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9월17일(화) 롬4:1-12 큐티목소리나눔>
“하나님을 믿으니 이를 의로 여기셨다”
1. 유대인들의 질문
*** 아브라함은 당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법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합니다.
“메시아가 왔고, 그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의로우심을 얻은 이방사람들과 기존의 유대인들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 “바울이 이야기하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기존의 유대교를 더욱 확충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이스라엘에 들어온 사람들이고, 구약의 모든 율법을 지켜야하는 게 아닐까?”
* 이런 질문은 바울의 선교사역 내내 따라다닌 것들입니다. 심지어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가르치고 떠나고 나면,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뒤따라 와서 그들이 할례를 행해야한다고, 그래야 유대인 속에 들어올 수 있다고 주장하여 교회를 어지럽히곤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논박입니다.
* 이런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아니다! 결코 다시 유대교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입니다. 그렇다고 유대인이 하나님이 선택을 받은 것마저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 상황을 4장에서 ‘믿음’이라는 것에 근거해서 합리적으로 설명합니다. 더 자세한 논쟁은 9,10장에서 이어집니다.
* 논쟁점을 제시한 것은 3:27부터입니다.
2. 롬3:27~31. 모든 사람의 하나님.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움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다. 믿음으로 된다.
* 그럼, 율법을 지킬 필요는 없나?
* 아니다. 믿음으로 율법은 더욱 온전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지키고 따를 수 있는 게 율법이기 때문이다.
* 그럼, 유대인은 그것도 모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이라고 깝죽대고 그러는 것이네?
* 맞다. 실은 하나님은 유대사람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 그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유대인의 조상으로 삼고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구약이 이야기는 뭐냐? 그거 유대인들의 특권을 주장하는 전매특허인데?
* 갸들은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아브라함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면 하나님이 유대인 뿐아니라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다. 내 이야기 잘 들어봐라.
3.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기신 시점이 중요하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뤄주겠다는 약속(구약 용어로 ‘언약’)을 하시고, 그 증표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자세히 보면 말이다.
*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었어. 그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올 때 조카 롯을 양자로 삼아 데려왔는데, 그녀석이 그만 자기 좋은 곳을 택해서 아브라함을 떠나버렸지. 그 뒤에 롯이 포로로 잡혀가는 어려움이 생기자 아브라함이 가서 구해주었어. 근데 그 녀석은 또 떠났지. 아브라함은 무척 외로웠어.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며 주절주절 했지. 대체 내게 약속한 아들은 언제 줄 거냐고. 이제 내 죽고 나면 저 다마서크스에서 온 종놈이 내 재산 다 갖고 가게 생겼다고.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야기하시길, 믿고 기다려봐라. 내가 꼭 아들 준다. 그랬어. 그 말을 아브라함이 굳게 믿은 거야. 불만을 싹 정리하고 툴툴 털고 일어선 거지.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 넘 멋있었던 거야. 성경 포현대로 하면 “아브람(이때는 아직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기 전이쥐)이 하나님을 믿으니 주께서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창15:6)라는 말이야.
* 그러고 나서 한 참 뒤에 여전히 아들이 안 태어나니, 아브라함은 여종 하갈을 씨받이로 삼아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어. 자기 꾀를 낸 거지. 그러고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어. 하나님이 좀 마음이 상하셨지. 직접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어. “너 고따구로(그따위로) 할래? 나에 대한 믿음은 어디로 갔어? 내가 아들 준다고 했냐고 안 했냐고. 내게 대한 믿음을 드러낼 증표를 좀 보여봐라. 이스마엘과 남자들 다 델꼬와서 내 앞에서 할례를 시행해라.” 그러셨어.
* 아브라함은 당장 할례를 행했지. 자기 믿음을 다시 회복한 거야.(창17장)
* 자! 이제 정리해보자.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하나님이 인정하신 시점이 언제지? 할례를 행하기 훨씬 전이잖아? 그때 이미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았고, 그와 하나님은 큰 민족을 이뤄줄 것에 대한 약속을 체결하셨단 말이야. 할례는 나중에 그 믿음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행한 거지.
* 이스라엘이 받은 율법이란 게 이런 거야. 하나님이 먼저 믿음을 보고 의롭다고 하시고, 그 뒤에 그 믿음을 따라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게 율법을 따라 사는 거란 말이쥐.
