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3월08일(목) 눅9:18-27 큐티목소리나눔>
“주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고백과 제자도”
1.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다른 복음서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갈릴리 북쪽 가이사랴 빌립보로 제자들과 함께 수련회를 떠나신 상황에서 일어난 일입니다(마14:13; 막6:14).
* 이곳에서 예수님은 사역의 전반부를 정리하시고, 제자들을 한 단계 up시키시는 중이심.^^
* 예수님 왈,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제자들 왈, “더러는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암튼 선지자 중의 한 분이랍니다.”
* 그러고 보면, 예수님에 대한 당시의 이미지는 결코 부드러운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선지자들은 주로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고, 투쟁하고 약간 기인처럼 살고... 뭐 이런 이미지였으니까요~ (오늘날 대부분의 그림에서 표현하는 양떼들을 먹이는 목자의 이미지와는 쬐끔 먼 듯한...ㅎㅎ)
2.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넹. 메시아, 왕이십니당”^
* 중요한 건, 사람들이 아니라, 너희들이야~~ 너희에게는 내가 누구니?
* 베드로 왈, “하나님의 아들(다른 복음서에서 보충), 그리스도십니다.”
* 베드로는 제자들 사이에서 이미 공유가 된 얘기를 대표로 전하고 있는 거겠죠?^^
* 그리스도(메시아) :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구약의 수많은 예언들을 토대로 누군가가 메시아(기름 부은 왕)로 와서 이스라엘을 이방인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다윗시대의 찬란한 국력과 문화를 회복시키리라는 기대가 굉장히 부풀어 있었습니다. 언제 올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고 이론만 무성했죠.
이런 메시아 대망론은 로마당국으로서는 경계의 대상이었고, 더러는 “내가 메시아다!”라고 외치고 사람들이 그를 따르다가 로마에 의해 처형당하면 흩어지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 : 지금 우리는 예수님은 삼위하나님의 제 2위이신 성자(聖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고 믿고 고백하지만, 이 당시에는 이런 개념은 아직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유일신 하나님만 계셨죠.
베드로가 고백한 ‘하나님의 아들’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왕’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아들)’이라는 표현인 거죠(eg. 삼하7:14, 다윗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 중에 다윗의 자손들을 향해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표현함)
* 정리하면, 베드로의 고백은, “당신은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 살아계신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는 표현입니당~~
* 드디어 메시아운동의 한 복판에 제자들이 뛰어들어 있는 거죠^^ 이건 로마당국이 알면 큰일 날 일. 체제 전복적 위험인물과 운동이 되는 거니까, 예수님 왈, “쉬!.. 조용히! 아직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 이 고백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는 이 당시의 제자들을 넘어서서 “주는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성자)”이심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더 분명한 것을 많이 알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신 교회 공동체의 지체됨과, 지금 이곳에서 누리는 하나님나라(일상생활과 모든 피조물 세계 속에 펼쳐져있는 하나님의 다스리심) 뿐 아니라, 주님 다시 오셔서 완성하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과 믿음 위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붙잡고 고백하며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 이런 분명한 인식과 고백이 있어야 왜곡된 복음의 길, 곧 기독교가 그저 이 세상 행복하게 살고, 맘 편히 사는 데 위로와 도움이 되는 종교 정도로 만족하고 사는 삶을 따라 가지 않고, 메시아시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참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3. 십자가의 죽으심 예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올 것을 촉구하심
* 예수님은 제자들의 고백에 한껏 고무가 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네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뭐 이런 말씀도 하시잖아요?ㅎㅎ)
* 이때부터 예수님은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 가르치시는 거죠.
*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이제 제자들이 준비되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음.
* 메시아로서 당신의 구체적 일정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시기 시작하심
* ‘예루살렘 가서 > 고난 > 죽으심 > 부활’
* & 이런 나의 사역을 따라오려거든....(진정한 생명을 얻으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목숨을 내어놓아야) 따라야한다.
* (마태, 마가에서는 베드로가 “절대 안 됩니다”라고 대들다 엄청 야단맞잖아요? 그런 다음에 하신 말씀이십니다.)
* 베드로와 제자들이 생각하고 꿈꾸던 하나님나라에 대한 생각과 믿음을 철저하게 무너뜨리고, 예수님을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며 그 말씀을 순전하게 믿고 따라야만 하나님나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말씀!
* 베드로와 제자들은 처음보다 더 큰 충격과 더불어 엄청난 도전 앞에 직면하지 않았을까요? “아...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그럴 것이다 믿고 예수님을 따라온 걸 다 버리라고? 그리고 자기는 죽는다고? 이게 하나님나라라고? 이걸 믿으라는 거야?”
