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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19년 2월 12일(화) 막7:24-30 큐티목소리나눔>“예수님의 마음을 흔들어버린 여인”

<2019년 2월 12일(화) 막7:24-30 큐티목소리나눔>
“예수님의 마음을 흔들어버린 여인”

*** 다시 마가복음 묵상을 계속합니다. 한 주 전에 우리는 12명의 제자를 파송하는 데까지 묵상했었죠. 그 뒤로 본문은 세례요한의 죽음을 이야기했고,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사건, 물위로 걸으신 사건, 갈릴리 어느 곳을 가든지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 이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걸고,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에 대해 ‘고르반’을 예를 들면서 아주 심각하게 도전하셨던 이야기들이 펼쳐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과만 시간을 보내고자 갈릴리 북쪽 두로 지방으로 몰래 리트릿을 떠나셨습니다.

1.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가심
 * 이스라엘의 경내를 벗어나 이방지역으로 가신 이유는?
  어쩌면 바리새인들의 흥분이 너무 심해져서 약간 숨고르기를 하려고~~ / 이참에 제자들과만 시간을 보내면서 일종의 수련회를 하려고~~(v24에서는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셨다’고 함)
 * 암튼 사역의 주 무대인 이스라엘 경내를 벗어나, 이곳에서는 좀 조용히 있고 싶으셨던 예수님, 그러나 벌써 세계적인 인물이 되신지라(ㅋㅋ)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

2. 그리스인 여자 한 명이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 그녀는 그리스 중에서도 수로페니키아인임(두로와 시돈 지역에 사는 민족 중 하나).
 * 딸이 귀신이 들려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말자 뛰어나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엄마의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다가옵니다...
 * <보충> 마태는 이 상황에서 여인의 간절함을 더욱 드러나게 하려고 ‘예수님은 의외로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여인은 점점 더 소리를 높여 예수님을 부르고,,, 제자들도 답답해서 뭔가를 해주셔서 보내주시기를 원하고..’라는 상황임을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3. 예수님이 예상하신 지상의 주된 사역마저 바꾸게 만든 여인의 믿음
 * 이 상황에서 예수님 딱 한 말씀하셨는데... “자녀들에게 줄 빵을 개에게 던져주지 않는다.”... 허걱...
 * 엄청 매정하게 들리는 이 얘기, 심지어 인격 모독적 발언 같은데...
 * 당시 이스라엘에 팽배한 문화적 상황에 근거해보면, ‘이방인=개’였기 때문에 지배 문화 속에서는 당연한 표현이었을 것 같고, 예수님마저 이 표현을 썼다는 게 충격인 거죠. ㅠㅠ
 * 예수님이 여인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짐짓 못된 얘기를 하셨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고, 한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당신의 사역을 이스라엘에 한정할 것을 예상하였고,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당신의 승천 이후 성령시대에 일어날 것으로 정리하고 계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마태복음에서는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보냄 받았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거든요..)
 * 더구나 지금은 제자들과만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몰래 오셨는데...

 * 근데 여인의 대답이 의외였습니다. 예수님의 인격 모독적 발언에 대해, “네 유대인이 보실 때 우리는 개입니다. 하지만 개도 자녀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라고 상황을 종료시킴!!
 * “졌다.”(ㅋㅋ)  “네 믿음이 크도다.” 여인의 딸을 고쳐주신 예수님...

 *** 예수님이 예상하시고 계획하신 사역의 범주를 깨뜨리시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당신의 사역을 열어주신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 이 일은 그 여인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믿음으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설득해서 원래 의도하셨던 뜻을 바꾸셔서 적극적인 행동을 하신 예들이 성경 속에는 꽤나 많이 있습니다(아브라함, 모세, 히스가야...수로페니키아 여인). 
 * 그런 하나님이 참으로 인격적이신 분으로 다가오고, 또 그렇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순전한 믿음(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깊은 애정 가운데 친밀하게 다가가 설득할 수 있는  스스럼없음)이 부러울 만큼 찐하게 다가옵니다.
 *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와 찐~한 애정을 나누시길 원하시고, 그게 또한 ‘믿음’의 한 요소가 된다고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 물론 하나님나라의 큰 뜻 안에서 우리의 요청을 넉넉하게 들어주시는 거지만, 이왕이면 애정 어린 만남 속에 요청하는 일들을 우선처리(?^^)해주신다는~~
 * 그러다보면 요청한 일을 하나님이 끝내 “안 돼”라고 하시더라도, “넹”하고 순종할 수도 있게 되구요...
 * 이런 찐한 만남으로 평생, 아니 영원히 주님과 살아가는 삶이 되길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