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9월27일(금) 롬8:1-11 큐티목소리나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결코 정죄를 받지 않는다.(v1)
* 앞서 7장에서 바울은 율법의 요구대로 열심히, 성실히, 착하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겪는 내적 갈등에 대해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했습니다.
* 결론은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구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줄 이 없습니까?”라는 탄식이었습니다.
* 그리고, 놀랍게도 그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바울은 선언했습니다.
*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신 놀라운 일로 인해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 “그러므로”(예수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해) “나는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 정말 놀라운 결론입니다. 앞서 7장에서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우리가 내 속에 스며든 죄의 유혹에 사로잡혀 넘어가는 순간, 율법이라는 경찰은 나에게 수갑을 채우며 “넌 범법자야!”라고 정죄를 한단 말예요.
*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상황은 완전 반전되었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에게는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율법은 더 이상 나에게 “넌 범죄자”“라는 말을 켤코 할 수 없다는 말씀!!
* 왜? 무슨 일이 벌어졌고, 또 벌어지고 있기에 그렇다는 건가요?
2. 왜냐하면(v2-4)
*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벌어진 일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죄를 정죄하고 심판하셨고, 죄에게 죽음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v3).
* 죄는 치명상을 입었고(창3:16, 뱀은 여인의 후손에게 머리를 상함), 비록 지금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고자 하더라도 결코 성도를 지키시는 성령을 당할 수 가 없다는 말씀!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셔서 자유를 선물로 주신 일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v2).
*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내적 전투 끝에 죄에게 포로로 잡혀가는 대신 자유롭게 성령을 따라 살게 되었고, 율법이 애초에 이루고 싶어했던 그 목적(하나님을 따라 살고, 하나님을 닮아가며 사는 것)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v4).
3.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뭘까요?(v5-11)
* <주의>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육신을 따라 사는 삶”은 실제 육체(몸, 혹은 물질세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세상의 타락함,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려는 경향,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무시, 죄와 짝하여 사는 것 등을 말합니다.
* 죄에 사로잡혀 살 땐 그 마지막이 죽음이었지만, 성령을 따라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명과 평화를 누리고 살게 됩니다.
* 하나님을 더 이상 적대감을 갖고 대하거나 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만나게 되고, 그의 뜻을 따라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는 삶을 살고싶은 욕망이 일어나니까요^^
* 그래서 나의 정체성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인겁니다.
* 이런 삶을 “하나님나라를 사는 삶”, “영생”이라고 부르는 거죠~~
* 마지막으로, 죄에게 내려진 “죽음”이라는 선고는 나랑은 무관한 일이 되는 거구요!
*** 정말 멋지고 아름답고, 신나는 일이지 않습니까?
* 근데요, 우리 현실을 가만 보면... 내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아직도 죄의 유혹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그게 내속에 있는 또 다른 나라고 착각하고, 죄에게 져서 포로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게, 그게 진짜 슬픈 일입니다요...ㅠㅠ
* 이들 중에 어떤 이들은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닌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경우도 있겠고, 더 많은 경우에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전투를 벌이는 치열함이 없어서”(히12:4) 그런 것 같습니다. 치열하게 싸우다가 어쩌다보니 한 두 번은 패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야 주님이 이미 같이 싸우시는 중이라 보듬어 주시고 다시 싸매주셔서 다시 힘을 낼 수가 있는 상황이겠지만, 처음부터 싸울 의지도 없이 투항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되겠죠. 성령께서 근심하시다 못해 결국 침묵하시는 상황(살전5:19, 성령의 소멸)이 벌어지는 거죠...
* 이번 주는 각 교단 총회가 있는 때인데요, 통합은 명성교회 세습을 합법화시켰고, 합동은 개혁적인 교수의 강연을 금지시켰고, 모두들 혐오와 차별은 강화시켰고, 줄어드는 성도 수와 늘어나는 목사 숫자는 생각도 않고 자기들 기득권 유지를 위해 70세 은퇴를 75세로 연장하자는 논의나 하고 있고... 정말 잘들 하시더군요... 내 안에 있는 욕심과 죄의 유혹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포로가 되어 사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침묵하시다 못해 사라지신 상황인 것 같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그러셨다더군요. “목사님들. 제발 예수 좀 잘 믿으세요!”
* 우리가 누리는 성령 안에서의 이 평화와 자유의 아름다움은 결코 그냥 이뤄진 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엄청난 희생의 선물임을 기억하고, 또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라 치열한 영적 전투를 통해 이뤄가는 것임을 기억하고 오늘도 이 평화를 꼭 붙잡고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아멘!
* 한편, 또 다른 측면에서 제대로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자하는 성도들의 경우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요.. 이 싸움 중에 때로 실패나 실수할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자유는 결코 무효가 되지 않는 다는 것.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아멘!!
