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9월19일(목) 롬5:1-11 큐티목소리나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 2,3,4장에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 이스라엘이 받은 율법은 산한 것임에도불구하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지 못했다는 것,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를 보내셨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이 죄를 잊어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주셨고,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아주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 누리게 된 하나님과의 평화가 대체 무엇일까? 어제 마지막에 잠깐 묵상한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보다 깊이 묵상해보겠습니다.
1.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 사춘기 시절, 부모님과 갈등을 겪으면 보통 ‘가출’이라는 걸 하고싶어집니다. 어떤 이들은 실제로 감행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하루 잠깐 어디 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가기도 하죠. 장시간 갈등 중일 때는 집에 정말 들어가기 싫은 마음으로 이리저리 배회하게 됩니다.
* 뭐, 결혼하고서 배우자와 싸워도 비슷한 마음을 겪죠.
* 근데, 우리가 우리를 지으시고, 세상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과 불화하고 있을 때는 어떨까요?
* 사람들 마음에 근본적으로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아담과 하와가 동산 숲에 숨은 것처럼(창3장), 신의 낯을 피하려고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다 합니다. 왜냐면 신은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해코지하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니까요. 원시시대에는 이런 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인신공양도 했고, 요즘도 어른들 중에는 이사 갈 때, 이른바 ‘손 없는 날’을 택합니다. 날짜에 따라 신은 동서남북을 다니는데, 신이 북쪽으고 가는 날은 다른 쪽에서 우리가 하고싶은 일을 보면 되는 거죠. 또 어떤 날은 신이 아예 쉬는 날이 있는데 이 날은 어느 곳에서든 무슨 짓을 해도 신이 해코지하지 않는다는 거죠.
* 이런 생각들 뒷면에는 신에 대한 거북한 인간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른바 신과 불화한 인간 모습이죠.
*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이런 거북한 마음을 내려놓고 신을 편하게 만나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 신이 어떤 무명신이 아니라, 야훼(여호와) 하나님으로 아주 구체적인 인격젹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고 누리게 된 겁니다. 그의 얼굴을 마주보고, 손도 잡고, 같이 산책도 하고, 알콩달콩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말씀!
* 이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하여간 인생 전체를 혼자 결정해야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가장 잘 알고 지지해주는 그분과 함께 인생을 걸어갈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자신감!
* 또한, 인생 살면서 내 목숨줄 좌우하는 게 직장 상사라든지, 누구누구라든지 뭐 그런 게 아니라, 오직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내 인생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이 생기면, 그 누구,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이 찾아온다는 것. 그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요?
2. 어려움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이 평화의 힘!
* 근데, 인생 살다보면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일들이 널렸잖아요?
* 이럴 때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 하나님과 누리는 평화가 무슨 힘이 되냐구요?
* 우리 하나님과 함께 이 힘든 인생 터널을 통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떤 때는 하나님이 직권적으로 도와주셔서 그 힘든 상황이 일시에 바뀌기도 합니다. 올레!! 하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이 묵묵히 내 옆에서 그 길을 같이 인내하며 걸어주십니다.
* 같이 걸으시면서 하나님은 아직 모든 우주 만물들이, 특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하지 않은 상황에서 악한 일, 왜곡된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을, 마지막 날이 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견뎌야하는 일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도 지금 같이 신음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견디며(인내하며) 고된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은 어떻게 이 불의한 현실을, 기막히고 답답한 현실을 참아내시는지 배우게 되고, 그 사이에 우리 인격이 주님을 점점 닮아가게 되는 겁니다. 또한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그 소망, 모든 우주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하고 정의롭게 되고, 평화를 누리게 되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는 소망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 또한 나를 힘들게 하는 그노무시키마저도 그가 원래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하게 되면 어떤 모습인지를 알기 때문에 그를 대하는 내 마음에 분노나, 불안, 불평 대신에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를 받아줄 수 있는 일도 생기게 되는 겁니다.
3. 예수님이 그러셨으니..
* 심지어 내가 불의할 때, 내가 그노무시키 같았을 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알기에,
* 또한, 나와 그가 모두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현재의 고통과 고난, 괴로움을 넉넉하게 견디고, 이겨나갈 수 있게 되는 거죠.
* "평화를 네게 준다. 이 평화는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참된 평화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요14:2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6:33)
아멘!!
