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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19년 3월 22(금) 막14:1-9 큐티목소리나눔>“사랑, 그리고 허비함”

<2019년 3월 22(금) 막14:1-9 큐티목소리나눔>
“사랑, 그리고 허비함”

1. 예루살렘의 급박한 분위기, 예수님을 죽이기로 모의하는 대제사장들과 정치지도자들
 * 예수님이 엄청난 지지자들과 더불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셔서 성전청소와 더불어 대제사장 무리들과 논쟁을 벌이신 사건, 공개적인 심판의 선포... 이런 일들을 통해 일종의 혁명의 전조와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 졌고, 그만큼 대제사장들과 정치지도자들이 느끼는 위협도 증가했습니다.
 * 특히나 유월절이 코앞이라...
 * 유월절에는 팔레스틴 뿐 아니라 지중해변 전체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다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고, 자칭 메시아라 하는 사람들도 이 기회를 이용해서 민란을 일으키기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군에서도 특별 경계령이 내려지는 상황. 경비병의 숫자가 평소보다 다섯 배 정도 늘어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 이런 상황 가운데 대제사장들과 정치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종교적, 정치적 블랙리스트 맨위에 올려놓고 제거할 방법들 구체적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 하지만, 시기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바로 유월절 기간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 그들에게서는 “예수=메시아? 설마?”라는 고민의 흔적을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고, 단지 내 앞길에 도움이 되면 삼키고, 방해가 되면 가차 없이 뱉어버리는 약육강식, 적자생존, 무한경쟁의 논리만 존재했으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에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마23:37)라고 탄식하셨던 것처럼 그토록 많은 방법과 기회를 통해서 그들마저도 품고 사랑하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초대하고 도전하셨으니... 에고.. 그 사랑이 정말 헤아릴 수가 없는 거라는....ㅠㅠ

2. 한 여인의 마음에 울림이 있었으니...
 * 예수님 일행이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 잡은 숙소는 성 바깥은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이었고, 그곳에는 문둥병을 앓다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시몬의 집(마26:6, 막14:3)인지, 혹은 죽었다가 예수님이 살려주신 나사로의 집(요12:1)인지 헷갈리는 어떤 집에 머무셨습니다.
 * 그곳에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그녀의 이름은 엄청 많은 마리아 중에 한 명이었는데 누군지는 확실하지 않고, 암튼 ‘마리아’인 것 같구요..)
 *  그동안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또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상황이라...
 * 그녀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임을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이해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 외적인 분위기로 볼 때 뭔가 심상찮은 일이, 그것도 예수님이 위험해지거나 죽게 되는 일이 벌어질 것임을 직감한 겁니다.
* 그녀는 마음에 엄청난 격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별인 거죠... 아... 어떻게 하나? ‘왜?’라는 어려운 질문 이전에, 그녀는 그냥 그분이 떠나신다는 게 가슴에 크게 다가와서 이걸 어떻게? 어떻게? 하는 마음으로 온 종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께 자신이 가진 가장 값비싼 향유(한 번 깨뜨리면 다 써야 하는 엠플 병(옥합)에 든, 일 년 치 노동자 연봉에 맞먹는 고급인데...)를 예수님 머리에 부었습니다.
 * 만약 예수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건 필시 급박하게 체포당하고 심문당하고... 암튼 정신없이 흘러갈 어떤 사건들 틈에서,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별을 위한 시간이 따로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긴박한 마음에, 이 여인은 지금 예수님을 보내드려야 하는 거구나... 가장 거룩하게, 가장 아름답게, 가장 고귀하게 하나님의 아들답게.. 보내드리려면 어떻게 하지?...
 * 그녀는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항상 그에 걸맞은 기름부음이 따라다닌다는 전통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가진 가장 귀한 향유를 부어드리게 된 거죠...

 *** 저는 이 장면을 보라보면 언제나 몇 년 전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면서, 우리 막내딸과 조카가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할머니를 땅에 묻으면서, 손녀들은 할머니가 차가운 흙속에서 얼마나 추울까...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불을 한 장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하관을 하고 흙을 뿌리기 전에 아이들은 할머니 관 위에 이불을 덮어드렸죠...
 사실, 장례절차만으로 본다면, 조금은 어이없는 장면일 수도 있는데... 아무도 그걸 말리지도 않았고, 도리어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와서 같이 오열했더랬습니다....ㅠㅠ

 * 이 여인의 마음... 사랑하는 이를 보내드려야만 한다는 막다른 상황에서 뭐라도 해서 그에 대한 내 사랑과 마음을 표현하고픈 그 내어드림, 허비함이 오히려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는 거죠...

3. 제자들의 합리적인(?), 그러나 무심한 반응. 그리고 예수님, 사랑.
 * 아직도 예수님의 죽으심이 잘 이해되지도 않았고, 가슴으로는 더더구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나머지 제자들...
 *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 합리적으로(?) 분개했는데... “왜 허비하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라도 주지...”
 * 예수님 왈, “놔둬라. 가난한 사람 돕는 거는 언제나 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 이 여인의 마음을 좀 그대로 받아주면 안되겠니? 그녀는 나의 죽음을 예비한 거야”
 * 예수님은 이 여인의 마음을 아셨던 거죠. 사랑은 사랑으로 통한다고...
 * <창끝>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책으로도 나왔구요. 1956년 짐 엘리엇, 네이트 등 다섯 명의 젊은 청년 선교사들이 에콰도르 밀림의 원시부족 아우카족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학교육을 다 마친(그 당시에는 상당한 엘리트였던) 다섯 청년이 원시부족을 전도하다 살해당한 거죠. 그날 에콰도르 신문 헤드라인엔 이런 글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생을 낭비했는지 이해 할 수 없다.”
 * 합리적, 계량적 생각으로만 보면, 사랑은 그냥 낭비요, 허비요, 가장 비효율적인 것에 불과하겠죠...ㅠㅠ
 * 하지만, 우리는 그 다음 차원이 있음을 압니다. 사랑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하며, 계량화 할 수가 있을까요? 걍  다 허비하고 다 내어주고도 더 주고픈 게 사랑인데... 하나님 아버지도, 또 예수님도 당신 자신을 내어 허비하며 나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신 건데...
 * 내 안에, 나를 위해 당신을 기꺼이 허비한 그 사랑으로 인해 깨어난 사랑이 있음을 압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내 안에 새롭게 가득 찬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족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하나님나라를 향한 사랑이 아낌없이 허비하고 내어드리는 가운데 이렇게 깨어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