* 이 무한한 자신감으로 오늘도 뿌듯뿌듯하게 살아가봅시다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결코 정죄를 받지 않는다.(v1)
* 앞서 7장에서 바울은 율법의 요구대로 열심히, 성실히, 착하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겪는 내적 갈등에 대해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했습니다.
* 결론은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구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줄 이 없습니까?”라는 탄식이었습니다.
* 그리고, 놀랍게도 그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바울은 선언했습니다.
*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신 놀라운 일로 인해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 “그러므로”(예수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해) “나는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 정말 놀라운 결론입니다. 앞서 7장에서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우리가 내 속에 스며든 죄의 유혹에 사로잡혀 넘어가는 순간, 율법이라는 경찰은 나에게 수갑을 채우며 “넌 범법자야!”라고 정죄를 한단 말예요.
*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상황은 완전 반전되었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에게는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율법은 더 이상 나에게 “넌 범죄자”“라는 말을 켤코 할 수 없다는 말씀!!
* 왜? 무슨 일이 벌어졌고, 또 벌어지고 있기에 그렇다는 건가요?
2. 왜냐하면(v2-4)
*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벌어진 일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죄를 정죄하고 심판하셨고, 죄에게 죽음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v3).
* 죄는 치명상을 입었고(창3:16, 뱀은 여인의 후손에게 머리를 상함), 비록 지금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고자 하더라도 결코 성도를 지키시는 성령을 당할 수 가 없다는 말씀!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셔서 자유를 선물로 주신 일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v2).
*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내적 전투 끝에 죄에게 포로로 잡혀가는 대신 자유롭게 성령을 따라 살게 되었고, 율법이 애초에 이루고 싶어했던 그 목적(하나님을 따라 살고, 하나님을 닮아가며 사는 것)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v4).
3.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뭘까요?(v5-11)
* <주의>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육신을 따라 사는 삶”은 실제 육체(몸, 혹은 물질세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세상의 타락함,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려는 경향,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무시, 죄와 짝하여 사는 것 등을 말합니다.
* 죄에 사로잡혀 살 땐 그 마지막이 죽음이었지만, 성령을 따라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명과 평화를 누리고 살게 됩니다.
* 하나님을 더 이상 적대감을 갖고 대하거나 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만나게 되고, 그의 뜻을 따라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는 삶을 살고싶은 욕망이 일어나니까요^^
* 그래서 나의 정체성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인겁니다.
* 이런 삶을 “하나님나라를 사는 삶”, “영생”이라고 부르는 거죠~~
* 마지막으로, 죄에게 내려진 “죽음”이라는 선고는 나랑은 무관한 일이 되는 거구요!
*** 정말 멋지고 아름답고, 신나는 일이지 않습니까?
* 근데요, 우리 현실을 가만 보면... 내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아직도 죄의 유혹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그게 내속에 있는 또 다른 나라고 착각하고, 죄에게 져서 포로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게, 그게 진짜 슬픈 일입니다요...ㅠㅠ
* 이들 중에 어떤 이들은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닌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경우도 있겠고, 더 많은 경우에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전투를 벌이는 치열함이 없어서”(히12:4) 그런 것 같습니다. 치열하게 싸우다가 어쩌다보니 한 두 번은 패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야 주님이 이미 같이 싸우시는 중이라 보듬어 주시고 다시 싸매주셔서 다시 힘을 낼 수가 있는 상황이겠지만, 처음부터 싸울 의지도 없이 투항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되겠죠. 성령께서 근심하시다 못해 결국 침묵하시는 상황(살전5:19, 성령의 소멸)이 벌어지는 거죠...
* 이번 주는 각 교단 총회가 있는 때인데요, 통합은 명성교회 세습을 합법화시켰고, 합동은 개혁적인 교수의 강연을 금지시켰고, 모두들 혐오와 차별은 강화시켰고, 줄어드는 성도 수와 늘어나는 목사 숫자는 생각도 않고 자기들 기득권 유지를 위해 70세 은퇴를 75세로 연장하자는 논의나 하고 있고... 정말 잘들 하시더군요... 내 안에 있는 욕심과 죄의 유혹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포로가 되어 사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침묵하시다 못해 사라지신 상황인 것 같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그러셨다더군요. “목사님들. 제발 예수 좀 잘 믿으세요!”
* 우리가 누리는 성령 안에서의 이 평화와 자유의 아름다움은 결코 그냥 이뤄진 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엄청난 희생의 선물임을 기억하고, 또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라 치열한 영적 전투를 통해 이뤄가는 것임을 기억하고 오늘도 이 평화를 꼭 붙잡고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아멘!
* 한편, 또 다른 측면에서 제대로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자하는 성도들의 경우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요.. 이 싸움 중에 때로 실패나 실수할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자유는 결코 무효가 되지 않는 다는 것.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아멘!!
* 이 무한한 자신감으로 오늘도 뿌듯뿌듯하게 살아가봅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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