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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하나님의 정의로운 최후심판 앞에서”

<2019년9월6일(금) 롬2:1-11 큐티목소리나눔>
“하나님의 정의로운 최후심판 앞에서”

1. 현실인간의 모습 remind
 * 앞선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 인간의 현재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자기가 똑똑한 척하지만 실은 어리석어서 각종 혐오스러운 죄를 다 저지르고 있다. 행동 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면 완전 썩었다.”
 * 바울은 나아가 이런 인간에 대해 “네가 창조주라면 어떤 심판을 내리겠니?”라고 묻습니다. 당연히 “사형!!”

2. 인자하신 하나님과 최후의 심판
 * 바울은 그다음 따라오는 인간의 질문을 잘 압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다며? 근데 어떻게 그렇게 무자비하게 심판하신단 말이냐?”
 * 맞습니다. 맞고요~~. 이런 걸 한 번 상상해봅시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가 행하거나 떠올리는 모든 나쁜 것들, 불의에 대해 매번 매를 드시려고 한다면, 우리가 과연 지금 제대로 살아있기나 할까요? 흔히 하는 말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우리를 대하신다면, 우린 야동 보다가 자고 일어나면 눈 하나 뽑히고, 운전하다가 “에이 씨~” 한마디 했다가 혀 뽑히고... 뭐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 하긴 요즘 맨날 나와서 국민들을 우롱하는 말이나 하는, 그 사람들이 부르는 말로하면, 나~~ㅂ 같은 사람은 혀가 뽑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간혹 듭니다만... 이런... 이러면 내가 먼저 혀가 뽑히겠죠.. 후덜덜...
 * 암튼,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두고서 정말 오래오래 참으시고 계시는 것만 봐도 하나님 진짜 속도 없으신 분, 정말 인자하신 분 맞는 것 같습니다요~~
 *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까지 미뤄둘 수만은 없다. 최후의 심판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조자로서 세상을 당신의 뜻과 질서, 정의에 맞게 바로잡는 것을 언제까지나 미뤄둘 수는 없다는 말씀. 곧 지금의 불의에 대해, 특히 그걸 자행하고 있는 당신의 형상, 인간에 대해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다는 거죠.

2. 심판대 앞에 선 두 부류의 사람
 * 바울은 이제 곧바로 최후의 심판대 앞으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 여기에 서면 두 부류의 사람이 곧바로 나뉘겠죠.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한 사람, 불의를 행한 사람. 예수님의 비유에 따르면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
 * 바울은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 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v6).
 * 하나님의 심판은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고 집행됩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영광과 존귀와 영원한 삶을,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악을 행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상관없이(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다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 주의, 우리는 흔히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심판대 앞에선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모두 자기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믿는 사람들인 우리들 역시 이 믿음에 근거한 삶을 산 것을 갖고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 야고보서는 이 점을 아주 강조합니다. 또한 로마서의 이어지는 본문도 이를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더 자세한 얘기는 역시 to be continue~~^^
 * 그리스도인들 중에 오직 믿기만 하면 영원한 심판을 면제받았다고 착각하면서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고 사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현실에-더군다나 이런 사람들이 기독교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는 현실이라...-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하고, 또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 적잖이 당황스럽고 두렵기까지 하고.. 그러네요...
 *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권면하는 거죠.
 * 롬12:1,2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음의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 시대를 분별해서 용기 있게, 뚝심 있게 하나님의뜻을 따라 살아가는 게 중요함을 깊이 새겨봅니다.

3. 변명하는 사람⓵ : 도덕군자들
 * 한편, 심판대 앞에 서면 각종 변명거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요, 바울은 그 중 몇몇 부류를 소개합니다. 오늘은 먼저 도덕군자들.
 * 바울 시대에는 특히 헬라(그리스) 철할자들이 대표적인 예들인데요, 이들은 도덕적, 철학적 문제들을 깊이 숙고하고 성찰한 다음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세네카, 명상록을 지은 아우렐리우스 등등
 * 이들은 ‘음.. 난, 저들과 달라.’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비판합니다.
 * 하지만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그래? 그렇게 잘났어? 넌 똥 안 싸?”
 * 인간과 지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깊게 성찰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이 공감하는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공자도, 석가도 이 문제 앞에 멈춰 섰습니다. 어떤 이는 그게 없는 척, 무시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걸 뛰어넘는 나름의 방법을 찾느라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만..
 * 바울은 말합니다. “네가 비판하는 그 잣대를 네게 한 번 들이대 보렴. 너도 똑같이 행하고 있지 않니? 하나님 앞에선 네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행한 것으로 심판을 받는다.”라구요.
 *** 며칠 전 한 장관후보자의 기자회견이 떠오릅니다. 그가 평소 했던 말고 개혁적 의지와 방향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왔던 삶의 현실은 금수저의 특권을 누리는 것들이 몇몇 있었음을 그가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개혁운동가든 철학자건 하나님 앞에 서면 “그럼 너는?”이라는 질문 앞에 솔직해질 수밖에 없음을 깊이 깨닫습니다.
 * 또한 악의와 불의한 마음으로 그 장관후보자와 가족에게 엄청난 여론의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을 보고서 인터넷 포털 실검운동을 하면서 “너는?”이라고 묻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오늘의 본문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 또한 어제 제가 반동성애 운동에 열심인 교회들을 향해 외쳤던 것처럼, 교회와 성도가 남을 정죄하고 비판할 게 정말 아니라는 걸 다시금 새겨봅니다.
 * 대신, 조용히 나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넌 정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
 * 그리고, 나 자신에게조차도 그 완벽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정죄하는 일을 거둡시다. 단지 주님을 닮아가려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 자신을 격려하고, 주변 사람들을 격려해서 함께  그 길을 가봅시다. 그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사는 이유가 아닐까요?
 *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그저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열심히 살아보려 애는 썼습니다.”라고 겸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보는 거죠^^
 * 오늘의 요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사람 아무도 없다. 그날엔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받는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는 그 심판대를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