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3일(화) 삼상31:1-13 큐티목소리나눔>
“사울의 찬란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한 서글픈 Sad-Ending”
*** 이야기는 다윗으로부터 다시 사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1. 길보아 전투에서 대패한 이스라엘
* 이스르엘평원에서의 전투는 일방적으로 블레셋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 이스라엘은 길보아언덕까지 쫓겨올라갔다가 거기서 전멸당합니다. 사울과 요나단도 거기서 죽습니다.
* 사울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비극적 결말을 더욱 애잔하게 만듭니다.
* 보통 적국의 왕이 사로잡히면 불구로 만들어서 온갖 모욕을 다 가한다함 죽이는 게 그 당시의 일반적 풍습이라(eg. 삼손이 블레셋에 넘겨졌을 때 눈이 뽑힌 채 곡식 타작기를 돌려야 했음..ㅠㅠ), 사울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건 오히려 용사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요...
2. 죽어서 수치를 당하는 사울의 시신, 길르앗 야베스 주민의 용맹과 예를 갖춘 장례식
* 이스르엘 평야 지역은 이제 블레셋의 수중에 들어갔고, 사울의 시신은 목이 잘려 벳산이라는 성문에 걸리게 됩니다. 드라마 ‘미스터션사인’에서 일본군이 의병 여인의 시신을 성문에 걸었던 게 떠오르네요...ㅜㅜ
*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 신전에 전시되었구요..(예전에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 때 그의 칼을 놉 땅의 성막에 보관했던 것과 같은 의미겠죠...)
* 이때 반전이 일어나죠. 길르앗 아베스 주민들이 밤새 벳산까지 가서 사울의 시신을 내려다가 화장하고 장사를 지내준 겁니다. 이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처음 사울이 임금이 되었던 때, 바로 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암몬으로부터 구해준 사건이 있었잖아요?(삼상11장) 그 은혜를 이렇게 갚은 겁니다. 와우~~ 짱 멋진 사람들이죠^^
* 이렇게 한 시대의 영웅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고, 장례식에서도 영웅에 걸맞은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3. Sad-Ending, 그러나 찬란함보다는 서글픈 결말...
* 고대 세계에서 전쟁은 늘 있었고, 영웅도 왕도 그 전쟁에서 죽을 수는 있는데...
* 사울의 죽음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찬란한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뭔가 쓸쓸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는 느낌 같은 느낌이 듭니다요...
* 삼손 역시 인생 내내 하나님보다는 내면에서 솟아나는 쾌락적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서 사사였으나 사사같지 않은 인생을 살았는데요, 그런 그가 눈 뽑히고 곡식 타작기를 돌리다가,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회개하며 기도한 끝에 정말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잖아요? 축제에 모인 블레셋 고관대작들을 일시에 다 죽였고, 일생 전체를 통해 죽인 블레셋 숫자보다 그날 그와 함께 죽은 블레셋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전설을 남겼구요...
* 사실, 사울에게도 삼손과 같은 최후의 순간, 하나님 앞에서의 기회가 있었거든요. 바로 무당을 찾아갔을 때, 하나님이 사무엘을 보내주셨던 그 때가 정말 마지막 기회였죠. 그 때라도 그가 돌이킬 수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이 태하여 세우신 왕으로서의 최후를 부탁드렸더라면, 정말 삼손 이상의 아름답고 찬란한 Sad-Ending를 맞이했을 텐데....
***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회를 주시고 당신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도록 초청하시는 분이시란 말씀...
* 가롯 유다에게도 잡히시던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까지 빵을 떼어주며 그 기회를 주셨던 것처럼...
* 사울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이생에서의 끝이 진짜 끝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 생의 끝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요,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영원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임을 잘 알기에,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Sad-Ending이 되든 Happy-Enfing이 되든, 살아온 인생 전 과정 속에 누구와 만나 어떤 의미를 담고 살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새겨보게 됩니다.
* 하나님과 만나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고, 그와 합하여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삶을 살았다면, 그게 영원으로 이어지는 첫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걸 믿고 살아갈 수 있기를, 최후의 최후까지 기회를 주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하고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일지라도 ‘이제라도 주님께로 돌아가자!’라고 결심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이렇게 넉 달에 걸친 장정 끝에 사무엘상을 다 묵상했네요... 내일부터는 학개서를 묵상합니다.
