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09일(목) 삼상13:1-9 큐티목소리나눔>
“블레셋과의 전투, 사울의 딜레마와 해결책”
1. 사울이 왕이 되면서 일어난 변화
* v1은 사울에 왕이 되었을 때 30세(개역한글은 40세), 이스라엘을 약 42년간 다스렸다고 이야기함. 허나 히브리 원문에는 숫자가 없음. 따라서 후대의 여러 정황을 근거로 짐작해서 숫자를 기록한 거임.
* 사울이 왕이 되면서 첫 번째 일어난 변화는 이스라엘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바로 그 상비군을 편성했다는 것입니다.
* 한 부대는 자기 통솔하에 기브아에 두고 한 부대는 아들 요나단이 지휘해서 벧엘 산지에 있게 함. 벧엘 산지는 블레셋과의 접경을 방어할 목적의 배치였겠죠^^
2. 블레셋과의 첫 번째 전투, 이스라엘의 위기
* 아니나 다를까 구체적인 도화선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요나단의 군대가 블레셋을 선제공격했고, 블레셋은 더 많은 군사를 모아 역습을 하려고 준비하는 상황이 생겼는데요...
* 양국의 군사력을 비교해보면 완전 어른과 아이수준입니다. 블레셋은 철기로 무장하고, 기병과 전차부대도 있는데 비해, 이스라엘은 그동안 블레셋의 지배를 받으면서 철기공들이 다 잡혀갔고(v20, 옛날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도공들이 다 일본으로 잡혀간 게 생각나네요...ㅠㅠ), 칼이나 창 같은 무기는 아예 소지할 수가 없었으니.. 결국 곡괭이나 낫, 뭐 이런 걸 들고 싸우러 나오는 건데요.. 비교가 될 수 없는 상황.
* 게다가 그동안의 전적은 이스라엘 쪽의 백전백패. 오죽했으면 사사기 말엽의 삼손시대로 가보면, 블레셋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도망 온 삼손을 스스로 잡아서 블레셋에게 넘기면서 하는 말이, “우리를 블레셋이 지배하는 줄 몰랐단 말인가?” 뭐 이랬단 말이죠..(삿15:11)
* 이런 상황에서 몇 배나 더 많은 블레셋 군사들이 몰려왔으니, 이스라엘사람들은 피난길에 나섰고, 군인들은 완전 겁먹을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거라.
* 이 때, 사울로서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사무엘이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어떻게 하든 일주일을 버티고 있으면 내가 가겠다고 한 말이었습니다(삼상:10:8).
* 그가 오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것이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를 선포하실 거니까 군사들의 사기가 올라가고 전쟁 해 볼만한 게 될 거라는 말씀!!
* 그가 이런 말로 군사들을 독려하고 있는데... 약속한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사무엘이 나타나지 않은 거라...
* 군사들은 완전 사기가 꺾여버렸고, 더러는 탈영하는 상황이 생겼으니...
3. 사울의 결단. 위대함? 정치력? 아님, 오만함? 불안함이었을까?
* 사울은 마침내 결단합니다. 자신이 제사를 지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선포한 겁니다.
* 그동안 사무엘이 정치, 종교적 리더십을 다 갖고 있다가, 사울에게 정치적 리더십을 넘겨줬는데... 그 사울이 위기의 상황에서 곧바로 종교적 리더십까지 행사하고 만 건데요...
사울 이후에도 수많은 왕들이 선지자의 목소리(곧 하나님이 궁극적인 왕이시라는 사실)를 거부하고 스스로 종교의 수장이 되는 경우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이른바 종교적 리더십과 정치적 리더십의 충돌 속에서 전제군주국가로 바뀌어가는 상황인 거죠.
* 한편, 사울이 이렇게까지 거창한 야심과 생각으로 제사를 드렸을 것 같지는 않구요, 단지 상황이 위급해서, 전쟁은 치러야하고, 사무엘은 안 오고, 백성은 흩어지고.. 그들을 다시 모으고 전투에 임하게 하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서.. 라는 절박함에 행한 행동으로 볼 수 있는데요...
*** 여기에 더 주목해볼 포인트가 있습니다. 절박함을 해결할 방법이 꼭 제사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 절박함과 위기감이 크면 클수록 그가 했어야할 일은 바로 전 군대를 모아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 아니었을까요? 히스기야가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위협할 때, 성전에 들어가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왕하19:14-), 모르드게가 법령을 어기고 아하수에로 왕을 면담하러 가면서 전 이스라엘에게 금식 기도할 것을 요청한 것처럼(에스더4:16) 말예요.
