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3월11일(수) 행15:36-41 큐티목소리나눔>
“심하게 다투고 갈라섬, 실수와 실패가 진주의 모래알이 될 때”
1. 바울의 새로운 계획
* 바울은 며칠(혹은 몇 달?) 안디옥에 머물러 있는 동안 마음이 점점 새로운 계획으로 차올랐습니다. 어쩌면 약간 초조해졌는지도 모릅니다. 자신과 바나바가 사실 엄청난 일을 하고 돌아왔는데, 그렇게 세워진 아시아지역의 교회, 특히 그렇게 핍박과 돌팔매질을 당하면서까지 세워놓은 교회들이 잘 있는지, 더 단단하게 해야할 필요는 없는지... 뭐 이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던 겁니다.
* 그래서 그는 바나바를 찾아서 우리가 다녔던 그곳을 다시 방문해야한다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 바나바도 어쩌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둘은 마음이 합쳐졌습니다.
*** 코로나19로 인해 세 번의 주일을 온라인 혹은 가정예배로 지내다보니,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도 참 마음에 많이 그립고, 또 더더욱 서로 깊이 사귀고 나누던 교제가 너무 그리워지네요..
*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특히 바울과 바나바의 이 마음이 너무 잘 다가옵니다. 보고 싶고, 또 어떻게 지내는지, 잘 살고 있는지, 분명 주변 환경이 녹록치 않을 텐데, 믿음은 잘 붙들고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들고, 뭔가 더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왜 안 들겠습니까?
* 이번에 코로나19로 인해 드러난 신천지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는 면 중에 하나는, 신천지 교인의 거의 대부분이 20대라는 것, 그리고 그건 그들의 불안, 외로움, 실제적인 어려움 등등을 (비록 고도의 전략적 접근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고 챙겨주고.. 그렇게 다가가다 보니 마음을 열고 한 발짝씩 다가가다 결국은 푹 빠져들게 되더라는 거죠.
*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놓친 결과가 아닌가 라는 반성을 심각하게 해야 할 부분인 거죠. 흑심을 품고 전략적으로 다가가는 동기부분을 빼고, 진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갖고서 한 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격려하고 믿음과 용기를 세워주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이런 친밀한 교제, 공동체를 교회가 세워나가야 하는 거잖아요?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공동체니까요. 그걸 놓치고서 교회란 그저 PR하는(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알팍한 교제로 만족하고 달다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ㅠㅠ
* 바울과 바나바가 어렵고 힘들게 세워진 교회들을 돌아보고 믿음을 격려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2차 선교여행을 계획하는 것처럼,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서로 격리되어있기도 하고, 조심도 해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니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서로를 다양한 방법으로 찾고, 삶을 나누고, 챙길 것을 챙겨주는 그런 마음 씀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이런 마음이 듭니다.
* 어제 우리 성도 중 한 명이 지인이 만든 면 마스크를 들고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성도 중 한 명을 방문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지금 공무원들은 면 마스크를 쓰라는 공문이 내려왔는데, 마침 그 자매는 면 마스크가 없었고.. 마음에 찐한 감동과 고마움이 우러났다고... 지금이 이럴 때라는~~^^
2.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고 갈라서는 안타까운 일이...
* 그런데 2차 선교팀을 새롭게 꾸리면서 의외의 문제가 터졌습니다.
* 바나바는 자기 사촌인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제안했고, 바울은 이를 거절한 겁니다.
* 이 마가는 1차 선교팀이 멤버였습니다. 근데 키프로스 섬에서 그만 중도하차하고 말았죠. 지나고 보면 사실 선교는 이제 막 시작도 안 한 지점에서 그만 둔 겁니다.
* 목적 지향적이고 일 중심인 바울은 그런 그를 어떻게 같이 데려 가냐는 거였고, 마음 좋고, 챙기기를 좋아하는 바나바는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고...
* 둘은 양보가 안 되었고, 진짜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아마 다혈질인 바울이 화를 엄청 내고, 큰소리가 나고.. 그랬을 게 분명합니다.
