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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19년 5월29일(수) 신7:1-11 큐티목소리나눔>“주변사람들과 담 쌓고 살아라?”

<2019년 5월29일(수) 신7:1-11 큐티목소리나눔>
“주변사람들과 담 쌓고 살아라?”

1.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거든 몽땅 다 죽여야 한다.
 *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이 들어간 다음 펼쳐질 삶에 대해 정말 걱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ㅠㅠ
 * 이번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땅 주민들을 몽땅 다 진멸하라 십니다요.. ㅠㅠ
 *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이건 완전 그 땅의 만족이 불쌍한 이야기고, 정복자의 시각인데요, 고대 세계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 낯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중요한 건 왜 진멸하라 하시는지 그 이유겠죠.
 1) 그들과 언약을 맺을까봐 : 연약은 상호존중, 호혜의 원칙에 따라 이뤄지는 거니까, 그러다보면 상대의 종교와 문화도 받아들이게 되겠죠.
 2) 혼인을 할까봐 : 같이 섞여 살다보면 정략적이든 눈이 맞아서건 결혼하게 되는 게 필연적인 일일 테고, 그렇게 되면 한 집안에 다른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게 되고, 하나님만 따르는 신앙이 훼손 될 게 불 보듯 뻔 한 일이란 말씀..
 * 그래서 택한 방식이 아예 씨를 말려버리고 이스라엘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 한 마디로, 이스라엘이 변심할까봐 걱정된다는 말씀인데요... 근데 이게 가능한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 죽이는 것도 실제로 힘들뿐 아니라, 그랬다손 치더라도 남겨진 문화를 보고 배울 테고, 또 주변에 이민족들이 널려있는데, 그들과 교류를 안 할 리 만무한데 말이비다...
 * 하나님 생각이 참 순진하신 건지, 낭만적이신 건지... 인간을 너무 쉽게 보신 것 같습니다요... 그 타락의 깊이를 말입니다...ㅠㅠ


2. 내가 너희를 택한 까닭은 그냥 사랑해서야..
 * 사실 진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은 이거죠.
 * 내가 너희를 택한 건, 너희가 뭐 잘나서가 아냐. 숫자가 많아서도 아니고...
 * 단지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택했고, 너희 조상들에게 약속한 걸 지키기 위해서야.
 * 그러니 너희는 내 사랑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 난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챙겨줄 거니까 말야. 하지만 날 미워하는 사람들은 또 그에 맞는 보답을 해주지, 끝까지 말야..

 *** 사실 이게 진짜 하나님 속마음이고, 너희들이 내가 택한 거룩한 백성이라는 걸 드러내고 살려면, 무엇보다도 딴 놈들(다른 신들)한테 한눈팔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 이거 정말... 이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가장 기본이요, 출발선에서 나누는 이야기 아닌가요? 근데 이걸 이렇게 주절주절,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하시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요? 게다가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자 말자 보란 듯이 다른 신을 찾는단 말예요.
 * 이건 완전 하나님만 마음이 타는, 완전 짝사랑의 전형인 거죠. 이스라엘은 하나님한테 사랑 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데 하나님만 애타는 겁니다...ㅠㅠ
 * 사실, 하나님도 그걸 아시니까 이렇게 장황하게 반복반복하고 계신 거겠죠... “제발, 너 내 마음 좀 알아줘..”
 * 결국 이 방법으로는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없다는 얘기, 처음부터 한계가 너무나 분명한 방법이었단 말씀인 거죠.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구요.

3. 결국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야 이루신 하나님의 꿈,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시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진실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거죠.
 * 오늘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 벧전2:9에 있잖아요? “너희는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루고 싶으셨던 꿈을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써 결국 이루셨답니다.
 * 그래서 우리가 그 백성으로 부름 받게 되었구요.
 * 우리가 뭐 잘난 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어서 먼저 찜하시고 찾아와 불러주신 거죠. 예수님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죄 된 마음을 벗어던질 새로운 길을 만들어서, 우리 마음의 중심을 바꾸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백성으로 부르신 거죠.

 *** 그렇다면, 우리는 주변의 이 수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섞여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identity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 주변에 non-Xn을 한 명도 두지 않는 방법도 아니고, ‘완전히 밟아 이겨~’라는 방식도 아니고...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일상은 같이 섞여 사는 건데요...
 * 중요한 건, 우리 마음속에서 남들처럼 살고 싶고, 따라하고 싶고, 다른 신이 더 좋아 보이는 마음을 떨쳐내는 거, 완전 진멸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점을 바울도 엄청나게 많은 비유와 예를 들어 강조하잖아요?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았다. 이제는 내 속에 내가 산 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고 있다. 이미 죽은 내가 또 거기에 매여 산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냐?”라고 말하면서 바뀐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하면, 동시에 “육체의 정욕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을 좇으라. 경건의 연습을 하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가라.” 등등 우리가 꾸준히 추구해야 할 경건의 연습 주제로 강조하기도 합니다.
 * 결국 우리의 싸움은 사람들과의 싸움이 아닌 거죠. 주변 민족들을 다 진멸시키는 방법, 완전 세상과 담쌓고 수도원생활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면서 내속에 찾아오는 유혹을 그 사탄의 꾐을 대적해서 하나님이 주신 무기(진리, 정의, 평화, 믿음, 구원, 사랑)를 들고 기도라는 전쟁을 치름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 <주의> 한편, 우리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이른바 이스라엘이 가나안족속을 진멸하는 방식으로 선교와 전도, 그리스도인의 identity를 지키려는 시도들이 무수히 많았다는 슬픈 사실을 기억합시다. 이른바 십자군전쟁부터 18,19세기에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를 건설할 때 앞장섰던 선교사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기독교00’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학살들에 이르기까지... 이건 오늘 본문과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여주듯 실패한 하나님의 전략이요, 구원방법이었다는 걸 기억합시다.
 * 그런데도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 한국 기독교 문화 속에 이런 ‘정복주의’적 마인드가 너무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의 밑바탕에는 배타적 우월감이 자리하고 있구요. 인터콥선교회의 복음의 서진운동과 선교 방식, 각종 혐오집회의 방식과 구호와 정신들,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직장생활에서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 여전히 우리는 구약적 세계관 속에서 실패한 하나님의 전략을 붙들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오셔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는데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