* 기도한다는 건 당면한 전쟁상황에는 전혀 안 어울리는 외적 모습이죠. 마치 가나안 입성을 위해 강을 건너고, 여리고전투에 임할 때, 갑자기 모든 군사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며칠간 끙끙대며 쉬고 있는 거랑 비슷한 거죠(수5장). 하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이 위기를 풀어 가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을 청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 위에 이루어지는 행동인 겁니다.
* 거기에 비하면, 제사를 드리는 건 백성들 앞에서 뭔가 가시적으로 하나님의 임제를 드러내고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이벤트인 셈인데요..(물론 제사 본연의 목적은 그게 아니지만)
* 사울은 이 이벤트를 택했고, 거기에 따르는 위험마저 무시했습니다. 바로 사무엘의 종교적 리더십을 자신이 행해버린 거죠.
* 왜 그랬을까? 단지 상황에 내몰려서? 아닌 것 같아요. 그의 마음 중심에 있는 가장 중요한 믿음은 ‘내가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왕위가 유지되는 거야.’ 생각 아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왕위를 주셨어. 그러니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책임지실 거야.’는 마음이 아닌 거죠... 암몬에게 승리한 이후에 사람들이 지기를 왕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 그에게 엄청 크게 각인 되어있었던 거고, 그게 이토록 치명적인 행동을 하게 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러고 보면, 위기의 상황에 내몰릴 때, 다급해질 때, 내 마음의 중심에 뭐가 자라하는가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게 가장 일반적이라...
* 어쩔 수 없었어요. 너무 급했거든요. 내 상황이 되 보세요.. 등등 아무리 절박한 상황을 강조해도 그 상황에서 하나님대신 딴 걸 찾고 그 행동을 하게 한 건, 바로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생존본능인 거죠.
*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셔야하는 건데 말입니다...
* 그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실지....(이건 내일 이어집니다요~~)
** 사울은 그런 면에서 현실을 살아가며 다양한 생존본능으로 무장하고 살면서, 겉으로는 다양한 종교적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거울이라.
* 나도 부지불식중에 따르고 있는 나만의 생존본능이 있게 마련인데, 이게 하나님을 대신하고 내몰지 않도록, 아니 하나님께서 살아오면서 채득된 내 생존본능을 바꾸시고, 그 이면에 감추어진 내 불안함을, 내 존재가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을 품어주시고, 위로하시고, 주님을 의지하고 그 안에서 누리는 참된 평화를 내려주실 것을 간절히 청합니다.
* 이게 바로 믿음의 길, 영성의 길,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임을 붙잡고서 말입니다.
http://podbbang.com/ch/8784?e=22679114
“블레셋과의 전투, 사울의 딜레마와 해결책”
1. 사울이 왕이 되면서 일어난 변화
* v1은 사울에 왕이 되었을 때 30세(개역한글은 40세), 이스라엘을 약 42년간 다스렸다고 이야기함. 허나 히브리 원문에는 숫자가 없음. 따라서 후대의 여러 정황을 근거로 짐작해서 숫자를 기록한 거임.
* 사울이 왕이 되면서 첫 번째 일어난 변화는 이스라엘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바로 그 상비군을 편성했다는 것입니다.
* 한 부대는 자기 통솔하에 기브아에 두고 한 부대는 아들 요나단이 지휘해서 벧엘 산지에 있게 함. 벧엘 산지는 블레셋과의 접경을 방어할 목적의 배치였겠죠^^
2. 블레셋과의 첫 번째 전투, 이스라엘의 위기
* 아니나 다를까 구체적인 도화선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요나단의 군대가 블레셋을 선제공격했고, 블레셋은 더 많은 군사를 모아 역습을 하려고 준비하는 상황이 생겼는데요...
* 양국의 군사력을 비교해보면 완전 어른과 아이수준입니다. 블레셋은 철기로 무장하고, 기병과 전차부대도 있는데 비해, 이스라엘은 그동안 블레셋의 지배를 받으면서 철기공들이 다 잡혀갔고(v20, 옛날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도공들이 다 일본으로 잡혀간 게 생각나네요...ㅠㅠ), 칼이나 창 같은 무기는 아예 소지할 수가 없었으니.. 결국 곡괭이나 낫, 뭐 이런 걸 들고 싸우러 나오는 건데요.. 비교가 될 수 없는 상황.
* 게다가 그동안의 전적은 이스라엘 쪽의 백전백패. 오죽했으면 사사기 말엽의 삼손시대로 가보면, 블레셋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도망 온 삼손을 스스로 잡아서 블레셋에게 넘기면서 하는 말이, “우리를 블레셋이 지배하는 줄 몰랐단 말인가?” 뭐 이랬단 말이죠..(삿15:11)
* 이런 상황에서 몇 배나 더 많은 블레셋 군사들이 몰려왔으니, 이스라엘사람들은 피난길에 나섰고, 군인들은 완전 겁먹을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거라.
