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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예수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의”

<2019년9월16일(월) 롬3:21-31 큐티목소리나눔>
“예수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의”

 *** 주말을 쉬다보니 로마서 진도가 맞지 않아서(특히 논리적인 글이라 빼먹을 수 없어서), 당분간 월요일 시편 대신 로마서를 묵상하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오늘 본문은 우리가 가진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내용을 깊이 있게, 압축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아주 논리적인 이야기라, 삶에 적용점을 찾기보다는, 잘 듣고 분명하게 이해해야할 이야기입니다.

1. 하나님의 딜레마와 해결책 1) v21 율법과 상관없이 & 율법과 예언자를 통해
 * 바울은 앞선 이야기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의롭다고 판정 받을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자손을 메신저로 사용하셔서 이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시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과 계명을 세상에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약속하길,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하셨는데, 이 약속을 깨뜨리셔야만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완전하신 하나님이 한 치 앞도 못 보고 그런 약속을 하신단 말인가? 하나님, 엉터리 아냐?”라는 논박에 시달리게 될 상황이 된 겁니다.
 * 바울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한 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하심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시는 일을 ‘율법과 상관없이’ 시행하셨습니다. 만약 율법 아래서 태어나셨다면, 바로 앞에서 바울이 말한 바, ‘율법은 단지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라는 제약에 걸리고 말았을 겁니다. 그래서 율법의 논리를 따른 것이 아니라, 율법과는 별개로 하나님의 직권으로(?^^) 아들을 보내신 겁니다.
 * 하지만 또 바울은 말하길, 이 일은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한 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기에, 비록 율법이 인간의 죄를 고발하는 데 그쳤더라도 그 율법이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킴으로써(율법 아래에서 신음하는 한 사람의 고백 “아! 누가 이 사람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롬7:24-라는 말은 율법이 사람들로 하여금 메시아를 고대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음), 또 율법시대에 와서 율법 너머를 예언한 예언자들의 예언을 이루는 형태로 오심으로써 하나님이 하신 약속과 말씀이 엉터리가 아님을, 가장 신실한 것임을 드러내었다고 말합니다.
 * 뭐, 어떤 사람들에게는 실제 신양생활에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은 얘기지만, 또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어야 하는 어떤 사람에게는 한 방에 이해가 되는 완전 깔끔한 정리네요~~^^

 2) v22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차별 없는 하나님의 의
 *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라고 번역된 구절은 정확하게 말하면, “faith in Jesus", 즉,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신학자들도 이 둘 사이에서 둘로 나뉩니다. 성경NIV와 ivp주석은 앞쪽으로, 제가 좋아하는 유진 피터슨, 톰라이트는 뒤쪽으로 번역했네요. ㅎㅎ)
 * 하나님이 의를 살고 다른 민족에게 전달하라는 메신저로서 이스라엘이 살아가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사랑)이 제일 중요한 베이스였는데, 이스라엘은 이걸 놓쳤단 말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원래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으신 분안데, 아버지가 가라시니까 오셨고, 또 죽기까지 그 말씀에 순종하셨단 말이죠(빌2장). 이 베이스에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예수님이 믿음,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 죽음 너머에 당신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십자가를 지신 것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예수님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의”를 세상에 온전히 드러내실 수 있게 된 겁니다.
 * 근데 이렇게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나타난다는 측면에서 유대인을 넘어서서 온 인류에 미치는 공평과 정의를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이 메신저로서 해야 했던 일이 이뤄지는 거죠.

 3) v23, 24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미치는 하나님의 의로운 판결을 당시 문화적 배경에서 설명하면,
 * 모든 사람(헬라인이든 유대인이든, 지혜자든 어리석은 사람이든)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고, 심판대 앞에서 유죄라는 사실(2,3장에서 충분히 이야기한 내용)을 이스라엘의 시각으로 바꿔서 설명해보면, 마치 그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였듯이 모든 사람이 죄의 종살이를 하고있는 셈이 됩니다.
 * 따라서 예수님이 마치 모세처럼 모든 사람을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자유민이 되게 하신 겁니다. 이를 당시 로마 문화적 배경에서 사용하는 표현인, 속량(贖良, 속전-돈-을 주고 사서 양민이 되게 함, 노예 해방), 구속(redemption, 救贖, 구하여 속량하다. cf. 구속-拘束, 감옥에 가둠-과는 발음도 다르고, 뜻도 다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합니다.
 * 이를 바울은 본문에서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았다.”라고 표현합니다.
 * 내가 값을 지불한 게 아니니까 이건 순전히 은혜인 거죠. 예수님이 하신 일은 우리를 속죄하여 양민(의로운 존재)이 되게 한 거구요. 

