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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1년03월29(월), 요18:12-27 큐티목소리나눔> “예수님의 평화, 베드로의 부인”

<2021년03월29(월), 요18:12-27 큐티목소리나눔>
“예수님의 평화, 베드로의 부인”

*** 지난 금욜 우리는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던 때 놀라울 만큼 동요 없이, 상황을 오히려 주도하고 계심을 묵상했었습니다.
* 예수님은 잡히셔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셨는데, 거기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잡아들여 심문하는 건 저쪽인데, 요한이 바라볼 때는 오히려 상황을 예수님이 주도하시고 있는 것 같은 미묘한 분위기~~ㅎ

1. 대제사장의 집에서
*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신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은 가야바, 그의 장인인 안나스가 전임 대제장이었음. 아마도 그 밤에 가야바가 안나스 집에 있었거나, 두 집에 바로 옆에 있었거나...
* 대제사장의 심문에 “사람들에게 물어봐. 난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다 가르쳤으니까.” 단 한 말씀하심. 구구절절 이야기하실 필요를 못 느끼시는 듯...
* 대제사장에게 건방지다고 하인이 때리자 “내가 틀린 말 했냐? 왜 때리는 거냐?” 당당하게 말씀하심.
*** 한 마디로 담담한 예수님.
* 이 모든 상황 가운데 예수님은 마음은 잡히실 때 만큼이나 여전히 매우 고요하고 평화로운 것 같습니다.
* 어쩌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이 평화는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참된 평화다.”(요14:27)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 급박하고 복잡 미묘한, 위급한, 혹은 버라이어티?한 상황 가운데서 당신 스스로에게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거 같다는...
*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이 부어주시는 마음의 평화, 하늘로부터 온 평화를 예수님이 확실하게 누리고 있는 거가 아니고서는 이럴 수 없을 거라는...
*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6:33)
* 믿음 가운데 이 상황의 끝이 어디에 닿을지를 아시는 게 더더욱 평화 가운데 이 상황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된 거라는...비록 십자가에서 죽겠지만, 그 너머에 세상을 이긴 승리가 있음을 아시는 거라... 그러니 평화 가운데 이러실 수 있는 거라!!

*** 우리에게도 상황의 끝이 어딘지 아는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들이 반드시 이뤄지는 날이 온다는 믿음이 있다면, 또 그것을 지금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있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고요함과 평화 속에서 버라이어티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말씀인데....끙...
* 하긴, 스데반도 돌을 맞아 죽어가는 가운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볼 수 있었으니 담담하게 돌 던지는 이들을 용서하며 죽어갈 수 있었을 거라(행7장)... 순간순간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우리 주님을 알아차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 평화를 누리는데 엄청 중요한 거라는 거!!!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제게 평화를 주소서”
수시로 ‘예수 기도’로 아자!!!

2. 베드로
*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집까지 들어감. 으리의 싸나이~~^^
* 요한은 또 한 제자가 같이 갔다고 기록하는데, 그는 대제장과 잘 아는 사이라는데..(그가 요한 자신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잘 모름. 많은 사람이 요한이라고 생각하는데.. 암튼)
* 그는 안뜰까지 들어갔고, 베드로는 바깥뜰에서 서성이다 문지기 하녀가 알아보고 “저 사람 제자지요?” 라고 묻자 “아니오”
* 그때 날이 추워서 사람들이 숯불을 피워놓고 함께 불을 쬐고 있었다고..
* 또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고 물었고, 베드로 “아니오!”. 말고(베드로엑 귀가 잘린 사람)랑 같이 동산에 갔던 사람이 묻자 또 “난 아니오!" 
* 그러자 닭이 울었다고..
*** 예수님이 고요함 가운데 이 상황을 만나고 계신다면, 베드로는? 뭐, 계속 갈등의 연속이었죠.. 이해가 안 돼서 질문하고, 이해가 안 된 채 행동하고,.. 그 다운데 의리는 있어서 따라가고, 그러다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이성과 상관없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그러면서도 마음으로는 또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거죠.
* 지난 삼 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점점 예수님을 향해 믿음이 자라고 있었으나 그는 여전히 길 위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고, 아니 찾았으나 그게 왜 그렇게 펼쳐져야 하는 길인지 아직 이해 불가 상황이 계속 펼쳐지는 거라... 아리송? 한 가운데 당황하고, 당황하니 평화가 사라지고, 당황하여 사고 치고...
*** 근데, 우린 베드로에게 감정이입이 진짜 잘 된다는... 예수님은 예수님이니까... 라는 생각이 들고 말예요....
* 평범한 우리는 늘 베드로처럼 하나님이 그리시는 큰 그림은 못 보고, 눈앞의 상황 하나하나 질문하고 이해 못해 당황하고, 또 사고 치고... 그래서 더더욱 베드로가 우리같고...
* 좀 뒤의 일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고. 그리고 숯불을 피워놓고 계셨고, 세 번 그에게 날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죠(요21장).
* 베드로는 숯불을 보고서 마음이 움직였고, 세 번 부인한 걸 떠올리고 참회하고, 다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그길로 다시 예수님을 따라 가는 거라...
* 나의 영적 여정 가운데서도 베드로에게 ‘숯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건이 참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때마다 사건마다 날 찾아오셔서 다시 회복시켜주신 예수님!! 그게 늘 감사요, 감격인 거죠.
* 사실, 예수님의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이끄심과 리터치가 없으면, 우린 베드로를 지나 가롯유다까지 갈 사람들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 그저 주님이 끝까지 챙겨주시니까 불안한 베드로를 지나 평화를 누리며 주님을 따르는 베드로, 전설에 따르면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는 자리까지 가게 되는 베드로를 따라 살 수 있는 내 삶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기는 거죠~ㅎ
* 이런 희망을 갖고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난주간 한 주를 예수님의 십자가 뒤를 따라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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