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9월5일(목) 롬1:16-32 큐티목소리나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진노”
1. 복음, 하나님의 의
* 바울은 복음(기쁜 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복음은 곧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아)이며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죽음 가운데 부활하여 온 우주만물의 왕으로 계신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 이 이야기는 유대인들은 듣기 거북한 이야기고, 헬라인들이 들으면 “그 무슨 가당찮은 얘기냐?”고 핀잔을 줄,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고전1:23)
* 그런데 바울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확신에 차서 로마황제가 전하는 이야기가 복음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복음이라고 외칩니다. 왜냐면,
1) 복음에는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났다.
*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는 하나님의 질서가 존재합니다. 그 질서대로 함께 어우러질 때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는 모습이 펼쳐집니다(창1장). 이게 바로 하나님이 정의가 이루어지는 모습이죠. 시편은 이런 모습을 다음처럼 노래합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시85편)
* 그런데 이런 상황이 어그러지고 비뚤어지고 심하게 훼손되고, 왜곡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 창조의 하이라이트인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믿지 않게 된 거죠, 바울은 이 타락의 심각한 모습을 바로 밑에서 다시 엄청 충격적이고 실감나게 계속 이야기 합니다. 우선은 introduction에 걸맞게 전체적 그림을 먼저 이야기 합니다.
2)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 하나님은 이런 왜곡을 바로잡으시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타락한 인간, 이 모든 왜곡의 핵심인물을 구하기로 하셨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인 셈이죠.^^
* 복음, 곧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죽음가운데서 부활시키셔서 만물의 주, 황제로 자리하게 하시 게 바로 그 하나님의 정의를 회복하는 길, 구원이라고 바울은 아주 압축적으로 제시합니다. 그 구체적인 이야기는 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차근차근 풀어가겠죠? ㅎㅎ
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바울은 이 복음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길, 하나님이 정의를 회복하는 길임을 알고 누릴 수 있는 길은 단순하게 이 이야기를 믿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이 단순한 믿음은 하박국서를 인용해서 말합니다. 하박국은 이스라엘이 망해가고 있는 상황, 모든 경제적 상황이 암울해지고 있는 상황 가운데 이 모든 것을 너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고 기뻐하고 즐거워한 사람이었습니다.
* 삶 속에 이런 단순한 믿음에 근거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고, 이루어져가고 있고, 또 마지막에 완전히 이루실 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인간의 타락
* 이제 본격적으로 위에서 제시한 introduction을 따라 이야기를 세부화 해보는 시간입니다.
* 하나님의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를 파괴하는 주범은 다름 아닌, 창조의 하이라이트, 이 모든 만물을 함께 다스리자고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이었습니다.
*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을 알고 그를 따라 살아가는 존재, 하나님을 고대로 빼박은 존재입니다.
* 근데, 뭐 좀 할 줄 안다고, 원래 주인을 내쫓고 자기가 주인 행세를 하겠가도 선언을 한 겁니다. 그리고 그걸 실천에 옮겼구요.
*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알만한 인지능력을 타고났습니다. 지어진 만물을 보면서 그 속에 깃들여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속성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 그런데도, 하나님을 알 생각조차 하지 않고,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다 완전 폭망하게 된 겁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상숭배
* 스스로 지혜자라 해놓고서 하나님은 안 찾고, 대신 딴 것들,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을 가져다가 자신의 신으로 섬기는 엄청 어리석은 일을 자행합니다.
*** 우리 현대인들은 각종 원시적 우상숭배를 보면 비웃게 됩니다. 우리가 배운 합리주의,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그건 그저 미신일 따름이죠.
* 하지만, 가만 우리를 들여다보면 우리 역시 각종 우상들을 만들어놓고 섬깁니다. <돈, 권력, 섹스>라는 책이 있잖아요? 이 시대의 우상을 정확하게 지적한 말입니다.
2) 동성애, 온갖 불의, 악행, 탐욕, 악의, 시기, 살의, 분쟁, 사기, 적의, 수군거림, 중상, 하나님을 미워함, 오만, 자랑, 악을 꾸미는 모략꾼, 부모 거역, 우매, 불신, 부정, 무자비...
* 에고... 열거하기도 힘드네요..ㅠㅠ
*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질서와 반대로 가는 것들만 모아두었네요... 근데 이게 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선한’ 이웃들의 실상이라는 거잖아요? 아니, 이게 다 내 마음 속에 들어차 있는 것들이라는 거죠. 무섭게도...
