무엇에도 쉽게 요동하지 않는 평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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