“하나님과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 2,3,4장에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 이스라엘이 받은 율법은 산한 것임에도불구하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지 못했다는 것,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를 보내셨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이 죄를 잊어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주셨고,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아주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 누리게 된 하나님과의 평화가 대체 무엇일까? 어제 마지막에 잠깐 묵상한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보다 깊이 묵상해보겠습니다.
1.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 사춘기 시절, 부모님과 갈등을 겪으면 보통 ‘가출’이라는 걸 하고싶어집니다. 어떤 이들은 실제로 감행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하루 잠깐 어디 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가기도 하죠. 장시간 갈등 중일 때는 집에 정말 들어가기 싫은 마음으로 이리저리 배회하게 됩니다.
* 뭐, 결혼하고서 배우자와 싸워도 비슷한 마음을 겪죠.
* 근데, 우리가 우리를 지으시고, 세상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과 불화하고 있을 때는 어떨까요?
* 사람들 마음에 근본적으로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아담과 하와가 동산 숲에 숨은 것처럼(창3장), 신의 낯을 피하려고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다 합니다. 왜냐면 신은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해코지하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니까요. 원시시대에는 이런 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인신공양도 했고, 요즘도 어른들 중에는 이사 갈 때, 이른바 ‘손 없는 날’을 택합니다. 날짜에 따라 신은 동서남북을 다니는데, 신이 북쪽으고 가는 날은 다른 쪽에서 우리가 하고싶은 일을 보면 되는 거죠. 또 어떤 날은 신이 아예 쉬는 날이 있는데 이 날은 어느 곳에서든 무슨 짓을 해도 신이 해코지하지 않는다는 거죠.
* 이런 생각들 뒷면에는 신에 대한 거북한 인간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른바 신과 불화한 인간 모습이죠.
*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이런 거북한 마음을 내려놓고 신을 편하게 만나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 신이 어떤 무명신이 아니라, 야훼(여호와) 하나님으로 아주 구체적인 인격젹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고 누리게 된 겁니다. 그의 얼굴을 마주보고, 손도 잡고, 같이 산책도 하고, 알콩달콩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말씀!
* 이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하여간 인생 전체를 혼자 결정해야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가장 잘 알고 지지해주는 그분과 함께 인생을 걸어갈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자신감!
* 또한, 인생 살면서 내 목숨줄 좌우하는 게 직장 상사라든지, 누구누구라든지 뭐 그런 게 아니라, 오직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내 인생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이 생기면, 그 누구,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이 찾아온다는 것. 그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요?
2. 어려움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이 평화의 힘!
* 근데, 인생 살다보면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일들이 널렸잖아요?
* 이럴 때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 하나님과 누리는 평화가 무슨 힘이 되냐구요?
* 우리 하나님과 함께 이 힘든 인생 터널을 통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떤 때는 하나님이 직권적으로 도와주셔서 그 힘든 상황이 일시에 바뀌기도 합니다. 올레!! 하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이 묵묵히 내 옆에서 그 길을 같이 인내하며 걸어주십니다.
* 같이 걸으시면서 하나님은 아직 모든 우주 만물들이, 특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하지 않은 상황에서 악한 일, 왜곡된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을, 마지막 날이 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견뎌야하는 일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도 지금 같이 신음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견디며(인내하며) 고된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은 어떻게 이 불의한 현실을, 기막히고 답답한 현실을 참아내시는지 배우게 되고, 그 사이에 우리 인격이 주님을 점점 닮아가게 되는 겁니다. 또한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그 소망, 모든 우주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하고 정의롭게 되고, 평화를 누리게 되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는 소망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 또한 나를 힘들게 하는 그노무시키마저도 그가 원래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하게 되면 어떤 모습인지를 알기 때문에 그를 대하는 내 마음에 분노나, 불안, 불평 대신에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를 받아줄 수 있는 일도 생기게 되는 겁니다.
3. 예수님이 그러셨으니..
* 심지어 내가 불의할 때, 내가 그노무시키 같았을 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알기에,
* 또한, 나와 그가 모두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현재의 고통과 고난, 괴로움을 넉넉하게 견디고, 이겨나갈 수 있게 되는 거죠.
* "평화를 네게 준다. 이 평화는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참된 평화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요14:2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6:3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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