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5월15일(화) 눅18:31-43 큐티목소리나눔>
“메시아이신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
-인생의 참된 바램(소원)을 만나는 기도-
1.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관문도시 여리고 & 예수님의 수난 예고
*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사고팔고 누구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요단강과 그리 멀지 않은 평야지대의 도시 여리고. 이곳에서 급한 경사로 이루어지는 산골짜기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예루살렘이 나옵니다.
* 구약시절 여리고는 여호수아에 의해서 무너진 다음 폐허처럼 버려졌고, 이 시대엔 그 옆에 다시 세워져서 수도예루살렘의 관문 역할을 하는 대도시였습니다.
*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는 길에 많은 무리와 함께 이곳을 지나게 되었고,
*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들은 이제 새 세상이 펼쳐질 날이 얼마 남지않았다고 들뜬 마음에 길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 예수님은 이곳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을 따로 불러 다시 한 번 강조하셨습니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할 거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벌어질 것만 같은 신나는 일(자기들이 기대하던 다윗왕국의 회복)에 들떠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완전 귓등으로 흘려버린 거죠. 그만큼 그들은 들떠 있었습니다.
* 한편, 이곳 여리고엔 언젠가부터 구걸로 하루하루를 살아오는 맹인 거지 한 사람이 사람의 왕래가 잦은 길모퉁이에 앉아있었습니다.
2. 다윗의 자손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이 거지(마가복음에 의하면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다)는 무리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고, 누가 지나가는지 주변에 물었고, 누군지 알자 곧바로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사람들은(제자들 포함) 바쁘신 예수님이 이 사람들로 인해 지체될까봐 소경을 조용히 시킵니다. 실은 자신들의 기대감과 달려갈 길이 방해받을까봐 장애물을 치우는 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멈춰 서셨고, 그를 데리고 오라셨고, 직접 묻고 듣고,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마음에 담고서 그렇게 말한 것일까요? 걍 구걸해서 하루 벌어먹고 사는 인생,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요청하듯 “동전 한 닢 던져줍쇼. 아님 말고..”라는 뜻이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마음에 진정으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이 순간 구걸대신에 그가 진짜 마음에 담고 있었던 인생에 대한 소원을 가지고 불렀을 수도 있습니다.
* “너의 소원이 뭐니?” 예수님이 하신 이 질문이 그의 마음속에 진짜 자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 확~ 불을 질러버렸습니다. 그저 동전 한닢 바라는 마음은 완전히 사라졌고, 내 앞에 서 계신 분은 그저 듣기 좋은 말로 메시아, 왕이라 부를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진짜 메시아였고, 그분 앞에 내 인생의 가장 진지한 대답을 할 순간이 찾아온 겁니다.
*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빌어먹고 살고 있어도, 그래도 한 번 태어난 인생인데, 눈만 뜬다면, 이 장애만 넘어설 수 있다면, 난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해도 내가 사람이라는 걸 한 번이라도 제대로 느끼고 살아볼 수 있다면, 단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 “주님, 보기를 원합니다.”
* 예수님은 가여운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고, 다시 보게 해주셨습니다.
* 그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제자의 길을 걸어간 거죠.
* 그러나 그가 따라간 그 길은 정말 쉽지 않은 길이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가 처음 뜬 눈으로 만나는 세상에서 목격하는 것은 세상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는 그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서 초대교회의 이름 없는 벽돌 한 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 한편, 이 이야기를 통해 누가는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 부활을 전혀 알아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제자들과 대비해서 보게 된 이 사람을 통해서 묘한 느낌과 뉘앙스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아... 하나님나라의 진리는 믿음을 통해서 보게 되는 거구나.... 비록 지척에서 삼년을 따라다닌 제자들이라도 자기 욕심과 지기 마음에 가득 차 있을 때는 예수님이 바로 앞에서 얘기해주셔도 보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구나.... 이런 깨달음이 찾아오네요...
3. 예수님 마음은...
*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 지심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입니다.
