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6월15일(금) 눅23:1-25 큐티목소리나눔>
“빌라도와 헤롯 법정, 거기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
*** 오늘은 빌라도 법정과 헤롯의 처소, 다시 빌라도 법정에 서게 되는 예수님의 동선을 따라 같이 동행하면서 나도 그 자리에 같이 서 있어 보는 시간입나다.
* 그 자리에 동참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만 살펴보고, 지금 나의 자리는 그 사람들 중 어디쯤일지를 묵상해봅니다.
1. 빌라도
*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형집행은 로마총독의 최종 판결로 이루어지니까요.
* 이른 아침, 느지막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었는데, 아침부터 불려나온 빌라도,
* 예수님에게 씌워진 죄목은 “유대의 왕”, 귀찮은 듯 심문하는 빌라도,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 예수님 왈,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 이 말은 당시의 어법으로 해석하면, “당신 말이 맞소.”라는 의미. 예수님은 그 말씀을 인정하신 거죠,
* 허나 ‘메시아’를 교묘하게 ‘유대인의 왕’이라 부름으로써 정치적 의미를 부각한 게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후의 모든 심문절차에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더 이상의 왜곡을 막으시겠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 빌라도는 직감적으로 자기들끼리의 시기심, 파워게임의 희생양인 걸 알았고, 부인까지 그의 무죄를 통보해온 통에(마태복음에 따르면), 그를 풀어주고자 하였습니다. 그게 노력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노력은 했다는....
* 빌라도는 자신의 군사력으로 예루살렘을 통치하고 있었음에도, 이전에 수많은 민란의 위기에도 군사력으로 통제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민란을 염려하는 나약한 모습으로 돌변하였고, ‘바라바’라 이름 하는 또 다른 민란의 우두머리(?)를 끌어들여 협상을 시도하죠.
* 결국, (마태복음에 따르면) 빌라도가 아무리 손을 씻는 제스처를 취해도, 그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공모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 어떤 사람은 분명, 예수님 앞에서의 빌라도처럼 결단하고, 결심하고, 행동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진리를 외면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죠...
2. 헤롯
* 예수님은 잠시 헤롯의 심문을 받게 되는데요...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인 걸 알고서 빌라도는 그를 갈릴리 분봉왕 헤롯에게 인계 했기 때문인데요.. 마침 그가 예루살렘에 와 있었고...이 골치 아픈 사건을... 잘 됐다~~ 뭐 이런 거죠..
* 헤롯, 그는 예수님을 만나자 엄청 반가워했는데... 이유는 단순히 기적에 대한 호기심 때문.
*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흥미를 잃고, 경비병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으니...
* 시대의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 역시 예수님의 죽음에 죄 없다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 또 어떤 사람은 헤롯처럼, 그저 예수님을, 교회 출석을 흥밋거리 중 하나로 생각하고 지내다가, 재미없으면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3. 대제사장들, 군중들
* 대제사장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을 죽인 당사자인거고...
* 대제사장들과 함께 온 군중들은 예루살렘 주민일 가능성이 높겠죠?
* 적어도 예수님과 함께 온 갈릴리 사람들은 아닌 것 같고... 뭐 멀리서 온 유월절 순례객이라 하더라도 바라바라는 인물에 대한 호감,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말에 쉽게 흥분하는 군중심리 등등으로 인해 분위기메이커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ㅠㅠ
* 이들 역시 예수님의 죽음에 공모자라는 명백한 사실!!
***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대제사장처럼 내 이익과 명예, 권력에 방해가 된다고 예수님을 명백하게 거절하기도 하고...
4. 바라바
* 자신의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졸지에 사형을 면하고 풀려나게 된 사람.
*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바라바”가 살아나게 되는 역설적 현장에 서있는 거죠...
*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 또 어떤 사람은(바로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이 바라바처럼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내가 죽음에서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깊이 느끼고 알아차리기도 하고...
4. 예수님
* 이곳에 오직 외 없으신 한 분이 있었는데, 바로 예수님.
* 그 의로우신 분, 무죄하신 분이 모든 이의 죄를 대신해서 이제 죽음을 받아들이시고,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로 끌려가시는 거라는...
*** 나 역시 이 재판정 어디엔가 분명 서 있었고, 부지불식중에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 또한 바라바처럼 예수님의 죽음으로 내가 생명을 얻었음을...
