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5월25일(금) 눅20:27-40 큐티목소리나눔>
“현재 이곳에서 부족함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부활’이란?”
1.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음
* 예수님 시절에 유대교 안에서는 광범위하게 부활사상이 퍼져있었음. 하나님이 새롭게 하신 세상에서 아브라함부터 모든 유대인들이 다시 일어나 새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신앙이었죠.
* 근데, 사두개인들은 유독 이걸 싫어했고 거부했다는데... 표면적 이유는, 이들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모세오경에서 부활에 대해 가르치지 않기 때문
*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사두개인들이야 현실적인 지배세력으로서 이곳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사는 사람들인데, 뭔 내세에 대한 소망이나 기대감이 있을까요? 걍 이곳이 천국일 텐데 말예요...
* 게다가 부활에 대한 믿음은 혁명적인 경향을 띠게 마련이라(부활을 믿으면 현재의 목숨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과격하거나 용감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되니까요), 지배계급으로서는 이 사상의 전파를 막고 싶어지는 건 당근~!!
* 한편, 바리새인들은 메시아가 오실 것도, 그가 새 세상을 열 것에 대한 기대감도 갖고 있었고, 부활한 이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음.
*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두개인들은 이런 부활사상의 전파를 막아보려 했으나,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의 말을 더 잘 믿었습니다.
2.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바로 이 “부활”로 시비를 걸었는데...
* 일곱 형제가 차례대로 죽고, 모두 형사취수(兄死娶嫂,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제도, 과부에 대한 사회보장제도^^) 제도를 따라 한 여인과 결혼. 그럼 부활 때 누가 진짜 부부임?
* 이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기 위한 예라고 이야기를 만들어 제시한 것임.
*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의문을 제기했을 것 같은 분위기라는...
* 사두개인들은 사람들을 몰고 다니며 혁명적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이 젊은 투사에 대해 불안 게이지가 한참 오르고 있었고, 이번 참에 그의 가르침에 대해 논리적 허점을 폭로함으로써 기세를 꺾어볼 심산이었습니다.
3. 부활 이후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는 기회로 선용하신 예수님^^
* 예수님은 부활 이후의 삶에 대해 현재 우리의 삶이 그 모습 그대로 이어질 거라는 한심한(^^)생각에 일침을 가하십니다.
* “그 때는 결혼도 없고, 천사처럼 살 것이다.”
* 음... 좀 거시기 한가요? 그럼 무슨 재미로 살아? 뭐 이런 의문이.. 창2:24에서 하나님이 주신 결혼은 타락하지 전, 창조의 원래 의도 가운데 포함될 텐데... 뭐 이런 의문이 듭니다만...
* 암튼 지금과 다른 한층 더 완성된 모습일 거라는 강조점을 일단 접수하고, 나머지 의문은 부활 후에 직접 경험하게 될 때 푸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 말씀을 대로 결혼 같은 게 없어진다 하더라도 완성될 하나님나라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관계의 풍성함과 즐거움이 가득할 거라는~~ㅎㅎ
* 한 가지 더, 예수님은 성경의 기록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예수님 당시로도 세상을 떠난 지 천 년이 훨씬 더 된)아브라함, 이삭, 야곱과도 현재형으로 교재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눈에 사라지는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난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말씀이죠.
* 제일 중요한 말씀, “하나님나라의 삶이 어떠냐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관계 맺고 그 나라와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삶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역경과 눈물, 한숨, 더 나아가 하나님나라를 위협하는 불의와 불공평에 맞서 싸우는 상황 아래서 지금 여기에 집착하지 않고 역동적이고 혁명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왜냐면, 지금 여기서 누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고, 부활 이후에도 쭈~~욱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겁이 없어지는 거죠^^
4. 인류 역사상 가장 물질적으로 부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부활”이란?
* 우리들이 생각이야 어떻게 하든, 실제 생활과 정서 속에서는 사두개인들처럼 부활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는, 어쩌면 별 기대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제법 많은 것도 사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보다 더한 건, 기독교 신앙이 죽어서 ‘천국(천당)’이라는 일종의 극락(파라다이스) 같은 곳으로 가는 구원열차 올라타는 티켓 정도로 생각하고,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내 맘대로 누리다가(심지어 이런 삶을 도와주는 마술램프 요정처럼 성령님을 생각하기도 하고), 죽으면 그곳으로 가면 된다는 태도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다는 슬픈 현실!!
* 이런 신앙의 흐름 속에서 ‘부활’이 지니는 의미는 정말 축소되거나, 심지어 기대조차 하지 않는 요소가 되어버린다는 무서운 사실!!(완전 사두개인들처럼 되어버리는 거죠...ㅠㅠ)
* 그러나 ‘부활’은 분명 있을 것이고, 부활과 더불어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 심판의 평가 자료는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어떤 삶의 기준과 철학과 목표를 가지고 살았는가라는 것임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 바울은 말합니다.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우리는 아직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고전15:13-22)
* 그러므로 부활 이후의 삶을 목표로 하여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야 함을 마음에 깊이 새겨봅니다. 그 때 내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지금 여기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 때로 지금 여기에 집착하고 안주하고 엉덩이 무겁게 눌러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쑥쑥 자라오를 때, 부활의 주님을 떠올려보고, 다시금 주님 나라와 그 의를 붙잡고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중요하구요~~
http://podbbang.com/ch/8784?e=22614655
“현재 이곳에서 부족함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부활’이란?”