* 이스라엘 민족으로 태어나서 율법을 따랐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는 게 아니란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육체적으로 이스라엘로 태어난 게 중요한 게 아냐. 이스라엘 중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말짱 꽝!! 이방인들 중에서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면 그도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어, 택함을 받은 족속, 민족, 가족 뭐 그런 게 된다는 말씀!! 이상 끝!
*** ㅎㅎㅎ. 사실 지금 우리들에겐 이런 논리적 싸움이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은 이야기인데요...
* 하지만, 바울 당시에는 엄청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 한 가지 마음에 다가오는 건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데는 모든 사람이 차별이 없다는 거죠. 인종, 학력 등등 사회적 배경과 상관없이 다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 가족이 된다는 겁니다.
* 이게 이렇게 말하긴 쉬워도, 실제로 살다보면 교회 안에 여전히 여러 가지 차별이 존재하는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미국 남부 지역의 교회들에서는 흑백인종차별이 심각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시각이 곱지많은 않고, 교회 안에서 직업, 학력, 지역, 남녀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고...
* 내 마음도 그래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가만 묵상할 때야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자녀로 믿음 안에서 동등하다는 걸 쉽게 동의하지만, 막상 구체적 상황을 만나면 내 속에 감춰진 차별의식이 튀어나오는 걸 경험한단 말예요. 그걸 얼마나 잘 알아차려서 걸러내는가가 실천적 숙제인 거고, 성숙의 길인 거죠.
* 또 하나 느껴지는 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걸 의롭다고 여겨주신 하나님이 참 고맙게 다가오네요. 믿고서 얼마 뒤에 다시 실패하지만, 다시 믿음의 행동(할례)을 촉구하면서까지 챙겨주시는 하나님. 비록 내가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다가 몇몇 실수하고 실패하는 순간이 있어도 근본적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이 답답해서라도 다가와 촉구하시고 바로잡아주신다는 이 끈끈함이 있어서 좋네요.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되구요.
* 특히나, 내가 의롭다함을 받은 게 내가 뭘 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선물로 받은 것임을 알게 되면 될 수록 더더욱 인생살이 가운데 실패나 실수의 현장에서 다시 일어서기가 쉽고, 툴툴 털고서 다시는 그 실패의 길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새길 갈 수 있는 용기도 생기는 거죠.
* 이 부분은 내일 좀 더 깊게 묵상을 해보겠습니당~~
“하나님을 믿으니 이를 의로 여기셨다”
1. 유대인들의 질문
*** 아브라함은 당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법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합니다.
“메시아가 왔고, 그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의로우심을 얻은 이방사람들과 기존의 유대인들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 “바울이 이야기하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기존의 유대교를 더욱 확충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이스라엘에 들어온 사람들이고, 구약의 모든 율법을 지켜야하는 게 아닐까?”
* 이런 질문은 바울의 선교사역 내내 따라다닌 것들입니다. 심지어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가르치고 떠나고 나면,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뒤따라 와서 그들이 할례를 행해야한다고, 그래야 유대인 속에 들어올 수 있다고 주장하여 교회를 어지럽히곤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논박입니다.
* 이런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아니다! 결코 다시 유대교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입니다. 그렇다고 유대인이 하나님이 선택을 받은 것마저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 상황을 4장에서 ‘믿음’이라는 것에 근거해서 합리적으로 설명합니다. 더 자세한 논쟁은 9,10장에서 이어집니다.
* 논쟁점을 제시한 것은 3:27부터입니다.
2. 롬3:27~31. 모든 사람의 하나님.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움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다. 믿음으로 된다.
* 그럼, 율법을 지킬 필요는 없나?
* 아니다. 믿음으로 율법은 더욱 온전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지키고 따를 수 있는 게 율법이기 때문이다.
* 그럼, 유대인은 그것도 모르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이라고 깝죽대고 그러는 것이네?
* 맞다. 실은 하나님은 유대사람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 그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유대인의 조상으로 삼고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구약이 이야기는 뭐냐? 그거 유대인들의 특권을 주장하는 전매특허인데?
* 갸들은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아브라함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면 하나님이 유대인 뿐아니라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다. 내 이야기 잘 들어봐라.
3.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기신 시점이 중요하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뤄주겠다는 약속(구약 용어로 ‘언약’)을 하시고, 그 증표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자세히 보면 말이다.
