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7일(수) 삼상28:12-25 큐티목소리나눔>
“하나님은 사울을 불쌍히 여기셔서 사무엘의 영혼을 보내주시는데...”
1.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사울의 모습, 그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 그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신탁을 들을 수 없었던 사울, 신접한 여인을 찾아서라도 사무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울, 그 불쌍한 영혼은 너무나 답답해서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 하나님은 이런 사울에게 불쌍한 마음이 들어, 신접한 여인을 통해 사무엘의 영혼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전해야 할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달하시는데...
<주의> 무당과 영혼을 불러올림
* 이 여인은 강신무일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한다고 믿는 일종의 구덩이에서 조상신을 불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 그녀가 불러올린 사무엘은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그녀와 그 방법을 사용하여 사무엘을 보여주셨을 수 있습니다. 한편, 전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말 그대로 자신의 방식과 다른 귀신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그녀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쪽이고요^^
* 중요한 것은 사울은 사무엘을 만났고, 예전의 그 이야기를 다시 확증해서 듣는 것으로 끝이 났다는 거죠.
2. 사울의 인생은 왜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을까? 왜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까? 잠시 돌아보면요...
* 망가진 길을 가게 된 것은 결국 그가 인생 속에서 배운 것을 되짚어 보면서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죠.
* 일상과 종교의 이원론적 분리 : 하나님은 제사만 챙겨드리면 된다. 일상에서 누리는 지위와 유지방식은 내식대로 살면 되지 뭐~~(백성들의 지지, 전쟁 승리 등).. 사사기 시대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온 삶의 태도가 쭉 이어지는 거죠...
* 권력에 대한 집착 : 처음에 그는 집착이 없었고 오히려 소심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왕은 맞지 않는 옷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왕이 된 다음 그는 달라졌습니다. 권력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고, 소심으로부터 출발한 사람답게 권력을 지키는데도 소심한 방식(질투와 경쟁자 몰아내기)을 취했습니다.
* 사람들로부터의 인정, 경쟁자에 대한 질투...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돌성...
*** 왜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까?
*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을 텐데...
* 자기 속에 있는 고집, 집착 등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걸림돌이었겠죠...
* 결국 근본 문제는 하나님 없이 자기가 최종결정자가 되어 살아가는 죄성인 거죠, 죄가 상처나 두려움, 불안 등의 심리와 어울어지면서 더욱더 강화시키고, 의지적 행동을 만들어낸 것. 그러니 하나님을 찾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죠.
*** 돌아보니 사울의 불행한 삶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네요...ㅠㅠ
* (사59:1,2) 주님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님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 cf. 그가 그렇게 소심한 사람인 것을 하나님은 몰랐나? 왜 그런 소심한 사람을 왕으로 세워가지고...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요...
(삼상15:17) 임금님께서 스스로 하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던 그 무렵에 주님께서 임금님께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셨습니다....
*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소심한 것 자체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지 그 사람의 특징일 따름이죠. 그 소심함이 인간의 죄성과 맞물려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게 문제인 거죠.
* 사울은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소심함과 경쟁심, 질투와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배우고 주장하고 성숙의 길을 걸어가야 했었는데... 이 모든 것 뒤에 자신의 죄가 있음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을 찾아야 했는데 말입니다요...
* (사55:6,7)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 “그 길을 버리고, 그 생각을 버리고” : “미움 받을 용기”에서처럼, 스스로 그 길을 벗어나지 않기로 하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다양한 변명들을 늘어놓는 것에 불과하다. 죄를 벗어던지고, 집착을 벗어 내동댕이치고, 하나님을 향한 강한 순종의 걸음을 옮겨야 하는 거죠.
*** 하나님이 주신 개인적 특징, 그리고 성숙의 과제
* 소심함이든, 과감함이든, 모험적이든, 그 사람의 특징일 따름이다. 하나님을 따라 나서는 길에서 그것은 성숙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운 특징이 되는데요...
* 허나, 그 어떤 성격도 자신의 죄성과 결합하면 정말 사악한 결과들로 이어지게 된다는 걸 사울을 통해 우리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네요...ㅠㅠ
*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란 건, 하나님을 만나서 나 자신의 성격을 잘 알게 되고, 그 성격에 기생하는 자신의 죄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고 돌이킬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거죠.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우린 그 길을 들어섰구요.
* (시131:1)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 (롬12:3)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 예를 들어 만약 사울처럼 소심한 사람이 왕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는 그가 부름 받은 만큼 하면 되는 거죠.
3. 사무엘을 통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왜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서 사울에게 메시지를 전하셨을까요?
* 그것도 파국을 선언하는 메시지를...
* 생각해보면, 이건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죠. 왜 가롯유다에게 예수님이 빵을 떼어주시면서 경고하셨듯이 말예요...
* 가장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사울은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전쟁을 멈추고 석고대죄하고 당면한 전쟁 앞에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전 군에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는 등등.. 또 급히 다윗을 찾아 왕위를 넘겨주고... 뭐 이렇게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는데 말예요...
* 암튼, 하나님은 끝까지 기회를 주신 게 분명합니다요...
***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정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이 끈질긴 사랑, 그 집요하심에 또 한 번 깊은 감동에 젖게 되네요....
