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3월19일(월) 시69:29-36 큐티목소리나눔>
“하늘아,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1. 모함과 비난과 억울함 속에서 탄원하는 기도
* 누가 어떤 구체적 상황가운데서 기도하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함.
* 시인은 가족과 친척들까지도 자신에게 등을 돌린 상황에서 억울함과 분노 속에 하나님께 탄원하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 v1-4 하나님, 날 구원해주세요. 난 목까지 물이 찼습니다. 까닭 없이 날 미워하는 사람들 틈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 v5-12 주님 때문에 내가 욕먹고, 형제, 친척들마저도 등을 돌렸습니다. 주님 집에 쏟은 열정이 모욕당하고, 금식이 비난거리가 되었고, 저자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 v13-21 그러나, 주님 난 주님께만 기도합니다. 날 이 수렁에서 끌어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에게서 얼굴을 가리지 마십시오.
* v22-29 내 원수들에게 보복해주십시오. 그들의 거처가 폐허가 되게 하시고,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십시오.
* v30-35 그때에 나는 노래를 지어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사람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 갇힌 사람들을 모른 체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늘과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2. 하늘아,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나는 비천하고 아프니... )
* 기쁘고 즐거울 때 주님을 찬양하는 건 어떻게 보면 참 쉽죠.
* 하지만, 시인은 지금 아프고 비천한 상황(v29). 이런 때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한 다는 건 정말 새로운 차원을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 마음이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기에, 주님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온전히 믿기 때문에 마음에서 찬양이 우러나온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
* 어쩌면 욥처럼 인생가운데 철저한 시련, 사람이 감당키 힘든 시험을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경지가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어쩌면 그 엄청난 시련을 통해 마음이 너무너무 단순해졌고, 주님과 단둘이만 남은 상황 가운데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고 있기에, 마음이 자연스럽게 너무나 순진무구해지고, 단순하게 주님을 신뢰하게 된 게 아닐까? 그런 상황이 되면 누구라도 주님을 찬양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무튼, 시인은 이 힘들고 비천하고 아픈 상황 가운데서 주님이 구원의 은혜로 지켜주실 것을 알고 믿기에 주님을 찬양하노라고 고백하고 있다는 건, 단지 감정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 인격, 지정의를 포함한 우리 전 존재가 주님 안에 젖어들었을 때 우러나오는 고백이요 찬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황소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것을 통해 주님 마음을 움직여 보려는 어떤 시도를 넘어서서, 단지 주님 당신만을 바라보고, 내 상황을 바꿔 주시든, 그리 아니하시든, 상관없이 주님은 내 하나님이고, 나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라는 의지와 고백을 드릴 수 있는 차원, 그 만큼 하나님과 진성성 가득한 깊은 만남을 하고 있는 거죠.
*** 고난 속에서 주님을 이렇게 깊이 바라보고 신뢰하는 마음의 중심. 정말 놀랍고, 부럽고, 따라 하고픈 마음이 깊이 스며듭니다요~~
3. 하나님께서 시온을 구원하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살 것이다.
*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주목하게 되고, 하나님나라가 어떻게 펼쳐지고, 그 나라를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깊이 있게 통찰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이죠.
* 시인은 처음엔 자기가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이런 안목이 생기고, 어느덧 하나님나라를 바라보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있음이 놀랍습니다.
* 바울사도 역시 눈앞에 닥친 고난을 통해 오히려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는 현장을 알게 되고, 전 우주 만물이 주님이 다시 오시길 기다리는 상황임을 알고, 같이 인내하고 으쌰으쌰 힘을 내자고 격려하는 얘기를 들려주잖아요?(롬8:18-)
* 이런 통찰력을 통해 우리는 쉽게 낙심하거나 지치지 않고, 뚝심 있게 고난의 터널을 터벅터벅 걸어 나가는 힘을 얻게 되고, 나아가 다른 이들을 격려하는 여유도 갖게 되는 거라는~~^^
http://podbbang.com/ch/8784?e=22559598
“하늘아,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1. 모함과 비난과 억울함 속에서 탄원하는 기도
* 누가 어떤 구체적 상황가운데서 기도하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함.
