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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2년11월21(수) 마20:1-28 큐티목소리나눔> “경쟁과 차별 없는 하나님 나라 & 스스로 꼴찌가 되신 예수님”

<2022년11월21(수) 마20:1-28 큐티목소리나눔>
“경쟁과 차별 없는 하나님 나라 & 스스로 꼴찌가 되신 예수님”

1. 포도원의 품꾼들, 경쟁과 차별 없는 하나님 나라
1) 이야기 요약
포도원 주인이 일꾼을 찾아 오전 6시, 9시, 정오, 오후 3시, 5시에 일꾼을 데려와서 일을 시킴. 하루 품삯을 계산할 때 뒤에 온 사람부터 처음 온 사람까지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하루 일당)을 지급. 처음 온 사람들이 불만제기. 왜? 내가 내 것으로 내 맘대로 못해? 게다가 난 너희와 약속한 대로 다 줬잖아? 내가 뒷사람들에게 선을 베풀었다고 너희가 날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버 중의 오버 아닌감? 처음이 나중 되고 나중이 처음 되니니라~~ 흠흠..

2) 문맥과 주변 정리
* 이 비유에 등장하는 포도원 주인이 부자라는 것, 노동자 간의 분배의 정의와 공평의 문제 등은 이 비유에서 다루고자 하는 핵심이 아님.
* 이미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라고 하시며 이 세상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지적하셨음.
*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 “우리는 몽땅 버리고 따랐는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엄청 받아 누리지 않을까요?”라는 기대감에 대해 그 헌신에 대해 칭찬하심과 더불어 그들의 우월감, 이 세상에 편만한 경쟁과 우열을 나누는 가치관에 대해 다루시고자 함이 목적임.
(19:30과 20:16이 동일하게 처음 된 자, 나중 된 자의 얘기를 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함.)

3), 특권의식? 꿈도 꾸지 마!
* 포도원 주인=하나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초대와 헌신=포도원에서 일하는 것으로 비유됨.
* 이 시대의 가치관 = 무노동 무임금, 더 많이 더 중요한 일을 하면 더 많이 받아 누리는 것.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더 잘 사는 사회.
* 제자들이나 우리 역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치도 이와 비슷할 거라고 착각하는 것을 교정하시고자 이 이야기를 들려주심.
* “너희들이 다 버리고 날 따랐다고, 지금 내 가까이 있다고 해서 앞으로 펼쳐질 하나님 나라에서도 계속(?) 특권을 누리는 소수가 될 거라고 착각하지 마!”
* 베드로가 대변한 제자들의 내면에 숨겨진 우월감과 미래에 대한 차별적 기대감에 대한 예수님의 일갈이 숨겨진 이야기인 거죠.

2. 하나님의 은혜로 초대되는 하나님 나라
* 한편, 이야기 속에는 이런 야단뿐만 아니라, 더 넓은 하나님의 은혜가 녹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포도원 주인은 6시, 9시에 일꾼을 챙겨옵니다. 건장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겠죠. 근데 오후 3시, 5시까지 아무도 써주지 않는 버림받은 사람들(병약하고, 힘도 없어 보이고, 뭔가 일꾼으로 쓰기에는 나사가 하나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이겠죠)을 긍휼히 여기시고 데리고 와서 일을 시킵니다. 불과 한두 시간 일했겠죠. 일의 효율성도 별로 없었을 거고... 근데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하루 품삯을 계산해주는 거죠.
* 하나님 마음이 바로 이런 거라는...
*** 우리들끼리의 리그, 무한 경쟁, 다른 경제적 대우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정말 낯설고 어색하고 때로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이런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대해 우리는 충격을 받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를 오전 9시에 부름 받은 사람의 위치에 두고, 그 마음에 공감하고 너무나 자주 하나님 앞에 불만을 터뜨립니다.
* 만일 우리가 예수님 앞의 제자들처럼 9시 부름 받은 사람처럼 열심히 하나님 나라에서 헌신, 충성,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각자 하나님 앞에서의 삶에서 그런 영역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오늘 비유와 이어지는 제자들의 언행(v20-28) 속에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리고 가치관을 재조율하는 뼈아픈 시간을 가지고서 정금같이 변하길 소망해봅니다.
* eg. 교회 안에서 우리는 은연중에 섬김의 직분 간에 차별을 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
  (장로-관리집사, 성가대 지휘자-주방 봉사자 / 하나님 나라의 상급에 대해 차이가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 / 또한 교회 안의 섬김=하나님 나라에서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며 헌신하는 부분은 무시하는 이원론도 문제임)
* 몇 시에 부름 받았든, 개인적 능력이 얼마나 차이가 있든지, 하나님 나라의 상급은 동일하다는~~(마25:14~ 각 달란트 받은 이들에게 주시는 상급은 동일함)

*** 한편, 우리는 너무나 자주 내가 그 오후 3시, 5시에 부름 받은 사람일 수 있다는 걸 잊고 삽니다. 예수님이 자주 챙겨주시고 어울리셨던 세리와 죄인들의 틈바구니에 내 삶의 자리가 있을 수 있는데 말이죠. 아니, 실은 내가 바로 그 세리요 죄인이고, 내가 눈먼 사람, 저는 사람,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바라며 오후 5시까지 장터를 서성이며 살아가는 사람인데, 그때 주님이 나를 당신의 나라로 초대해주셨고, 지금 그 은혜의 식탁에 앉아있는 게 팩트(? ^^)인 거죠.
* 그러니, 우리에겐 이 삶이 그저 감사요 은혜일 따름이라는~~
* 근데, 간혹 6시 일꾼처럼 뒤집어지는 때가 있으니... 그게 수양이 덜 돼서 그렇다는..ㅠㅠ
* 워낙 이 시대의 경쟁과 차별적 대우에 익숙한 우리 가치관이 강하다보니, 하나님나라의 풍성함, 모두가 모자람 없이 받아 누리는 그 부요함을 모르고 여전히 차별적 대우를 꿈꾸고 요구하고... 암튼 ‘확~~’ 바꾸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새로움을 입을 수 없다는...

