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10월02일(수) 롬8:18-30 큐티목소리나눔>
“모든 피조물도 신음하는 현실, 삼위하나님과 더불어 너끈히~!!”
1. 모든 피조물도 신음하고 고통 하는 현실을 살아가면서(v18-25)
* 바울은 v17에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놀라운 선언을 하였습니다. 근데 그 뉘앙스에서 뭔가가 결이 다른 게 살짝 끼어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이라는 구절이 끼어있는 거죠.
* 음... 고난이라..
*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이고 상속자라 하더라도 현실을 살아가는 데는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건데요.. 왜, 대체 뭣 땜에 이런 고통이 내게 찾아오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훨씬 많은, 그런 고통을 우리는 겪으며 살고 있다는 말씀.
* 신학적으로 정리하면, 우리는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나라를 살아가고 있어서, 여전히 악이 소멸되지 않고 힘을 꽤나 발휘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걸 견뎌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죠.
*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냐면, 모든 피조물도 다 신음하며 고통 하는 중이라는 겁니다. 단지 나만이 아니라... 그렇죠. 불치병에 걸려 고통 하는 것도 피조세계가 하나님 만드신 원래의 질서가 왜곡되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죠. 쓰나미가 일어나고 태풍이 몰아치고, 대형 산불이 일어나는 것도 자연 질서가 왜곡되어 일어나는, 자연도 신음하는 일이라는 거죠.
* 그러고 보니, 내가 이해할 수 없어서, “왜 하나님은 나만 미워하십니까?”라고 울부짖었던 수많은 고통들이 모든 피조세계 전체가 고통하고 신음하는 일 들 중에 하나일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원망이 거둬들여지는 겁니다. 이해가 되는 거죠.
* 한편, 저는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혹시 동성애적 성향 같은 것도 이렇게 자연질서가 왜곡되어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분명 남, 녀를 나눠서 창조하셨건만, 가만 보면, 어떤 경우는 개인 혹은 문화가 그 성향을 더 강화시키는 듯 한 면도 있긴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이끌리는 성향’이라는 거잖아요? 결국 모든 피조물도 신음하고 고통 하는 피조세계 전체의 비뚤어지고 왜곡된 그 고통을 우리들 중에 누군가가 겪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망구 내 생각이긴 합니다만, 저는 이 구절을 만나면 이해되지 않는 수많은 고통스런 현실들이 다 이속에 포함되어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밀예요. 그러고 나면 ‘아.. 하나님도 이 상황이 얼마나 아프고 힘드실까?’ 이런 생각도 들구요. 당근, 동성애적 성향으로 고통 하는 이들에게 그냥 맘 놓고 정죄하는 일들은 못할 것 같단 말이죠. 아니, 해서는 안 되는 거죠.
** 아무튼, 우리 현실은 모든 피조물도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를 기다리듯,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길 간절히 고대하는 수밖에 없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 같네요...
2.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나니..(v26-27)
* 근데, 하나님은 이렇게 고통 하고 신음하는 현실을 우리 혼자 살아가라고 고아처럼 버려주시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이게 놀랍고 아름답고 감사한 일인 겁니다.
*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 없이 이런 현실을 살아간다면, 그는 정말 홀로 이 모든 고통을 다 받아내고 견뎌야 하는데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이 상황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 바로, 보혜사, 성령께서 이 모든 상황에 우리와 함께 견디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격려하시고, 또 정말 지치고 낙심이 되어 기도할 힘조차 없을 때,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대신 기도도 해주시고(우리의 신음소리를 기도로 바꿔주시고-the Message)... 그런단 말이죠.
* 하나님은 성령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니까(당근! 삼위하나님 중 한 분이시니까^^), 또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너무 잘 아니시니까, 성령은 또 우리를 너무 잘 아시니까. 성령이 드리는 기도는 너무나 찰떡궁합이라. 하나님이 안 들어주실 수 없는 겁니다. 아멘!!!
*** 이 사실을 내 마음에 딱 새기고 있으면, 그 어떤 환란을 만나든, 고통 속에 던져지든, 절망으로부터 일어날 용기가 생기기 않을까요?
* 또 어쩌다 내 마음이 사막처럼 매마른 상황을 만나더라도, 성령님 믿고 그냥 그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견디다보면 어느새 촉촉한 마음으로 되돌아 와있기도 하겠죠? ㅎㅎ
3.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합해서 가장 선한 결과를 이루신다(v28-30)
* 우리 눈앞에서 곧바로 상황이 회복되거나 변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성령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상황을 다 합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십니다.
*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신이 사실 일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그분 아들의 삼을 본떠 빚으시려고 결정해두셨습니다(예정). 그분의 아들은 그분께서 회복시키신 인류의 맨 앞줄에 서계십니다. 그분을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 삶이 본래 어떤 모습이었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그분의 자녀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결정하신 뒤에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부르심). 이름을 부르신 뒤에슨 그들을 그분 앞에 굳게 세워주셨습니다(의롭다 하심. 칭의). 또한 그들을 굳데 세워시신 뒤에는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하시며 그분이 시작하신 일을 영광스럽게 완성시켜 주셨습니다(영화). -v29~30, The Message-
*** 이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또 어떤 상황인들 참지 못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 그러니, 주님과 함께 이런 하나님을 딱 믿고, 성령이 주시는 힘을 받아서, 넉넉하게 우리 삶을 견뎌내어 봅시다. 우리에겐 위대한 하나님나라의 상속자라는 소망이 있으니까요. 때론 소낙비와 태풍 속이라도 견디기로 마음만 먹으면 너끈히 견딜 수 있잖아요. ㅎㅎ
“모든 피조물도 신음하는 현실, 삼위하나님과 더불어 너끈히~!!”