(슬프게도 이 결단의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고집하기로 결단한 사람이 바로 가롯유다인 거죠...ㅠㅠ)
*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도 하나님나라의 왕권을 온전히 부여받는 날에 그들을 모른 체 하실 것이라고라고라...ㅠㅠ 후덜덜...
* 예수님의 마무리 말씀은,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에 싸여 왕권을 갖고 오는 것을 너희 중에는 죽기 전에 볼 사람들이 있다.”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 분명히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즉위하는 대관식에 제자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시는 말씀이죠.
* 그 때에 지금 너희가 행한 대로 갚아줄 거야!! (안심하고, 두려워말고 내 말을 믿고 따라오렴.)
* “그러니, 지금 너희가 생각해왔던 메시아에 대한 그림을 버리고 내 얘기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어?”
* 예수님의 마지막 도전, 이제 제자들의 결단이 남았습니다.
* <주의>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올 때~~, 이 말씀은 단7:13,14에 나오는 이미지로서 당시에 매우 잘 알려진 ‘메시아의 왕위 즉위식’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얘기를 듣자말자 재림을 떠올리겠지만, 본문의 문맥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먼저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고(eg. 마28:18 부활하신 예수님 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가 받았다.”), 다음으로 재림에도 적용해서 생각할 수 있는, 둘 다 가능한 얘기로 보여집니다. 부활에 대한 말씀으로 생각해볼 때, 제자들은 다 그 목격자들인 거죠^^
3.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행복한 길^^
* 누구든지 예수님을 처음 만날 때 각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 하지만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나라의 분명한 그림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가면서 자신의 선입견이나 기대치를 내려놓고 말씀이 가르치는 세계관으로 점차 바뀌어져 가는 게 바로 신앙성숙에 있어 매우 중요한 면입니다.
* 무엇보다도 이 시대가 가르치는 “우리 인생은 이래야 행복한 거야.”라는 생각들, 교회 전통 가운데 약간씩 왜곡되다가 이제는 성경과 제법 동떨어져버린 것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 시키려는 잘못된 시도(편견)들 등등... 우리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것들을 신앙이 자라면 자랄수록 더 많이 발견하게 되고, 또 그걸 것들을 내려놓고자 하면서 더욱 신앙이 자라나가는(내 것을 잃으면 더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게 하나님나라의 놀라운 신비라는 거~~
http://podbbang.com/ch/8784?e=22550593
“주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고백과 제자도”
1.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다른 복음서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갈릴리 북쪽 가이사랴 빌립보로 제자들과 함께 수련회를 떠나신 상황에서 일어난 일입니다(마14:13; 막6:14).
* 이곳에서 예수님은 사역의 전반부를 정리하시고, 제자들을 한 단계 up시키시는 중이심.^^
* 예수님 왈,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제자들 왈, “더러는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암튼 선지자 중의 한 분이랍니다.”
* 그러고 보면, 예수님에 대한 당시의 이미지는 결코 부드러운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선지자들은 주로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고, 투쟁하고 약간 기인처럼 살고... 뭐 이런 이미지였으니까요~ (오늘날 대부분의 그림에서 표현하는 양떼들을 먹이는 목자의 이미지와는 쬐끔 먼 듯한...ㅎㅎ)
2.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넹. 메시아, 왕이십니당”^
* 중요한 건, 사람들이 아니라, 너희들이야~~ 너희에게는 내가 누구니?
* 베드로 왈, “하나님의 아들(다른 복음서에서 보충), 그리스도십니다.”
* 베드로는 제자들 사이에서 이미 공유가 된 얘기를 대표로 전하고 있는 거겠죠?^^
* 그리스도(메시아) :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구약의 수많은 예언들을 토대로 누군가가 메시아(기름 부은 왕)로 와서 이스라엘을 이방인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다윗시대의 찬란한 국력과 문화를 회복시키리라는 기대가 굉장히 부풀어 있었습니다. 언제 올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고 이론만 무성했죠.
이런 메시아 대망론은 로마당국으로서는 경계의 대상이었고, 더러는 “내가 메시아다!”라고 외치고 사람들이 그를 따르다가 로마에 의해 처형당하면 흩어지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 : 지금 우리는 예수님은 삼위하나님의 제 2위이신 성자(聖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고 믿고 고백하지만, 이 당시에는 이런 개념은 아직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유일신 하나님만 계셨죠.
