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12월01일(수) 고전6:9-20 큐티목소리나눔>
“여러분 몸은 성령이 거하는 집,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 처음으로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은 이미 로마문화 속에 젖어있는 상태에서 복음을 받아들였고,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방향을 따라 자신들의 문화를 새롭게 바라보고 때론 손절하고 때론 변혁하고 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되었습니다.
* 고린도 교회는 이 부분에서 당시의 문화를 그대로 수용한 편이었고, 바울이 볼 때 이건 하나님 나라의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거라고 보였던 게 수두룩빽빽했습니다. 결국 바울은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들의 문화와 삶을 새롭게 정돈하길 바라는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던 거죠. 아주 혹독하게 야단친 편지가 있었는데 그게 실종되어 지금은 전해지지 않았고, 그 다음으로 쓴 편지가 지금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고린도전서, 이 편지를 받고도 돌이키지 않으니까 더더욱 엄격한 편지를 썼는데 그것도 전해지지 않고, 이 세 번째 편지를 읽고 조금 변화가 일어나자 감격해서 쓴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
** 그러고 보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복음을 들고 그리스 로마지역에 두루 다니면서 새롭게 교회를 세우고 문화를 만들고 삶의 모델을 만들어야하는 진짜 개척자인 건데요... 그 고생과 묵상, 고민이 진짜로 엄청났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 역시 어떻게 보면 코로나를 거치면서 지금까지의 교회문화, 질서, 가르침 등이 완전 영향력을 잃어버린 상황이라, 일종의 Post-교회시대를 살아가면서 새롭게 복음과 하나님나라의 문화와 삶의 질서를 세워야하는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린도전서 묵상이 완전 현실에 딱 와닿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네요.
1.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합니다.
* 6장에 들어서서 바울은 교회 내의 갈등과 분쟁을 사회 법정에 고소하는 사건을 두고 야단을 치고 있습니다.
* 바울이 볼 때, 당시의 사회 법정은 불의한 사람들이 판결하는 상황인 거죠. 하나님 나라와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들 문화와 가치를 갖고 판결하니까요. 또 역사 자료들을 본 사람들 말에 따르면, 실제로 거의 부자들이나 귀족들 위주로 판결을 했던 모양이라 서민들은 걍 억울한 일을 덮어쓰고 사는 수밖에 없었던 것 같구요..
* 그러니, 불의한 사회 법정으로 가기 전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나라 가치와 정의, 사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게 가장 건강하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도전합니다.
* 한편, 바울은 당시의 사회 지배층, 사법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을 두고 ‘불의한 사람들’이라 칭했는데(6:1), 이제 v9에서 그 불의한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음행, 간음, 여성 노릇 하는 사람, 동성애를 하는 사람, 도적질하는 사람, 탐욕을 부리는 사람, 술 취하는 사람, 남을 중상하는 사람, 약탈하는 사람 등등
* 이런 일들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노라고..
* 물론, 너희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고서 들어왔잖냐고..
**** 음... 교회 공동체가 서로에 대해 사랑과 정의로 도전하고 중재하고 그래야 하는 건 지금 우리에게도 당면 과제이구요. 또 사법 정의를 세우는 게 진짜 절대 절명의 역사적 사명이 되어버린 작금의 한국 상황에선 더더욱 사법부의 불의한 모습을 두고 ‘불의한 사람들’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그러면서 오늘 우리 사회에서 핫한 이슈가 딱 나와버렸네요.. 여성노릇하는 사람 & 동성애를 하는 사람~!!
* 에고... 이게 한참 이야기해야 하는 주제, 결론 내리기도 힘든 주제인데요...
2. ‘여성 노릇하는 사람, 동성애를 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 ‘여성 노릇하는 사람’의 헬라어 원어는 뭐, ‘여성스럽다, 계집애 같다’ 이런 경우에 쓰는 단어라는데요... 당시의 남성성 우위의 문화에서 이런 말은 남자들에겐 꽤나 수치스러운 표현이었을 거구요. 성행위에서도 남자가 여성파트를 담당할 때 사용하기도 하구요.
* ‘동성애를 하는 사람’은 헬라어 원어로서도 이 말 그대로 사용된 것 같은데요... 음,-.. 문화적 상황을 생각하면, 바울 당시에 로마 문화권에서는 귀족이나 부자 남자들이 특히 노예 중에서 미소년을 성적 파트너로 삼고 데리고 다니는 경우들이 다반사였다네요. 이 경우에 해당된다는 거죠. 로마서 1장에서 ‘순리로 써야 할 것을 역리로 쓰는 경우’(v27)와 같은 거죠.
* 이상은 어떻게 보면 제일 보수적인 입장에서 해석한 경우인 셈인데요.. 진보적인 해석자들은 이 단어를 이렇게 동성애로 번역하면 안 된다고 얘길 하고 있구요.
*** 음.. 바울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음을, 또 둘이 사랑으로 한 몸이 되는(성적 결합을 포함해서) 걸 창조 질서로 받아들였고, 이에 반하는 것들을 죄로 보는 겁니다. 동성애든, 결혼 밖의 성적 방종이든, 각종 음란한 문화이든..