“하나님은 사울을 불쌍히 여기셔서 사무엘의 영혼을 보내주시는데...”
1.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사울의 모습, 그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 그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신탁을 들을 수 없었던 사울, 신접한 여인을 찾아서라도 사무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울, 그 불쌍한 영혼은 너무나 답답해서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 하나님은 이런 사울에게 불쌍한 마음이 들어, 신접한 여인을 통해 사무엘의 영혼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전해야 할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달하시는데...
<주의> 무당과 영혼을 불러올림
* 이 여인은 강신무일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한다고 믿는 일종의 구덩이에서 조상신을 불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 그녀가 불러올린 사무엘은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그녀와 그 방법을 사용하여 사무엘을 보여주셨을 수 있습니다. 한편, 전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말 그대로 자신의 방식과 다른 귀신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그녀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쪽이고요^^
* 중요한 것은 사울은 사무엘을 만났고, 예전의 그 이야기를 다시 확증해서 듣는 것으로 끝이 났다는 거죠.
2. 사울의 인생은 왜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을까? 왜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까? 잠시 돌아보면요...
* 망가진 길을 가게 된 것은 결국 그가 인생 속에서 배운 것을 되짚어 보면서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죠.
* 일상과 종교의 이원론적 분리 : 하나님은 제사만 챙겨드리면 된다. 일상에서 누리는 지위와 유지방식은 내식대로 살면 되지 뭐~~(백성들의 지지, 전쟁 승리 등).. 사사기 시대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온 삶의 태도가 쭉 이어지는 거죠...
* 권력에 대한 집착 : 처음에 그는 집착이 없었고 오히려 소심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왕은 맞지 않는 옷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왕이 된 다음 그는 달라졌습니다. 권력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고, 소심으로부터 출발한 사람답게 권력을 지키는데도 소심한 방식(질투와 경쟁자 몰아내기)을 취했습니다.
* 사람들로부터의 인정, 경쟁자에 대한 질투...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돌성...
*** 왜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까?
*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을 텐데...
* 자기 속에 있는 고집, 집착 등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걸림돌이었겠죠...
* 결국 근본 문제는 하나님 없이 자기가 최종결정자가 되어 살아가는 죄성인 거죠, 죄가 상처나 두려움, 불안 등의 심리와 어울어지면서 더욱더 강화시키고, 의지적 행동을 만들어낸 것. 그러니 하나님을 찾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죠.
*** 돌아보니 사울의 불행한 삶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네요...ㅠㅠ
* (사59:1,2) 주님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님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 cf. 그가 그렇게 소심한 사람인 것을 하나님은 몰랐나? 왜 그런 소심한 사람을 왕으로 세워가지고...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요...
(삼상15:17) 임금님께서 스스로 하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던 그 무렵에 주님께서 임금님께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셨습니다....
*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소심한 것 자체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지 그 사람의 특징일 따름이죠. 그 소심함이 인간의 죄성과 맞물려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게 문제인 거죠.
* 사울은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소심함과 경쟁심, 질투와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배우고 주장하고 성숙의 길을 걸어가야 했었는데... 이 모든 것 뒤에 자신의 죄가 있음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을 찾아야 했는데 말입니다요...
* (사55:6,7)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 “그 길을 버리고, 그 생각을 버리고” : “미움 받을 용기”에서처럼, 스스로 그 길을 벗어나지 않기로 하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다양한 변명들을 늘어놓는 것에 불과하다. 죄를 벗어던지고, 집착을 벗어 내동댕이치고, 하나님을 향한 강한 순종의 걸음을 옮겨야 하는 거죠.
*** 하나님이 주신 개인적 특징, 그리고 성숙의 과제
* 소심함이든, 과감함이든, 모험적이든, 그 사람의 특징일 따름이다. 하나님을 따라 나서는 길에서 그것은 성숙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운 특징이 되는데요...
* 허나, 그 어떤 성격도 자신의 죄성과 결합하면 정말 사악한 결과들로 이어지게 된다는 걸 사울을 통해 우리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네요...ㅠㅠ
*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란 건, 하나님을 만나서 나 자신의 성격을 잘 알게 되고, 그 성격에 기생하는 자신의 죄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고 돌이킬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거죠.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우린 그 길을 들어섰구요.
* (시131:1)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 (롬12:3)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 예를 들어 만약 사울처럼 소심한 사람이 왕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는 그가 부름 받은 만큼 하면 되는 거죠.
3. 사무엘을 통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왜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서 사울에게 메시지를 전하셨을까요?
* 그것도 파국을 선언하는 메시지를...
* 생각해보면, 이건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죠. 왜 가롯유다에게 예수님이 빵을 떼어주시면서 경고하셨듯이 말예요...
* 가장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사울은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전쟁을 멈추고 석고대죄하고 당면한 전쟁 앞에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전 군에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는 등등.. 또 급히 다윗을 찾아 왕위를 넘겨주고... 뭐 이렇게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는데 말예요...
* 암튼, 하나님은 끝까지 기회를 주신 게 분명합니다요...
***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정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이 끈질긴 사랑, 그 집요하심에 또 한 번 깊은 감동에 젖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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