*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무거운 일을 앞두고 마음의 엄청 무거울 수 있는 상황. 이럴 때면 주변을 돌아볼 틈이 생기지 않는 게 대부분 우리의 모습이겠죠..
*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그 이유가 바로 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뜨게 하고 포로된 것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함인데...
*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서 당신을 찾는 이를 섬기십니다. 저곳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위해 서두르고자 두 소경을 막아선 다른 사람들과 제자들의 마음을 무색케 하신 예수님...
* (그렇다고 이곳 여기에서 매몰되어-너무나 많은 병자들과 불구자들이 예수님의 고쳐주심을 바라고 쫓아오는 상황...- 저곳으로 가야하는 목표를 놓치신 것도 아니라는...^^)
*** 바쁘게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으로 사람들을 대하기 쉬운 현실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가득 하길 기도합니다.
Ps. “예수기도”
* 동방교회에서는 “예수기도”라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문을 단순하게 반복해서 기도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바로 바디매오의 기도를 우리 상황에서 고백하고 올려드리는 거죠. 오늘날에는 개신교에서도(맑은물교회에서도^^) 많이들 이 방법으로 기도하고 있구요.
* 단순하게 반복해서 기도하다보면, 내 마음 속에 예수님이 질문하시는 걸 듣습니다. “그래. 네 소원이 뭐니?”
* 처음엔 겉으로 드러난 내 삶의 이런저런 필요들이 떠오르고, 그런 걸 아뢰는 마음으로 기도하죠. 하지만 기도가 깊어질수록 내 마음의 중심에서 내 인생의 참 목적과 방향을 두고 간절한 바램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 점점 이 깊은 열망을 마음에 품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합니다.
* 기도 중에 우리는 주님의 더 깊은 질문을 듣고, 내 마음이 점점 이런저런 욕심들로부터 벗어나 주님이 주신 인생의 목적과 의미에 내 마음을 합하여드리는 가운데 주님주신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 일상 중에 무시로 이 기도문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보는 것도 좋겠죠?^^
http://podbbang.com/ch/8784?e=22606316
“메시아이신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
-인생의 참된 바램(소원)을 만나는 기도-
1.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관문도시 여리고 & 예수님의 수난 예고
*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사고팔고 누구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요단강과 그리 멀지 않은 평야지대의 도시 여리고. 이곳에서 급한 경사로 이루어지는 산골짜기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예루살렘이 나옵니다.
* 구약시절 여리고는 여호수아에 의해서 무너진 다음 폐허처럼 버려졌고, 이 시대엔 그 옆에 다시 세워져서 수도예루살렘의 관문 역할을 하는 대도시였습니다.
*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는 길에 많은 무리와 함께 이곳을 지나게 되었고,
*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들은 이제 새 세상이 펼쳐질 날이 얼마 남지않았다고 들뜬 마음에 길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 예수님은 이곳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을 따로 불러 다시 한 번 강조하셨습니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할 거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벌어질 것만 같은 신나는 일(자기들이 기대하던 다윗왕국의 회복)에 들떠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완전 귓등으로 흘려버린 거죠. 그만큼 그들은 들떠 있었습니다.
* 한편, 이곳 여리고엔 언젠가부터 구걸로 하루하루를 살아오는 맹인 거지 한 사람이 사람의 왕래가 잦은 길모퉁이에 앉아있었습니다.
2. 다윗의 자손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이 거지(마가복음에 의하면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다)는 무리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고, 누가 지나가는지 주변에 물었고, 누군지 알자 곧바로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사람들은(제자들 포함) 바쁘신 예수님이 이 사람들로 인해 지체될까봐 소경을 조용히 시킵니다. 실은 자신들의 기대감과 달려갈 길이 방해받을까봐 장애물을 치우는 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멈춰 서셨고, 그를 데리고 오라셨고, 직접 묻고 듣고,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마음에 담고서 그렇게 말한 것일까요? 걍 구걸해서 하루 벌어먹고 사는 인생,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요청하듯 “동전 한 닢 던져줍쇼. 아님 말고..”라는 뜻이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마음에 진정으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이 순간 구걸대신에 그가 진짜 마음에 담고 있었던 인생에 대한 소원을 가지고 불렀을 수도 있습니다.