* 바나바로서는 진짜 무명의 바울을, 그것도 핍박자였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그를 발굴하고 지지하고 세워준 입장에서 무지무지 서운했을 거고, 그런 그가 바울 자기에 비하면 어쩌면 훨씬 더 작아 보이는 허물을 지닌 마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울이 진짜로 이해가 안 되었을 거고... 바울로서는 선교여행의 마지막에 겪었던 일들이 아직도 눈에 훤한데, 그렇게 돌팔매질 당하고 내쫓기는 상황에 진짜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내 팀 동료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데, 그깟 여행의 어려움하나 못 견디고 떠나버린 놈을 어떻게 믿겠느냐는 거라...
* 이렇게 두 사람의 입장이 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이해가 되는 그런 일이라 더더욱 합의가 힘들어지는 거죠. 게다가 큰소리 내고 싸우기까지 했으니...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은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바울이 가려는 여정의 반대방향, 그들이 처음 갔던 키프로스 쪽으로 배타고 갔고, 바울은 여행의 마지막 가장 힘들었던 동네, 루스드라, 더베, 이고니온 쪽으로 육로로 갔습니다. 마침 이번 예루살렘 방문에서 같이 동행해서 돌아오며 교제하고 좋은 팀웍도 만들고, 생각도 공유한 실라랑 한 팀을 먹고서 말예요. 이 실라, 실루아노는 앞으로 바울의 서신 곳곳에서 등장하는 평생의 동역자, 친구가 됩니다.
*** 참,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이렇게 뛰어난, 위대한, Saint 바울과 바나바도 싸우고, 헤어지고, 그러는 걸 본다는 게... 또 누가는 그걸 가감 없이 기록해서 남기고...
* 이런 일이 현실 속에서 잦으면 안 되겠지만, 누구나 한 번 이상은 다 겪게 되는 일인지라 더더욱 가슴도 아프고, 또 이해도 되고, 또 묘한 위로도 되고... 그러네요...
* 뭐, 어거지로 합리화해보자면, 이런 일로 해서 선교팀이 둘로 확장된 거라는... ㅋㅋ 그래서 또 누가 그러더군요. 정치싸움 끝에 수많은 교단분화가 일어났는데, 그 덕분에 복음전도가 더 왕성하게 되었노라고... 뭐 다 우리 죄성을 합리화하는 소리들이죠...ㅠㅠ
* 아마 이 때의 경험이 두 사람 모두에게, 특히 바울에게 깊은 상처도 되었고, 또 인생을 돌아보고 성숙의 길로 갈 수 있는 진주조개의 모래알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바울의 맨 나중 서신 디모데 후서에서 그가 디모데보고 이야기하길,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려와라. 그가 내게 유익한 사람이다.” 그러거든요(딤후4장).. 마가에 대한 바나바의 기대가 맞았다는 거죠. 지금은 이렇게 젊고 어린 청년이지만 나중에 자라면 얼마나 교회에 중요한 사람이 될지를 바나바는 알아본 거죠. 바울을 알아보고 지지하고 키워준 것처럼 말예요... 실은 이 마가가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잖아요?
* 바울의 자기 성찰과 인격성숙의 길은 또 계속됩니다. 빌립보서에서는 “누구든지 무슨 격려할 말이나, 사랑의 위로나, 성령 안에서 나눌 교제나 심지어 동정심이나 자비심을 베풀 일이 생기더라도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 자기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충분히 서로의 입장을 살펴야한다”라고 이야기할 때(빌2장), 아마 이때의 이 뼈아픈 경험이 바탕이 되어 말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 인생은 이렇게 실수하고, 때로 실패하면서 살아가지만, 바울처럼 (아마 바나바도 충분히) 그때를 교훈으로 삼고 자신을 주님의 성품에 이르기까지 성숙시켜나가는 기회로 삼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 두 사람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진짜 많이 돌아보게 되네요.. 지나온 부끄러운 기억들, 아직도 가야할 성숙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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