*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생명을 얻은 바라바의 마음에 가만 멈춰보고, 지금 내가 누리고 살고 있는 생명과 일상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 주님의 평화가, 생명이 지금 여기 내 삶에 가득하기를~~
http://podbbang.com/ch/8784?e=22630767
“빌라도와 헤롯 법정, 거기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
*** 오늘은 빌라도 법정과 헤롯의 처소, 다시 빌라도 법정에 서게 되는 예수님의 동선을 따라 같이 동행하면서 나도 그 자리에 같이 서 있어 보는 시간입나다.
* 그 자리에 동참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만 살펴보고, 지금 나의 자리는 그 사람들 중 어디쯤일지를 묵상해봅니다.
1. 빌라도
*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형집행은 로마총독의 최종 판결로 이루어지니까요.
* 이른 아침, 느지막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었는데, 아침부터 불려나온 빌라도,
* 예수님에게 씌워진 죄목은 “유대의 왕”, 귀찮은 듯 심문하는 빌라도,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 예수님 왈,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 이 말은 당시의 어법으로 해석하면, “당신 말이 맞소.”라는 의미. 예수님은 그 말씀을 인정하신 거죠,
* 허나 ‘메시아’를 교묘하게 ‘유대인의 왕’이라 부름으로써 정치적 의미를 부각한 게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후의 모든 심문절차에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더 이상의 왜곡을 막으시겠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 빌라도는 직감적으로 자기들끼리의 시기심, 파워게임의 희생양인 걸 알았고, 부인까지 그의 무죄를 통보해온 통에(마태복음에 따르면), 그를 풀어주고자 하였습니다. 그게 노력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노력은 했다는....
* 빌라도는 자신의 군사력으로 예루살렘을 통치하고 있었음에도, 이전에 수많은 민란의 위기에도 군사력으로 통제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민란을 염려하는 나약한 모습으로 돌변하였고, ‘바라바’라 이름 하는 또 다른 민란의 우두머리(?)를 끌어들여 협상을 시도하죠.
* 결국, (마태복음에 따르면) 빌라도가 아무리 손을 씻는 제스처를 취해도, 그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공모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 어떤 사람은 분명, 예수님 앞에서의 빌라도처럼 결단하고, 결심하고, 행동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진리를 외면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죠...
2. 헤롯
* 예수님은 잠시 헤롯의 심문을 받게 되는데요...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인 걸 알고서 빌라도는 그를 갈릴리 분봉왕 헤롯에게 인계 했기 때문인데요.. 마침 그가 예루살렘에 와 있었고...이 골치 아픈 사건을... 잘 됐다~~ 뭐 이런 거죠..
* 헤롯, 그는 예수님을 만나자 엄청 반가워했는데... 이유는 단순히 기적에 대한 호기심 때문.
*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흥미를 잃고, 경비병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으니...
* 시대의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 역시 예수님의 죽음에 죄 없다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 또 어떤 사람은 헤롯처럼, 그저 예수님을, 교회 출석을 흥밋거리 중 하나로 생각하고 지내다가, 재미없으면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3. 대제사장들, 군중들
* 대제사장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을 죽인 당사자인거고...
* 대제사장들과 함께 온 군중들은 예루살렘 주민일 가능성이 높겠죠?
* 적어도 예수님과 함께 온 갈릴리 사람들은 아닌 것 같고... 뭐 멀리서 온 유월절 순례객이라 하더라도 바라바라는 인물에 대한 호감,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말에 쉽게 흥분하는 군중심리 등등으로 인해 분위기메이커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ㅠㅠ
* 이들 역시 예수님의 죽음에 공모자라는 명백한 사실!!
***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대제사장처럼 내 이익과 명예, 권력에 방해가 된다고 예수님을 명백하게 거절하기도 하고...
4. 바라바
* 자신의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졸지에 사형을 면하고 풀려나게 된 사람.
*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바라바”가 살아나게 되는 역설적 현장에 서있는 거죠...
*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 또 어떤 사람은(바로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이 바라바처럼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내가 죽음에서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깊이 느끼고 알아차리기도 하고...
4. 예수님
* 이곳에 오직 외 없으신 한 분이 있었는데, 바로 예수님.
* 그 의로우신 분, 무죄하신 분이 모든 이의 죄를 대신해서 이제 죽음을 받아들이시고,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로 끌려가시는 거라는...
*** 나 역시 이 재판정 어디엔가 분명 서 있었고, 부지불식중에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 또한 바라바처럼 예수님의 죽음으로 내가 생명을 얻었음을...
*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생명을 얻은 바라바의 마음에 가만 멈춰보고, 지금 내가 누리고 살고 있는 생명과 일상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 주님의 평화가, 생명이 지금 여기 내 삶에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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