* “너의 소원이 뭐니?” 예수님이 하신 이 질문이 그의 마음속에 진짜 자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 확~ 불을 질러버렸습니다. 그저 동전 한닢 바라는 마음은 완전히 사라졌고, 내 앞에 서 계신 분은 그저 듣기 좋은 말로 메시아, 왕이라 부를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진짜 메시아였고, 그분 앞에 내 인생의 가장 진지한 대답을 할 순간이 찾아온 겁니다.
*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빌어먹고 살고 있어도, 그래도 한 번 태어난 인생인데, 눈만 뜬다면, 이 장애만 넘어설 수 있다면, 난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해도 내가 사람이라는 걸 한 번이라도 제대로 느끼고 살아볼 수 있다면, 단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 “주님, 보기를 원합니다.”
* 예수님은 가여운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고, 다시 보게 해주셨습니다.
* 그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제자의 길을 걸어간 거죠.
* 그러나 그가 따라간 그 길은 정말 쉽지 않은 길이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가 처음 뜬 눈으로 만나는 세상에서 목격하는 것은 세상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는 그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서 초대교회의 이름 없는 벽돌 한 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 한편, 이 이야기를 통해 누가는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 부활을 전혀 알아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제자들과 대비해서 보게 된 이 사람을 통해서 묘한 느낌과 뉘앙스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아... 하나님나라의 진리는 믿음을 통해서 보게 되는 거구나.... 비록 지척에서 삼년을 따라다닌 제자들이라도 자기 욕심과 지기 마음에 가득 차 있을 때는 예수님이 바로 앞에서 얘기해주셔도 보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구나.... 이런 깨달음이 찾아오네요...
3. 예수님 마음은...
*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 지심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입니다.
*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무거운 일을 앞두고 마음의 엄청 무거울 수 있는 상황. 이럴 때면 주변을 돌아볼 틈이 생기지 않는 게 대부분 우리의 모습이겠죠..
*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그 이유가 바로 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뜨게 하고 포로된 것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함인데...
*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서 당신을 찾는 이를 섬기십니다. 저곳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위해 서두르고자 두 소경을 막아선 다른 사람들과 제자들의 마음을 무색케 하신 예수님...
* (그렇다고 이곳 여기에서 매몰되어-너무나 많은 병자들과 불구자들이 예수님의 고쳐주심을 바라고 쫓아오는 상황...- 저곳으로 가야하는 목표를 놓치신 것도 아니라는...^^)
*** 바쁘게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으로 사람들을 대하기 쉬운 현실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가득 하길 기도합니다.
Ps. “예수기도”
* 동방교회에서는 “예수기도”라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문을 단순하게 반복해서 기도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바로 바디매오의 기도를 우리 상황에서 고백하고 올려드리는 거죠. 오늘날에는 개신교에서도(맑은물교회에서도^^) 많이들 이 방법으로 기도하고 있구요.
* 단순하게 반복해서 기도하다보면, 내 마음 속에 예수님이 질문하시는 걸 듣습니다. “그래. 네 소원이 뭐니?”
* 처음엔 겉으로 드러난 내 삶의 이런저런 필요들이 떠오르고, 그런 걸 아뢰는 마음으로 기도하죠. 하지만 기도가 깊어질수록 내 마음의 중심에서 내 인생의 참 목적과 방향을 두고 간절한 바램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 점점 이 깊은 열망을 마음에 품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합니다.
* 기도 중에 우리는 주님의 더 깊은 질문을 듣고, 내 마음이 점점 이런저런 욕심들로부터 벗어나 주님이 주신 인생의 목적과 의미에 내 마음을 합하여드리는 가운데 주님주신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 일상 중에 무시로 이 기도문을 반복해서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보는 것도 좋겠죠?^^
http://podbbang.com/ch/8784?e=22606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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