* 시인은 가족과 친척들까지도 자신에게 등을 돌린 상황에서 억울함과 분노 속에 하나님께 탄원하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 v1-4 하나님, 날 구원해주세요. 난 목까지 물이 찼습니다. 까닭 없이 날 미워하는 사람들 틈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 v5-12 주님 때문에 내가 욕먹고, 형제, 친척들마저도 등을 돌렸습니다. 주님 집에 쏟은 열정이 모욕당하고, 금식이 비난거리가 되었고, 저자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 v13-21 그러나, 주님 난 주님께만 기도합니다. 날 이 수렁에서 끌어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에게서 얼굴을 가리지 마십시오.
* v22-29 내 원수들에게 보복해주십시오. 그들의 거처가 폐허가 되게 하시고,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십시오.
* v30-35 그때에 나는 노래를 지어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사람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 갇힌 사람들을 모른 체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늘과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2. 하늘아,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나는 비천하고 아프니... )
* 기쁘고 즐거울 때 주님을 찬양하는 건 어떻게 보면 참 쉽죠.
* 하지만, 시인은 지금 아프고 비천한 상황(v29). 이런 때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한 다는 건 정말 새로운 차원을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 마음이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기에, 주님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온전히 믿기 때문에 마음에서 찬양이 우러나온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
* 어쩌면 욥처럼 인생가운데 철저한 시련, 사람이 감당키 힘든 시험을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경지가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어쩌면 그 엄청난 시련을 통해 마음이 너무너무 단순해졌고, 주님과 단둘이만 남은 상황 가운데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고 있기에, 마음이 자연스럽게 너무나 순진무구해지고, 단순하게 주님을 신뢰하게 된 게 아닐까? 그런 상황이 되면 누구라도 주님을 찬양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무튼, 시인은 이 힘들고 비천하고 아픈 상황 가운데서 주님이 구원의 은혜로 지켜주실 것을 알고 믿기에 주님을 찬양하노라고 고백하고 있다는 건, 단지 감정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 인격, 지정의를 포함한 우리 전 존재가 주님 안에 젖어들었을 때 우러나오는 고백이요 찬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황소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것을 통해 주님 마음을 움직여 보려는 어떤 시도를 넘어서서, 단지 주님 당신만을 바라보고, 내 상황을 바꿔 주시든, 그리 아니하시든, 상관없이 주님은 내 하나님이고, 나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라는 의지와 고백을 드릴 수 있는 차원, 그 만큼 하나님과 진성성 가득한 깊은 만남을 하고 있는 거죠.
*** 고난 속에서 주님을 이렇게 깊이 바라보고 신뢰하는 마음의 중심. 정말 놀랍고, 부럽고, 따라 하고픈 마음이 깊이 스며듭니다요~~
3. 하나님께서 시온을 구원하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살 것이다.
*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주목하게 되고, 하나님나라가 어떻게 펼쳐지고, 그 나라를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깊이 있게 통찰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이죠.
* 시인은 처음엔 자기가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이런 안목이 생기고, 어느덧 하나님나라를 바라보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있음이 놀랍습니다.
* 바울사도 역시 눈앞에 닥친 고난을 통해 오히려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는 현장을 알게 되고, 전 우주 만물이 주님이 다시 오시길 기다리는 상황임을 알고, 같이 인내하고 으쌰으쌰 힘을 내자고 격려하는 얘기를 들려주잖아요?(롬8:18-)
* 이런 통찰력을 통해 우리는 쉽게 낙심하거나 지치지 않고, 뚝심 있게 고난의 터널을 터벅터벅 걸어 나가는 힘을 얻게 되고, 나아가 다른 이들을 격려하는 여유도 갖게 되는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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