*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었어. 그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올 때 조카 롯을 양자로 삼아 데려왔는데, 그녀석이 그만 자기 좋은 곳을 택해서 아브라함을 떠나버렸지. 그 뒤에 롯이 포로로 잡혀가는 어려움이 생기자 아브라함이 가서 구해주었어. 근데 그 녀석은 또 떠났지. 아브라함은 무척 외로웠어.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며 주절주절 했지. 대체 내게 약속한 아들은 언제 줄 거냐고. 이제 내 죽고 나면 저 다마서크스에서 온 종놈이 내 재산 다 갖고 가게 생겼다고.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야기하시길, 믿고 기다려봐라. 내가 꼭 아들 준다. 그랬어. 그 말을 아브라함이 굳게 믿은 거야. 불만을 싹 정리하고 툴툴 털고 일어선 거지.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 넘 멋있었던 거야. 성경 포현대로 하면 “아브람(이때는 아직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기 전이쥐)이 하나님을 믿으니 주께서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창15:6)라는 말이야.
* 그러고 나서 한 참 뒤에 여전히 아들이 안 태어나니, 아브라함은 여종 하갈을 씨받이로 삼아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어. 자기 꾀를 낸 거지. 그러고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어. 하나님이 좀 마음이 상하셨지. 직접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어. “너 고따구로(그따위로) 할래? 나에 대한 믿음은 어디로 갔어? 내가 아들 준다고 했냐고 안 했냐고. 내게 대한 믿음을 드러낼 증표를 좀 보여봐라. 이스마엘과 남자들 다 델꼬와서 내 앞에서 할례를 시행해라.” 그러셨어.
* 아브라함은 당장 할례를 행했지. 자기 믿음을 다시 회복한 거야.(창17장)
* 자! 이제 정리해보자.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하나님이 인정하신 시점이 언제지? 할례를 행하기 훨씬 전이잖아? 그때 이미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았고, 그와 하나님은 큰 민족을 이뤄줄 것에 대한 약속을 체결하셨단 말이야. 할례는 나중에 그 믿음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행한 거지.
* 이스라엘이 받은 율법이란 게 이런 거야. 하나님이 먼저 믿음을 보고 의롭다고 하시고, 그 뒤에 그 믿음을 따라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게 율법을 따라 사는 거란 말이쥐.
* 이스라엘 민족으로 태어나서 율법을 따랐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는 게 아니란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육체적으로 이스라엘로 태어난 게 중요한 게 아냐. 이스라엘 중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말짱 꽝!! 이방인들 중에서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면 그도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어, 택함을 받은 족속, 민족, 가족 뭐 그런 게 된다는 말씀!! 이상 끝!
*** ㅎㅎㅎ. 사실 지금 우리들에겐 이런 논리적 싸움이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은 이야기인데요...
* 하지만, 바울 당시에는 엄청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 한 가지 마음에 다가오는 건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데는 모든 사람이 차별이 없다는 거죠. 인종, 학력 등등 사회적 배경과 상관없이 다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 가족이 된다는 겁니다.
* 이게 이렇게 말하긴 쉬워도, 실제로 살다보면 교회 안에 여전히 여러 가지 차별이 존재하는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미국 남부 지역의 교회들에서는 흑백인종차별이 심각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시각이 곱지많은 않고, 교회 안에서 직업, 학력, 지역, 남녀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고...
* 내 마음도 그래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가만 묵상할 때야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자녀로 믿음 안에서 동등하다는 걸 쉽게 동의하지만, 막상 구체적 상황을 만나면 내 속에 감춰진 차별의식이 튀어나오는 걸 경험한단 말예요. 그걸 얼마나 잘 알아차려서 걸러내는가가 실천적 숙제인 거고, 성숙의 길인 거죠.
* 또 하나 느껴지는 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걸 의롭다고 여겨주신 하나님이 참 고맙게 다가오네요. 믿고서 얼마 뒤에 다시 실패하지만, 다시 믿음의 행동(할례)을 촉구하면서까지 챙겨주시는 하나님. 비록 내가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다가 몇몇 실수하고 실패하는 순간이 있어도 근본적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이 답답해서라도 다가와 촉구하시고 바로잡아주신다는 이 끈끈함이 있어서 좋네요.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되구요.
* 특히나, 내가 의롭다함을 받은 게 내가 뭘 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선물로 받은 것임을 알게 되면 될 수록 더더욱 인생살이 가운데 실패나 실수의 현장에서 다시 일어서기가 쉽고, 툴툴 털고서 다시는 그 실패의 길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새길 갈 수 있는 용기도 생기는 거죠.
* 이 부분은 내일 좀 더 깊게 묵상을 해보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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