* 바울은 이 많은 죄악들 중에 특별히 동성애에 대해 분량을 할애하여 기록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가 다른 모든 죄악들에 비해 특별히 나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다 똑같이 하나님이 왕이심을 거부함으로 인해 생겨난 인간의 모습들, 인간이 저지르는 불의 중에 하나인 거죠.
* 동성애를 생각해보면, 남녀는 분명 하나님의 창조한 원래 목적과 질서를 따라 서로 각자의 정체성과 역할을 갖고서 어우러져 살아가게 되어있는데... 이게 창세기2장의 이야기잖아요? 근데, 그 하나님이 질서에 도전하고 다른 방법으로 살고자하는 게 바로 인간의 각종 죄악이요. 그 중에 남녀관계의 왜곡도 들어가는 겁니다.
*** 요즘 우리 교회들 사이에서 동성애 문제가 워낙 화두가 되니까 좀 이야기를 나눠보면 말예요...
* 위에서 열거한 수많은 죄악들이 다 내 옆의 평범한 이웃들 속에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는 것들이잖아요? 더군다나 내 속에도 그러하고... 그렇다고 우리가 이웃들 모두를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담쌓고 안 만나고 사는 건 아닌데요. 왜 유독 동성애자들만큼은 사회적으로 죄인이라고 낙인찍고 사람취급 안하는지 잘 모르겠단 말예요. 그저 평범한 내 이웃일 따름인데...
* 내가 그 죄악만큼은 안할 자신이 있으니까 집단 왕따시키는 건가요? 내 속에 수만 가지 다른 죄악들은 어떻하구요?
* 예수님도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라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앞에서 돌을 들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잖아요? 내 속에 수만 가지 죄악들이 득시글거리는데 감히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을까요? 그저 불쌍한 죄인들 중에 한 명일 따름인데... 제발 좀 그러지 맙시다. 특히 교회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잖아요?
* 교회는 죄인을 품고 사랑하는 일을 해야죠. 그러다보면 주님께로 나아가 어느 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받아들이는 날이 오겠죠. 또 그래요. 내가 에수님 안에 살지만 수많은 죄의 유혹으로 날마다 넘어지듯 평생 해결 못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 된 모습도 있기 마련이라, 그리스도인 가운데 동성애로 고민하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충분히 맏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동성애의 발생 원인에 대해 로마서 8장에서 다시한 번 생각해볼 시간이 있으니까 이쯤하고.. to be continue~~^^
3. 하나님의 진노, “내어버려두심”
* 자. 바울의 이야기에 따르면 심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장조 정의에 거스르는 일들을 거리낌없이 하기 자작하자, 하나님은 참다 참다 못해 그냥 내버려두시기로 하십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진노인지 사람들은 감히 알 수도 없는 건데요...
* 바울은 인간이 우상을 하나님대신 신으로 섬기는 것도 하나님이 “그래. 한 번 해봐라. 어디까지 가나 한 번 보자.”라고 하신 까닭에 지혜 있는 것 같으나 실은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내 보습이라는 거죠...ㅠㅠ
* 위에서 열거한 수많은 죄악들 역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니까 타락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두셔서 벌어지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겁니다.
* 내 옆에 웃으며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의 마음속에 실은 이런 끔찍한 마음이 숨겨져 있고, 그에게 사랑하노라 다가가는 내 마음속에 이런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
* 하나님은 결국 이런 모습의 결과가 뭐일 것 같냐고 물으십니다. 마치 예수님이 소작농들이 주인이 소출을 거두러 보낸 종들을 다 죽이고 아들도 죽인 배유를 들면서 “너희가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겠니?”라고 물으셨을 때, 이구동성으로 “그놈들은 다 죽여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때 주님이 하신 말씀. “그게 바로 너다”
* 이런 모습의 결과에 대해 우리 모두 다 동의합니다. “그 죄의 결과는 사형!”이라구요.
* 근데도 우리는 그럽니다. 그건 너무하신 거 아니냐고. 신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냐고.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할 수 있냐고. 더 나아가 이런 나쁜 악을 저지른 사람을 두둔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내가 한 짓을 생각도 않고서 말입니다.
* 반대로, 내가 심판자가 되어 하나님이 나에게도 사형선고를 이미 하셨던 것을 잊고서 동성애자들만 나쁜 놈이라고 저런 놈들 하나님이 안 죽이고 뭐하냐고 흥분합니다.
