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3월25일(수) 행18:18-28 큐티목소리나눔>
“아볼로, 집단지성과 공동체적 성숙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모델”
1. 바울의 2차 선교여행이 마무리 되다.
*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반을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열심히 특심인 유대인들의 소동이 있었지만, 로마총독으로부터 전도가 합법이라는 판결까지 얻게 되었더랬죠. 그렇게 행복하게 시간을 보낸 다음 그의 선교여행 출발지였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오릅니다.
* 출발에 앞서 그는 겐그레아(고린도의 동쪽 항구?) 원래 고린도가 동서쪽에 다 하구가 있으니까.. 지도 참고)에서에서 머리를 깎습니다. 서원 때문이라는데... 뭔 서원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네요..ㅠㅠ 아마 누가가 생각하기는 이유를 기록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아는 상황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 책이 이렇게 이천년이 지나도 계속 읽히게 될 줄을 몰랐겠죠..ㅋㅋ
* 다양한 이유를 우리는 그저 추측해볼 따름인데,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로는, 그가 아마 고린도에 있는 동안 마치 나실인 서원처럼 고린도를 떠날 때까지는 머리를 안 깎을 거야. 라고 서원을 했었는데, 이제 떠나니까 깍는다.. 뭐 이런 상상 정도~~ㅎㅎ
* 암튼, 그는 고린도를 떠나 고향 앞으로~~ 했고, 그새 친구가 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동행했다고라고라~~ 일행은 배타고 터키반도 서쪽 에베소항구에 도착했고, 바울은 잠시 회당에 들어가 토론, 넘 분위기 좋아서 사람들이 그를 붙잡았으나 뿌리치고(담에 하나님 뜻이라면 오겠노라고, 그때나 지금이나 다 거절하는 이유는 똑같다는~~ㅎ), 갈길 급한 사람처럼 달려서 다시 배타고 팔레스틴 가이사랴 향구에 도착, 예루살렘을 잠깐 방문해서 사도들과 교제하고서는 다시 수리아 안디옥으로 고고씽~~ 헥헥 숨차다 숨차...ㅋㅋ
* 수리아 안디옥에서 그는 엄청 따뜻한 대접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또 여행 중에 동역자가 된 디모데, 실라, 누가도 마치 아이돌 같은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요? 근데 바울의 그 역마살(? ㅋㅋ)은 또 어쩔 수 없나봅니다. 사실 그의 사역지는 이미 안디옥교회가 아니었던 거죠. 안디옥에는 이미 다른 리더가 성도들을 섬기고 있었고, 그가 돌봐야 할 성도들은 아시아와 아케도니아에 흩어져 있는 겁니다. 여기는 잠시 쉬고 기운을 회복하는 파송교회일 따름이라... 그래서 그는 다시 교회들을 돌아볼 양으로 길을 나섭니다. 3차선교여행이 시작된 거죠.
*** 문득, 안식년에 고국과 파송교회를 방문한 선교사들의 마음이 이랬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좀 어색하고, 낯설고, 그러면서도 반갑고... 한국말과 문화가 익숙한 것 같으나 뭔가 또 어색하고..갑자기 짠... 해지는 게, 두고 온 선교지 성도들이 생각나고...
* 하긴, 제 상황을 생각해보면, 부교역자로서 교회를 옮겨보면 이런 느낌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있을 땐 그렇게 행복했었는데, 다시 찾아가보면 참 많이 낯설거든요...
*** 한편, 바울이 서원을 하고 지킨 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바울’하면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가 떠오르는데, 신기하게도 율법을 지킨 모양새니까요..ㅎㅎ 아마도 ’서원‘이라는 형태는 유대나 그리스문화권이나 다 일반적으로 신에게 뭔가를 약속하고 지키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였기 때문에 바울도 그리스권의 신자들도 이 전통에 대해 별로 딴지를 걸 필요가 없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전통 중에서 후대 사람들이 왜곡되게 적용하고 자기 욕심을 감추기 위한 방법으로 그걸 사용해서 그렇지, 원래 뜻을 살리면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ㅎㅎ. 예를 들어 교회에서 드리는 십일조헌금이나 감사헌금만 해도 워낙에 교회에서 이걸 강요하고 안 하면 저주를 퍼붓고, 또 거둬들인(?) 헌금을 몇몇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사용하고 그래서 그렇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 주되심을 고백하며, 또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다시 드리는 헌금의 원래 의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신약시대에 십일조가 원론적으로 폐지되었다 아니다 논쟁이 많아도 걍 아름다운 전통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제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고백을 담아 내 삶 전체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헌금을 드리거든요^^ 헌금에 대해 교회공동체가 어떻게 쓸 지를 충분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사용할 것에 대해 고민하고 또 투명하게 사용하면 되는 거니까요.
