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10월11일(금) 롬10:18-11:10 큐티목소리나눔>
“일부는 은혜로 남고, 나머지는 다 완고해졌음. 그래서 망해가는 한국교회 앞에서”
***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것 같은 바울. 이천년이라는 세월의 강을 건너서 바라보는 바울의 이야기는 7장에서 한 번, 또 9, 10, 11장에서 계속 유대인들에 대해 반복, 또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테이프 겉도는 느낌...ㅠㅠ
*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요즘 우리가 너무나 심각하게 느끼는 교회난민들, 가나안 성도들, 젊은이들은 점점 교회를 터나고, 나이 든 교인들은 점점 유투브, 카톡교에 빠져드는 형편을 매일 보고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바울의 살아온 생애 전체에 걸친 주제가 바로 유대인들의 구원문제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살을 베어내는 듯 한 아픔이 담긴, 피 토하는 절규처럼 들리는 이야기인 거죠.
* 이번에 로마서를 묵상하면서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최근 10여년에 걸쳐서 진행되는 한국기독교가 망해가는 현실 속에서 이 본문을 만나다보니, 저는 그 이전에 이 본문을 묵상했을 때랑 좀 다르게 바울의 마음이 다가오고, 우리 현실 기독교의 아픔이 오버랩 되어서 계속 묵상이 되고, 또 탄식하며 기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주여...ㅠㅠ
1. 바울의 질문, “그러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들은 적이 없습니까? 그래서 고따구로 나오는 겁니까?”
* 앞서서 바울은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듣고, 들어야 믿고, 믿어야 입으로 고백한다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근데 지금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의를 따르지 않고 있으니, 당근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겁니다.
* 바울이 대답은 “아니올시다. 그들은 분명 들었습니다.” 그렇죠. 바울이 인용한 시19:4에 따르면 흩어진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이 다 전파되었단 밀이죠. 바울의 선교여행을 통해서 말예요.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길을 통해서^^ (이쯤 되니까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전해졌던 율법 대신 이미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하나님말씀으로 대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럼 또 질문, “그러면, 그들이 이해를 못한 겁니까?”
“아니올시다.”
“그럼 왜 반응이 고따구입니까?”
“하나님은 하실 만큼 다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통해서 질투심을 일으켜보려고도 하셨고, 그들이 복종하지 않음에도 계속 손 내밀어 같이 가자고 수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2. “그러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돌아오지 않는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겁니까?”
* “아닙니다. 내가 있지 않습니까? 니 바울은 철저한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예수그리스도릐 복음을 만나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또 옛날 엘리야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온 이스라엘이 다 바알을 따랐고,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하나님 따르는 사람으로 남았다고 한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이 칠천 명이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엄중한 시기에도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따르는 이스라엘이 남아있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인 거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머지는 다 완고해져버렸습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 참.. 만감이 교차하는 형국입니다. 남은 사람으로 인해 기뻐해야할지, 끝까지 완고한 사람들 때문에 슬퍼해야할지...
*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로 인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니, 결과적으로 우린 기뻐하고 기뻐해야 마땅한 것 같습니다.
*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렇게 교회가 썩을 대로 썩은 상황에서는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완악한 상태라, 망하는 게 순리인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가 망해도 하나님이 남겨두신 그루터기는 있을 것이고, 그게 소망이 되는 겁니다. 망해야 다시 세워지는 거니까요.
* 그 가운데 나와 우리 교회가 그 그루터기 속에 포함되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순전하고 온전하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거죠.
* 또 이 시대의 선지자들이 외치는 것처럼, 무너져가는 교회 기둥 붙잡고 같이 매몰되지 말고 알아차린 사람은 얼른 도망쳐서 살아남아야 하는 지도 모릅니다(eg. "닭장교회로부터 도망가라“-정용성, 홍성사). 그래서 지금 시대의 교회 난민들, 또 누군가 말한 가나안 성도들이 다시 새롭게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왕이면 아직 남아있는 그루터기들을 잘 분별하고 알아차려서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뤄가는 게 새로운 힘을 보태는 일인 게지요.
*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붙잡고 살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는 눈이 내게 있어야 하는 거죠.
* 그래서 이 시대 대부분의 교회에 만연해 있는 이원론적 기독교, 물질적 축복이 중요한 기독교, 죽어서 천당 가는 티켓 확보가 중요한 기독교, 목사나 장로가 교회 주인행세 하는 기독교, 부를 축적하고 세습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교회, 유튜브와 카톡만 보고 태극기 집회나 쳘심히 쫓아다니는 기독교, 무슬림이나 동성애에 대한 각종 포비아적 주장이 기독교를 지키는 것이라 강조하는 기독교, 교회 봉사만이 헌신적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가 가짜라는 것을 분별해야 하는 겁니다.
* 어쩌면 이런 주장을 하는 교회가 넘쳐나기 때문에 더욱 한국교회는 침몰하는 줄도 모르고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는 형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 같이 빠져 죽는 거죠.
* 그리고, 엄중하게도 하나님은 그게 맞다고, 망해야 한다고, 그래도 남은 그루터기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구요.
* 그 가운데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뤄가는 좁은 길로 꿋꿋하게 걸어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남은 자가 되어야 하는 거라는...