베드로가 고백한 ‘하나님의 아들’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왕’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아들)’이라는 표현인 거죠(eg. 삼하7:14, 다윗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 중에 다윗의 자손들을 향해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표현함)
* 정리하면, 베드로의 고백은, “당신은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 살아계신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는 표현입니당~~
* 드디어 메시아운동의 한 복판에 제자들이 뛰어들어 있는 거죠^^ 이건 로마당국이 알면 큰일 날 일. 체제 전복적 위험인물과 운동이 되는 거니까, 예수님 왈, “쉬!.. 조용히! 아직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 이 고백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는 이 당시의 제자들을 넘어서서 “주는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성자)”이심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더 분명한 것을 많이 알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신 교회 공동체의 지체됨과, 지금 이곳에서 누리는 하나님나라(일상생활과 모든 피조물 세계 속에 펼쳐져있는 하나님의 다스리심) 뿐 아니라, 주님 다시 오셔서 완성하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과 믿음 위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붙잡고 고백하며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 이런 분명한 인식과 고백이 있어야 왜곡된 복음의 길, 곧 기독교가 그저 이 세상 행복하게 살고, 맘 편히 사는 데 위로와 도움이 되는 종교 정도로 만족하고 사는 삶을 따라 가지 않고, 메시아시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참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3. 십자가의 죽으심 예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올 것을 촉구하심
* 예수님은 제자들의 고백에 한껏 고무가 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네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뭐 이런 말씀도 하시잖아요?ㅎㅎ)
* 이때부터 예수님은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 가르치시는 거죠.
*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이제 제자들이 준비되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음.
* 메시아로서 당신의 구체적 일정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시기 시작하심
* ‘예루살렘 가서 > 고난 > 죽으심 > 부활’
* & 이런 나의 사역을 따라오려거든....(진정한 생명을 얻으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목숨을 내어놓아야) 따라야한다.
* (마태, 마가에서는 베드로가 “절대 안 됩니다”라고 대들다 엄청 야단맞잖아요? 그런 다음에 하신 말씀이십니다.)
* 베드로와 제자들이 생각하고 꿈꾸던 하나님나라에 대한 생각과 믿음을 철저하게 무너뜨리고, 예수님을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며 그 말씀을 순전하게 믿고 따라야만 하나님나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말씀!
* 베드로와 제자들은 처음보다 더 큰 충격과 더불어 엄청난 도전 앞에 직면하지 않았을까요? “아...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그럴 것이다 믿고 예수님을 따라온 걸 다 버리라고? 그리고 자기는 죽는다고? 이게 하나님나라라고? 이걸 믿으라는 거야?”
(슬프게도 이 결단의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고집하기로 결단한 사람이 바로 가롯유다인 거죠...ㅠㅠ)
*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도 하나님나라의 왕권을 온전히 부여받는 날에 그들을 모른 체 하실 것이라고라고라...ㅠㅠ 후덜덜...
* 예수님의 마무리 말씀은,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에 싸여 왕권을 갖고 오는 것을 너희 중에는 죽기 전에 볼 사람들이 있다.”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 분명히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즉위하는 대관식에 제자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시는 말씀이죠.
* 그 때에 지금 너희가 행한 대로 갚아줄 거야!! (안심하고, 두려워말고 내 말을 믿고 따라오렴.)
* “그러니, 지금 너희가 생각해왔던 메시아에 대한 그림을 버리고 내 얘기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어?”
* 예수님의 마지막 도전, 이제 제자들의 결단이 남았습니다.
* <주의>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올 때~~, 이 말씀은 단7:13,14에 나오는 이미지로서 당시에 매우 잘 알려진 ‘메시아의 왕위 즉위식’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얘기를 듣자말자 재림을 떠올리겠지만, 본문의 문맥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먼저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고(eg. 마28:18 부활하신 예수님 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가 받았다.”), 다음으로 재림에도 적용해서 생각할 수 있는, 둘 다 가능한 얘기로 보여집니다. 부활에 대한 말씀으로 생각해볼 때, 제자들은 다 그 목격자들인 거죠^^
3.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행복한 길^^
* 누구든지 예수님을 처음 만날 때 각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 하지만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나라의 분명한 그림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가면서 자신의 선입견이나 기대치를 내려놓고 말씀이 가르치는 세계관으로 점차 바뀌어져 가는 게 바로 신앙성숙에 있어 매우 중요한 면입니다.
* 무엇보다도 이 시대가 가르치는 “우리 인생은 이래야 행복한 거야.”라는 생각들, 교회 전통 가운데 약간씩 왜곡되다가 이제는 성경과 제법 동떨어져버린 것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 시키려는 잘못된 시도(편견)들 등등... 우리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것들을 신앙이 자라면 자랄수록 더 많이 발견하게 되고, 또 그걸 것들을 내려놓고자 하면서 더욱 신앙이 자라나가는(내 것을 잃으면 더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게 하나님나라의 놀라운 신비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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