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4월09일(목) 행22:12-23 큐티목소리나눔>
“두려움으로 차마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
1. 바울의 간증과 그 결과
* 바울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 앞에서 말할 기회를 얻자, 거창한 신학 논쟁이나 웅변을 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일종의 간증인 셈인데요..
*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논쟁은 더 큰 논쟁을 불러일으킬 거고, 아니, 지금 극도로 흥분한 군중들에게 논리적 이야기가 들어올 리가 없으니,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는, 또 당연히 그러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율법에 열성적인 사람’이었는지를 이야기했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빛 가운데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일, 일시적 맹인이 된 일, ‘율법을 따라 사는 경건한 사람’, 아나니아를 만나 눈을 뜨게 된 것, 아나니아를 통해 ‘의로우신 분’,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믿고 세례를 받게 된 것,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떠나라. 이방사람들에게 널 보낸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던 것까지 이야기했습니다.
* 위에서 말한 바 주에 따옴표를 친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울은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율법과 하나님에 대해 예수그리스도와 자신의 경험이 어떻게 연결되는 지를 세심하게 신경 써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율법에 열심인 사람’이고, 눈을 뜨게 해주고 예수를 소개한 아나니아도 ‘율법을 따라 사는 경건한 사람’이고, 예수님도 율법에서 존경하는 ‘의로운 분’으로 표현한 겁니다.
* 그러나... 이런 세심한 배려도 무색하게, 그만 사람들은 그가 “이방인에게로 보낸다”는 말을 하는 순간 빡 쳐버리고 맙니다. “그럼 그렇지, 그 말이 언제 나오나 했다. 결국 네놈이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같다고 주장하는 놈이란 거잖아?”
* 그래서 그들은 옷을 벗어 던지고(오늘날로 치면, 물병을 집어 던지고^^), 먼지를 날리며 입에 개거품을 물고 소리칩니다. “저놈을 없애버려라!”
2. 대체 유대인들은 왜 그리 흥분할까요?
* 아니, 대체 유대인들은 왜 들으려하지 않을까요? 뭐가 그들 가슴에 가득해서 이렇게 한 사람의 경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해도 걍 흥분해서 죽이려 드는 걸까요?
* 가만 생각해보면 이해가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은 수천 년 전부터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고, 자기들만 하나님을 따르고 살고 있고, 주변에서는 그런 자기들을 가만 놔주지 않고 지속적으로 침범하고 노예나 식민지로 만들고, 선지자들은 그 모든 게 자기들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아서 벌 받은 거라고 말하고, 그래서 더더욱 율법을 자구 하나라도 어기지 않으려 애쓰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주변 민족들과는 다른 민족이라는 내적 우월감 같은 것도 쌓여가고, 요나에서 본 것처럼 주변민족들에 대한 증오도 같이 쌓여가고... 특히나 로마의 식민지가 된 이후부터는 뛰어난 로마문명과 세계화의 거센 물결 앞에 자신들이 지켜오던 것들을 한순간 놓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더더욱 커져만 갔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이런 상황을 한순간에 뒤집어엎을 메시아가 오길 열망하게 되고...
* 이게 수천 년 간 내려온 역사, 문화, 민족성이란 말이죠.
* 근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바울이란 놈은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이랑 동일하게 하나님백성이 될 수 있다고, 그것도 율법은 일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나아가 유대인들도 율법 안 지켜도 된다고(이건 완전 가짜뉴스입니다만..) 선동하고 있다는데, 이걸 가만 두고 볼 수 있겠냐고요!!
3. 한편, 바울이 바라보는 유대인들은 어떤 상태일까요?
*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오기 직전에 로마서를 기록하여 로마교회에 보냈더랬습니다.
* 거기에 보면, 어제 이야기한 것처럼, 유대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기가 예수님에게서 끊어져도 된다고 말할 만큼 가슴 아픈, 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지금의 유대인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는데,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씀으로써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롬10:3).
* 처음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은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거룩한 나라. 내가 너희를 기뻐한다. 너희에게 복을 주고 땅을 차지하며 다윗의 때와 같이 나라를 굳게 세워주겠다”라는 말밖에 없는 겁니다.
* 하나님을 열심을 다해 섬기지만, 그건 자기들의 열심일 뿐이고,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묵상은 사라지고 오직 구호와 행동만 남아있는 상태(롬10:2).
**** 그래서 바울이든 예수님이든 성경을 풀어서 메시아가 곧 예수님임을, 하나님나라가 어떤 모습임을 들려줘도 깨닫지도 못하고, 아니 안 듣고...
* 현실은 자기들의 열망과는 반대로 점점 더 식민지화가 가속화되고, 그럴수록 외부인들(이방인들)에 대한 내적 적개심을 더 커져가고.. 일종이 포비아적 마인드와 분위기만 잔뜩...
*** 그래서 바울의 이야기도 끝까지 듣지 못하고, 걍 ‘이방인’이란 소리가 나오자말자 소리지르고,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거였다는...ㅠㅠ
**** 요즘 기독교의 주류가 왜 이렇게 편협한 모습으로 계속 치닫고 있는지, 바울을 몰아세우는 유대인들을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이해가 잘 되네요...ㅠㅠ
* 세계는 모던에서 포스터모던으로 이미 넘어갔는데, 모던적 세계관과 문화, 철학적 사고에 근거해서 세워놓은 신학적 체계도 같이 바뀌어져야하는데(원래 신학이라는 게 당대의 세계관이나 철학, 문화적 사고로 성경을 다시 정리하고 체계화한 것이니까요..), 그러자니 기독교 자체가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오고,
* 성도 수는 자꾸 줄어드는데, 그게 꼭 외부의 적들이 공격해서 그런 것 같고,(그래서 방어전략으로 각종 포비아를 계속 만들어내지만 그럴수록 성도 수는 더 줄어들고)
* 외적으로 쪼그라들수록 더더욱 ‘우린 선택받은 사람, 너흰 사탄의 자식’이라는 우월감(자기의)은 더 커져가고, 그래서 열린 마인드는 사라지고 더욱 폐쇄적이 되어가고
* 침묵과 기도, 묵상과 철학적 사유보다는 구호와 집단행동에 더 빠르고...
*** 하나님은 세상이 바뀐다고 사라지시는 분도 아니고, 사람들의 시대와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 된다고 해서 하나님과 우리가 맺고 있는 튼튼한 인격적 관계, 사랑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이루신 구원이 흔들리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두려운지...ㅠㅠ
* 오히려 내적으로 하나님과 든든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음에 근거해서 자신 있게 세상을 향해 나를 내어주며 사랑으로 품을 것은 품고, 아닌 것에 대해선 사랑 가운데 아님을 분명하게 할 수 있을 텐데...
* 바울을 보면,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자신감으로 얼마나 뜨겁게 세상을 사랑하며, 또 세상의 죄를 폭로하며, 유일한 대안인 예수를 소개하고 있는지... 넉 달 동안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더욱 깊이있게 바울의 마음과 자신감을 배우게 되는데 말입니다...
http://www.podbbang.com/ch/8784?e=23462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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