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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1년12월03일(금) 고전7:17-24 큐티목소리나눔> “노예제도, 각종 차별에 대한 바울의 고민 & 대안”

<2021년12월03일(금) 고전7:17-24 큐티목소리나눔>
“노예제도, 각종 차별에 대한 바울의 고민 & 대안”

*** 고린도 교회, 새롭게 탄생한 하나님 나라 백성, 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새로운 가치관으로 현실을 살아가야 할까? 바울의 고민과 묵상, 대안 제시는 계속됩니다.

1. 서로가 서로를 갈라놓고 차별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들
* 고대 노예사회나 현대 산업사회나, 사람 사는 세상이면 어디나 차별은 존재해왔습니다. 성별, 인종별, 계급별 차별... 요즘은 좀 더 심화해서 학력, 경제력, 외모 등등에 이르기까지..
* 바울은 이제 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 바울 상시에는 헬라인들은 자기들과 다른 야만인을 구별했고, 유대인은(남들이 볼 땐 극소수의 사람들이었겠지만 암튼) 자기들과 이방인을 구별했고, 자유인과 노예가 구별되었고, 남녀차별이 있었고...
* 바울이 예를 들고 있는 할례 문제만 구체적으로 보더라도, 당시에 남자들은 공중목욕탕에 가거나 운동할 때 홀딱 벗고 나녔으니까, 할례는 딱 봐도 한눈에 들어오는 징표라, 헬라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들은 할례받은 유대인들을 차별했을 것이 틀림없었을 거란 말씀. 유대인들 중에는 주류사회에 끼고 싶어서 할례의 표시를 지우고자 노력하는 이들도 있었을 거고, 반대로 유대교로 전향한 일부 극소수 헬라인들은 또 할례를 강요당하기도 했을 거고...
* 갑자기 마이클 잭슨이 생각나네요... 그는 검은 자신의 피부를 백인처럼 보이게 하려고 피부 박피를 엄청나게 많이 했었다고...ㅠㅠ

2. 세 번이나 반복한 “각 사람은 분수대로, 부름을 받은 처지 그대로 살아가십시오.”
* 아니? 이게 뭥미? 노예제를 인정하는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바울의 논리는 좀 다른 차원으로 펼쳐집니다.
*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것은 이런 외적인 상황에 매이지 않는 영원한 자유를 얻은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 하나님이 주신 자유 안에서, 우리의 외적 조건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다고.. 할례든 무할례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모두가 하나라고(갈3:28).
* 그러니, 여기서 두 가지 행동이 나오는 거죠. 빌레몬서에서 밝힌 것처럼 노예를 부리고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당근 자신이 부리던 노예를 해방 시켜줄 거란 말예요. 반대로 노예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주인은 아니야. 그럼? 스팔타쿠스처럼 투쟁을 해서라도 해방을 쟁취해?
*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해법을 제시합니다. 아주 강력하게, 세 번이나 힘 줘서...
* 아니다 부름을 받았을 때 노예였다면 걍 그대로 있어라. 외적으로 노예일지 몰라도 너는 실은 하나님 안에서 자유인이니까 말야. 물론 자유인이 될 기회가 생기면 당근 붙잡아야쥐. 허나 목숨 걸고 투쟁하고 그런 건 하지 마. 한편, 자유인도 굳이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단 말이쥐(이 경우는 어쩌다 생기는 일이라 굳이 언급 안해도 되겠지만, 논리 전개상...ㅋㅋ ).
* 할례를 받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그걸 부끄러워하며 헬라인 행세하려고 뭘, 표시를 없앤다 어쩐다 하지 말라고, 넌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뭐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 너의 너됨은 그런 외적 표시에 묶여있는 게 아니란 말야. 마찬가지로 무할례 상태(그리스 로마 세계 사람들 전부 다^^)라면, 굳이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강요받을 필요가 없다고.  

*** 음.... 바울이 말한 요지는 분명하네요. 나의 나됨은 하나님 안에서 이미 자유인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 딸로 따~악! 정해졌으니, 외적 상황, 환경에 매여서 자기를 규정하지 말라는 거죠.
* 그러면서도, 우린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자유인이기에 노예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또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구요. (진짜로 바울이 고민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하네요...)
* 맞는 말씀!!
* 허나,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생각할 때,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상황에 대한 투쟁은 또 필요한 거잖아요? 19, 20세기에 노예 해방투쟁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인들이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그 길을 갔던 거구요.
* 그럼, 바울은 왜 이리 말할까요? 어쩌면,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사람의 내면이 바뀌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도록 하는 그 일이 워낙 중하고 시급해서, 노예 문제까지 다루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또 어쩜 예수님도 사회적 혁명의 방법이 아니라 십자가의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그 길을 따르고자 했을 수도 있고(이게 더 큰 이유였을 거 같네요).
*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 사회적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 상황 속에서도 내면으로 누리는 자유는 포기하지 말라고.. 그게 내 정체성이라고..

*** 진짜, 맞는 말이죠. 초등학교만 가도 아이들끼리 부모의 경제력, 아파트 평수를 비교하는 게 일반적인 문화인데, 그 속에서 꿋꿋하게 나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자유로움. 외모로 비교당하고, 학력으로 주눅 들고..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으로 인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걸 분명하게 새겨야 하는 거죠.
* 물론, 나 역시 다른 이들을 대할 때, 그를 자유인으로, 나와 같은 형제로 대해야 하고, 또 이런 사회를 향해 투쟁해야 할 때 투쟁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건 맞구요.
* 암튼, 오늘도 바울이 자신이 살았던 세계 속에서 치열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고 고민하고 대안을 찾고 실천하고.. 그러고 있는 한 장면을 만났네요. 덕분에 우리도 우리 삶의 현실 속에 복음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지 또 깊이 고민하게 되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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