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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19년 6월5일(수) 신9:8-29 큐티목소리나눔>“내가 정말 고집 센 놈이란 걸 알아차려야..”

<2019년 6월5일(수) 신9:8-29 큐티목소리나눔>
“내가 정말 고집 센 놈이란 걸 알아차려야..”

1.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그 불순종의 역사를 돌아보다.
 * 하나님께서 가나안 원주민들을 다 쓸어버리고 이스라엘을 그리로 이끌어 가신다고 해서, 그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사람들보다 뭔가 도덕적으로 선하고 의로워서가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알라고 경고하신 하나님.  
 * 이제 그 구체적 증거를 나열하기 시작하십니다.
 * 지난 광야 40년을 한 번 돌아보자.
 * 첫 번 째, 내가 너희를 시내산 앞에 머물게 하고 모세와 십계명을 비롯하여 세세한 규례들을 논하고 있을 동안, 너희들은 이집트에서 섬기던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고 난리를 쳤다.
 * 모세가 40일간이나 금식하면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 망정이지 안 그랬음 내가 너희들 싹 다 죽였을 것이다.
 *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뒤에도 다베라, 맛사, 기브롯핫다와에서도 너희들 난리도아니었지.
 * 가장 압권은 가데스바네아에서다. 가나안이 코앞인데 “올라가서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라” 했더니 무섭다고 죽을까봐 겁나서 한 놈도 안 갔다. 모세가 또 사십일을 금식하면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 망정이지...

 *** 하나님과 동행한 내 인생의 세월이 길면 길어질수록 하나님 속을 뒤집어 놓는 일들도 늘어나기 마련.
 * 광야에서의 40년 세월만큼이나 나 역시 지난 40년을 하나님과 부대끼며 순종을 배워온 시간이었네요...
 * 돌아보면 이스라엘보다 못하면 못했지 잘 난 것 하나 없는 불순종과 돌이킴, 그 가운데 누군가의 눈물의 중보기도가 있었던 시간들... 그 가운데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많이 찢어졌을까...ㅠㅠ
 * 그러고 보니 한창 혈기 왕성했던 청년 때는 남의 조그만 잘못도 결코 용납하지 못했고, 그게 정의를 이루는 길이라 강변했었는데, 40년이 지나면서는 나도 내가 비난했던 그와 똑같이 잘못할 때가 있었고, 또 그때마다 누군가는 참아줘서 이렇게 살아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아니, 난 그보다 더 고집이 세었고, 하나님 앞에 툭하면 반기를 들었던 사람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 하나님이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너희가 가나안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고 어여삐 여겨서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 세월 속에서 점점 더 깊게 다가옵니다.
 *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오직 날 도와준 하나님, 날 용납하고 품어준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서였음을...

2. 이 가운데 돋보이는 건, 모세의 목숨을 건 중보기도였으니...
 *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을 목격하고 너무나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하나님이 주신 돌판을 던져서 깨뜨려버립니다. 출32장을 보면 이미 시내산 위에서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을 설득하고 내려온 모세였는데, 직접 목격하니까 정말 이건 아니다 싶고 자기가 화가 나서 못참은 겁니다.
 * 근데 중요한 건, 그러고 그길로 40일을 금식하며 백성을 위한 중보기도를 했다는 거잖아요? 
 * 비록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죽을죄를 지었어도 제발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이 용서가 안 되시면 내 이름도 같이 주님의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출32장)
 * 가데스바네아에서도 똑같이 40일을 금식하며 중보기도 했고...
 * 중보기도 내용도 정말 설득력 있죠? 하나님, 우리들은 죽어 마땅한데요.. 근데 우리가 죽고나면 주변 민족들이 뭐라 그러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을 이끌어갈 힘도 없으면서 델꼬나가 쳐 죽이기만 했다고 할 거 아닙니까?

 *** 우리가 세상과 이웃의 불의를 향해서 목소리를 내고자 할 때는 적어도 모세와 같이 목숨을 거는 하나님 앞에서의 중보기도, 나도 저속에 함께 있어 죄를 같이 지었다는 깊은 깨달음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자백과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같이 있어야 하는 거구나...
 * 과연 내 정의감이 이정도로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 갑자기 부끄러워집니다.
* 예수님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그랬죠.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쳐라.”
 * 물론 그렇게 깊지 않으면 정의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무질러버리면 곤란해지겠죠. 이거야 말로 악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이 되고 마니까요...
 * 단지 내 묵상과 기도가 죄의 깊이와 넓이와 심각성이 얼마나 큰지를,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 속에서 죄의 얼굴을 마주치고 하나님 앞에서 그걸로 몸부림치면서 목소리를 낼 때, 그만큼 깊이가 있는 울림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요...
 * 그런 사람의 목소리에 사람들 뿐 아니라, 하나님도 설득할만한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모세처럼...
 * 또 그레 죄인인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하시면서도 정의의 목소리를 내시고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가 닿는 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