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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1년04월01(목), 요19:17-27 큐티목소리나눔> “요한아, 보라, 네 어머니다. 어머니, 보십시오, 아들입니다.”

<2021년04월01(목), 요19:17-27 큐티목소리나눔>
“요한아, 보라, 네 어머니다. 어머니, 보십시오, 아들입니다.”

1. ‘유대인의 왕’이라 쓴 명패
*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 빌라도는 십자가 위에 명패를 적을 때, ‘유대인의 왕’이라 썼습니다.
* 대제사장 무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자신이 개무시 당한 것에 대한 보복심에서 인지, 조롱하고자 한 것인지 암튼 아람어(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3개 국어(당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주요 언어 & 이스라엘 말)로 명패를 써 붙였습니다.
* 근데 아이러니 한 건, 이 말이 진실이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아이러니한 방식으로나마 이 명패는 세상을 향해 선포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 지금 교회의 십자가가 온통 욕먹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교회가 잘못을 하도 많이 저질러놓았으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심에 변함이 없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고 계시는 왕이신 건 진리라는 거!!
* 하나님은 이 어려운 상황을 뚫고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제대로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새롭게 세워주셔서, 언젠가는 다시 모든 무릎을 그의 발아래 꿇게 하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왕)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일어나도록 해 주실 줄 믿습니다(빌2:9-11). 아멘!!!
* 비록 지금은 밤이 깊어 어둠밖에 안 보이더라도 새벽은 오고 있는 거니까요...

2. 옷을 제비뽑는 군병들
* 그 참... 오늘날 옷이 지천에 널려있어 멀쩡한 새 옷도 걍 의류수거함에 던져넣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건 대체 뭔가.. 싶지만...
* 고대사회, 옷이 귀한 시대를 전제로 생각해보면, 이건 오늘날로 치면 마치 명품으로 두르고, 금붙이로 치장한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주변 사람들이 그걸 챙겨 갈 것 같은 거랑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 암튼... 이 상황 또한 시편 22:18이 이뤄진 것이라...
* 뭐, 물론 시22편은 기록한 당사자 시인이 당하는 고난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긴 한데... 그래서 굳이 이게 메시아에게 적용하기 위해 예언된 거라고 보기에는 억측이 있긴 하지만, 암튼... 이걸 예수님이, 또 제자들이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에게 적용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아하! 그게 이렇게 연결되는 구나.. 예수님의 죽음 장면이 이렇게 숨은그림찾기 하듯 구약에 예언되어 있었어...’라고 바라보게 되는 거라는~~ㅎㅎ

3. 어머니를 제자에게 맡기시는 예수님
* 한편, 십자가 밑에는 요한과 여인들이 있었다는데... 좀 이해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암튼 여인들은 하찮게 취급하던 당시 분위기랑 요한이 아직 어려서? 뭐 용인이 되었던 것 같긴 합니다만, 암튼,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확실한 증인의 역할을 한 건 맞는 것 같네요...
* 근데, 십자가 위에서 아래를 보시며 예수님이 요한을 부르시는 겁니다. 울고 계시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요한아, 네 어머니다” 그러시고, 어머니에게는 “어머니, 당신 아들입니다.” 그러셨다고...
* 이후에 요한은 마리아를 집으로 모셨고... 마리아는 초대교회에서 독특한 위치와 더불어 예수님의 삶에 대한 증인 역할을 하게 된 거죠. 예수님의 잉태 이야기, 또 어릴 때 이야기는 어머니 마리아가 들려주지 않았음 우리도 몰랐을 거니까요...

**** 예수님의 이런 조처(?)를 보면서 ‘가족 됨’에 대해 문득 생각이 새로워지는데요...
* 마리아 입장에서 보면, 졸지에 아들을 잃게 되었고, 그것도 세상이 공공의 적으로 몰아 제일 비참한 처형방식으로 공개처형을 당했으니... 얼마나 그 슬픔과 충격이 컸겠냐구요...
* 그런 그를 붙들어 위로하고, 다시 삶을 살 수 있도록, 나아가 천천히 그 아들의 삶을 새롭게 조명해볼 수 있도록 숨 쉬고, 밥 먹고, 잘 수 있도록 해 준 새로운 가족이 지금 생긴 거잖아요?
* 며칠 뒤 부활하신 예수님은 또 동생 야고보를 따로 만났고, 그 또한 이 새로운 가족, 예수님의 제자공동체에 속하게 되었고....
* 예수님을 머리로 해서 그의 몸, 그리고 각 지체가 된 우리들... 교회란 바로 이런 혁명적인 공동체, 서로 품고 보듬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제는 너무 몸에 익어버린 것 같은 요즘, 온라인 예배가 익숙해져서 같이 모이고자 하는 에너지를 쓰기가 점점 귀찮아지려 하는 요즘...
*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서로를 보고시포!! 하고, 안부를 묻고,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일을 열씨미 해야 할 때라는 걸 다시 새겨봅니다.
* 우리 안의 이기심은 기회만 엿보고 있다가, 그 어떤 것도 자기에게 가장 최적의 조건(합리화)으로 끌어가려는 상황이 늘 벌어지니까, 우리는 그놈이 이 개인적 거리 두기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내 속을 가만 들여다보고, 애써서 카톡하고 전화하고, 또 두 가정은 만날 수 있으니까, 연락해서 만나고... 그래야 할 때라는~~
*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형제, 자매라 말로만 부를 게 아니라, 진짜 형제요 자매가 되어가야하는 때!!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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