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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2년12월05(화) 마23:25-39 큐티목소리나눔> “독사의 자식들아! / 먼저 잔 안을 깨끗하게 하라!”

<2022년12월05(화) 마23:25-39 큐티목소리나눔>
“독사의 자식들아! / 먼저 잔 안을 깨끗하게 하라!”

1.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나, 속은 탐욕과 위선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구나!
* <이야기의 배경> 유대인들은 정결을 위해 잔에 하루살이가 떨어지면 죽기 전에 얼른 꺼내야만 했음. 식사 전에는 반드시 잔과 접시의 안팎을 다 닦았음(뭐, 요즘의 위생 관념으로는 이게 맞긴 한데... 암튼..). / (오래된) 무덤을 지나가는 사람이 모르고 무덤에 스칠까 봐 항상 모든 무덤은 하얀 회칠을 해서 드러나 보이게 함.
* 근데 예수님 왈, 하루살이는 그렇게 극성스럽게 건져내지만, 정작 잔에 그 큰 낙타가(율법에서 부정한 짐승) 빠져 있는데 건져내지 않고 마신다고...
* 잔의 바깥은 닦고, 무덤도 회칠을 하지만 속은 더럽고, 썩은 내가 난다는...

* v23에서 얘기한 박하와 근채와 곡식 낱알까지 세어서 십일조를 드리고, 안식일은 죽어라고 지키지만, 율법의 핵심, 정의, 자비, 신의는 버려버린 모습을 강하게 책망하는 말씀이죠.

2.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면하겠느냐?
* 바리새인들과 그 시대의 유대인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죽였던 선조들의 잘못은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기념비를 세우는데 열심이었습니다. 역시 외면을 깨끗하게 하려는 노력인 거죠
* 하지만, 정작 그들은 세례요한의 얘기도 듣지 않았고(백성의 지도자들의 경우), 예수님도 결국은 십자가로 내몰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그들은 조상들의 죄(구약의 첫 순교자 아벨의 피로부터 마지막 순교자 사가랴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였던 그 죄)를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인 거라는... (예수님은 마21:33-46에서 악한 소작농과 잔치 초대 손님 비유를 통해 이미 이 사실을 고발하였음)
* <참고> 사가랴는 대하24:22에 나오는 인물. 유대인들의 구약성경 순서는 우리랑 달라서 말라기가 끝이 아니라, 역대하가 끝이기 때문에 마지막 순교자가 역대하에 나오는 사가랴가 됨^^
* 예수님은 이들에게 결국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면하겠느냐?”라고 저주(사실은 정당한 심판을 받게 됨)를 퍼붓게 됩니다. 독사의 한 종류인 살모사는 새끼가 태어날 때 어미를 죽이고 태어나죠. 참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3. “먼저 잔 안을 깨끗하게 하라”
* 근데, 예수님은 저주를 선포하시는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돌이키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먼저 잔 안을 깨끗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 우리가 몸담고있는 기독교, 바리새파만큼이나 신율법주의로 회귀한 기독교, 우리 자신들로부터 지도자들(? 아니, 종교 권력자들)에 이르기까지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에는 온갖 탐욕으로 가득 찬 모습이 수두룩한 우리의 민낯. 예수님 앞의 바리새인들이 받는 질타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이 점점 더 깊어져 갑니다.
* 어떻게 하면 이런 신율법주의의 타락, “독사의 자식들아!” 라는 책망으로부터 돌이켜 잔 안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 우선 이원론과 율법주의에 갇힌 나와 교회의 세계관을 하나님 나라,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주도하시는 큰 그림으로 새롭게 이해하는 세계관의 변혁을 시도해야겠죠. 예수님이 바리새파 사람들이 주도하는 율법주의에 맞서 3년 동안 열심히 설파하셨던 그 얘기에 귀 기울이고 나의 세계관을 꾸준히 바꾸어 나가는 작업!
* 다음은 그 세계관의 변화에 따라 내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뭣이 중헌지,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삶으로 잔 안을 깨끗하게 하는 작업을 해나가는 겁니다. 매일매일 말씀 앞에서 내 마음의 중심을 바로잡는 회개의 시간!
* 마지막으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내며 살지 공동체적으로 같이 고민하고, 같이 창조적 실험을 계속하는 적극적인 삶을 사는 것!
* 이런 삶을 꾸준히 살다 보면, 나와 우리 교회, 나아가 한국교회가 점차 새로워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윗물은 더러워도 아랫물은 맑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말예요^^

