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4월03일(금) 행21:1-16 큐티목소리나눔>
“성령의 이끄심, 선택과 행동은 각자의 몫”
1.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 밀레도를 떠난 바울일행은 배를 타고 고스-로도-바다라(모두 터키반도 서남부지역의 항구들임)까지 간 다음, 거기서 시리아로 가는 배를 타고 두로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제자들을 만나 일주일을 머물면서 배 멀미도 진정시키고, 원기도 회족하고 그렇게 다음 여행을 준비합니다.
* 그들은 두로를 떠나 다시 배를 타고 돌레마이 항에 도착, 신도들과 하루를 보내고 가이사랴에 도착, 빌립집사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예루살렘을 향해 산지로 올라가는 것뿐입니다.
*** 지도를 펴놓고 이 일정을 확인하면서 가니까 참 재미있고, 또 현실감 있게 바울의 여행이 다가옵니다. 여행 목적과 일정이 있으니, 일사천리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이네요.^^
2. 아가보라는 제자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예언을 하는데...
* 빌립집사는 예언을 하는 미혼인 딸이 네 명이 있었다고.. 근데 그 집에 아가보라는 유대에서 내려온 성도가 찾아왔는데, 그도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라... (뭐, 예언의 은사를 받은 이들끼리 모인 거임? ㅋㅋㅋ)
* 근데, 그가 와서는, 바울의 혁대를 가지고 자기 손을 묶으며 하는 말이, 이 혁대의 임자가 예루살렘에 가면 이렇게 묶이게 된다고..
*** 꽤나 상징적인 행동이네요.. 그것 참... 그러고 보면 예언자들은 주로 이렇게 상징적인 행동을 많이 하는 편이죠? ㅎㅎ 에스겔 같은 경우는 예루살렘이 당할 고난을 보여주고자 왼쪽으로 누워 며칠을, 반대로 누워 또 며칠을 살고, 음식도 저울로 달아서, 그것도 인분에 구워서 먹어야 했고.. 이사야는 포로로 끌려가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벌거벗고 맨발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 이렇게 상징적인 행동을 하면, 시각적 효과도 크겠지만, 이게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는 효과가 엄청날 것 같습니다요...
* <주의> 그렇다고 이런 행동 자체가 무슨 주술적 능력이 있다든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시겠죠? ㅎㅎ
* 중요한 건, 그가 이렇게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중이란 겁니다.
3. 선택은 본인이 몫
* 자! 이렇게 모두가 예언을 들었습니다. 이젠 선택을 해야죠.
* 빌립집사의 집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리고 바울 일행들도 모두 바울에게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건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 하지만 바울은 다른 선택을 합니다.
* 실은 바울은 이 예언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도 않은 것 같은데요.. 하긴 바울도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말하길, 앞으로 가는 길에 무슨 일이 기다릴지 알지 못한다. 투옥과 환란이 있을 건 틀림없다. 뭐 이렇게 말했으니, 바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을 것 같습니다.
*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겠노라고 결정합니다. 이유는, 지금 그리스지역에서 모금한 걸 전해야하는 건 중요한 일정이고, “난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고난이나 죽음도 각오하고 있기 때문”에!!
* 참, 그러고 보니, 두로에서도 제자들이 성령에 매여서 말하길,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뿌리치고 여기까지 왔던 거였죠. 또 여기서도 같은 일이 생기네요.
* 그래서 모두들 더 이상 말릴 수 없으니, 밀레도에서처럼 다시 한 번 끌어안고 울고, 기도하고.. 뭐 이런 이별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다들 한 말이 “주의 뜻이 이루어지길 빕니다.” 였구요.. 빈 말이 아니라, 중대한 결정 앞에서 주님도 하셨던 말씀이잖아요? 겟세마네에서..
*** 모두가 같은 상황인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합니다. 모두들 가지 말라고 하였고, 바울은 가는 걸 선택합니다. 그리고 말렸던 동행인들도 같이 동참하고...
* 성령께서 앞으로 벌어질 일을 보여주셨고, 실제로 그리 됩니다. 하지만 성령은 끝까지 말리거나 푸시하거나 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상황만 알려줍니다. 마치 선택은 본인의 몫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 만약 그렇다면 환상 가운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건너와 우릴 도우라고 한 상황(행16장)에서도 바울은 안 가고 아시아에 더 머물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렇죠. 건너간 건 바울이 선택한 거죠.
*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시라,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최종 선택은 우리가 하할 수 있도록 결정권을 존중해주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 흔히 우리는 세상의 욕심이 이끄는 대로 달려가고픈 욕망을 억제하고, 이게 주님을 따르는 길이다 생각하고 절제의 길을 어쩔 수 없기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끌려 가다가도 결과가 나쁘면 왜 하나님은 날 이리로 오라 해놓고 이 모양으로 만드셨냐고 하나님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시죠. 난 이게 생명의 길임을 네게 보여주었다. 선택하고 따라온 건 너다. 그러니 그 결과가 십자가든 고난이든 가시밭길이든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더냐? 난 너의 선택과정에서 어떤 고난이 있을지도 이미 다 이야기 했고...
* 중요한 건, “왜, 무엇 때문에 이 길을 선택하였나?”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하는 거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나라와 그 뜻을 따라 살기위해서? 아님 벌 받을까봐 두려워서? 아님 이 길로 오면 벼락부자가 되고 팔자가 필 것 같아서? 그 동기에 따라 결과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겠죠.
*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그 길을 선택했고, 닥치는 고난도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 나는 왜,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걸어가는가? 그리고 그 길마저도 선택지가 주어질 때 굳이 왜 이 길을 선택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도 선택지는 여러 개고, 내가 가는 길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내가 결정한 나의 선택이기에 결코 남 탓 할 수 없는 내 인생임을, 그래서 더더욱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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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