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5월30일(월) 벧전2:11-25 큐티나눔>
“나그네의 삶- 여기에는 자유인으로, 하나님에게는 종(대사)으로~”
1.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그네로 살 때
* 이 편지를 쓰기 대략 10여 년 전에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이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복음전도로 인해 유대인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한 논쟁과 분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고, 가뜩이나 로마에 비협조적인 유대인들 사이의 분란이 다른 소수민족들에게도 확산될 것을 염려한 글라우디오황제의 조처였습니다(행18:2~)
* 초대교회 성도들은 소수종교로서 별난 종파 취급을 당하고,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웃들 사이에서 흩어져서 살고 있었습니다. 성찬식을 빗대어 식인종이라느니, 형제자매라 부른다고 근친상간이라느니 하는 악의에 찬 소문들과 황제숭배를 거절한 반역적 무리라는 정치적 위협에 이르기까지..
*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억울한 누명과 비방을 받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도덕적 타락과 위선, 범법 행위들로 인해 “믿는 놈들이 더 해!”라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아무튼 주변에서 곱지 않은 눈초리를 견뎌야한다는 면에서는 초대교회 성도들과 상황이 참 비슷합니다...ㅠㅠ
* 이 가운데 살면서, 베드로는 우리의 신분이 이 땅에 소망을 둔 거주자(시민, 주민)이 아니라 ‘나그네’로, 머물고 있으나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닌 ‘거류민’이라고 못을 박습니다.
* 그러면서도 역설적이게 하나님 나라를 살면서,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 파송 받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업적과 위엄을 전파하고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v9)
*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통해 이런 역설을 살 수 있을까요? 이어지는 본문들은 쭉~~ 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우선, 우리 자신들이나 이웃들 모두 가만 내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달려가는 길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봅니다. 돈이 없어서, 주변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관계가 파괴되거나 법의 처벌을 받는 게 두려워서 못 할 따름이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다 할 것입니다.
*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부름 받았을 때, 우리는 이런 삶의 태도와 방식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린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놈들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공격하기에 깨어서 이런 육체의 정욕(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고 싶은 마음)을 제어하고, 내려놓고 다른 길을 가는 삶을 사는 것. 이건 신앙생활의 기본 중에 기본이죠.
* 그런데 비우호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이웃들 속에서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을 충실히 실천하고 살아갈 때,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고 베드로는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들에 대한 비방을 멈추게 된다는 것이지요. 비록 자존심이 있어서 여기서는 계속 비방한다 할 지라도, 마지막 날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들이 옳았음을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베드로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 특히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 기본에 충실하지 못해서 욕먹고 있는 상황에서 이 말씀은 정말 뼈아픈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화살을 쏘기 전에 그냥 나와 내 공동체부터 신앙의 기본(육체의 정욕을 멀리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사는 삶)을 충실히 하자!! 아멘~~
3. 인간이 세운 제도를 존중하고 복종하라.
* 하나님이 인간을 에덴에서 내쫓으시며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서로 물고 뜯고 싸우다 공멸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주신 것이 법과 제도요, 통치자를 세워 사회 조직을 갖추고 다스리도록 하셨다는 사실.(v13-15, 롬13:1-7)
* 따라서 기본적으로 나그네는 현지 법고 질서와 통치권을 존중하고 따라야 마땅하겠죠? 그래야 비방이나 어려움을 당치 않게 된다는 사실!!
* 간혹, 아니 너무나 자주, 이 통치자들이 자기 사욕을 앞세워 조직적 폭력으로 사람들을 괴롭힐 때가 있다는 사실. 이 때는 위의 기본적 자세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 불의에 항거하고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세우는 행동을 해야겠죠? 하지만 그 경계가 실제로는 너무 미묘한 차이와 복잡한 실타래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기에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순종과 지혜, 또 용기가 필요함을 생각해봅니다.
*** 음... 그리스도인이 현실 정치와 제도에 대해 따름과 저항을 잘못 한 예는 부지기수로 많구요.. 거기에 비하면 제대로 따를 때 따르고 저항할 때 저항한 예는 손꼽을 정도(아닌가? 이름 없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았을 거니까...)인 것 같습니다.
* 오용의 예를 가까운 데서 들자면, 예전에 군사독재시절에 보수교회 지도자들은 제도에 참으로 순종적이었더랬구요, 툭하면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할지니..”(롬13:1) 그러면서 독재에 한거하는 대학생 성도들을 핍박했죠...ㅠㅠ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어 그동안 누리던 자신들의 기득권이(이른바 큰 교회들의 예겠죠...) 제한될 상황이니까 또 극렬하게 정치권에 뛰어들더라구요.. 참 모순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는데...