2. 구약의 제사라는 관점으로 설명하면(v25,26)
 * 구약에서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 있었죠.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양을 잡아다가 그 제물을 우리 죄를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 말예요. 그 제물을 대속제물(대신 속죄하는 제물)이라고 말했습니다.
 * 예수님이 인간을 속량하신 방법을 이스라엘에게 익숙한 제사용어로 표현하면, 바로 당신 스스로가 이 대속제물로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대속제물을 받으시고서 인간의 죄를 너그럽게 눈감아주시는 거죠. 없는 일로 쳐버리는 겁니다. 이걸 전문 용어로 바꾸면 “용서”라고 하죠. ㅎㅎ
 *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구약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대속제물을 바치면 일 년 동안(혹은 다음 제물을 드릴 대까지)은 용서의 기쁨을 누리는 겁니다. 그 제물로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하셨다고 “믿는” 겁니다.
 * 마찬가지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내 죄에 대해 대속제물(단 한 번 드림으로써 영원히 효력이 발생하는)이 되셨음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죄의 심판대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의롭다는 판결을 받은 거죠.  

 *** 잠깐!! 2장에서 모든 사람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한다면서요?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의롭다고 판정을 이미 받았다구요?
 * 네.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을 해주신 겁니다. (톰 라이트는 이걸 “현재 속으로 들어온 미래”라고 표현했더군요. 적절한 것 같습니다.)
 * 그리스도인들도 마지막 날에 당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근데 지금 그때의 판결을 미리 약속 받은 겁니다. 엄청난 거죠. 롬8장 말미는 이 약속이 얼마나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심과 위로와 격려와 힘이 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 한편, 또 다른 성경구절들은, 우리의 이 “믿음”이 단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삶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엄청나게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삶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이 약속에 대한 믿음은 단지 우리의 자기 확신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나, 쌍방이 다 인정하는 믿음이 아닌 거죠.
 * 이 사실을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더 확인해봅시다.

3. v27-31 결론, 그러면 자랑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오직 은혜로 이뤄진 일인데요..
 *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쎠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이방인들은 제외!
 * 근데, 바울은 앞선 이야기를 통해 율법을 제대로 지킬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고, 그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거잖아요?(신6:4,5)
 *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당근 율법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행하게 된다는 말씀! 이스라엘 사람들(또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생각이 단 1도 없으니, 율법을 지키기가 그렇게 힘든 거죠.
 * 근데,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복음으로 인해 마음이 새롭게 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걷게 되고, 자연스럽게 율법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도 나오고,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우게 디는 것”입니다.
 * 이런 바울의 논리에 따르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같이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공평한 사랑 앞에서 유대인이라고 뻐길 게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율법을 내 힘으로 지킨 것도 아니고,  단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죄 값을 지불했다는 것을 믿기만 했는데, 하나님은 내 마음마저 바꾸셔서 당신을 사랑하는 길로 걷게 하시고, 당신을 닮고자하는 마음으로 율법의 모든 정신(사랑과 진실, 정의와 공평과 같은)을 이뤄가는 삶을 살게 되는데...
 *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재 모습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라는 말처첨 마지막 날 심판대의 판결을 지금 여기서 미리 알고 누리며 살아가는 은혜가 내게 부어져 있는 겁니다.
 * 이 모든 게 은혜요, 감사요, 감격인 거죠.

 *** 오늘은 복음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지적으로 잘 정리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다 정리하고 나니, 더욱 주님의 은혜가 감격스럽게 다가옵니다. 이 감격과 감사를 내 삶 속에 순간순간 떠올리며 사는 하루하루가 되길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