1.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음
* 예수님 시절에 유대교 안에서는 광범위하게 부활사상이 퍼져있었음. 하나님이 새롭게 하신 세상에서 아브라함부터 모든 유대인들이 다시 일어나 새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신앙이었죠.
* 근데, 사두개인들은 유독 이걸 싫어했고 거부했다는데... 표면적 이유는, 이들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모세오경에서 부활에 대해 가르치지 않기 때문
*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사두개인들이야 현실적인 지배세력으로서 이곳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사는 사람들인데, 뭔 내세에 대한 소망이나 기대감이 있을까요? 걍 이곳이 천국일 텐데 말예요...
* 게다가 부활에 대한 믿음은 혁명적인 경향을 띠게 마련이라(부활을 믿으면 현재의 목숨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과격하거나 용감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되니까요), 지배계급으로서는 이 사상의 전파를 막고 싶어지는 건 당근~!!
* 한편, 바리새인들은 메시아가 오실 것도, 그가 새 세상을 열 것에 대한 기대감도 갖고 있었고, 부활한 이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음.
*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두개인들은 이런 부활사상의 전파를 막아보려 했으나,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의 말을 더 잘 믿었습니다.
2.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바로 이 “부활”로 시비를 걸었는데...
* 일곱 형제가 차례대로 죽고, 모두 형사취수(兄死娶嫂,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제도, 과부에 대한 사회보장제도^^) 제도를 따라 한 여인과 결혼. 그럼 부활 때 누가 진짜 부부임?
* 이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기 위한 예라고 이야기를 만들어 제시한 것임.
*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의문을 제기했을 것 같은 분위기라는...
* 사두개인들은 사람들을 몰고 다니며 혁명적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이 젊은 투사에 대해 불안 게이지가 한참 오르고 있었고, 이번 참에 그의 가르침에 대해 논리적 허점을 폭로함으로써 기세를 꺾어볼 심산이었습니다.
3. 부활 이후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는 기회로 선용하신 예수님^^
* 예수님은 부활 이후의 삶에 대해 현재 우리의 삶이 그 모습 그대로 이어질 거라는 한심한(^^)생각에 일침을 가하십니다.
* “그 때는 결혼도 없고, 천사처럼 살 것이다.”
* 음... 좀 거시기 한가요? 그럼 무슨 재미로 살아? 뭐 이런 의문이.. 창2:24에서 하나님이 주신 결혼은 타락하지 전, 창조의 원래 의도 가운데 포함될 텐데... 뭐 이런 의문이 듭니다만...
* 암튼 지금과 다른 한층 더 완성된 모습일 거라는 강조점을 일단 접수하고, 나머지 의문은 부활 후에 직접 경험하게 될 때 푸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 말씀을 대로 결혼 같은 게 없어진다 하더라도 완성될 하나님나라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관계의 풍성함과 즐거움이 가득할 거라는~~ㅎㅎ
* 한 가지 더, 예수님은 성경의 기록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예수님 당시로도 세상을 떠난 지 천 년이 훨씬 더 된)아브라함, 이삭, 야곱과도 현재형으로 교재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눈에 사라지는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난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말씀이죠.
* 제일 중요한 말씀, “하나님나라의 삶이 어떠냐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관계 맺고 그 나라와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삶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역경과 눈물, 한숨, 더 나아가 하나님나라를 위협하는 불의와 불공평에 맞서 싸우는 상황 아래서 지금 여기에 집착하지 않고 역동적이고 혁명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왜냐면, 지금 여기서 누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고, 부활 이후에도 쭈~~욱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겁이 없어지는 거죠^^
4. 인류 역사상 가장 물질적으로 부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부활”이란?
* 우리들이 생각이야 어떻게 하든, 실제 생활과 정서 속에서는 사두개인들처럼 부활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는, 어쩌면 별 기대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제법 많은 것도 사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보다 더한 건, 기독교 신앙이 죽어서 ‘천국(천당)’이라는 일종의 극락(파라다이스) 같은 곳으로 가는 구원열차 올라타는 티켓 정도로 생각하고,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내 맘대로 누리다가(심지어 이런 삶을 도와주는 마술램프 요정처럼 성령님을 생각하기도 하고), 죽으면 그곳으로 가면 된다는 태도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다는 슬픈 현실!!
* 이런 신앙의 흐름 속에서 ‘부활’이 지니는 의미는 정말 축소되거나, 심지어 기대조차 하지 않는 요소가 되어버린다는 무서운 사실!!(완전 사두개인들처럼 되어버리는 거죠...ㅠㅠ)
* 그러나 ‘부활’은 분명 있을 것이고, 부활과 더불어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 심판의 평가 자료는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어떤 삶의 기준과 철학과 목표를 가지고 살았는가라는 것임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 바울은 말합니다.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우리는 아직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고전15:13-22)
* 그러므로 부활 이후의 삶을 목표로 하여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야 함을 마음에 깊이 새겨봅니다. 그 때 내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지금 여기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 때로 지금 여기에 집착하고 안주하고 엉덩이 무겁게 눌러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쑥쑥 자라오를 때, 부활의 주님을 떠올려보고, 다시금 주님 나라와 그 의를 붙잡고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중요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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