1. 모든 피조물도 신음하고 고통 하는 현실을 살아가면서(v18-25)
* 바울은 v17에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놀라운 선언을 하였습니다. 근데 그 뉘앙스에서 뭔가가 결이 다른 게 살짝 끼어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이라는 구절이 끼어있는 거죠.
* 음... 고난이라..
*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이고 상속자라 하더라도 현실을 살아가는 데는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건데요.. 왜, 대체 뭣 땜에 이런 고통이 내게 찾아오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훨씬 많은, 그런 고통을 우리는 겪으며 살고 있다는 말씀.
* 신학적으로 정리하면, 우리는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나라를 살아가고 있어서, 여전히 악이 소멸되지 않고 힘을 꽤나 발휘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걸 견뎌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죠.
*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냐면, 모든 피조물도 다 신음하며 고통 하는 중이라는 겁니다. 단지 나만이 아니라... 그렇죠. 불치병에 걸려 고통 하는 것도 피조세계가 하나님 만드신 원래의 질서가 왜곡되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죠. 쓰나미가 일어나고 태풍이 몰아치고, 대형 산불이 일어나는 것도 자연 질서가 왜곡되어 일어나는, 자연도 신음하는 일이라는 거죠.
* 그러고 보니, 내가 이해할 수 없어서, “왜 하나님은 나만 미워하십니까?”라고 울부짖었던 수많은 고통들이 모든 피조세계 전체가 고통하고 신음하는 일 들 중에 하나일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원망이 거둬들여지는 겁니다. 이해가 되는 거죠.
* 한편, 저는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혹시 동성애적 성향 같은 것도 이렇게 자연질서가 왜곡되어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분명 남, 녀를 나눠서 창조하셨건만, 가만 보면, 어떤 경우는 개인 혹은 문화가 그 성향을 더 강화시키는 듯 한 면도 있긴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이끌리는 성향’이라는 거잖아요? 결국 모든 피조물도 신음하고 고통 하는 피조세계 전체의 비뚤어지고 왜곡된 그 고통을 우리들 중에 누군가가 겪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망구 내 생각이긴 합니다만, 저는 이 구절을 만나면 이해되지 않는 수많은 고통스런 현실들이 다 이속에 포함되어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밀예요. 그러고 나면 ‘아.. 하나님도 이 상황이 얼마나 아프고 힘드실까?’ 이런 생각도 들구요. 당근, 동성애적 성향으로 고통 하는 이들에게 그냥 맘 놓고 정죄하는 일들은 못할 것 같단 말이죠. 아니, 해서는 안 되는 거죠.
** 아무튼, 우리 현실은 모든 피조물도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를 기다리듯,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길 간절히 고대하는 수밖에 없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 같네요...
2.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나니..(v26-27)
* 근데, 하나님은 이렇게 고통 하고 신음하는 현실을 우리 혼자 살아가라고 고아처럼 버려주시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이게 놀랍고 아름답고 감사한 일인 겁니다.
*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 없이 이런 현실을 살아간다면, 그는 정말 홀로 이 모든 고통을 다 받아내고 견뎌야 하는데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이 상황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 바로, 보혜사, 성령께서 이 모든 상황에 우리와 함께 견디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격려하시고, 또 정말 지치고 낙심이 되어 기도할 힘조차 없을 때,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대신 기도도 해주시고(우리의 신음소리를 기도로 바꿔주시고-the Message)... 그런단 말이죠.
* 하나님은 성령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니까(당근! 삼위하나님 중 한 분이시니까^^), 또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너무 잘 아니시니까, 성령은 또 우리를 너무 잘 아시니까. 성령이 드리는 기도는 너무나 찰떡궁합이라. 하나님이 안 들어주실 수 없는 겁니다. 아멘!!!
*** 이 사실을 내 마음에 딱 새기고 있으면, 그 어떤 환란을 만나든, 고통 속에 던져지든, 절망으로부터 일어날 용기가 생기기 않을까요?
* 또 어쩌다 내 마음이 사막처럼 매마른 상황을 만나더라도, 성령님 믿고 그냥 그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견디다보면 어느새 촉촉한 마음으로 되돌아 와있기도 하겠죠? ㅎㅎ
3.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합해서 가장 선한 결과를 이루신다(v28-30)
* 우리 눈앞에서 곧바로 상황이 회복되거나 변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성령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상황을 다 합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십니다.
*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신이 사실 일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그분 아들의 삼을 본떠 빚으시려고 결정해두셨습니다(예정). 그분의 아들은 그분께서 회복시키신 인류의 맨 앞줄에 서계십니다. 그분을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 삶이 본래 어떤 모습이었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그분의 자녀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결정하신 뒤에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부르심). 이름을 부르신 뒤에슨 그들을 그분 앞에 굳게 세워주셨습니다(의롭다 하심. 칭의). 또한 그들을 굳데 세워시신 뒤에는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하시며 그분이 시작하신 일을 영광스럽게 완성시켜 주셨습니다(영화). -v29~30, The Message-
*** 이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또 어떤 상황인들 참지 못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 그러니, 주님과 함께 이런 하나님을 딱 믿고, 성령이 주시는 힘을 받아서, 넉넉하게 우리 삶을 견뎌내어 봅시다. 우리에겐 위대한 하나님나라의 상속자라는 소망이 있으니까요. 때론 소낙비와 태풍 속이라도 견디기로 마음만 먹으면 너끈히 견딜 수 있잖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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