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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19년 3월 27(수) 막14:22-31 큐티목소리나눔>“성만찬 & 흩어짐과 부인할 것에 대한 예고”

<2019년 3월 27(수) 막14:22-31 큐티목소리나눔>
“성만찬 & 흩어짐과 부인할 것에 대한 예고”

1. 유월절 식사
 * 유대인들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 식사를 매우 특별하게 준비하고 진행합니다.
 * 제사장에게 잡아달라고 부탁한 양고기와 더불어 누룩을 넣지 않은(무교) 빵, 포도주등을 준비한 다음, 빵과 쓴 나물로 만든 소스, 포도주를 먹기 전에 가장이 유월절의 의미,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해내신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것은 우리 조상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먹었던 고난의 빵이다.”
 * 식사 중에는 네 번에 걸쳐서 포도주 잔을 받습니다. 출애굽 때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던 것을 기억하고, 그 때 하나님의 심판이 피를 바른 집을 건너(유월, passover)간 것을 설명합니다.
 * 이 때, “이것은 고난의 빵, 이것은 유월의 피”라고 말하는 것은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매우 뜻 깊은 자유와 해방에 관한 상징인 거죠.^^
 *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서, 과거 출애굽 때처럼 곧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를 진정 해방시켜주실 그날을 고대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는~~
 * 유월절 식사의 마지막은 ‘할렐’이라고 부르는 찬송시(시113-118편)을 노래하는 순서로 이어집니다. 제자들이 숙소인 올리브산으로 돌아가면서 불렀던 노래는 바로 이 할렐이겠죠^^

2. 예수님의 새롭게 하신 유월절
 *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이런 기대가 바로 지금, 이 식사 직후에 있을 당신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시면서 이 유월절 식사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십니다.
 * 지금 제자들은 유월절 식사의 의미와 흐름을 매우 잘 알고, 몸에 이미 베여있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빵을 드시고 설명하실 때, 가장 전통적 멘트를 기대하고 있었을 거란 말이죠. 근데 갑자기, “이건 너희를 위해 내어주는 내 몸!”, 그리고 세 번째 잔쯤 되었을 때 갑자기 “이건 너희를 위해 흘리는 내 피!”라는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 당시에 유대인들은 금욕의 의미에서 “이 서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난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맹세를 자주 했다네요^^ 서원의 맹세형태로 잔의 의미를 강조하신 예수님, 아마 예수님은 마지막 네 번째 잔은 안 마셨을 것 같다는...ㅎㅎ
 * 엥? 이게 뭥미?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라고라고라? 십자가에 죽으신다더니 그게 이런 의미라고? 도대체 뭔 뜻이람?...
 * 우리는 이미 아는 이야기지만, 당시 제자들로서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 해석이었을 거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3. 성찬과 하나님나라
 *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로운 출애굽, “인자가 넘겨지고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을 위한 몸값(대속물)로 내어 줄 것이다”(막10:45)라는 말씀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있는 이 말씀.
 * “하나님나라의 잔치가 벌어질 때까지 이 잔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하나님나라에서 펼쳐지는 무한리필의 포도주 잔치^^를 기대하게 만드시는 새로운 유월절, 성찬의 의미.
 * (사25:6)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 예수님이 내어주신 몸과 흘리신 피로 이미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한 우리들. 그 은혜가 고맙고, 그 풍성한 선물에 기뻐서 감격해하는 성찬.
 *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나라이기에, 여전히 완성될 나라에서 펼쳐질 무한리필 포도주 잔치를 사모하고 있음을 기억하는 성찬.
 * 유대교의 전통과 문화에 따라 초대교회는 매주일 예배와 더불어 식탁에서 이 성찬을 행하였다는 사실!!
 * 이미 특별한 절기예배 때 하나의 예식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성찬식”에서 뭔가 빠져있는 것 같은 문화적 요소와 의미를 더 깊고 생생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까요?
 * 예배 인도자로서의 고민이 더욱 깊어져가는 아침입니다.
 * 날마다 하루 세끼 식사자리에서 만나는 성찬, 공동체의 삭탁 교제에서 만나는 성찬, 예배 중에 특별히 함께 동참하는 “의식(예전)”으로서의 성찬.... 암튼, 우리가 먹고 마시는 그 어디에서나 주님의 성찬이 지니는 다양한 의미, 그 한 자락을 알아차리고 감격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소망해봅니다.