** 근데.... 요즘 성적지향을 개인의 자유에 맞기고, 또 그게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향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중인데..(서구에선 이미, 우리 나라에서도 벌써..)
* 게다가 이런 문화에서 위에 말한 두 단어도 다르게 해석하고, 바울이 동성애를 반대한 게 아니라는 논리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이 생겼구요... 그래서 앞에서 제가 기록한 건 진짜 상당히 보수적인 시각으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구요..
* 그래서 유진 피터슨도 이런 상황을 반영해서 ‘여성 노릇하는 사람, 동성애를 하는 사람’을 이렇게 번역했더군요. ‘성을 이용하고 오용하는 자들’.
* 거기에 비하면 톰 라이트는 보다 분명하게 ‘어떤 유형이든 동성애를 행하는 사람’이라고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언급했구요..
** 암튼,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책망하면서 사용한 ‘동성애를 행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는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고, 단지 그 당시의 문화적 상황, 오늘날의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의학적 발견(?)과 해석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상당히 다양한 층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 그래서, 걍 아무렇게나 제 생각을 툭 던져보면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걸 부정할 순 없겠죠? 제3의 성을 만드셨으면 그게 창세기에 기록되어있거나 딴 데 어디에 분명 나와야 할 거니까요. 근데 그건 창조 때 얘기고, 지금은 에덴에서 쫓겨난, 창조의 질서가 왜곡되고 축소되어서 모든 피조물도 신음하고 고통하고 있는 형편이니까, 이 남녀의 성 정체성 문제도 충분히 왜곡되거나 비뚤어진 채로 인간이 태어날 수도 있을 거란 말예요. 특히나 요즘 의학적 발견과 해석이 그렇다고 하니까 더더욱 말예요. 이걸 비슷한 다른 예로 생각해보면, 원래 죽음을 겪지 않을 인간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그럼 이 로병사(老病死)를 사람들이 죄다 뭐다 갖다붙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듯 성 정체성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뭐 이런 생각도 들구요. 그게 하나님의 원래 창조의 목적이나 질서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왜곡된 채 탄생한 사람에게 죄나 책임을 묻는 건 진짜 억울한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고...
* 음.. 그럼, 교회 밖의 사람들이 성적지향을 스스로 선택하는 다양성에 대해서는 그렇게 보면 된다고 치고, 교회 안에서는 어떻게 해요? 글쎄요... 바울이 그 다음 전개하는 내용이 전체적으로 방향을 잡는 데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3. 여러분 몸은 성령이 거하는 집,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v19,20)
*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모시는 때부터 성령께서 내 안에 함께 거하신다는 걸 강조합니다. 게다가 우린 영혼과 육체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인격체니까,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는 건, 우리 몸이 나의 영혼과도 불가분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성령과도 불가분인 거죠.
*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따라 살아야 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면 뭐든 취하고, 아니면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거니까, 결국 우리 몸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향으로 써야 한다는 말씀.
* 바울이 아주 엄중하게 표현한 것처럼, 음행(다양한 영역의 성적 방종과 범죄)은 몸에다 죄를 짓는 거고, 몸을 더럽히면 성령이 거하시는 집을 더럽히는 거고, 하나님이 엄청 싫어하실 거라.. 당근 이건 피해야 할 거란 말예요..
* 근데, 이 음행에 대한 적용과 범주가 사람마다 좀 다르니까.. 그게 그시기 한 건데... 그거야 어쩌겠어요? 각 시대와 문화, 상황, 개인 및 그가 속한 공동체의 판단과 선택일 수밖에요... 그래서 미국의 청교도시기엔 주홍글씨가, 러시아의 정교회 상황에선 안나 까레니나가 갈등의 주역이 되는 거고.. 또 그 시기를 넘어서면 그 갈등은 보편화되고 다른 갈등이 나타나고.. 그렇게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갈등과 고민, 때론 정죄와 용납의 순환이 반복되는 거 아닐까요?
* 그래서 말예요... 부정적인 걸 금지하고 쫓아내는 방식도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보다 더 긍정적인, 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하는 게 훨씬 깔끔할 것 같아요. 우리가 몸으로든 맘으로든 행동으로든 주님과 성령을 알아가고 닮아가는데 도움이 되면 취하고, 아니면 버리는 거죠. 오늘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물론 이것도 당시의 속담을 인용한 거라지만 말예요~ㅎㅎ),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게 유익한 건 아닙니다.”(v12) 이걸 살짝 바꿔서 “모든 게 다 가능합니다. 허나 모든 게 주님을 닮아가는 데 유익한 건 아닙니다.”
* 이 속에 자유와 절제가 아름답게 하모니를 이루는 거라는~~^^
* 암튼... 오늘 주제는 진짜로 핫, 핫, 핫한 주제라.. 다양한 실천적 고민이 뒤따르겠네요..
* Ps. 그래도 말예요. 동성애에 대해서 아무리 보수적 입장을 견지한다 해도, 지금 한국교회에서 광풍이 불고 있는, 그 차별금지법 반대, 동성애 반대라는 이슈파이팅, 혐오와 배제의 방식은 아니, 아니, 아니올시다 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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