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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2년11월22(화) 마20:29-34 큐티목소리나눔> “메시아이신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

<2022년11월22(화) 마20:29-34 큐티목소리나눔>
“메시아이신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
-인생의 참된 바램(소원)을 만나는 기도-

1.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관문 도시 여리고
* 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사고팔고 누구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요단강과 그리 멀지 않은 평야 지대의 도시 여리고. 이곳에서 급한 경사로 이루어지는 산골짜기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예루살렘이 나옵니다.
* 구약 시절 여리고는 여호수아에 의해서 무너진 다음 폐허처럼 버려졌고, 지금 예수님 시대엔 무너졌던 곳 옆에 다시 세워져서 수도 예루살렘의 관문 역할을 하는 대도시였습니다.
*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는 길에 많은 무리와 함께 이곳을 지나게 되었고,
*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는 이제 새 세상이 펼쳐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뜬 마음에 길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 한편, 이곳 여리고엔 언젠가부터 구걸로 하루하루를 살아오는 시각장애를 가진 거지 두 사람이, 사람의 왕래가 잦은 길모퉁이에 앉아있었습니다.

2. 다윗의 자손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두 거지는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고, 누가 지나가는지 주변에 물었고, 누군지 알자 곧바로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사람들은 바쁘신 예수님이 이 사람들로 인해 지체될까 봐 두 사람을 조용히 시킵니다. 실은 자신들의 기대감과 달려갈 길이 방해받을까 봐 장애물을 치우는 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멈춰 서셨고, 그들을 데리고 오라셨고, 직접 묻고 듣고,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마음에 담고서 그렇게 말한 것일까요? 걍 구걸해서 하루 벌어먹고 사는 인생,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요청하듯 “동전 한 닢 던져줍쇼. 아님 말고..”라는 뜻이었을까요?  
* 어쨌든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라고 불렀습니다. 뭐 사람들이 그리 말하니까 듣기 좋으라고 그리 불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 그들 마음에 진정으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이 순간 구걸 대신에 그들이 진짜 마음에 담고 있었던 인생에 대한 소원을 갖고서 불렀을 수도 있습니다.
* 그리고 이어지는 “너희들 소원이 뭐니?”라는 예수님이 하신 이 질문이 그들의 마음속에 진짜 자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 확~ 불을 질러버렸습니다. 그저 동전 한 닢 바라는 마음은 완전히 사라졌고, 내 앞에 서 계신 분은 그저 듣기 좋은 말로 메시아, 왕이라 부를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진짜 메시아였고, 그분 앞에 내 인생의 가장 진지한 대답을 할 순간이 찾아온 겁니다.
*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빌어먹고 살고 있어도, 그래도 한 번 태어난 인생인데, 눈만 뜬다면, 이 장애만 넘어설 수 있다면, 난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해도 내가 사람이라는 걸 한 번이라도 제대로 느끼고 살아볼 수 있다면, 단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 “주님, 보기를 원합니다.”
*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이들에게도 간절한 인생의 소원이 있게 마련인데... 사람들은 자기 필요, 자기 일정에 맞춰서 방해물로 취급한 그 사람. 그렇게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 이른바 꼴찌 인생에게 예수님은 가여운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고, 다시 보게 해주셨습니다.
*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제자의 길을 걸어간 거죠. 꼴찌가 첫째가 되는 길을 간 겁니다.
* 그러나 그들이 따라간 그 길은 정말 쉽지 않은 길이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들은 처음 뜬 눈으로 만나는 세상에서 자신들이 목격하는 것은 세상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들은 그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서 초대교회의 이름 없는(마가복음에서는 바디매오라고 이름이 소개 됩니다^^) 벽돌 한 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 내가 걸어온 인생길이 어느 지점을 가고 있든, 내 나이가 비록 현실의 호구지책을 버리고 딴 길 가기엔 너무나 많이 와버렸다 할지라도, 내 마음속에 인생에 대한 진정한 바램은 예수님을 만나 진지하게 물으시는 그 질문 앞에서, 주님을 따라나선 길에서 발견하게 될 거라는~~^^ 그리고 과감하게 주님을 따라나설 때 참 행복이 주어진다는~~

3. 예수님 마음은...
*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 지심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입니다.
*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무거운 일을 앞두고 마음의 스트레스 지수가 엄청 올라 있는 상황. 이럴 때면 주변을 돌아볼 틈이 생기지 않는 게 대부분 우리의 모습이겠죠..
*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그 이유가 바로 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뜨게 하고 포로 된 것으로부터 해방 시키기 위함인데...
*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서 당신을 찾는 이를 종으로서 섬기십니다(v28). 저곳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위해 서두르고자 두 소경을 막아선 다른 사람들, 그곳에서 한 자리 차지할 마음에 치맛바람을 일으킨 제자들의 마음을 무색케 하신 예수님...
* (그렇다고 이곳 여기에서 매몰되어-너무나 많은 병자들과 불구자들이 예수님의 고쳐주심을 바라고 쫓아오는 상황...- 저곳으로 가야 하는 목표를 놓치신 것도 아니라는...^^)

* 바쁘게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으로 사람들을 대하기 쉬운 현실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 연말이 다가오면서 점점 일미 쌓이고, 바빠죽겠는데 뭘 또 부탁하는 직장동료에게, 혹시 그의 청을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 놓치지 않는 그런 행동이, 예수님의 마음을 일상에 담는 것임을 붙잡아 봅니다.  

Ps. “예수기도”
* 동방교회에서는 “예수기도”라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문을 단순하게 반복해서 기도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바로 바디매오의 기도를 우리 상황에서 고백하고 올려드리는 거죠. 오늘날에는 개신교에서도(맑은물교회에서도^^) 많이들 이 방법으로 기도하고 있구요.
* 단순하게 반복해서 기도하다 보면, 내 마음속에 예수님이 질문하시는 걸 듣습니다. “그래. 네 소원이 뭐니?”
* 처음엔 겉으로 드러난 내 삶의 이런저런 필요들이 떠오르고, 그런 걸 아뢰는 마음으로 기도하죠. 하지만 기도가 깊어질수록 내 마음의 중심에서 내 인생의 참 목적과 방향을 두고 간절한 바램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 점점 이 깊은 열망을 마음에 품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합니다.
* 기도 중에 우리는 주님의 더 깊은 질문을 듣고, 내 마음이 점점 이런저런 욕심으로부터 벗어나 주님이 주신 인생의 목적과 의미에 내 마음을 합하여드리는 가운데 주님 주신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 일상 중에 무시로 이 기도문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보는 것도 좋겠죠?^^
https://www.podbbang.com/channels/8784/episodes/24542787?ucode=L-naYtcrT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