***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런 나의 죄, 우리 사회, 인류 전체의 죄를 해결하고 풀고 하나님의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 그 사실을 믿고 나아가면, 그 다음 하나님의 정의의 세상을 살 수 있는 길을 걷게 되는 거죠. 지금 우리가 그 길을 가고 있는 거 맞죠?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진노”
1. 복음, 하나님의 의
* 바울은 복음(기쁜 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복음은 곧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아)이며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죽음 가운데 부활하여 온 우주만물의 왕으로 계신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 이 이야기는 유대인들은 듣기 거북한 이야기고, 헬라인들이 들으면 “그 무슨 가당찮은 얘기냐?”고 핀잔을 줄,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고전1:23)
* 그런데 바울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확신에 차서 로마황제가 전하는 이야기가 복음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복음이라고 외칩니다. 왜냐면,
1) 복음에는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났다.
*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는 하나님의 질서가 존재합니다. 그 질서대로 함께 어우러질 때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는 모습이 펼쳐집니다(창1장). 이게 바로 하나님이 정의가 이루어지는 모습이죠. 시편은 이런 모습을 다음처럼 노래합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시85편)
* 그런데 이런 상황이 어그러지고 비뚤어지고 심하게 훼손되고, 왜곡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 창조의 하이라이트인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믿지 않게 된 거죠, 바울은 이 타락의 심각한 모습을 바로 밑에서 다시 엄청 충격적이고 실감나게 계속 이야기 합니다. 우선은 introduction에 걸맞게 전체적 그림을 먼저 이야기 합니다.
2)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 하나님은 이런 왜곡을 바로잡으시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타락한 인간, 이 모든 왜곡의 핵심인물을 구하기로 하셨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인 셈이죠.^^
* 복음, 곧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죽음가운데서 부활시키셔서 만물의 주, 황제로 자리하게 하시 게 바로 그 하나님의 정의를 회복하는 길, 구원이라고 바울은 아주 압축적으로 제시합니다. 그 구체적인 이야기는 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차근차근 풀어가겠죠? ㅎㅎ
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바울은 이 복음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길, 하나님이 정의를 회복하는 길임을 알고 누릴 수 있는 길은 단순하게 이 이야기를 믿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이 단순한 믿음은 하박국서를 인용해서 말합니다. 하박국은 이스라엘이 망해가고 있는 상황, 모든 경제적 상황이 암울해지고 있는 상황 가운데 이 모든 것을 너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고 기뻐하고 즐거워한 사람이었습니다.
* 삶 속에 이런 단순한 믿음에 근거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고, 이루어져가고 있고, 또 마지막에 완전히 이루실 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인간의 타락
* 이제 본격적으로 위에서 제시한 introduction을 따라 이야기를 세부화 해보는 시간입니다.
* 하나님의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를 파괴하는 주범은 다름 아닌, 창조의 하이라이트, 이 모든 만물을 함께 다스리자고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이었습니다.
*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을 알고 그를 따라 살아가는 존재, 하나님을 고대로 빼박은 존재입니다.
* 근데, 뭐 좀 할 줄 안다고, 원래 주인을 내쫓고 자기가 주인 행세를 하겠가도 선언을 한 겁니다. 그리고 그걸 실천에 옮겼구요.
*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알만한 인지능력을 타고났습니다. 지어진 만물을 보면서 그 속에 깃들여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속성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 그런데도, 하나님을 알 생각조차 하지 않고,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다 완전 폭망하게 된 겁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상숭배
* 스스로 지혜자라 해놓고서 하나님은 안 찾고, 대신 딴 것들,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을 가져다가 자신의 신으로 섬기는 엄청 어리석은 일을 자행합니다.
*** 우리 현대인들은 각종 원시적 우상숭배를 보면 비웃게 됩니다. 우리가 배운 합리주의,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그건 그저 미신일 따름이죠.
* 하지만, 가만 우리를 들여다보면 우리 역시 각종 우상들을 만들어놓고 섬깁니다. <돈, 권력, 섹스>라는 책이 있잖아요? 이 시대의 우상을 정확하게 지적한 말입니다.
2) 동성애, 온갖 불의, 악행, 탐욕, 악의, 시기, 살의, 분쟁, 사기, 적의, 수군거림, 중상, 하나님을 미워함, 오만, 자랑, 악을 꾸미는 모략꾼, 부모 거역, 우매, 불신, 부정, 무자비...
* 에고... 열거하기도 힘드네요..ㅠㅠ
*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질서와 반대로 가는 것들만 모아두었네요... 근데 이게 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선한’ 이웃들의 실상이라는 거잖아요? 아니, 이게 다 내 마음 속에 들어차 있는 것들이라는 거죠. 무섭게도...