4.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
* 예수님은 격정이 끓어오르시는 듯,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거의 통곡하시듯 부르짖으십니다.
* 너희는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 내가 암탉이 병아리를 모으듯 내가 너희 자녀를 몇 번이나 모아 품으려 하였느냐? 그러나 너희는 원치 않았다...ㅠㅠ

* 암탉이 새끼를 모을 때는 거의 대부분 위기 상황이죠. 아스라엘의 위기는 뭘까? 가만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가 저희들끼리 잘 살라고 부른 게 아니라, 모든 민족을 부르는 제사장 나라를 삼고자 함이었는데, 이 사명이 위기에 놓일 때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셨고, 결국 예수님까지 오시게 된 거라는...
* 그러나 이들은 선지자는 물론이거와 예수님도 십자가로 내몰 거라서...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상황이 되고 말 거라는 슬픈 현실...ㅠㅠ
* 너희 집은 버림을 받아서.. : 이스라엘이 선민이라는 자부심의 상징인 이 성전은 무너질 거라는 말씀.
* 이런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이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셨으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절규하셨을까? 예수님의 목소리가 깊이 마음에 울려옵니다.

5.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도다. 호산나!!”라고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게 될 때야 비로소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
* 실제로 예루살렘 입성할 때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사람들이 외쳤던 이 말씀(시118:26).
* 사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도 바로 이 반응을 기대하셨습니다. 근데... 오히려 예수님을 죽일 음모나 하고 있으니...에고...
* 이제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나면, 이들 입에서 언제 이런 고백과 찬양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는...ㅠㅠ (실은 아직도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지 않고 있으니...쩝)
*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상당히 부정적 전망을 담고서 말씀을 마치십니다.

* 그러나, 놀랍게도 오순절 이후 유대인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을 환영합니다. 호산나!!”라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했으니,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죠.^^
*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아멘!

*** 지난주부터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잘못, 그 핵심 지적하시며 동시에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듣고 있습니다.
*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종교 지도자임과 동시에 정치 지도자 였음을 생각해본다면 오늘날 우리 시대 속에 기독교 지도자들과 정치, 사회 지도자들(아니, 권력자들) 역시 이 메시지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 아니, 직접 이 메시지를 들어야 할 사람들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 예수님이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라고 선포하신 말씀을 오늘날 이시대 속에서는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대언자가 되어 전해야 하는 거죠.
* 광화문광장에서, 검찰청사 앞에서, 재벌기업 앞에서, 왜곡된 보도로 국민을 우롱하는 언론사 앞에서 우리는 바로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위선자들아! 시대의 범법자들아! 너희에게 임박한 진노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 만일 그렇게 행동해서 당하는 고난이라면, 기꺼이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견뎌내야 하구요...
* 또한 동시에, 내 마음의 중심에 그들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탄식하신 예수님의 깊은 애정을 갖고 바라보고 외쳐야 한다는...(특히 한국교회를 아파하고 그 잘못된 길을 지적할 때는 더더구나 아파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는...)

* 한편, 우리 자신들도 이 메시지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ㅠㅠ 예수님은 사역초기부터 계속해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잘못된 신앙태도와 가치관에 대해 꾸준히 도전하시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나아가고, 예수님은 긴 탄식으로 이들을 안타까워하십니다.
나의 신앙생활, 끊임없이 말씀으로 도전하시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고집하는 어떤 것들, ‘이걸 내려놓으면 내가 없어지는 거야’...뭐 이런 것들, 혹은 지속적으로 걸려 넘어지는 유혹... 주님은 때론 꾸짖고, 때론 설득하고, 때론 환경을 통해 깨닫도록 도전하시지만 끝내 “아~~창완아! 창완아! 내가 너를 품으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했니?” 라고 탄식하는 일들이 없는지 깊이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 똑같이 야단맞고 경고를 받았으나, 가롯 유다처럼 살 수도 있고, 베드로처럼 살 수도 있다는 사실!!
* 부디 베드로처럼 즉시 돌이키고, 주님을 다시 따라갈 수 있는 삶이 되길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