*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 2년을 겪으면서는 방역 정책을 모두들 각자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따르는 판국에 유독 몇몇 교회들이 대놓고 무시하는 통에 욕을 바가지로 얻어 벅게 되었던 건 진짜 오늘 이 말씀을 거꾸로 적용한 대표적인 경우죠...ㅠㅠ
* 이 모든 게 바로 자신 속에 숨어있는 은밀한 욕망과 욕심을 신앙이란 이름으로, 진리수호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행동한 결과라는 거라.. 진짜 서글프고 답답하고... ㅠㅠ
4. 자유인으로 살라. 동시에 하나님의 종으로 살라.
*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건요, 이 땅의 주민들이 메여 사는 다양한 것들(두려움, 염려 등등)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사는 건데요....
* 그렇게 살려면, 은밀하게 찾아오는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자유를 이용하지 말아야 하는 거라. 이게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 나 자신이 얼마나 합리화의 명수인지....ㅠㅠ
*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대사(종)로 파견 나와 있음을 항상 기억하라. : 매사에 반듯하게~^^ (eg. 모든 사람을 존중, 믿음의 식구들 간의 사랑의 교제, 하나님을 경외함, 제도의 통치권자를 존중함...)
* 아무튼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답게~!!” 아멘!!
5. 노예제도에 대하여, 십자가 지고 걷는 순례 길”
1) 그때는 종, 지금은 임금노동자
* 고대 노예제도는 경제의 기반이었고,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오늘날 노동자들 역시 경제의 기반입니다. 또한 법적으로는 평등(?)하지만, 고용주들에 의해 상당부분 노예대우를 받는 게 현실입니다.
* 당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종들이 상당수였다는 것, 오늘날 임금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상황을 전제로 본문을 묵상해봅니다.
* v13(제도는 하나님이 주신 것)에서 이미 베드로는 현재의 기존 제도에 대해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면 이 제도아래서 상당히 부당하고 비인간적 대우를 받는 노예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이들도 복음 안에서 바라보면 분명 하나님의 형상으로 평등한 사람들인데, 지금은 영 아닌 상황...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2) 부당하고 억울하게 고난을 받아도 주를 생각함으로 참으라.
* 베드로 사도가 제안하는 가장 중요한 나그네로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 오늘날에는 제도적 발전을 이루어 노조가 있고, 각종 시민단체가 있어서 다양한 권익투쟁이 가능하지만, 그 당시는 이런 게 전무한 상태. 그렇다고 스팔타커스 반란처럼 노예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물론 가정의 종처럼 일정한 임금을 받아서 그걸 저축한 후 사유민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항거하다 매를 더 맞거나, 아니면 찍소리 못하고 그냥 참는 수밖에... (물론, 자기가 잘못해서 매를 맞으면, 그야 더욱더 할 말 없고...)
* 이왕 참는 길밖에 없다면, 이 상황을 주께서 당하신 고난(“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을 묵상하고 그 십자가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길 순례의 여정>으로 바꾼다면,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고 베드로는 도전하는 것이지요.
3) 오늘날 달라진 것과 같은 것
*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는 노조가 있고, 조직적인 구조악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법적 장치가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는 곳이 너무 많은 게 현실이지요.
* 이 속에서 일상에서 “십자가의 길 묵상과 순례”라는 마음으로 사람들, 특히 상사들을 만난다면, 우리 역시 일상이 새롭게 보이는 시간을 만나겠죠?
* 물론 잘못해서 당하는 고통이야 뭐라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만나지 않기 위해 앞선 본문에서 베드로는 스스로 육체적 정욕을 피하고 행실을 바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제를 얘기한 거죠.
* 한편,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최소한의 법적 평등과 유지를 위한 제도장치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악과 싸워서 이루어놓은 결과들입니다. 특히 그 사람들 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꿈꾸시는 사랑과 정의가 입 맞추는 그 나라의 이상을 이곳에서 맛보며 살게 하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인 거죠. 이런 헌신도 성경은 곳곳에서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 또 지금의 불의를 바로잡기 위한 새로운 싸움들이 계속 되고 있는 현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헌신, 이것 역시 “십자가를 지고 걷는 순례의 길”의 한 부분인 거!
* 일상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같이 걷고, 때로는 애매히 당하는 억울한 고난을 주를 생각하면서 참으며, 또 어느 지점에서는 성전의 상을 뒤엎으신 예수님처럼 투쟁가가 되기도 하는 게 일상을 십자가의 길 순례로 받아들이는 삶인 거죠.
* 그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이 참된 힘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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