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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0년4월16일(목) 행24:1-21 큐티목소리나눔> “벨릭스 총독의 법정에서 복음을 전하다”

<2020년4월16일(목) 행24:1-21 큐티목소리나눔>
“벨릭스 총독의 법정에서 복음을 전하다”

1.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고발
* 바울이 가이사랴 로마총독부에 갇힌 며칠 뒤,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몇몇 장로들은 변호사 더둘로를 내세워 바울을 정식으로 총독에게 고발하였습니다.
* 당시에 변호사가 있었다는 게 참 신기하네요. 로마의 사법제도가 꽤나 현대적이라는~~ㅎㅎ
* 변호사 더둘로가 제출한 고소 내용은 바울이 로마의 치안을 흔들고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소요를 일으킨 사람이라는 겁니다. 여기뿐 아니라 아시아 곳곳에서도 소요를 일으킨 전력이 있는 사람이구요. 게다가 유대인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성전을 더럽히기까지 했다고...
*** 총독이라는 사람은, 특히 이 벨릭스 같은 사람은-그는 노예출신이었다가 황제를 잘 만나 해방되고 출세까지 해서 귀족이 되었고, 총독으로 지금 여기까지 와 있는 거임- 자신이 이 험하고 외진 일종의 유배지 같은 곳을 빨리 벗어나 다시 로마로 가서 중앙정치무대에서 한 자리 하길 원하는 사람이라, 더더욱 이 지방 소읍에서 소요 같은 게 없기를 바라기 마련이라.
* 더둘로라는 변호사는 딱 그 지점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바울을 고소한 겁니다. 이놈은 당신의 관할 아래서 소요를 일으키다 현장에서 붙잡힌 사람이라고...
* 팩트체크는 해볼 필요도 없고, 단지 종교적 견해 차이를 정치색 짙은 이슈로 몰고 가서 사람을 선동하거나 현혹시키기에 딱 안성맞춤인 사람의 전형이 어쩌면 더둘로가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그 핵심에는 변호사 수임료, 돈이 있구요...)

*** 오늘이 세월호 6주기인데... 아직도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마음과 온 국민의 가슴을 마구 할퀴는 막말을 쏟아내며 자기의 정치적 이익만을 얻으려 하는 자들이 많은 상황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선거 결과를 보니, 그런 막말을 쏟아낸 사람이 떨어져서 참 다행입니다만)
* 더둘로를 통해서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진실은 아예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정보를 마구 왜곡, 조작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다는 게 참 서글프네요...ㅠㅠ 또 그게 인간의 근본 죄성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구요..

*** 한편, 더둘로가 정확하게 간파한 것처럼, 벨릭스총독은 그냥 현실이 시끄럽지 않으면 되는 그게 최선인 사람이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면서 현실이 소란스러우면 안 되는 것처럼, 정치가 시끄럽다고, 안정이 되도록 바라는 것을 봅니다. 벨릭스같은 태도라는~~ㅠㅠ
* 사실 기독교인은 현실에서 힘들고 고통당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이 당하는 불의와 불공평을 바로잡고자 부단히 애쓰는 걸 사명으로 알고 살아야 하잖아요? 하나님나라의 정의와 평화, 사랑과 공평을 추구하다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라... 그러다보면 늘 현재의 질서에서 이익을 누리고(때로는 불의도 행하면서)있는 이들과 부딪치기 마련인데...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대표 기도하는 걸 들어보면 거의 대부분 “이 소란한 우리나라 정치가 속히 안정이 되게 하시고...”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니...

2. 바울의 변론
* 바울은 그래도 로마시민권자라, 법정에서 반론권을 보장받았습니다.
* 그는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는데요,
* 음... 우선, 군중을 선동해서 소요를 일으켰다는 고발을 반박합니다. 난 성전에서 사람들과 접촉이라는 걸 한 적이 없다. 있다면 증인을 대라. 난 구제금을 모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고, 그걸 전하기 위해 정결예식을 행하고 있었다. 그것도 조용히.
* 다음으로, 난 이들이 말하는 그 ‘도’를 믿는 게 맞다. 근데 그 ‘도’는 소요를 일으키는 반정부적인 그런 게 아니다. 이 사람들도 잘 알고 이뤄지기를 바라는 ‘소망’에 대한 거다. 불의 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이 다 때가 되면 부활한다(그리고 심판 받을 거다)는 걸 믿는 거다. 산헤드린에서도 난 딱 한마디 “난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는 것을 믿소.”라고 한 것밖에 없다.
*** 바울은 더둘로 번호사처럼 사실을 왜곡하지도 침소봉대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말합니다, 그런데 굉장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소명으로 알고 살아온 ‘복음전도’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전합니다. 그는 이 상황과 관련해서 담담히 자신의 세계관, 믿음을 정리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죠.
* ‘전도’ 그러면, 늘 노방전도나 가가호호 축호전도, 지나가던 사람 붙들고 늘어지는 것, 아님, 친구를 사귀어도 꼭 전도목적으로 사귀고,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봉사료를 지불하면서도(약간의 친절을 베푸는 상황이면 언제나) 꼭 “예수 믿으세요”를 붙여야 되는, 그런 식을 떠올립니다만... (물론, 꼭 부정적으로만 볼 상황이 아닐 때도 많이 있습니다^^)
* 바울은 자신의 상황에 최선을 다해 자신이 믿는 바에 따른 행동을 하고 있음을 그냥 이야기 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내 삶의 정황에서 내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다보니 그냥 예수님과 하나님나라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도가 되는, 뭐 그런 거라는~~~ 이게 바로 ‘삶으로 전도하기’가 아닐까, 또 지금 가장 필요한 전도방식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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