2. 아볼로
* 한편, 바울일행의 일정과 상관없이 아볼로라는 사람이 에베소에 도착해서 어떤 일을 하였는지 소개가 됩니다. 아마도 앞으로 에베소에서 바울이 만날 일들(19장)과 또 고린도교회에서의 일들(서로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로 나눠 싸웠던 일, 고전1장)에 대한 출발점이 어딘지를 알려주고 싶어서 누가가 일부러 기록한 것 같습니다.
*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랍니다. 그 도시는 북아프리카, 이집트 권에서는 제일 큰 도시입니다. 로마 이전의 알렉산더시대부터 이집트의 수도였고, 문화와 학문이 발달한 국제적 도시였습니다. 유대인공동체도 아주 일찍부터 대규모로 존재했구요.
* 학문의 도시 출신답게 아볼로는 구약성경에 뛰어났고, 논리학과 수사학, 웅변에 뛰어난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어떤 경로로 예수님에 대해 들었고, 나름 구약지식을 총 동원하여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임을 스스로 깨우쳤습니다.
* 그런 아볼로가 무슨 일로 에베소에 왔습니다. 그리곤 거의 바울수준의 열심을 갖고서 회당에서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언하는 겁니다.
* 여기서 딱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났습니다. 아마 두 사람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날 때 같이 가지 않고 여기 남았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아볼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대단한 겁니다. 근데 뭔가 2% 부족한 게, 영... 그래서 그를 따로 데려다가 바울로부터 배웠던 바를 열심히 더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볼로는 날개를 단 거죠.
* 아볼로는 또 열심히 발동하여 아가야(아카이야)지방으로 가고 싶어 했고, 에베소의 성도들은 그를 격려하고 지지하고 기도하면서 그 지방의 성도들에게 영접해줄 것을 당부하는 편지를 써서 파송했고, 그는 아가야지방의 첫 도시 고린도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열마나 열심히 가르쳤으면 나중에 고린도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그를 너무 추종해서 게바파, 바울파, 그리고 아볼로파까지 생겨날 정도가 되었답니다요...(뭐, 그렇다고 그가 나쁜 짓을 한 건 아니구요, 선한 동기였으니 결과에 있어서 빛과 그림자인 셈이죠. 그래서 바울의 그 유명한 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고전3:6)
* 아볼로가 2% 부족했던 건, 다름 아니라 그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성령의 세례를 몰랐다는 건데요... 이건 내일 묵상을 더 깊이 하겠습니당~~^^
*** 아볼로를 가만 보니까 참 신기하네요. 성경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자랄 수 있다는 완전 모범사례라고나 할까요? ㅎㅎ 게다가 깨닫자말자 열심히 전하는 것도.. 참 바울을 많이 닮았다는~~^^
* 근데, 그런 그도 뭔가 2% 부족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결코 혼자 자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뭔가 모자람이 있는 거죠. 구멍도 생기고... 그래서 공동체가 함께 공부하고 함께 깨우치고 자라나가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삼인행이면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 서로 도와 그리스도의 온전함에 이르기까지 자라가야한다는~~
* 몇 년 전부터 우리교회 목자들은 금요일 밤마다 함께 모여서 귀납적 방법으로 그룹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사실 이곳에서 제가 엄청 배우고 자라고 있답니다. 딱히 신학적 혹은 주석적 책을 읽고 예습하지 않아도 함께 모여서 같이 지혜를 모아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다보면 정말 예기치 않은 깊은 깨달음에 이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우리 모두 이런 행복한 모임 하나쯤은 있어야 세상 살 맛이 나지 않을까욤?(완전 자랑질이라고~~ㅋㅋ)
* 한편, 사람마다 예수님을 만나는 배경스토리가 다양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아볼로처럼 성경을 혹은 책을 읽다가 예수님께로 오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의 시련을 통해서, 또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문화적으로 교회환경에서 자라서, 또 어떤 사람은 어떤 예기치 않은 체험을 통해서... 암튼 그 다양한 경험 속에서 뭔가 2% 부족함은 누구나 다 있기 마련이라. 앞서 말씀 나눈 것처럼 교회공동체 속에서 서로 부족함을 도와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요~~~
*** 코로나19로 인해 물리적인 거리두기를 하고 있더라도 zoom과 같은 인터텟 도구 같은 걸 사용해서라도 우리는 어떻 하든 서로 연결하고 격려하고 같이 묵상하고 공부하면서 서로가 그리스도의 온전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나가는 건 멈추지 말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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