4. 예수님은 제자들이 오늘밤 당신을 떠나 흩어질 거라고 말씀하시는데...
 * 숙소(올리브산-감람산)에 도착하자말자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심.
 * 그것도 성경을 인용하시면서.. 슥13:7.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떼가 흩어질 것이다” -- 원래 문맥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모습을 그린 건데... 예수님은 이걸 여기다 적용하시다니...ㅠㅠ
 *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까닭은? : “내가 살아난 다음 갈릴리로 먼저 갈 것이니, 잊지 말고 거기로 와라!!”는 다음 약속을 잡으시기 위함이라는~~^^
 * 원래, 전쟁 영화 같은 거 보면, 특공작전 개시하면서 탈출 시각과 집합장소 확인하듯이ㅋㅋ
 * 사실, 예수님이 아무리 구체적 일정을 얘기해도, 제자들이 아무도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을 잡지 못한 상태라, 이렇게 다음 일정을 잡아둬야 했는데...

5. 급 당황하는 제자들, 모두가 다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하는데...
 * 근데, 다음 일정이라는 게 다름 아닌, 동지들이 자신을 배신할 거라는 얘기라,,, 엄청 당황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 급 당황하는 제자들, 모두가 다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하는데...
 * 그 중에 베드로가 리더답게 제일 큰 목소리로. 그것도 다른 사람들을 엮어 넣고서, 난 절대로...라고 선언합니다.
 * 여기에 예수님은 그 유명한 말씀,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라는 예고를 하시죠.
 * 하지만,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은 끝까지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뢰를 다짐합니다.
 
6. 제자의 길, 그 현실과 예수님의 도우심
 *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모두가 예수님 곁을 떠났고, 끝까지 따라간 베드로는 세 번 부인하는 일도 벌어지는데...
 * 제자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 예수님을 좇아가는 삶을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베드로와 같은 경험을 수도 없이 해오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 부분에 이르면 우리는 베드로가 너무, 잘, 깊이 공감되고 다가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과 우리들의 모습과 내면을 너무 잘 아시기에, 야단치지도 않으시고, 실망감을 표현하지도 않으시고, 그저 담담하게 그럴 거라고 예측해주시고, 그럴 때, 다시 갈릴리로 와서 나를 만나라고... 그러면 된다고... 얘기해주시는데...
 * 이게 참.... 가슴에 아련하게 울려옵니다.
 * 베드로... 강하게 확신하는 만큼이나 너무 어이없게 예수님을 부인하고 마는 그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게 되고, 통곡하고, 용기를 내어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과정, 그 마음에 깊이 남아있는 죄책감과 부끄러움마저도 예수님이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장면에서 풀어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힘을 얻고, 끝까지 주님의 제자답게 살아간 사람.
 *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제자의 길에 그의 이야기도 오버랩되어 있음을 봅니다. 또한 그 순간순간마다 예고해주시기도 하고, 또 실패의 자리에서 떠오는 말씀이 되기시고 하고, 닭이 울던 순간 베드로는 바라보시던 눈길로 다가오시시기도 했으며, 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다시 추슬러주시기도 했던 예수님의 손길이 깊이 베어있는 게 바로 지금까지 살아온 나 자신의 삶이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 비록 앞으로 남은 길 동안에도 넘어짐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점점 그 빈도가 줄어들고, 그 강도가 약해지며, 실패를 알아차리고 일어서는 주기가 짧아지는.. 그래서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그 깊이가 깊어지는 삶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 오직 예수님의 이끄심과 품어주심으로 그 길을 가고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구요...
 * 그러면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예견된 실패의 길을 걸어갈지라도, 채근하거나 닦달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조금 여유를 갖고 바라보며, 조언할지라도 실패의 길 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자유를 존중해줄 줄 아는, 예수님 같은 넉넉한 마음을 배워가는 거죠.
 * 암튼 예수님의 챙겨주심이 아니면 우리는 이 길을 온전하게 한발짝도 걸어갈 수 없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