3.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 일등이 꼴찌가 되는 이야기.
* 예수님은 다시 한번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채찍질과 조롱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과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 앞선 문맥에서 두 번이나 강조하셨던 일등이 꼴찌 되는 참 모델을 스스로 보여주시는 거죠.
* cf. 우리는 “일등이 꼴찌 되고 꼴찌가 일등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이 세상의 비교 경쟁, 우열의 가치 기준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즉 순위가 역전되어 꼴찌였던 사람이 더 나은 대접을 받고 더 잘살게 된다는... 대신에 일등이었던 사람이 완전 무시 당하는 자리에 떨어져서 심하면 루저 인생을 살게 되는 실패자가 된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 “조심해! 지금 일등하고 있어도 잘못하면 꼴찌가 되는 수가 있어!” 뭐, 이런 식으로 듣는 거죠.

* 근데,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사고와는 완전 다른 차원의 삶을 스스로 제시하는 겁니다.
누가 봐도 꼴찌인 사람들을 대접하고 살리고 회복시키고자, 누가 봐도 일등인 분(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세상에서는 꼴찌 중의 꼴찌가 서는 자리, 그것도 가장 마지막에 서는 자리인 십자가의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이시는 모습을 얘기해주십니다.
* 앞 문맥과 연결해서 읽으면, 예수님은 이리 말씀하시는 지도 모릅니다.
  “어때? 난 누가 봐도 첫째인 하나님의 아들인데, 너희들을 위해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죽으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거야. 그러니 너희들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고 해서 뭐 보상이나 기대하고, 그래서야 되겠어? 너희도 나중 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묵묵히 섬김의 길을 가야 하는 거, 이젠 좀 알아듣겠지?”

4. 야고보와 요한 & 치맛바람...ㅠㅠ
* 원래 스승으로부터 큰 도전과 가르침이 있고 나면, 반드시 보란 듯이 실패하는 제자들의 얘기가 따라오는 법!ㅠㅠ
* 제자들은 예수님의 얘기를 거의 귓전으로 흘려듣고, 심지어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고서, 권력 쟁투에 돌입합니다. 요한, 야고보 형제는 엄마까지 동원해서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나머지는 선수를 뺏긴 것에 대해 분개하고...
*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격려하신다고 잠깐 하셨던 말씀, “인자가 영광스런 자리에 오를 때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다.”(마20:28)에 꽂혀있었습니다.
* 다시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이어지는데...

5. 섬기러 오신 왕 예수님, 진정한 리더는 자발적으로 순전하게 섬기는 사람
* 너희는 갑(지배)과 을(피지배)로 나뉘는 세상의 방식대로 해서는 안 된다.
* 하나님 나라에서 리더는 자발적으로, 순전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는(종된) 사람이다.
* cf. 예수님의 이 말씀 역시, 앞선 “일등이 꼴찌 되고~~”처럼 왜곡시켜서 듣는 사람이 많다는...ㅠㅠ 그만큼 우리는 이 세상의 ‘갑-을 세계관’에 너무 깊이 젖어 있는 거죠...
“암튼 난 일등이 돼야 하니까, 지금은 섬기는 자리라는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거야. 수습기간처럼 잘 견뎌내면 나중에는 일등자리, 지배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잖아?”
  뭐, 이런 식으로 알아듣는 거죠..ㅠㅠ
* 예수님은 인간을 최종적으로 지배하고 부리는 자리 갑질 할 목적으로 잠시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시고, 부활 프로젝트를 통해 화려한 복귀를 꿈꾸고 계신 게 절대, 완전, absolutely 아니라는 거!!
* 오후 5시에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일꾼들처럼, 눈먼 자, 포로 된 자, 갇힌 자인 우리를 해방 시키시고 온전한 사람, 하나님이 원래 만드신 당신의 형상을 온전히 누리는 일등인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주기 위해, 걍 당신이 종의 자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고 죽기까지 섬기기 위해 오셨고, 또 지금 섬기시고 있다는 거!!

6. 한 사람의 전체 인생을 두고서 묵상해보면...
* 예수님이 넌지시 던지신 말씀, “내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어?”
   멋도 모르고 대답하는 두 제자, “당근이죠!!”
* 지금은 그저 세속적 권력욕과 예수님을 따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서로 구분도 안 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오늘 이 말씀이 정말 뼈저리게 묵상의 주제가 되었을 야고보와 요한을 생각해봅니다.
* 나중에 야고보는 순교자가 됩니다(행12:2). 요한은 밧모섬에 갇혀서 복음서와 계시록을 남겨 예수님의 사역과 오심을 전하게 됩니다. 멋모르고 호언장담했던 그 일을 깨닫고 성숙한 사람으로서 자발적이고 순전하게 고난의 잔에 동참하고 목숨을 내어놓고 섬기는 사람으로 살았던 두 사람.
* 우리 인생도 지금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혈기 넘치는 두 사람처럼 주님을 따르고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때로는 야단도 맞아가면서 진정성 있게 자신을 개방적으로 열어두고서 변화해가고 자라간다면, 우리 역시 야고보와 요한 두 사람이 자라고 변화하고 진정한 섬김의 리더로 살다 간 것처럼 아름답고 흠모할만한 삶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은 비록 한 참 못 미친다하더라도...ㅎㅎ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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