* 바울은 이 많은 죄악들 중에 특별히 동성애에 대해 분량을 할애하여 기록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가 다른 모든 죄악들에 비해 특별히 나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다 똑같이 하나님이 왕이심을 거부함으로 인해 생겨난 인간의 모습들, 인간이 저지르는 불의 중에 하나인 거죠.
* 동성애를 생각해보면, 남녀는 분명 하나님의 창조한 원래 목적과 질서를 따라 서로 각자의 정체성과 역할을 갖고서 어우러져 살아가게 되어있는데... 이게 창세기2장의 이야기잖아요? 근데, 그 하나님이 질서에 도전하고 다른 방법으로 살고자하는 게 바로 인간의 각종 죄악이요. 그 중에 남녀관계의 왜곡도 들어가는 겁니다.
*** 요즘 우리 교회들 사이에서 동성애 문제가 워낙 화두가 되니까 좀 이야기를 나눠보면 말예요...
* 위에서 열거한 수많은 죄악들이 다 내 옆의 평범한 이웃들 속에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는 것들이잖아요? 더군다나 내 속에도 그러하고... 그렇다고 우리가 이웃들 모두를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담쌓고 안 만나고 사는 건 아닌데요. 왜 유독 동성애자들만큼은 사회적으로 죄인이라고 낙인찍고 사람취급 안하는지 잘 모르겠단 말예요. 그저 평범한 내 이웃일 따름인데...
* 내가 그 죄악만큼은 안할 자신이 있으니까 집단 왕따시키는 건가요? 내 속에 수만 가지 다른 죄악들은 어떻하구요?
* 예수님도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라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앞에서 돌을 들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잖아요? 내 속에 수만 가지 죄악들이 득시글거리는데 감히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을까요? 그저 불쌍한 죄인들 중에 한 명일 따름인데... 제발 좀 그러지 맙시다. 특히 교회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잖아요?
* 교회는 죄인을 품고 사랑하는 일을 해야죠. 그러다보면 주님께로 나아가 어느 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받아들이는 날이 오겠죠. 또 그래요. 내가 에수님 안에 살지만 수많은 죄의 유혹으로 날마다 넘어지듯 평생 해결 못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 된 모습도 있기 마련이라, 그리스도인 가운데 동성애로 고민하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충분히 맏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동성애의 발생 원인에 대해 로마서 8장에서 다시한 번 생각해볼 시간이 있으니까 이쯤하고.. to be continue~~^^
3. 하나님의 진노, “내어버려두심”
* 자. 바울의 이야기에 따르면 심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장조 정의에 거스르는 일들을 거리낌없이 하기 자작하자, 하나님은 참다 참다 못해 그냥 내버려두시기로 하십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진노인지 사람들은 감히 알 수도 없는 건데요...
* 바울은 인간이 우상을 하나님대신 신으로 섬기는 것도 하나님이 “그래. 한 번 해봐라. 어디까지 가나 한 번 보자.”라고 하신 까닭에 지혜 있는 것 같으나 실은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내 보습이라는 거죠...ㅠㅠ
* 위에서 열거한 수많은 죄악들 역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니까 타락한 마음 그대로 내버려두셔서 벌어지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겁니다.
* 내 옆에 웃으며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의 마음속에 실은 이런 끔찍한 마음이 숨겨져 있고, 그에게 사랑하노라 다가가는 내 마음속에 이런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
* 하나님은 결국 이런 모습의 결과가 뭐일 것 같냐고 물으십니다. 마치 예수님이 소작농들이 주인이 소출을 거두러 보낸 종들을 다 죽이고 아들도 죽인 배유를 들면서 “너희가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겠니?”라고 물으셨을 때, 이구동성으로 “그놈들은 다 죽여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때 주님이 하신 말씀. “그게 바로 너다”
* 이런 모습의 결과에 대해 우리 모두 다 동의합니다. “그 죄의 결과는 사형!”이라구요.
* 근데도 우리는 그럽니다. 그건 너무하신 거 아니냐고. 신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냐고.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할 수 있냐고. 더 나아가 이런 나쁜 악을 저지른 사람을 두둔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내가 한 짓을 생각도 않고서 말입니다.
* 반대로, 내가 심판자가 되어 하나님이 나에게도 사형선고를 이미 하셨던 것을 잊고서 동성애자들만 나쁜 놈이라고 저런 놈들 하나님이 안 죽이고 뭐하냐고 흥분합니다.
***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런 나의 죄, 우리 사회, 인류 전체의 죄를 해결하고 풀고 하나님의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 그 사실을 믿고 나아가면, 그 다음 하나님의 정의의 세상을 살 수 있는 길을 걷게 되는 거죠. 지금 우리가 그 길을 가고 있는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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