* 그러면 또 이런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이야기해보라고. 어떻게 사는 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붙잡고 사는 모습이냐고. 아마 바울도 똑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1장이 끝나고 나면 12장부터는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교회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조금 답답하더라도 같이 묵상하다보면 그 이야기를 아주 깊고 자세하게 나누게 될 것입니다. 역시 To be comtinue~~ 입니당~~^^
“일부는 은혜로 남고, 나머지는 다 완고해졌음. 그래서 망해가는 한국교회 앞에서”
***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것 같은 바울. 이천년이라는 세월의 강을 건너서 바라보는 바울의 이야기는 7장에서 한 번, 또 9, 10, 11장에서 계속 유대인들에 대해 반복, 또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테이프 겉도는 느낌...ㅠㅠ
*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요즘 우리가 너무나 심각하게 느끼는 교회난민들, 가나안 성도들, 젊은이들은 점점 교회를 터나고, 나이 든 교인들은 점점 유투브, 카톡교에 빠져드는 형편을 매일 보고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바울의 살아온 생애 전체에 걸친 주제가 바로 유대인들의 구원문제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살을 베어내는 듯 한 아픔이 담긴, 피 토하는 절규처럼 들리는 이야기인 거죠.
* 이번에 로마서를 묵상하면서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최근 10여년에 걸쳐서 진행되는 한국기독교가 망해가는 현실 속에서 이 본문을 만나다보니, 저는 그 이전에 이 본문을 묵상했을 때랑 좀 다르게 바울의 마음이 다가오고, 우리 현실 기독교의 아픔이 오버랩 되어서 계속 묵상이 되고, 또 탄식하며 기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주여...ㅠㅠ
1. 바울의 질문, “그러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들은 적이 없습니까? 그래서 고따구로 나오는 겁니까?”
* 앞서서 바울은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듣고, 들어야 믿고, 믿어야 입으로 고백한다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근데 지금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의를 따르지 않고 있으니, 당근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겁니다.
* 바울이 대답은 “아니올시다. 그들은 분명 들었습니다.” 그렇죠. 바울이 인용한 시19:4에 따르면 흩어진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이 다 전파되었단 밀이죠. 바울의 선교여행을 통해서 말예요.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길을 통해서^^ (이쯤 되니까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전해졌던 율법 대신 이미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하나님말씀으로 대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럼 또 질문, “그러면, 그들이 이해를 못한 겁니까?”
“아니올시다.”
“그럼 왜 반응이 고따구입니까?”
“하나님은 하실 만큼 다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통해서 질투심을 일으켜보려고도 하셨고, 그들이 복종하지 않음에도 계속 손 내밀어 같이 가자고 수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2. “그러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돌아오지 않는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겁니까?”
* “아닙니다. 내가 있지 않습니까? 니 바울은 철저한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예수그리스도릐 복음을 만나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또 옛날 엘리야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온 이스라엘이 다 바알을 따랐고,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하나님 따르는 사람으로 남았다고 한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이 칠천 명이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엄중한 시기에도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따르는 이스라엘이 남아있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인 거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머지는 다 완고해져버렸습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 참.. 만감이 교차하는 형국입니다. 남은 사람으로 인해 기뻐해야할지, 끝까지 완고한 사람들 때문에 슬퍼해야할지...
*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로 인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니, 결과적으로 우린 기뻐하고 기뻐해야 마땅한 것 같습니다.
*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렇게 교회가 썩을 대로 썩은 상황에서는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완악한 상태라, 망하는 게 순리인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가 망해도 하나님이 남겨두신 그루터기는 있을 것이고, 그게 소망이 되는 겁니다. 망해야 다시 세워지는 거니까요.
* 그 가운데 나와 우리 교회가 그 그루터기 속에 포함되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순전하고 온전하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거죠.
* 또 이 시대의 선지자들이 외치는 것처럼, 무너져가는 교회 기둥 붙잡고 같이 매몰되지 말고 알아차린 사람은 얼른 도망쳐서 살아남아야 하는 지도 모릅니다(eg. "닭장교회로부터 도망가라“-정용성, 홍성사). 그래서 지금 시대의 교회 난민들, 또 누군가 말한 가나안 성도들이 다시 새롭게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왕이면 아직 남아있는 그루터기들을 잘 분별하고 알아차려서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뤄가는 게 새로운 힘을 보태는 일인 게지요.
*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붙잡고 살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는 눈이 내게 있어야 하는 거죠.
* 그래서 이 시대 대부분의 교회에 만연해 있는 이원론적 기독교, 물질적 축복이 중요한 기독교, 죽어서 천당 가는 티켓 확보가 중요한 기독교, 목사나 장로가 교회 주인행세 하는 기독교, 부를 축적하고 세습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교회, 유튜브와 카톡만 보고 태극기 집회나 쳘심히 쫓아다니는 기독교, 무슬림이나 동성애에 대한 각종 포비아적 주장이 기독교를 지키는 것이라 강조하는 기독교, 교회 봉사만이 헌신적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가 가짜라는 것을 분별해야 하는 겁니다.
* 어쩌면 이런 주장을 하는 교회가 넘쳐나기 때문에 더욱 한국교회는 침몰하는 줄도 모르고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는 형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 같이 빠져 죽는 거죠.
* 그리고, 엄중하게도 하나님은 그게 맞다고, 망해야 한다고, 그래도 남은 그루터기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구요.
* 그 가운데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뤄가는 좁은 길로 꿋꿋하게 걸어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남은 자가 되어야 하는 거라는...
* 그러면 또 이런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이야기해보라고. 어떻게 사는 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붙잡고 사는 모습이냐고. 아마 바울도 똑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1장이 끝나고 나면 12장부터는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교회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조금 답답하더라도 같이 묵상하다보면 그 이야기를 아주 깊고 자세하게 나누게 될 것입니다. 역시 To be comtinue~~ 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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