* 이 때, 사울로서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사무엘이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어떻게 하든 일주일을 버티고 있으면 내가 가겠다고 한 말이었습니다(삼상:10:8).
* 그가 오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것이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를 선포하실 거니까 군사들의 사기가 올라가고 전쟁 해 볼만한 게 될 거라는 말씀!!
* 그가 이런 말로 군사들을 독려하고 있는데... 약속한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사무엘이 나타나지 않은 거라...
* 군사들은 완전 사기가 꺾여버렸고, 더러는 탈영하는 상황이 생겼으니...
3. 사울의 결단. 위대함? 정치력? 아님, 오만함? 불안함이었을까?
* 사울은 마침내 결단합니다. 자신이 제사를 지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선포한 겁니다.
* 그동안 사무엘이 정치, 종교적 리더십을 다 갖고 있다가, 사울에게 정치적 리더십을 넘겨줬는데... 그 사울이 위기의 상황에서 곧바로 종교적 리더십까지 행사하고 만 건데요...
사울 이후에도 수많은 왕들이 선지자의 목소리(곧 하나님이 궁극적인 왕이시라는 사실)를 거부하고 스스로 종교의 수장이 되는 경우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이른바 종교적 리더십과 정치적 리더십의 충돌 속에서 전제군주국가로 바뀌어가는 상황인 거죠.
* 한편, 사울이 이렇게까지 거창한 야심과 생각으로 제사를 드렸을 것 같지는 않구요, 단지 상황이 위급해서, 전쟁은 치러야하고, 사무엘은 안 오고, 백성은 흩어지고.. 그들을 다시 모으고 전투에 임하게 하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서.. 라는 절박함에 행한 행동으로 볼 수 있는데요...
*** 여기에 더 주목해볼 포인트가 있습니다. 절박함을 해결할 방법이 꼭 제사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 절박함과 위기감이 크면 클수록 그가 했어야할 일은 바로 전 군대를 모아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 아니었을까요? 히스기야가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위협할 때, 성전에 들어가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왕하19:14-), 모르드게가 법령을 어기고 아하수에로 왕을 면담하러 가면서 전 이스라엘에게 금식 기도할 것을 요청한 것처럼(에스더4:16) 말예요.
* 기도한다는 건 당면한 전쟁상황에는 전혀 안 어울리는 외적 모습이죠. 마치 가나안 입성을 위해 강을 건너고, 여리고전투에 임할 때, 갑자기 모든 군사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며칠간 끙끙대며 쉬고 있는 거랑 비슷한 거죠(수5장). 하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이 위기를 풀어 가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을 청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 위에 이루어지는 행동인 겁니다.
* 거기에 비하면, 제사를 드리는 건 백성들 앞에서 뭔가 가시적으로 하나님의 임제를 드러내고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이벤트인 셈인데요..(물론 제사 본연의 목적은 그게 아니지만)
* 사울은 이 이벤트를 택했고, 거기에 따르는 위험마저 무시했습니다. 바로 사무엘의 종교적 리더십을 자신이 행해버린 거죠.
* 왜 그랬을까? 단지 상황에 내몰려서? 아닌 것 같아요. 그의 마음 중심에 있는 가장 중요한 믿음은 ‘내가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왕위가 유지되는 거야.’ 생각 아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왕위를 주셨어. 그러니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책임지실 거야.’는 마음이 아닌 거죠... 암몬에게 승리한 이후에 사람들이 지기를 왕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 그에게 엄청 크게 각인 되어있었던 거고, 그게 이토록 치명적인 행동을 하게 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러고 보면, 위기의 상황에 내몰릴 때, 다급해질 때, 내 마음의 중심에 뭐가 자라하는가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게 가장 일반적이라...
* 어쩔 수 없었어요. 너무 급했거든요. 내 상황이 되 보세요.. 등등 아무리 절박한 상황을 강조해도 그 상황에서 하나님대신 딴 걸 찾고 그 행동을 하게 한 건, 바로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생존본능인 거죠.
*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셔야하는 건데 말입니다...
* 그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실지....(이건 내일 이어집니다요~~)
** 사울은 그런 면에서 현실을 살아가며 다양한 생존본능으로 무장하고 살면서, 겉으로는 다양한 종교적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거울이라.
* 나도 부지불식중에 따르고 있는 나만의 생존본능이 있게 마련인데, 이게 하나님을 대신하고 내몰지 않도록, 아니 하나님께서 살아오면서 채득된 내 생존본능을 바꾸시고, 그 이면에 감추어진 내 불안함을, 내 존재가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을 품어주시고, 위로하시고, 주님을 의지하고 그 안에서 누리는 참된 평화를 내려주실 것을 간절히 청합니다.
* 이게 바로 믿음의 길, 영성의 길,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임을 붙잡고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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