“사울의 찬란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한 서글픈 Sad-Ending”
*** 이야기는 다윗으로부터 다시 사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1. 길보아 전투에서 대패한 이스라엘
* 이스르엘평원에서의 전투는 일방적으로 블레셋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 이스라엘은 길보아언덕까지 쫓겨올라갔다가 거기서 전멸당합니다. 사울과 요나단도 거기서 죽습니다.
* 사울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비극적 결말을 더욱 애잔하게 만듭니다.
* 보통 적국의 왕이 사로잡히면 불구로 만들어서 온갖 모욕을 다 가한다함 죽이는 게 그 당시의 일반적 풍습이라(eg. 삼손이 블레셋에 넘겨졌을 때 눈이 뽑힌 채 곡식 타작기를 돌려야 했음..ㅠㅠ), 사울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건 오히려 용사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요...
2. 죽어서 수치를 당하는 사울의 시신, 길르앗 야베스 주민의 용맹과 예를 갖춘 장례식
* 이스르엘 평야 지역은 이제 블레셋의 수중에 들어갔고, 사울의 시신은 목이 잘려 벳산이라는 성문에 걸리게 됩니다. 드라마 ‘미스터션사인’에서 일본군이 의병 여인의 시신을 성문에 걸었던 게 떠오르네요...ㅜㅜ
*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 신전에 전시되었구요..(예전에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 때 그의 칼을 놉 땅의 성막에 보관했던 것과 같은 의미겠죠...)
* 이때 반전이 일어나죠. 길르앗 아베스 주민들이 밤새 벳산까지 가서 사울의 시신을 내려다가 화장하고 장사를 지내준 겁니다. 이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처음 사울이 임금이 되었던 때, 바로 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암몬으로부터 구해준 사건이 있었잖아요?(삼상11장) 그 은혜를 이렇게 갚은 겁니다. 와우~~ 짱 멋진 사람들이죠^^
* 이렇게 한 시대의 영웅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고, 장례식에서도 영웅에 걸맞은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3. Sad-Ending, 그러나 찬란함보다는 서글픈 결말...
* 고대 세계에서 전쟁은 늘 있었고, 영웅도 왕도 그 전쟁에서 죽을 수는 있는데...
* 사울의 죽음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찬란한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뭔가 쓸쓸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는 느낌 같은 느낌이 듭니다요...
* 삼손 역시 인생 내내 하나님보다는 내면에서 솟아나는 쾌락적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서 사사였으나 사사같지 않은 인생을 살았는데요, 그런 그가 눈 뽑히고 곡식 타작기를 돌리다가,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회개하며 기도한 끝에 정말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잖아요? 축제에 모인 블레셋 고관대작들을 일시에 다 죽였고, 일생 전체를 통해 죽인 블레셋 숫자보다 그날 그와 함께 죽은 블레셋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전설을 남겼구요...
* 사실, 사울에게도 삼손과 같은 최후의 순간, 하나님 앞에서의 기회가 있었거든요. 바로 무당을 찾아갔을 때, 하나님이 사무엘을 보내주셨던 그 때가 정말 마지막 기회였죠. 그 때라도 그가 돌이킬 수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이 태하여 세우신 왕으로서의 최후를 부탁드렸더라면, 정말 삼손 이상의 아름답고 찬란한 Sad-Ending를 맞이했을 텐데....
***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회를 주시고 당신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도록 초청하시는 분이시란 말씀...
* 가롯 유다에게도 잡히시던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까지 빵을 떼어주며 그 기회를 주셨던 것처럼...
* 사울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이생에서의 끝이 진짜 끝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 생의 끝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요,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영원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임을 잘 알기에,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Sad-Ending이 되든 Happy-Enfing이 되든, 살아온 인생 전 과정 속에 누구와 만나 어떤 의미를 담고 살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새겨보게 됩니다.
* 하나님과 만나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고, 그와 합하여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삶을 살았다면, 그게 영원으로 이어지는 첫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걸 믿고 살아갈 수 있기를, 최후의 최후까지 기회를 주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하고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일지라도 ‘이제라도 주님께로 돌아가자!’라고 결심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이렇게 넉 달에 걸친 장정 끝에 사무엘상을 다 묵상했네요... 내일부터는 학개서를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